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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로 살아남기-33화 (33/204)

<고인물로 살아남기 33화>

33. 버스 드라이버(1)

주문은 빠르게 접수되었다.

악마가 직접 제작한 흑마법진은 여러 방어 마법이 중심부를 지켰다.

때문에 내가 나서는 것보다 인간 굴착기가 나서는 것이 좋았다.

프레스턴은 양쪽 권총집에 넣어 두었던 두 리볼버를 꺼내며 앞으로 나섰다.

“다칠 수도 있으니 뒤로 빠져 있게.”

오른손에 든 리볼버는 데스페라도, 왼손에는 베가본드.

둘 다 등급은 전설이며, 대륙의 연금술사와 장인을 불러모아 프레스턴을 위해 제작된 무기들이다.

우리의 스승.

폰허부를 비롯해 여러 유명한 무인들은 마스코트가 되는 무기가 있다.

무슨 광휘의 심판이나 어쩌구 격멸창처럼, 쓸데없이 고결하고 멋있어 보이는 그런 것들 말이다.

보통 그런 무기들은 성능도 미친 데다가 추가 옵션도 많고 고유 능력까지 있다.

하지만 프레스턴의 두 리볼버는 오히려 반대다.

전설급 무기인 주제에 옵션과 능력은 없고 공격력만 무식하게 높다.

심지어 두 리볼버에는 ‘오러 1000점 이상’이라는 기괴한 조건부가 달려 있다.

‘여기가 무슨 헬스장이야? 1000점 미만은 권총 금지냐고.’

당연히 이런 무지막지한 물건의 주인은 한술 더 뜬다.

왜냐하면, 프레스턴이 이것들을 제외한 다른 마공학 무기를 쓰면 모두 폭발해 버리니까.

나는 인간 굴착기가 시키는 대로 잠자코 컨테이너 밖으로 걸어 나왔다.

“흐읍!”

체스트 프레스 머신에 앉은 헬창.

숨을 가다듬는 프레스턴의 모습에서 그런 광경이 연상되었다.

두 리볼버의 총신을 한 곳에 모아 목표를 조준했고, 주변의 마나가 요동치며 창고 전체를 진동시켰다.

‘미친, 이거 건물 무너지는 거 아니냐.’

그 정도 화력은 필요 없다고!

나는 가까스로 잔뜩 쫄은 마음을 감추며, 가만히 그를 지켜보았다.

슈우우웅. 실린더 안에 모여야 할 오러는 프레스턴의 전신을 휘감았다.

검기 수준의 응집력을 아득히 벗어난, 완연한 검강에 필적할 정도로 압축되어 실체화된 오러였다.

“충격에 대비하는 게 좋을 거야.”

그는 나에게 일말의 경고를 던지고 형체를 갖춘 오러를 그대로 두 리볼버에 때려박았다.

이어서 섬광이 터졌다.

창고를 집어삼키는 강렬한 빛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오러로 안구를 보호했다.

단순히 발사 과정에서 나오는 빛만으로도 눈이 멀 것만 같았으니.

‘폰허부도 이 인간의 오러를 보고 탐이 나는 인재라고 말했을 정도니 말 다 했지.’

프레스턴의 오러는 일반적인 푸른색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웅급 이상의 연공법이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생기는 오러의 형질 변화.

프레스턴이 쏜 짙은 주황색 빛기둥은 공간을 약간씩 왜곡시키더니, 흑마법진의 핵을 부수고 그대로 전진했다.

‘응?’

쿠르르르.

왜 창고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컨테이너 내부로 쏙 머리를 들이밀었다.

역시나. 프레스턴의 공격은 흑마법진을 파훼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오러와 물리적 힘에 저항하는 특수 재질의 문과 콘크리트.

내친김에 그 뒤편의 벽과 바깥의 창고 벽, 그 뒤에 줄줄이 있는 창고까지 시원하게 고속도로를 뚫어 버렸다.

“이런 힘 조절에 실패했군.”

그는 태연히 권총집에 무기를 꽂고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라면 흑마법진을 없애고, 문의 비밀번호를 해제한 뒤에야 지하로 갈 수 있을 텐데.

프레스턴이 화끈하게 모두 날려버린 덕분에 우리는 아주 쉽게 계단을 내려가게 되었다.

나는 잔해를 치우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며 말했다.

“이미 잠입이 아닌 건 아시죠?”

“큼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흑마법진의 보호 마법이 생각보다 약하더군.”

프레스턴은 이제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두었다.

흑마법진에 가려진 통로가 드러나자, 마기의 악취가 코를 찌르고 닭살이 돋을 정도니.

“그런데 경비병이나 함정들을 조심할 필요는 없나?”

“왜 그런 걸 저한테 물어보세요. 저 여기 살면서 처음 들어와 봤거든요.”

“아니, 그냥 물어보면 알려 줄 거 같아서 그랬네.”

귀신 같은 직감 봐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넌지시 답을 내주었다.

“제가 여기의 설계자라면 굳이 복잡한 장치는 안 해 둘 것 같은데요.”

“어째서지?”

“어차피 이곳이 들켰으면……. 끝이잖아요? 누가 봐도 마기와 혈액이 흐르는 반역의 상징인데.”

“그것도 그렇군. 그나저나 이 앞은 갈림길인데 어떻게 하겠나.”

내 말처럼 이 지하 던전은 구조가 단순하다.

지하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두 개의 갈림길로 나뉜다.

왼쪽은 마인과 마족을 생산하는 공장, 오른쪽은 비토 폰테인의 ‘진짜’ 개인 금고였다.

프레스턴이야 당연히 왼쪽으로 갈 테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오른쪽으로 가야겠네.

아쉽다, 나도 마족 사냥 좋아하는데.

“그 뾰족한 감각으로는 어디에 마족이 있을 것 같은 대요.”

“왼쪽, 오른쪽에서는 마족보다 사람의 더 강하게 기운이 느껴져. 몇몇은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제가 오른쪽으로 가서 그들을 상대하겠습니다. 아마 비토 폰테인의 오른팔이 이 지하에 있는 것 같거든요.”

“흠, 로버트는 자네에게 쉽지 않은 상대일 텐데. 혼자서 가도 되겠나?”

정 안 되면 보상은 포기하고 도망가야지.

나는 목울대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고, 프레스턴이 좋아할 단어로 대답을 재구성했다.

“말했잖아요. 저는 목숨을 걸었다고요. 발목 잡을 생각은 없으니,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세요.”

“……알겠네. 왼쪽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내가 핑거톤의 이름을 걸고 장담하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넓은 등으로 답을 대신했다.

프레스턴은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진지해지는 사람에게 호의를 가지더라고.

* * *

갈림길에서 버스 기사와 나눠진 뒤.

나는 은폐의 반지를 착용하고서 구불구불한 터널로 들어갔다. 이 지하 공간은 지구의 터널과 비슷했다.

일정 거리마다 설치된 램프가 내부를 간신히 밝혔고, 곳곳에 생활 구역으로 보이는 문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프레스턴의 축포에 깜짝 놀란 마피아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밖에서 난 큰 소리 들었나?”

“예, 위로 올라가서 확인해 볼까요?”

“나는 다른 애들 끌고 갈 테니까 너희 먼저 가고 있어. 그런데 먼저 출발한 애들은 왜 연락이 없어?”

프레스턴 개새끼.

나는 통로 천장에 붙어 검은 양복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들은 토미 건이라 불리는 기관단총을 휴대했고, 일반 행동대원들보다 더 고도로 훈련된 자들이었다.

물론, 오러 사용자가 아닌 건 똑같았다.

나는 천장에서 몸을 날려 명령을 내리던 간부를 덮쳤다.

빠르게 뽑힌 시미터가 간부의 목을 벴다. 그의 목이 바닥을 구르기 전.

“헛!”

“누구-”

슉, 서걱.

곧이어 다른 두 경비병의 명줄도 함께 끊어 주었다.

[스킬: [암살]의 등급이 ‘D’가 되었습니다. 근력+1 민첩+2]

[스킬: [전투 숙련]의 등급이 ‘B’가 되었습니다. 근력+1 체력+1 민첩+1]

웬일로 스킬 등급이 한꺼번에 오르냐.

나는 주변의 적들을 경계하며 스킬창을 열어보았다.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던 페시브 스킬의 숙련도는 나도 모르게 많이 올라간 상태였다.

[한손검 숙련] D등급 94.5%

특히 이렇게 곧 랭크업을 기다리는 스킬도 있었다. 거기에 기본 민첩도 이제 99점이 되었다.

뭐, 더 싸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올라가겠지.

‘그보다 비토의 금고에 많이 가까워졌어.’

이곳까지 오면서 경비병들은 티 나지 않게 모두 처리했다.

외부의 경비와는 다르게, 이놈들은 마족에 빌붙기로 작정한 일명 ‘반역자’들이니까.

그렇게 내부 인원을 암살하며 통로의 끝에 다다를 무렵.

‘통로 쪽으로 침입자가 오고 있으니, 모두 흩어지지 말고 금고 앞을 지킨다!’

[예리한 감각]에 걸리는 목소리.

로버트는 아군의 기운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걸 눈치채고, 남은 인원을 한곳에 모았다.

걔 중에는 오러 사용자도 있었으며, 통로에 엄폐물을 쌓아서 방벽까지 만들어 두었다.

길은 하나이니 방법은 정면돌파뿐.

‘로버트를 비롯한 오러 사용자가 다섯에. 나머지 15명은 일반인이네.’

나는 빛이 들지 않은 터널의 그림자에 숨어 압축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냈다.

신체를 강화하는 여러 비약들, 그 모두를 복용하고 두 개의 오러홀을 예열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저들은 은폐의 반지 덕분에 내 존재를 완전히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단 모습을 보이면 공격이 시작될 터.

속전속결.

나는 이 단어를 마음에 새기며 움직였다.

하체에 오러를 실어 속도를 올렸다. 그러자 신체의 형상이 잔상을 남기며 주르륵 미끄러졌다.

직선 통로를 지나 마지막 코너를 도는 순간, 나를 향한 총구 십수 개가 눈에 들어왔다.

“저, 적이다!”

뿌연 안개.

그들은 내 모습을 보면서 아마 그리 느꼈을 것이다.

형체와 존재감이 희미한 무언가. 그들은 실체도 뚜렷하지 않은 안개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타타타타타타! 타자기 소리를 내며 기관단총이 화염을 토해냈다.

수백 발의 납탄과 오러탄이 동시에 쏟아졌다. 그러나 탄환은 그저 잔상을 꿰뚫고 지나갈 뿐이었다.

탁!

콘크리트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허리를 꺾어 자세를 바꾸니, 터널 천장이 발바닥에 닿았다.

천장을 밟고 다시 도약. 나는 엄폐물을 너머로 떨어지며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켰다.

핏방울이 튀었다.

칼날에 갈려 나간 이들의 사지가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나는 그전에 자리를 벗어났다.

“죽어라!”

이 동네는 친절하게 경고도 해 주네?

어떤 남자가 오러로 강화한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아마도 로버트의 제자겠지. 나는 무신경하게 시미터를 쭉 뻗었다.

그림자 검술 1번, [잔상 꿰뚫기]

뱀처럼 휜 칼끝이 남자의 몸을 뚫고 나왔다.

검을 회수하고 주위로 검을 몇 번 휘두르자, 발밑으로 핏물이 고이며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들은 총을 마음대로 쏘지도 못했다.

내가 진형을 교묘히 파고들었기에 총이 동료를 조준하게 되었으니까.

양 떼에 뛰어든 늑대처럼 날뛰던 것도 잠시, 잠자코 내 행동을 지켜보던 로버트가 검을 뽑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탐색은 끝났다는 건가.’

일반 행동대원은 모두 요단강을 넘었다.

이제 남은 건 로버트와 그의 제자 3명뿐. 스승이 움직이기 무섭게 제자들도 마공학 무기를 집어넣고 검을 뽑아 들었다.

5개의 칼날이 한 곳에 섞였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포위하는 그들의 전법에, 나는 오러를 전신으로 퍼트리며 신형을 흔들었다.

그림자 검술 2번, [환영 활보]

내 환영에게 칼을 휘두르던 놈의 허벅지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파리채가 많으면 뭐 하냐, 파리의 속도를 못 쫓아오면 말짱 꽝인걸.

“크윽!”

허벅지를 깊게 베인 제자는 뒤로 물러서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굳이 목숨을 취할 필요가 있을까. 일단 상처를 입히면 가뜩이나 나약한 놈은 더욱 전투력이 떨어진다.

내가 그놈을 베기 위해 다가가자, 다른 놈들이 제 몸을 희생하며 나를 막아섰다.

“왜 지켜주게?”

“닥치고, 죽어라!”

동료를 지키기 위해 몸을 희생한 놈에게도 똑같이 깊은 상처를 남겨주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피해가 느는 쪽은 상대방이었다.

그나마 내 속도를 따라올 수 있었던 로버트는 일부러 무시했다.

나는 케이크의 딸기는 마지막에 먹거든.

시간이 흘러, 내 작전을 간파한 제자들이 이를 악물며 본인들의 나약함을 한탄했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나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스승님! 여태까지 저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반드시 살아남아 주십시오!”

“스승님과 평생 같이 있지 못한 저희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주 눈물 나는 사제 관계 납셨네. 무슨 청춘 느와르 찍냐?

거의 자살에 가까운 돌격, 나는 깔끔하게 놈들의 머리를 베어 고통을 끝내 주었다.

[스킬: [한손검 숙련]의 등급이 ‘C’가 되었습니다. 근력+1 민첩+1 체력+1]

[특성: [순풍]이(가) 개방되었습니다.]

[[순풍]의 효과로 모든 신체 행동의 속도가 15% 향상됩니다.]

기본 민첩 능력치가 100점이 되면 생성되는 희귀 특성.

[순풍]의 효과가 신체에 새겨지자, 한층 가벼워진 느낌을 받았다.

철퍽, 핏물을 밟으며 다가오는 사내의 발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네놈. 지금 보니 오늘 회장님을 만나러 온 머저리였군.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로버트는 처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얼굴에 그어진 무수한 흉터, 여태까지는 그의 검격을 우월한 속도로 피해 다녔으나 지금부터는 마냥 그럴 수 없었다.

제자를 모두 잃은 스승의 분노가 지긋이 나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분노가 내 입을 멈추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오해가 있는데. 나는 네 제자뿐만이 아니라, 회장님도 죽이고 오는 길이야.”

네 보스 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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