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로 살아남기 47화>
47.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서(2)
세븐 시티 인근의 어딘가.
넓은 오두막 안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촛불을 중심에 두고 원을 만들어 앉아 있다.
마족 숭배자, 그들은 판게아 대륙 전역에 퍼져 인간 세상의 종말을 위해 활동하는 자들이었다.
엄숙하고 음침한 분위기 속에서, 어떤 노년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긴급 회합을 열게 된 연유는 다름이…….”
노파가 말하려던 그때.
쾅! 나무문이 부서지며 나뭇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부서진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과 한 남자의 실루엣. 마족 숭배자들은 제각기 흑마법을 준비하며 내부로 걸어 들어오는 남자를 주시했다.
“이야. 여기를 보니까. 대학교 신입생 OT 때가 생각나네.”
그때 완전 꼴아서 여선배한테 토했었는데.
나는 뒷말은 내뱉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검은 로브의 사람들은 모두 내가 어떤 놈인지 지켜보는 눈치였다.
그러면 설명해 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저는 수사국의 대리인인 해결사이자, 핑거톤 소속의 임시 탐정인 루카라고 합니다. 항복하고 세븐 시티 수사국 지부까지 나오시면 총살형 정도로 네고해 드릴게요.”
파앗. 검은색 섬광이 터지며 수십 개의 흑마법이 발현되었다.
대다수가 저주 마법. 내 몸을 옥죄던 기운이 미끄러지듯 나를 지나치며 흩어졌다.
[운수 좋은 나]의 효과가 발현되며 고급 이하의 저주 주문이 모두 튕겨 나간 것이었다.
‘성격도 급하셔라.’
다크 에로우, 검은색 화살의 형태로 압축된 마기가 인중으로 날아왔다.
목을 살짝 꺾으며 피한 다음, 나는 두 개의 오러홀을 자극하며 오러를 끌어올렸다.
오러의 방향은 다리나 팔이 아니었다. 단전의 오러는 심장으로, 심장의 오러는 단전으로.
반대편으로 향하는 오러를 섬세하게 엮으며 신체 내에서 회전시키니 기운이 크게 부풀었다.
스릉.
시미터가 검집에서 부드럽게 뽑혔다.
마족 숭배자들의 행동은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고, 내가 검을 몇 번 휘두르니 검강에 가까워진 기운이 오두막 전체를 할퀴었다.
촤악, 사지가 잘리며 핏물이 공간을 붉게 물들였다. 동시에 검격을 버티지 못한 오두막도 폭삭 무너져 내렸다.
[오버 클럭], 이 현상은 전부 프레스턴의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 낸 위력이었다.
“크아아악!”
“내 팔! 내 팔!”
“마계의 군주시여, 저희의 목숨을 바치노니 부디 만수무강하시어…….”
무너지는 천장을 피해 밖으로 나왔을 때.
10명 남짓한 마족 숭배자들은 잔해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중이었다.
이들을 처리하는데 대략 1초.
나는 [오버 클럭]을 해제하고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스킬: [오버 클럭]의 등급이 ‘C’가 되었습니다. 체력+3, 오러+4]
드디어! 드디어 퀘스트를 끝냈다.
나는 오두막이었던 폐허의 잔해에 앉아 기쁨의 쾌재를 불렀다.
그러다가 심장과 아랫배에서 전해지는 격통에 배와 가슴을 움켜쥐었다.
“억!”
[오버 클럭]은 신체 내부에서 오러를 고속으로 움직여 위력을 증폭시키는 기술이다.
효과 자체는 릴리트나 로버트의 그것과 비슷했지만, 생명력을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게 핵심이었다.
물론, 오러 회로가 살짝 놀라며 얕은 내상을 남긴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이제는 혼자서도 잘하는데?”
저 멀리서 시커먼 아저씨 하나가 다가왔다.
프레스턴은 건들건들 다리를 움직이며 다가와, 내가 만든 작품을 바라보며 평가해 주었다.
“리볼버로 저격해서 경비병을 조용히 처리하고 내부에 진입해서 몰살시키기까지 1분. 이 정도면 우리 팀 전체가 움직이는 것보다 빠르겠어.”
“그래야죠. 나름 처단자의 수제자인데.”
“수제자라. 뭐, 그렇긴 하지.”
프레스턴은 딱히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수제자라는 말은 조금 낯간지러워도, 그가 이토록 정성을 들여 수련시킨 사람은 내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수제자 양반. 여태까지 믿고 따라와서 고마워.”
프레스턴이 웬일로 손을 내밀며 덕담을 던져줬다.
말 그대로 이제 수련은 끝이다. <석양을 향해 쏴라(3/3)>는 [오버 클럭]을 C등급까지 올리는 게 목표였다.
내 기술 수준을 멀리서 지켜본 프레스턴은 이제 적정 수준에 올라왔음을 느낀 것이다.
나도 흔쾌히 프레스턴의 손을 맞잡았다.
“저야말로 좋은 스승을 뒀죠. 여태까지 잘 이끌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니, 뭔가 조금 무서운데.”
“좋게 말해 줘도 참.”
나는 떨떠름한 눈빛으로 상대를 째려보았다.
프레스턴은 킥킥거리며 웃더니 손아귀에 힘을 꽉 쥐며 나에게 말했다.
“일이 마무리되면 언제라도 날 찾아오게. 그때까지 나는 자네가 준 정보로 착실히 마족을 조지고 있을 테니.”
프레스턴은 이제 곧 핑거톤 본부로 귀환한다.
세븐 시티는 안정적으로 정부의 영향 아래에 들어왔고, 곧 있으면 여러 회사가 사업장을 구매할 예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일어나기는 하겠지만, 이건 개인이나 단체 하나가 해결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애초에 게임에서는 키메라 마수가 날뛰며 세븐 시티의 인구가 거의 증발해 버렸으니, 그것과 비교하면 훨씬 괜찮지.’
나와 핑거톤의 처단자는 동료의 정을 느끼며 악수를 나눴다.
프레스턴과의 긴 악수를 마치고 손을 빼는 순간.
[서브 퀘스트: <석양을 향해 쏴라(3/3)>가 완료되었습니다. 오러+30, [개조: 그림자 연공]+50%]
[스킬: [개조: 그림자 연공]의 등급이 ‘B’가 되었습니다. 오러+30, 근력+3, 민첩+3, 체력+3]
[특성: [오러 탐구자]의 효과가 제거되었습니다.]
[특성: [짙은 그림자]이(가) 개방되었습니다.]
[[짙은 그림자]의 효과로 오러의 색이 검붉게 변이되며 오러의 효율이 추가로 50%만큼 증가합니다. 형상화된 오러를 압축하여 여러 응용이 가능합니다. 희귀 이하의 엘릭서로는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시스템의 알람이 주르륵 올라왔다.
오러 500점의 벽. 퀘스트의 보상과 연공법이 성장을 거듭하며 드디어 그 벽을 넘어선 것이었다.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닌, 질적인 차원의 성장.
그 덕분에 두 개의 오러홀도 함께 성장하며 열심히 덩치를 키웠다.
그래, 말 그대로 덩치를 키우며 주변 내장을 마구마구 건드렸다.
“우워웨웩!”
나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붉은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냈다.
과거에 성장하며 겪었던 고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시련에 나는 몸부림쳤다.
성장한 오러홀을 담아내기 위해 신체 구조는 변화를 거듭했고, 그 덕분에 나는 거의 새로운 인종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한참 동안 땅바닥에서 고통에 신음하자, 프레스턴은 등을 토닥여주며 성장한 나를 격려해 주었다.
“곧 경지를 넘어설 줄은 알았는데 그게 오늘이라니. 그 나이에 핑거톤의 최고 간부급으로 강해진 건 보통 일이 아니지. 정말 대단하네!”
아니, 그거 말고 고통을 줄여 달라고!
장난기를 머금은 프레스턴은 나를 번쩍 들어서 어깨에 메고 마차로 갔다.
이곳의 처리는 프레스턴의 부하가 담당할 테니, 이후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 너무 아프다. 게임에서는 클리프가 경지를 넘어설 때 대충 메시지만 나와서 몰랐는데.
‘시발. 무슨 멀쩡하게 끝나는 일이 없냐.’
나는 프레스턴의 어께 위에서 축 늘어진 빨래처럼 흐느적거렸다.
입에는 핏물로 범벅이 되었으며, 온몸에 한기가 들고 정신이 흐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확인할 건 해야지.
■────능력────■
근력: 97+8 민첩: 149+11
지능: 29+5 체력: 94+5
오러: 548
텔런트:-
■────특성────■
[인간 방패] [2.0] [희생자] [침.착.해] [개코] [예리한 감각] [나는 전설이다] [폭탄마] [짙은 그림자] [위압자] [운수 좋은 나] [순풍]
■──────────■
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이만하면 황무지에서는 내 적수가 거의 없다. 고위 마족에게도 충분히 비벼볼 수 있을 수준.
연공법도 이제 B등급이고 검술은 일주일 전에 숙련도 부여권을 통해 B등급까지 올려놓았다.
한손검, 사격, 전투 스킬은 모두 ‘숙련’의 다음 단계인 ‘전문’이 되었고, 프레스턴에게 배운 사격술도 대부분 A등급까지 올렸다.
근 반년에 걸쳐 세븐 시티에서 수련한 것은 정말이지 신의 한 수가 아닐까?
물론, 프레스턴의 전폭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히히. 히히.”
시체처럼 축 늘어진 내가 실실 웃자, 나를 들고 마차로 향하던 프레스턴이 입을 열었다.
“미친놈. 뒤질 것처럼 아플 텐데. 그 와중에도 웃냐.”
* * *
이튿날.
나는 세븐 시티에 도착해서 별장의 안락한 침대에 몸을 눕혔다.
최근에 도시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반군이나 마족 숭배자들이 세븐 시티 인근으로 몰려왔는데.
핑거톤과 수사국에서는 가만히 수련하고 있던 나까지 토벌대에 쏙 넣어버렸다.
뭐, 나야 검술이든 사격술이든 숙련도를 올릴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았다.
“웃차, 이제 이 일상도 끝이네.”
창문 사이로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빛.
나는 환한 햇살을 받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니 스칼렛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루카, 일어났어? 바깥에서 고생하느라 수고 많았어. 나도 같이 갔어야 했는데.”
“아니야. 나 혼자서도 충분했는걸.”
네가 오면 내 숙련도를 올릴 희생양이 줄어들잖아.
어림없지! 반군과 마족 숭배자는 내 소중한 경험치다.
나는 변명을 둘러대고 나갈 채비를 마친 스칼렛을 아래에서 위로 훑어보았다.
“그나저나 벌써 준비를 끝낸 거야. 빠르네.”
“응, 뭔가 기대도 되고 해서. 잘하면 단서를 얻을 수도 있는 거잖아.”
스칼렛은 목에 걸고 있는 백탁색 보석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세븐 시티의 보석상에 가기로 한 날. 아버지와의 접점은 목걸이가 전부이니 거기부터 시작해 보자는 의견이었다.
“그럼, 아침만 먹고 가자.”
“응!”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세븐 시티 번화가의 한 보석상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조금씩이지만 관광객이 보였다. 많지는 않아도 꾸준히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중이었다.
스칼렛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는 어수선한 느낌이 아니네. 옛날처럼 돌아가고 있나 봐.”
“그만큼 다들 유흥에 미쳐서 산다는 거지.”
마냥 좋다고 보기 힘든 게.
이 사람들은 대부분 도박하려고 여기로 오는 사람들이라는 거지.
돈 많은 부유층이 경비병을 고용하거나 마차편을 구해서 이곳에 오는 경우는 흔한 경우였다.
말 그대로 놀고 죽자는 주의. 나와 스칼렛은 안정을 찾아가는 도시의 풍경을 보며 커다란 보석상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커스터 지부장님에게 추천을 받고 왔습니다. 루카라고 예약이 되어 있을 겁니다.”
“어머나! 이렇게 젊은 분인 줄 몰랐는데. VIP룸으로 모시겠습니다.”
반지와 목걸이, 팔찌 등을 주렁주렁 단 중년의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두 손으로 내부를 가리키며 걸었다.
보석상 내부는 지구의 그것처럼 새하얗고 깔끔했다. 방향제 냄새가 향긋하게 코를 자극했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화려함이 덕지덕지 붙은 기분이었다.
스칼렛을 쳐다보니, 주변의 화려한 것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목걸이의 정체,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감정을 맡기신다던 물건은 어떤 건가요?”
VIP룸에 들어온 직후.
우리가 소파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자, 정장을 입은 남자가 공손히 인사하더니 하얀 장갑을 끼며 물었다.
직원들이 차와 다과를 내왔지만, 스칼렛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곧바로 목걸이를 벗어 주었다.
표정은 굳어 있었고 메마른 입술에 혀를 갖다 대며 초조함을 드러냈다.
나는 스칼렛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무 불안해할 필요 없어. 분명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으응. 그냥 갑자기 긴장이 올라와서. 혹시 아무것도 아니면 어떡하지?”
나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아버지의 정체는 당연히 알고 있다. 다만 아버지가 사는 곳으로 뿅하고 데려가는 건 뭔가 아니잖아.
감정사는 목걸이를 육안으로 확인하더니 작은 침음성을 흘렸다.
“색깔이 굉장히 특이하군요. 일반적인 크리스탈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전문 기구를 사용해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꼭 부탁드릴게요.”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감정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목걸이를 들고 왔다.
“보석이라고 말씀하신 결정은 소금입니다. 매우 거대한 소금 결정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