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로 살아남기 48화>
48.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서(3)
“먹는 소금이요?”
스칼렛이 멍청한 말투로 되물었다.
감정사의 말을 듣고 보니 뭔가 소금 덩어리 같은 느낌이 드는지.
소녀는 고개를 거듭 갸웃거렸다.
“여기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아, 네.”
어머니가 목숨처럼 아끼던 물건이 소금 결정이라니.
적잖이 충격을 받은 스칼렛은 이마를 부여잡으며 감정사가 건네준 목걸이를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준 물건이 소금이면 확실히 쇼킹한 일인 건 맞지.
하지만 이 소금 목걸이는 억만금을 줘도 부족할 만큼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
설마 스칼렛의 어머니가 식성이 좋아서 선물로 소금을 줬겠는가.
나는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감정사에게 적절한 주행 경로를 제시해 주었다.
“조금 이상하네요. 이 목걸이는 물에 닿아도 녹지 않았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 비를 맞아도 녹지 않았어요.”
“그건 아마 연금술로 보존 처리가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소금이라고는 말씀드렸지만, 일반적인 소금은 아닙니다. 이런 거대한 소금 결정은 정말 흔치 않으니까요.”
감정사의 말에 스칼렛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고 알고 있는 스칼렛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약간의 기대가 생긴 그녀는 의욕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어떤 소금인지는 알 수 없을까요?”
오호, 웬일로 제대로 된 질문을.
기본적으로 소금은 생산된 방법이나 지역에 따라 성분이 달라진다.
보존 처리를 했다고 하더라도 성분을 분석한다면 충분히 출처를 유추할 수 있을 터.
원래는 내가 하려던 질문이었으나, 진심 모드로 들어간 스칼렛의 지능은 일시적으로 상승한 듯싶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어디에서 생산된 소금인지는 저도 알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감정사는 우리를 두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러더니 보석상의 식당에서 소금통을 가져와 우리에게 내밀었다.
황무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제품이었다.
“여기 이것과 색깔도 그렇고. 많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킁킁.”
스칼렛은 통에 든 소금을 손에 쏟아 냄새를 맡았다. 참으로 본능적인 양반이네.
나는 조용히 소금통을 들어 원산지를 살폈다. 다행히 감정사의 안목은 꽤 훌륭했다.
오몬드 소금사막. 내용물이 채취된 장소를 살펴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몬드 소금사막에서 채취된 물건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요리나 음식에도 관심이 많아서 여러 종류의 소금을 알고 있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아도요.”
오몬드 사막은 바닷물이 갇혀서 물이 오랜 시간을 걸쳐 증발하며 생긴 소금사막이다.
위치는 무역 연합의 중심부. 동부 언저리에 있는 세븐 시티와는 거리가 멀지 않은 편이었다.
“스칼렛, 대충 감이 잡힌 거 같아.”
“그래? 나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루카가 알았다면 분명 옳은 거겠지?”
“물론이지.”
“응, 그러면 믿을게!”
스칼렛은 그리 대답하며 소금을 찍어 먹었다.
나름 진지하게 맛을 보는 그 모습에 나는 실소를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연합의 중부로 떠날 명분은 만들었다.
스칼렛의 성장을 위해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내 생존을 위한 다음 단계.
그것을 위해서는 우선 스칼렛의 아버지에게 가야 했다.
“감정사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커스터 지부장님에게는 제가 잘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저는 힘이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부디 고객님께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공손한 인사를 받고서 우리는 보석상 밖으로 나왔다.
따로 대금을 치를 필요는 없었다. 오늘은 이 보석상의 단골인 커스터 지부장의 추천으로 왔기 때문이었다.
“후우, 아버지는 그러면 황무지 중부에서 퍼스트 시티까지 오셨던 걸까.”
스칼렛은 거리로 나오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퍼스트 시티는 황무지 동북부. 근처에 있는 데모크라시 타운과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개발된 지역이었다.
반면에 황무지 중앙은 차후에 세컨드 시티가 들어서며 발전한 지역이다.
아무래도 일반인이 마음 놓고 여행을 다니기에는 거리가 먼 편이었다.
“일단 세컨드 시티로 가면 뭐라도 알게 되겠지. 사실 이 소금과 관련된 사람도 알고 있고.”
“정말? 오몬드 소금과 관련된 사람을 알아?”
“소금왕이라고 연합의 중부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만날 수만 있다면 뭐라도 정보를 알지 않을까.”
“으응. 왠지 이름에서 신뢰가 가기는 하네.”
스칼렛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봤다.
너무 유명해서 마음대로 만나기도 힘든 사람이지만, 나는 굳이 그 부분은 말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쉽게 끝나지는 않겠지. 정석 루트를 따라가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나는 빠른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언제나 늘 그래왔듯이.
* * *
며칠 뒤.
우리는 별장에서 짐을 빼고 우리가 타고 온 마차에 짐을 실었다.
물론, 나는 마부석에 앉아서 신문을 읽으며 대기했다. 염동력을 다루는 주인공이 있는데 나 같은 명품 엑스트라가 뭘 하겠어.
“루카, 무슨 신문 읽어?”
마지막 짐을 마차 트렁크에 실고 마부석에 올라탄 스칼렛이 물었다.
“미래를 위한 대비? 내가 원하는 내용이 있을까 해서.”
“그렇구나. 나도 읽을래!”
“난 다 읽었으니 가져가. 다 읽으면 불쏘시개로 쓸 거니까 짐칸에 넣어놔.”
“초고속, 열차로, 새 시대를, 열다. 시승식 개최! 이 말 맞지?”
“맞아. 이제 글도 잘 읽네.”
나는 스칼렛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요 4개월 동안 스칼렛은 나에게 문자를 배워서 나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 만나러 가는데 무지렁이로 가면 보호자로서 모양이 빠지니까.
우리가 슬슬 출발하려 할 때. 별장의 고용인들이 나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굳이 나오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여태까지 신세 많이 졌습니다.”
“맛있는 밥 많이 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모두 잘 지내세요!”
나와 스칼렛은 마차에 앉아 손을 흔들었다.
고용인들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내가 퇴직금을 좀 넉넉하게 줬거든.
평생 남의 회사를 전전하며 직원으로 살다 보니, 내가 받고 싶었던 대접을 베풀고 싶었을 뿐이었다.
참, 마리아나 시위대 사람들은 어제 저녁에 시간을 가졌기에 따로 마중을 나오지는 않았다.
“자, 이제 가자.”
히히힝.
말들의 투레질과 함께 바퀴가 구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쭉 뻗은 도로를 따라 세븐 시티에서 살아온 4개월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참 많은 노가다를 뛰었지.
으드득, 내 이빨이 갈리며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 루카. 입 벌려 달걀 들어간다아.”
누군가의 어금니를 지키고 싶었던 건지.
스칼렛은 나에게 달걀 하나를 주고 본인은 두 개를 볼 양쪽에 밀어 넣었다.
그냥 본인이 먹고 싶었던 건가.
아무튼, 우리는 갑자기 뭐가 폭발하거나 총격전이 벌어지는 일 없이 도시의 경계선까지 왔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세상이 평화롭단 말이야.
‘확실히 주인공의 운명은 아니라는 말이지.’
뭐, 가는 곳마다 분란이 끊이지 않는 클리프 보다는 낫잖아.
나는 오랜만에 가지는 여유로운 시간에 별별 생각을 다 하며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그 순간, 우리는 예상 밖의 불청객을 만나고 말았다.
“오빵! 그냥 가면 섭섭하자나~”
콧소리를 내는 수녀복 차림의 꼬맹이.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리버티 교단의 성기사들과 주임 사제.
옆에는 커스터 지부장의 수사관들. 마지막으로 핑거톤의 탐정들까지.
세븐 시티에서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게이트 외부에 모여 있었다.
“제아무리 절친한 사람일지라도 경거망동하시면 안 됩니다.”
이 와중에도 주임 사제는 마틸다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었다.
다만 4개월 전과는 다르게 말투는 훨씬 공손해진 상태였다. 마틸다는 교단 본부에서 인정한 차기 교황 후보 중의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 알겠어요. 큼큼, 루카 신도님. 저와 저희 교단을 위해 헌신하신 신도님을 도시 변경까지 보호해 드리려 합니다. 부디 저희의 성의를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마틸다는 또박또박 나에게 교단의 뜻을 전했다.
아마 체르노 주교가 시켰겠지. 신기한 것은 마틸다의 태도였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은화 몇 잎에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처럼 노려봤는데 말이야.
“잠시만. 그럼 수사국 분들과 핑거톤 분들도 전부 같은 의도로 나오신 겁니까?”
“예, 지부장님께서 근처까지 보호해 드리고 복귀하라 명하셨습니다.”
“단장님도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참, 아부도 잘해요.
근데 체르노나 커스터는 그렇다 쳐도, 프레스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근데 단장님은요?”
“프레스턴 단장님은 밤에 떠나셨습니다. 어차피 금방 만날 거니까 굳이 안부 인사는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양반은 은근히 빨리 오라고 압박을 주네요. 어쨌든, 다들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는 경호가 필요 없어서요.”
“루카 신도님! 저희의 뜻을 저버리지 말아주세요!”
내가 명백하게 거절을 알리자 마틸다가 기겁하며 나에게 달려왔다.
소녀는 검은색 긴 치마를 휘날리며 단숨에 마부석 위로 뛰어올라 내 품에 안겼다.
신성력을 이용하며 펼친 날렵한 몸놀림에 성기사들의 작은 탄성이 들렸다.
“제발, 거절하지 마세요. 저를 구원해 주신 따뜻한 마음씨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면서 말이다.
이쯤 되면 굉장히 수상한데. 내가 의심의 눈초리를 펼치며 마틸다를 바라보자 소녀는 나에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를 냈다.
‘씨발, 나 한 번만 살려 줘. 오빠 경호한다고 따라가면 오늘 하루는 놀 수 있단 말이야.’
아아. 역시나.
마틸다는 교단에서 많은 것들을 배운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몸소 가르침을 보태줘야지.
나는 품에 안긴 소녀의 등에 손을 올리며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정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정말로요? 저는 정말 기쁘네요. 제 마음이 전해져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럼! 그 대신에 너는 도시에 남아서 오늘도 착실히 수련해 주렴.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거 같아.”
“이 씨…….”
마틸다는 걸쭉한 쌍욕을 뱉어내려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주임 사제의 기운에 흠칫 놀랐다.
이내 나를 감쌌던 두 팔이 힘을 잃고 풀어졌다.
마틸다는 예수를 창으로 찌른 롱기누스를 바라보듯, 경멸에 찬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조엘 아저씨에게는 안부 전해 주고.”
“그럼요. 제가 꼭 청부해 드릴게요.”
마틸다는 살인 예고를 남기며 순순히 마부석에서 내려갔다.
수녀복 꼬맹이는 주임 사제와 함께 도시 너머로 사라졌고, 나는 나머지 인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서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말이 성기사지, 기병용 검과 카빈 소총을 든 교단의 총기병이 경로 앞에 섰고, 수사관들은 마차 뒤에서 우리를 따라왔다.
“그나저나 목적지는 어디십니까?”
핑거톤의 탐정. 몇 명의 부하들을 이끄는 조장이 말을 타고 나에게 다가왔다.
이름은 들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나네.
“또 잊으셨군요. 제 이름은 조나단입니다.”
“흠흠. 알고 있었습니다. 조나단 조장님이 워낙 과묵하셔서 먼저 말을 거실 줄은 몰랐습니다.”
“단장님 지시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꼭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음, 일단 목적지는 세컨드 시티입니다.”
“그렇다면 거기까지 마차로 이동하시겠군요?”
조나단의 물음에 나는 잠시 말을 아꼈다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아뇨, 기차 타고 갈 겁니다. 이제 막 출시된 최신형 기차요.”
내 성장에 부스터를 달아줄 최신형 기차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