소설리스트

고인물로 살아남기-51화 (51/204)

<고인물로 살아남기 51화>

51. 위대한 열차 도둑 (1)

차창 밖으로 황량한 대지가 빠르게 뒤로 밀려갔다.

확실히 이 열차는 원래 스토리처럼 황무지의 최고 속력을 자랑했다.

‘호위 병력은 대부분 철도를 따라 만든 초소에 있고.’

상류층만 모아 놓은 시승식에 경호원을 많이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가 무슨 교도소도 아니고, 전부 내로라하는 기업에서 신분이 보장된 자들이 아닌가.

혹시 반군이나 경쟁 기업의 사보타주를 경계하며, 대다수의 경호원은 기차 밖에서 선로를 보호했다.

“문제는 말이야.”

나와 스칼렛은 이 꼬리칸에서 기차의 앞쪽으로 가지 못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스칼렛의 아버지인 데이브 록펠스가 있는 VIP 칸으로는 갈 수 없다.

설마 이것들이 여기서 또 계급을 나눌 줄이야!

나는 진심으로 무역 연합에 뿌리내린 부조리에 절망하고 말았다.

“이번에 아버지께서 퍼스트 시티에 별장을…….”

“저희 장인 어른께서 세븐 시티에 공동 투자할 연합체를…….”

“조부께서 이제 슬슬 가업을 이으라고 하셔서. 이번 시승식에…….”

여기는 나처럼 누군가를 대신해서 시승식에 참석한 자들의 모임.

사장급들은 저 앞쪽에 모여 있고, 더 앞의 VIP 전용 공간에는 정부 고위 관계자나 부회장과 동석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의 자리였다.

‘하, 진짜 혁명 마렵네.’

누군가 나에게 프랑스산 바게트를 쥐여 준다면, 당장 저 문을 열고 ‘레볼루숑!’을 외쳤을 텐데.

설마 데이브 록펠스와 악수도 못 해 볼 줄은 몰랐다.

최소한 가까이 다가가서 이야기라도 나눴다면 일이 쉽게 풀렸을 터.

하지만 이 세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어.”

“그래, 가자!”

나는 그리 말하며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옆에 앉아서 바깥을 바라보던 스칼렛도 추임새를 넣으며 일어섰다.

아마도 할 일 없이 풍경만 바라보는 게 지루했던 탓이겠지.

나는 오러를 퍼트려 스칼렛과 나를 감싸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응? 뭔가 이상한 기운이 우리를 가뒀어.”

“내가 한 거야. 이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우리한테만 들려.”

“와 이제 루카는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완전 신기해!”

본인은 가장 신기한 능력을 지녔으면서 무슨.

나는 그런 말을 삼키고서 천천히 현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는 소금왕을 만나기 위해 VIP 차량으로 가야만 하고, 이 개 같은 계급주의 때문에 정상적으로는 들어갈 권한이 없다.

여기까지 들은 스칼렛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창문이나 벽을 부수고 나간 다음에 앞쪽으로 단번에 치고 나가면 되잖아.”

“저, 스칼렛?”

“그게 싫으면 여기 있는 아무나 인질로 잡고 VIP 차량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해도 되고.”

칫, 이래서 빨리 배우는 애들은 싫다니까.

반군, 갱단, 마족 놈들은 그래도 상관없었지만, 이 기차에서 유혈사태를 일으키는 건 곤란하다.

애초에 원래의 방식이 가능했으면 이 기차는 진즉에 황무지 어딘가에서 불타고 있을 거라고.

“스칼렛, 우리는 소금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온 거잖아. 그러니까 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면 안 돼.”

“그렇구나. 나는 네가 그 사람을 고문해서 정보를 캐낸다는 줄 알고 있었어. 소금왕이 그 데이브라는 아저씨 맞지?”

“맞아.”

세컨드 시티와 스틸 타운의 거리는 200km.

조금 전에 듣기로는 기차를 안전하게 주행했을 시, 2시간 30분 정도면 세컨드 타운의 정거장에 도착한다.

기차가 움직이고 딱 30분이 된 참이니 신속하게 이 난관을 돌파해야 했다.

은폐의 반지도 있고, [잠행]도 A등급이니 준비는 끝났다.

‘일단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둘을 만나게 해야겠지.’

* * *

RTX01형 기관차.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특급 열차로 설계된 이 공간 안에는 여러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움직이는 작은 호텔. 그 슬로건에 맞춰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이 열차의 존재 의의였다.

“으아아, 결국 내 말대로 됐잖아!”

스칼렛이 엄청난 맞바람을 염동력으로 버텨 내며 말했다.

기차의 천장 위. 이곳은 내부와는 다르게 전혀 안락하거나 편안하지 않았다.

일반인이라면 버티기는커녕 바람에 밀려 아래로 떨어졌을 터.

“사람은 안 죽였잖아. 무엇 하나 부순 것도 없고. 그래도 네 의견을 수렴해서 기쁘지 않아?”

“하나도!”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의 껍데기.

펑퍼짐한 전신 로브로 갈아입은 나와 스칼렛은 그 위에 밀착해서 조금씩 나아갔다.

내가 고안한 적전은 늘 그렇듯 간단하다. 어떻게든 열차를 비밀리에 접수하고, 다른 회사의 스파이인 척 부회장을 유인한다.

그런 뒤에 둘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해서 부녀지간임을 확인시켜 주면?

‘시타델로 떠나는 퍼스트 클래스 티켓을 얻는 거지.’

언제, 어느 순간에서나 실리는 얻어야 하는 법.

표면적으로는 스칼렛의 아버지를 찾아 주는 것이지만, 본래 목적은 록펠스 그룹의 힘을 빌려 마도 왕국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우선 계획이 완성되어야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근데 루카, 나 궁금한 게 하나 있어!”

“뭔 일인데?”

“이번에는 물건도 안 부쉈고, 사람도 안 죽였지만. 소금왕이라는 사람을 만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돼?”

이렇게까지. 나는 그 말에 담긴 의미를 헤아려 보았다.

이 기차는 시범 운행이었기에 사람이 가득 타지 않았다.

덕분에 기차에는 승무원만 있는 빈칸이 많았고, 스칼렛의 [에너지 분해]를 이용해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열차 창문을 열어 위로 올라온 것이었다.

“오몬드 사막은 소금왕의 소유야! 그러니 목걸이의 비밀을 알 수도 있겠지!”

“뭐야? 왜 그걸 여태까지 말 안 했어!”

“말했는데 네가 계속 물어보는 거잖아!”

“내, 내가 그렇게 기억력이 안 좋았나. 나는 멍청이인가. 나는 바본가.”

스칼렛은 큰 충격을 받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말해 준 적이 없으니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시간이 흘러, 우리는 기차의 기관부까지 오게 되었다.

“다 왔다. 스칼렛, 염동력으로 문 좀 열어 줘.”

“응, 일단 살펴보고 열게.”

외부와 연결된 기관부의 문,

원래라면 밖에서 열지 못하지만, 스칼렛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나는 그동안 압축 주머니에 숨겨 두었던 검과 마공학 리볼버를 꺼냈다.

‘핑거톤 리볼버는 여기서 사용하면 안 되겠지.’

특보! 핑거톤, 록펠스 그룹에게 선전포고! 별들의 전쟁인가?

이런 기사가 황무지 전역에 퍼지기라도 하면, 프레스턴의 주황색 탄환이 내 심장을 꿰뚫겠지.

아니, 잠시만. 오히려 그런 방식이 잘 먹히겠는데.

나는 주머니로 집어넣던 핑거톤의 리볼버를 다시 꺼냈다.

“그래, 이왕 하는 거 화끈하게 가야지.”

“루카, 오러를 배운 경호원 한 명이 있어. 준비됐으면 문 열게.”

나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달칵, 염동력에 의해 기관부의 문이 열렸고 나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며 안으로 진입했다.

스칼렛의 말처럼, 기관차에는 조종사 2명과 경호원 하나가 전부였다.

오러를 깨우친 경호원이 반응하기 전에, 나는 빠르게 그에게 다가가 리볼버 손잡이로 목을 쳤다.

“다들 손들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재미없을 줄 알아!”

전형적인 열차 강도의 대사를 흘려준 뒤.

나는 조종석에 앉은 두 남자에게 턱으로 기차의 구석을 가리켰다.

조종사들은 군말 없이 두 손을 들고 구석으로 움직였고, 나는 주머니에서 굵은 동아줄을 꺼내 뒤따라 들어오는 스칼렛에게 건넸다.

“경호원만 묶어 줘.”

“응, 알겠어.”

나는 즉시 작전의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원래라면 산업 스파이의 사보타주로 꾸밀 계획이었지만, 조금 전에 규모와 임팩트가 더 크게 계획이 변경되었다.

“이 열차는 우리가 접수한다. 조종사는 너희 2명뿐인가?”

“그, 그렇소.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부디 여기서 끝내시오. 이 열차는 록펠스 그룹의…….”

“알아. 내가 하려던 말도 비슷하거든. 10분 뒤에 열차 안에 있는 록펠스 관계자는 전부 몰살될 거다.”

내 선언에 두 조종사의 안색이 검게 물들었다.

단순한 강도나 사보타주로 예상했던 그들의 예상이 한참은 빗나간 것이었다.

나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핑거톤의 탐정이다. 우리는 이번 세븐 시티와 관련된 수사를 진행 중에, 록펠스 익스프레스를 통해 다량의 금지 품목이 운송된 정황을 파악했다.”

“핑거톤? 그러고 보니 그 총은.”

“입 닥쳐! 금지 품목 중에는 마족과 관련된 물건도 있다. 이미 폰테인 그룹의 사건도 있는바. 핑거톤에서는 황무지의 별 중에서도 배신자가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니 조용히 지시에 따르도록.”

거짓말도 하다 보니 늘어나네?

입을 여니 구라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애초에 록펠스 그룹도 앞과 뒤가 모두 깨끗한 놈들은 아니다. 두 조종사는 그곳의 직원이니 더 잘 알고 있겠지.

거기에 핑거톤의 표식이 그려진 총이 설득력을 가미했다.

나는 직급이 더 높아 보이는 조종사에게 총구를 조준하며 말했다.

“혹시 핑거톤의 처단자를 아나?”

“네, 알고말고요. 그 사람을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이건 그분의 지시다. 만약 데이브 록펠스가 기관차로 오지 않으면 방금 말한 일이 진행될 거다.”

“다, 당장 가서 모셔오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알리지는 마. 처단자께서도 이왕이면 조용히 심문하고 싶으시니.”

조종사는 내 지시에 따라 VIP 칸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실력과 핑거톤의 표식을 보여주니 조종사는 나의 말을 믿는 눈치였다.

이제 가만히 기다려볼까. 나는 기감을 퍼트리며 조종사의 움직임을 살폈다.

만약 조종사가 경호원을 부른다면 즉시 이 기차를 벗어나야 했으니.

‘뭐, 그럴 일은 없지만.’

조금 기다리자 조종사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서 부회장이 있는 VIP 차량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그가 다시 이쪽으로 향하자 데이브 록펠스의 기운도 함께 느껴졌다.

역시 핑거톤은 못 참지. 제아무리 일곱 별의 하나라도 황무지의 처단자는 무서운 모양이었다.

“소금왕이 온다. 여기 부조종사랑 경호원은 재워 둬.”

“응, 그런데 그 사람이 오면 내가 말해도 되지?”

본인이 직접 나서 준다니 오히려 고마운걸.

긴장감이 어린 스칼렛의 목소리에 나는 긍정을 표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데이브는 기관차로 빠르게 다가왔다.

뒤에 경호원 다수가 따라오고는 있었지만, 당사자가 왔으면 크게 문제는 안 되었다.

“나는 당신들이 찾는 사람이오. 내가 기관차로 들어가도 되겠소?”

기관차 문에 선 데이브가 침착하게 말을 걸었다.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마. 혹시 같이 온 경호원이 발을 붙이면 바로 실력 행사에 들어갈 테니.”

“그럴 생각은 없소. 나는 단지 오해를 풀고 싶을 뿐이오.”

데이브는 두 손을 내밀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데이브 록펠스. 그는 로브를 푹 눌러쓴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프레스턴 씨는 언제 오시는 겁니까.”

그때, 스칼렛이 두건과 로브를 벗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렇게 일을 크게 벌려 죄송합니다. 사실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

“메, 메리?”

스칼렛의 얼굴을 본 데이브의 입에서 어떤 여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아침 드라마스러운 장면의 다음 대사를 속으로 생각했다.

‘저희 어머니의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그와 동시에 스칼렛도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건 저희 엄마의 이름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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