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로 살아남기 46화>
46.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서(1)
“내가? 뭘 숨겨?”
스칼렛은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몸은 솔직했다. 순간이었지만 동공이 확장하며 놀란 감정이 드러났으니.
한데 스칼렛은 물러서지 않고 나에게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오히려 숨기는 건 당신 아닌가요. 여태까지 날 그렇게 속여 왔으면서.”
스칼렛의 얼굴이 미묘하게 돌변했다.
속이다니? 의문도 잠시, 내가 스칼렛에게 자행한 죄악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릿속에 펼쳐졌다.
만약 [침.착.해]의 효과가 아니었다면 여기서 포커페이스를 잃었겠지. 나는 간신히 떨떠름한 표정을 유지하며 되물었다.
“나는 순도 100%인데? 엉클 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데?”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러면 이 손은 먼데요. 루카 씨.”
스칼렛은 내 손을 휙 낚아챘다.
내 검지와 엄지에는 몰래 훔쳐 먹은 팝콘의 기름기가 묻어 있었다.
검거 완료. 그리 말한 스칼렛은 빵빵하게 담긴 종이 상자를 뒤로 돌리며 나를 째려보았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이 무단 간식 취득범 씨.”
“간식 좀 집어 먹은 것 가지고 왜 그러냐.”
“간식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라구. 나의 영혼이며, 떼어놓을 수 없는 일부야!”
“요새 공연을 많이 보더니 어휘력이 늘었구나.”
스칼렛은 가슴을 내밀며 콧김을 후욱 뿜었다.
의도적이고 작위적인 주제 변경, 상대의 되도 않는 수작질에 나는 그대로 돌진해 버렸다.
“사실, 마틸다와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 알잖아, 내가 오러를 배운 이후부터 감각이 날카로워진 거.”
“……아, 그래?”
한껏 자신감에 부풀었던 두 어깨가 축 처졌다.
이어서 억지로 끌어올렸던 분위기도 가라앉았고, 시끌벅적했던 주변의 소음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세상에 둘만이 남은 것처럼.
스칼렛은 정적이 된 공간에서 입을 열었다.
“나 아버지에게 가고 싶어. 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일이잖아. 루카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스칼렛, 폐가 아니야. 그렇게 따지자면 내가 너를 세븐 시티나 미트 타운으로 데려온 건? 너는 내가 원하는 데로 여기까지 와줬잖아.”
“그거야. 내가 원하는 일이었던 걸. 루카가 내 도움을 받고 싶었잖아.”
“나도 원해. 네가 그러고 싶다면 이번에는 내가 도와줄게.”
스칼렛은 살짝 머뭇거렸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증거라고 해 봤자 이 목걸이가 다인걸. 지금 당장은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기도 힘들잖아. 아빠를 알고 있을 사람도 모르고.”
스칼렛이 빈민가에 들어온 건 아버지가 떠난 이후였다.
그 이전에는 도시 내부에서 셋이 함께 살았기에 빈민가에는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확실히 답답하기는 하지. 목걸이 하나로 황무지에서 사람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
나는 스칼렛의 두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리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찾아 줄게. 나만 믿어.”
먼저 프레스턴에 꽂아 넣은 빨대부터 다 빨고.
* * *
비토가 죽고서 대략 3주가 지난 시점.
나는 여느 때와 같이 황무지에 나와 툭 튀어나온 바위나, 소동물을 맞추며 숙련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잘 조련된 맹수. 아니, 우리의 미친 살육 전차도 함께 있었다.
“느낌이 좋아. 이번에는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프레스턴은 열심히 떠들어 대며 동기 부여를 해줬다.
그의 말대로 숙련도는 거의 끝에 다다랐다. 이제 1발만 제대로 목표에 맞추면 등급이 올라갈 정도.
나는 헬스장 트레이너처럼 조잘대는 프레스턴의 말을 소거하고 목표에 집중했다.
전방 150m 지점의 작은 깡통, [스나이핑]의 묘리를 섞지 않고 온전한 [스크류 샷]으로 저것을 맞춰야 한다.
“후우. 쓰읍, 후우.”
규칙적으로 공기를 들이 내쉬며 숨을 골랐다.
천천히 힘을 준 손가락이 방아쇠를 눌렀고, 곧바로 해머가 움직이며 오러가 압축된 실린더에 충격을 주었다.
피앙! 경쾌한 발사음과 함께 소용돌이를 그리며 날아간 오러탄은, 깡통의 정중앙을 파고들며 여러 조각으로 찢어발겼다.
{스킬: [스크류 샷]의 등급이 ‘C’가 되었습니다. 근력+1, 민첩+1, 오러+2}
이로써 퀘스트는 완료.
나는 주먹을 불끈 말아쥐며 프레스턴을 바라보았다.
“나이스. 굿 샷!”
짝짝짝!
프레스턴의 박수 소리가 상큼하게 내 귀를 두드렸다.
이번에는 약간 높은 분 도련님에게 아부하는 아저씨 같네.
극도의 사탕발림, 나이든 아저씨의 격려와 함께 며칠 전에 받았던 퀘스트가 보상을 뱉어냈다.
[서브 퀘스트: <석양을 향해 쏴라(1/3)>가 완료되었습니다. 오러+15, [개조: 그림자 연공]+20%]
[스킬: [개조: 그림자 연공]의 등급이 ‘C’가 되었습니다. 오러+30, 근력+3, 민첩+3, 체력+3]
이제 오러는 거의 400점에 가까워졌다.
앞으로 100점만 더 올리면 이제 검강도 사용하는 등, 여러 능력이 추가로 가능해질 터.
마침 프레스턴도 연공법의 등급이 오르며 성장한 기운을 콕 찍어 말했다.
“뭔가, 진전이 있었나 보군.”
“네, 덕분에 요새 오러가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거든요.”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네. 그보다 정말로 정식 입단을 미룰 건가? 이미 탐정단 식구들한테 특급 신인 데려간다고 자랑까지 했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해결할 일이 많아서요. 혹시 저 짤리는 건 아니겠죠?”
“짤리긴. 자네처럼 일 처리가 확실한 사람이 짤리면 누가 살아남으라고.”
프레스턴은 그리 말하며 시가를 입에 물었다.
저번에 미리 설치해 둔 덫에 걸린 살육전차는 나에게 3가지를 약속했다.
하나, 하루에 2시간은 수련을 도와줄 것,
둘, 폰테인 타워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
셋, 입단 시기를 내가 원하는 때까지 늦춰 줄 것.
첫 번째야 당연히 내 수련을 위한 조건이었고, 두 번째는 폰테인 타워에 숨겨진 뇌물 장부를 찾기 위함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아직 정식 단원은 아닌지라 수사 현장에 들어갈 수는 없었거든.
마지막 조건은 내 성장 때문이었다.
‘핑거톤이라는 감투가 좋기는 해도. 정말로 거기에 소속되면 내가 성장할 겨를이 없지.’
폰허부가 붙어 있는 클리프. 미친 성장력과 잠재력을 지닌 스칼렛.
이 둘이 핑거톤에 들어간다면 모를까, 아무것도 없는 3티어 루카는 시간이 부족하다.
이렇게 프레스턴에게 1대1 과외를 받아도 부족하긴 마찬가지니.
“후우, 걱정하지 말고 세상도 좀 돌아보고 와. 그렇다고 너무 늦지는 말고. 자네가 준 흑마법진을 다 찾아내려면 일손이 빠듯하니까.”
“가능한 빨리 돌아올게요.”
“정 안 되면 스칼렛 양이라도 우리에게 맡기는 건 어때?”
“글쎄요.”
나는 말끝을 흐리며 스칼렛의 스펙을 떠올렸다.
계산해 보니 원작보다 압도적으로 성장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여러 기술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간섭]의 숙련도는 이미 중반부 스칼렛에 근접해 있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한 가지다. 내가 어지간히 굴렸으니까.
‘스승이 없어도 이 정도인데, 스승한테 가면 얼마나 성장하려나.’
클리프가 폰허부가 있듯이 스칼렛에게도 스승은 있다.
마도 왕국 시타델의 페트릭 교수. 그는 텔런트 보유자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내는 교육자였다.
게임에서는 그가 황무지를 유람하다가 우연히 스칼렛을 만나는 식으로 엮인다.
어쨌든, 그만큼 스칼렛이 빠르게 성장했다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나는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근데 스칼렛이 핑거톤에 어울리지는 않을걸요.”
“뭐, 그건 그렇지. 그냥 해 본 말이야. 자, 이제 다음 수련 시작해야지!”
프레스턴은 시가 끝부분을 잘라내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우리 선생이 달라졌어요! 프레스턴이 이토록 헌신적으로 변한 데에는 마음의 빚도 있지만, 내가 핑거톤에 전해 준 뇌물 장부 탓도 컸다.
탐정단 전체가 달려들어도 이루지 못할 업적. 그걸 단 몇 주 내에 해냈으면 좀 바뀔 만도 하지.
아무튼, 그가 말을 꺼내자 시스템에 알람이 떴고 나는 서둘러 보상과 목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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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석양을 향해 쏴라(2/3)>
(내용)
- 입에 쓴 수련은 몸에 좋다. 프레스턴이 내준 과제를 달성하자!
(목표)
- [코너 샷] C등급 달성. [디바이드 블릿] C등급 달성.
(보상)
- <석양을 향해 쏴라(3/3)> 해금, 오러+30, [개조: 그림자 연공]+40%
∵ 프레스턴이 세븐 시티의 업무를 마칠 경우, 퀘스트가 자동 실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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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거 게임과는 많이 다른데.’
나는 곧바로 프레스턴에게 2번 퀘스트에 대해서 물었다.
“이번에는 저번에 보여 주셨던 탄환이 꺾이는 기술이죠?”
“원래라면 자네 말이 맞지. 하지만 저번의 일도 있고, 이번에 비토의 뇌물 장부를 찾아준 것까지 합해서 더 열심히 알려줄 생각이네. 추가로 요새 내가 개발 중인 기술도 가르쳐 줄 거고.”
새로운 기술이라. 이건 상당히 구미가 당기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프레스턴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 배울 기술은 코너 샷과, 내가 저번에 사자 마수를 쓰러트리며 썼던 기술이네. 나는 디바이드 블릿이라고 부르지.”
프레스턴은 총을 꺼내 곧바로 시연을 해 주었다.
주황색 광선이 튀어나와 좌우로 꺾이며 날아갔다. 다음으로 프레스턴이 쏜 오러탄은 확실히 예사로운 편은 아니었다.
일직선으로 나아가던 오러탄이 2개로 갈라졌다. 갈라진 오러탄은 다시 4개로 분열됐다.
이어서 8개, 16개. 최종적으로 32개로 나눠진 오러탄이 허공을 수놓으며 별빛이 되어 사라졌다.
“어때 신기하나?”
“신기하기도 하고. 어려워 보이기도 하네요.”
“확실히 쉽지는 않지. 다른 기술은 배웠어도 디바이드 블릿은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한두 명이 다거든. 어때 배우고 싶지 않나? 아니면 포기하고 싶나?”
프레스턴은 호기롭게 말하며 시선을 나에게 고정했다.
당연히 못 먹어도 고를 외쳐야지. 나는 리볼버를 꺼내며 피식 웃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해야죠.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남았거든요.”
“그 자세 하나는 인정하지. 좋아, 그러면…….”
나는 프레스턴의 조언을 티끌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집중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기한 내에 3번째 퀘스트를 끝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물러설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했기에 여기까지 왔으니까.
‘아마 마족들도 이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려 들겠지.’
마족의 침략을 빠르게 저지한 만큼, 마족들도 다른 수단을 꺼낼지 모른다.
그런 불확실한 변수까지 대처하기 위해서는 내가 강해지는 수밖에.
나는 프레스턴의 지도를 받으며 다시 수련을 시작했고, 당분간은 이대로 지낼 예정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4개월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