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로 살아남기 45화>
45. 내일을 향해 쏴라 (4)
늦은 저녁.
나는 폰테인 타워로 향했다.
프레스턴에게 줄 선물. 나의 신뢰도를 100%로 만들어 줄 궁극의 비책이 이곳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오늘 프레스턴 단장님에게 접근을 허가받은 루카라고 합니다.”
내가 정문에 다가가며 신분을 밝히자, 경비를 서던 핑거톤 둘의 시선이 벨트에 걸친 권총집으로 움직였다.
핑거톤의 권총을 본 두 탐정은 길을 비키며 말했다.
“말씀은 들었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필요하시다면 같이 수색할 인원을 붙여 드릴까요?”
“마음은 고맙지만 저는 혼자가 더 편해서요. 혹시 혼자 타워에 들어가면 안 되는 건가요.”
내 질문에 두 탐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프레스턴 단장님께서 가장 신뢰하고 계신다는 분인걸요.”
“혼자 들어가셔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뭘 그 정도까지.
프레스턴이 부하들에게 심어놓은 세뇌의 수준은 이 정도였다.
한동안 제대로 놀려먹어야지! 나는 두 탐정에게 인사를 하며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예, 그럼 늦지 않게 나오겠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들어온 건물 내부는 조용했다.
이미 수색이 끝난 저택과 별장과는 다르게, 이곳은 아직 수사가 진행되는 중이었기에 아무도 내부로 들어오지 못했다.
뚜벅, 뚜벅. 가죽 부츠가 대리석 바닥에 닿으며 소리가 났다.
조용하다 못해 으스스한, 갑자기 비토의 귀신이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차라리 좀 나와 줬으면 좋겠다.’
항상 통수만 치다가 통수 맞고 죽은 느낌이 어떤지 물어보고 싶은데 말이야.
나는 마구 어질러진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공간으로 갔다.
물건의 위치를 알고 있는 이상, 굳이 다른 곳을 기웃거릴 필요는 없으니까.
오러를 이용해 주변의 기운을 감지하니, 역시나 이 늦은 시간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설마 프레스턴이 나를 감시하고 있지는 않을 거고.’
그 양반은 철두철미한 성격은 아니거든.
인기척 하나 없는 폰테인 타워,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비토의 악행이 가득 담긴 이곳에는 숨겨진 문서들이 많다.
누군가의 암살 사건이라든지, 어떤 장소의 사보타주라든지.
대부분은 피해자가 남지 않은 사건들이지만, 개중에는 지금 공개되어도 충격적인 것들이 많다.
지금 내가 찾는 문서도 그런 종류다.
‘문서는 30층에 있었나.’
띵! 나는 기억을 떠올리며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탔다.
원래 중요한 물건은 가장 평범한 곳에 숨겨야 하는 법. 비토는 여러 중요한 문서를 묶어서 평범한 장소에 숨겼다.
당연히 비토 폰테인이 은밀하게 고위층에 살포한 뇌물 장부도 거기에 있고.
나는 승강기에서 내려 쑥대밭이 된 30층 자료보관실 안쪽을 바라보았다.
‘다들 엄한 곳만 뒤지느라 고생이 많아.’
설마 구린내가 나는 증거물을 뻔한 금고나 보관실에 넣어뒀겠어.
비토는 가장 하찮아 보이는 공간에 가장 진귀한 것을 숨겼다.
나는 자료보관실을 지나쳐 30층의 남자 화장실로 걸어갔다.
‘잔머리 하나는 잘 굴리는 노인네라니까.’
자료보관실.
이 층은 전부 폰테인 그룹과 관련된 중요한 문서가 잠들어 있다.
말 그대로 폰테인 그룹의 역사가 보관된 곳. 정보는 모아 둬야 관리하기 편하기에 뇌물 장부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 장부는 자료보관실 옆에 있는 화장실에 있다.
달칵, 나는 남자 화장실 벽면에 있는 타일 하나를 손으로 눌렀다.
그러자 태엽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허리를 숙여야 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아휴, 먼지 봐라.’
공간 안에는 엘릭서나 비약, 돈이 되는 물건은 전혀 없었다.
무려 100권이 넘는 모음집, 비토가 여태껏 뿌려댄 쥐약을 먹은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우선 나는 체르노와 커스터의 이름이 적힌 장부를 압축 주머니에 넣었다.
두고두고 이용하려면 지금은 감싸줘야지.
‘나머지 분들은 수고하시고.’
두 사람의 것을 제외한 나머지 장부.
그들은 프레스턴과 핑거톤의 신뢰도를 최고점으로 올려줄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 * *
세븐 시티의 지하 수로.
향긋한 오물 냄새와 상쾌한 습기가 몸에 척척 달라붙는다.
오러로 강화하지 않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거미줄이지 무엇인지 모르겠는 것들이 옷깃에 스치며 소름이 돋았다.
여기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찍, 찍찍, 찍찍찍.
설치류 특유의 울음이 기나긴 터널을 울린다.
어둠 저편에서 안광을 뿜어내는 일단의 무리. 마수화가 진행된 거대 쥐 집단이 내는 소리였다.
옹기종기 모인 거대 쥐 집단 사이에는 유독 거대한 덩치의 소유자가 있었다.
스칼렛은 그것을 거대거대 쥐라고 불렀다.
“쟤네들은 덤비지를 않네?”
집단을 확인한 스칼렛이 눈에서 약한 빛을 내며 물었다.
그야 여태까지 죄다 동족을 족치고 왔으니까. 나와 스칼렛 근처에는 쥐 사체가 잔뜩 흩어져 있었다.
저 쥐들은 학살을 피해 하수도 깊숙한 곳까지 도망간 놈들이었다.
“덤비지 않으면 우리야 좋지.”
나는 오러로 시력을 강화했다.
어두침침했던 사방이 불을 켠 것처럼 환해졌고,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는 거대거대 쥐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수도 토벌>, 우리가 받은 퀘스트의 목표는 저 녀석을 퇴치하는 것.
권총집에서 스르륵 빠져나온 리볼버는 순식간에 장전되어 푸른색 불꽃을 뿜어냈다.
피앙!
이전과는 다른 파공음이 어둠을 갈랐다.
[스크류 샷]의 묘리가 담긴 오러탄은 고속으로 회전하며 정확하게 목표의 미간을 뚫었다.
그와 동시에 가만히 있던 다른 거대 쥐들이 죽일 듯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아, 이걸 덤비네. 스칼렛!”
내가 이름을 외치며 앞으로 나서자, 갑자기 몸에서 활력이 돌았다.
스칼렛이 내 기운을 증폭해 준 덕분이었다.
나는 시미터 대신에 리볼버를 택했다. 이제 이런 놈들 상대로는 검술 숙련도 자체가 거의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피피피피피핑! 마공학 리볼버가 연달아 푸른 빛줄기를 뿌렸다.
마구잡이로 난사된 것 같은 오러탄은 거대 쥐의 머리를 정확하게 맞추며 사그라들었다.
“와아.”
뒤에서 작은 탄성이 들렸다.
쏘는 족족 적들이 쓰러지니 놀랄 만도 하지. 연달아 오러탄을 연사하는 것도 잠시.
[스킬: [리볼버 패닝]의 등급이 ‘A’가 되었습니다. 민첩+2]
[스킬: [사격 숙련]의 등급이 ‘C’가 되었습니다. 근력+1, 민첩+2]
전투는 시시하게 끝났다.
항상 이렇게 쉽기만 하면 정말 행복하겠는데.
나는 숙련도작이 완료된 [리볼버 패닝]을 본 뒤에 쥐 사체가 가득한 곳에서 거대거대 쥐를 들어 올렸다.
크기는 거의 곰에 가까웠고 찌린내가 코를 푹하고 찔러댔다.
“어우, 냄새.”
“그러게. 여기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지 않아? 그때도 진짜 심했는데.”
저는 그런 기억 없는데요.
우리 3인방은 원래 퍼스트 시티의 소년 갱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고아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 무법지대 같은 빈민가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딘가에 속해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일련의 사건으로 3인방이 속한 갱단이 와해 되었고, 개척지 노동자로 자원한 것이었다.
‘하수도에서 살았던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게임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이니 어쩔 수 있나.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개코]가 보여 주는 곳에 단검을 푹 찔러넣었다.
하급 마정석, 덩치에 걸맞은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다.
“이제 다시 돌아가자.”
“응.”
나와 스칼렛은 수로에서 나와 리틀 나폴리 지구의 마리아에게로 갔다.
<하수도 토벌>을 발주한 사람이 전 시위대 소속의 마리아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빈민가의 행정관이고.
집 앞에 서서 문을 두들기니 마리아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서 오세요. 일은 전부 끝내셨어요?”
“수로에 엄청 큰 쥐들이 있었습니다. 여기 이 마정석은 거기 있던 가장 큰 놈에게서 나온 거고요.”
“휴, 어쩐지. 아이 하나가 하수도 배출구 근처에서 실종된 일이 있었거든요. 해결됐다니 다행이네요. 마정석은 가지셔도 좋아요. 여기 보상금이에요.”
마리아는 서랍에서 주머니를 꺼내 우리에게 내밀었다.
주는 건 마다하지 않지. 내가 보상을 받자 시스템에서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알람이 떴다.
[서브 퀘스트: <하수도 토벌>이(가) 완료되었습니다. 군용탄+30발, (고급)숙련도 부여권]
군용탄 보상은 그저 그랬지만, 애당초 내가 원한 건 숙련도 부여권이었다.
이제 검술이나 연공법은 1%를 올리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부여권을 주는 퀘스트를 골라서 깨는 게 일상이었다.
‘원래라면 지역 행정관이 주던 퀘스트를 마리아가 주는 게 의외지만. 게임의 판도가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지.’
그 판도를 바꾼 당사자가 투덜거릴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마리아가 권한 대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직접 쥐와 몸을 맞댄 일은 없었지만, 이미 썩은 냄새가 달라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털고 있을 때.
“맞다. 그 소식 들었어요? 오늘 군대가 세븐 시티에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마리아는 마실 것을 권하며 말을 걸었다.
군대라, 확실히 그룹의 공백이 크니 치안을 관리하려면 그런 조치도 필요하긴 하다.
“잘됐네요. 세간의 이목이 끌릴수록 쓰레기들이 나쁜 짓을 못할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네요. 그보다 두 분도 오늘은 시내 구경이라도 하시는 거 어떠세요?”
“오!”
가만히 앉아 있던 스칼렛이 물개 박수를 쳤다.
혼자서도 잘 나가 노는 편이었으나 스칼렛은 나와 같이 노는 걸 더 좋아했다.
한두 시간 정도는 괜찮겠지. 요즘은 프레스턴이 열심히 도와준 덕분에 이전처럼 하루 내내 총을 쏠 필요는 없었다.
“아마 신문 낭독회도 열릴 거야. 오랜만에 같이 갈래?”
“그래, 가자! 맛있는 것도 먹고.”
“솔직히 집에서 먹는 음식이 더 맛있지 않나. 아주머니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잖아.”
“루카는 뭘 몰라. 밥이랑 군것질은 다른 거라고. 그럼 빨리 가자. 안녕히 계세욧!”
스칼렛이 검지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내 의견을 부정했다.
그러고는 내 팔을 잡아끌며 밖으로 나가더니, 염동력을 이용해 우리 둘의 몸을 띄워 빠르게 날아갔다.
잘 놀다 오세요. 인사를 건네는 마리아에게 손을 흔들고서 나는 스칼렛의 얼굴을 살폈다.
‘확실히 평소와는 달라.’
스칼렛은 요즘 고민이 많다.
당연히 그 고민의 주제는 아버지와 관련된 것이다.
그를 찾으러 갈지, 아니면 이대로 지낼지.
아마 아버지를 만나면 여태껏 살아 온 대로 지내지는 못하리란 생각일 터.
“다 왔다. 여기서 먹을 거 사서 낭독회로 가자.”
스칼렛이 데려온 곳은 팝콘이나 솜사탕 등등의 군것질을 파는 디저트 가게였다.
잔뜩 신난 소녀는 간식을 한 아름 안아 들었고, 나는 커피 하나를 주문하는 정도로 끝냈다. 간식은 뺏어 먹는 게 맛있으니까.
신문 낭독회, 그 장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간식을 사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으로 가면 되었다.
사람들을 뚫고 낭독회의 중심으로 들어가니 왼팔이 없는 나이든 남자가 중앙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황무지 서부에서 발행된 ‘데일리 뉴타임’이라는 신문이오. 아주 기쁜 소식이니 잘 들으시오!”
신문을 읽어주는 사람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저 사람은 퇴역 군인이구나. 황무지는 워낙 넓고 마을이 분리되어 있다 보니 다른 지역의 소식을 민간인이 듣기 힘들었다.
그래서 퇴역 군인이나 용병들이 상단과 군대를 따라다니면서 각지의 신문을 읽어 주며 돈을 벌기도 했다.
나이든 군인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맛깔나게 신문 기사를 읽어 내렸다.
“레드넥의 최고 간부 중 첫째인 네이든 부스가 ‘철인’에 의해 토벌되었다! 최고 간부를 처치한 황무지의 젊은이는 본인을 클리프라 소개했다. 그는 거대한 검을 등에 메고…….”
클리프도 예정대로 잘 지내고 있나 보네.
아마 앞으로도 많이 구를 거란다. 나는 뿌듯한 심정으로 퇴역 군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운송업의 거성, 록펠스 그룹이 고속 열차의 시대를 개막하나?
데모크라시 타운의 새로운 바람.
퍼스트 시티, 군용탄 생산량을 축소하기로 결정!
다음으로는 생활에 관련이 된 따분한 내용이 줄줄이 나왔다.
애당초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보니, 따분한 기사조차도 즐거운 연극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클리프와 관련된 기사를 듣고서 옆에 있을 소녀를 불렀다.
“이제 슬슬 갈까?”
대답이 없다.
옆을 확인하니 스칼렛은 나에게 꼭 붙어 있었다.
하지만 스칼렛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심지어 클리프와 관련된 소식 자체도 전혀 듣지 못한 듯 보였다.
소녀는 딴 곳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예전에는 소중히 감추고 다니던 목걸이를 꺼내 만지작거리며 깊은 사색에 빠져 있었다.
‘역시 마틸다와 나눈 대화를 계속 곱씹고 있었구나.’
물론, 나에게는 스칼렛이 아버지를 찾는 쪽이 더 좋다.
문제는 그녀가 마음을 정하지 않은 상태라면 굉장히 파멸적인 분기가 등장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굳이 스칼렛을 닦달하지 않았다.
‘이렇게 강하게 바랄 정도면 조건을 만족했다고는 볼 수 있는데.’
일단 당사자의 진심을 들어봐야 할 터. 나는 스칼렛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우수에 젖은 눈, 스칼렛은 고개를 돌리며 그 위태로운 표정과 고민을 숨기려 했다.
“스칼렛, 원하는 게 있다면 털어놔도 좋아. 우린 친구니까 뭐든지 다 들어줄게.”
살짝 드러난 속마음을 숨기기 전에.
조금 더 빠르게 해일처럼 들이닥친 내 선언이 스칼렛의 얼굴을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