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로 살아남기-32화 (32/204)

<고인물로 살아남기 32화>

32. 라스트 갓파더(4)

같은 시각, 폰테인 타워의 정면.

세븐 시티의 중앙 거리는 점점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하늘에서 갑자기 대치 중인 시위대와 패밀리 사이에 사람이 떨어졌기 때문.

스칼렛은 사람들을 뚫고 시위대 전위로 걸어갔다.

“저게 뭐야. 갑자기 위에서 떨어졌어.”

“폰테인 패밀리 놈들이 뭔가 엄청 당황하는데?”

“잠시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어떤 시위대의 외침에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불길한 검은색 기운. 사람의 정체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과 달리, 스칼렛은 그에게서 나오는 기운에 주목했다.

‘저건 마기잖아? 정말 루카의 말대로 회장이 마족의 하수인이었어.’

전날 밤, 루카는 잠자던 스칼렛을 깨워서 몇 가지를 당부했다.

하나는 시위대를 지키란 것이었고, 그다음은 폰테인 회장의 정체가 탄로 날 거라는 말이었다.

- 만약 회장의 정체가 밝혀지면 무력 충돌이 있을지도 몰라. 만약 그렇게 된다면 너는 최대한 사람들을 지켜 줘.

몇 시간 전에 들었던 루카의 말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일단 패밀리 쪽 사람들의 태도를 살펴보자!

그녀는 우선 희미한 빛을 뿌리며 주변의 정보를 수집했다.

간섭, 루카는 스칼렛의 능력을 그리 불렀다.

오러도, 마기도, 에테르도 아닌 오직 그녀만의 능력.

스칼렛은 이 미증유의 힘으로 주변의 소음에 간섭해서 원하는 정보를 골라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상부에서는 아무 말도 없어?’

‘회장님일 리가 없어. 설마 시위대 놈들이 이런 짓을 벌인 건 아니겠지.’

‘상부의 마지막 명령이 시위대를 자극하지 말고 대치만 하라는 거였는데, 그냥 이렇게 둬도 되는 거야?’

이 일은 폰테인 그룹 쪽에서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그들의 말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스칼렛은 감각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스칼렛 씨, 혹시 어떤 일인지 아시겠나요?”

자신을 부르는 말에 뒤를 돌아보니, 마리아가 정체불명의 노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불안해 보이는 마리아의 질문에 스칼렛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 검은색 할아버지의 몸에서 마기가 줄줄 새고 있는 건 확실해요.”

“정말요? 죽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움직이지 않는 걸까요.”

“아니요. 이제 곧 움직일 거에요. 마기가 거의 몸을 지배했거든요.”

스칼렛은 [간섭]의 능력을 통해 상대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혈관과 오러 회로로 침투한 마기가 몸을 거의 집어삼킨 상태.

신체 내부에 있는 어떤 기운이 침략자를 꾸준히 격퇴했지만, 이제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일단 사람들을 물리는 게 어떨까요. 저 노인이 다시 일어나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에요.”

“……하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을 전부 어떻게.”

마리아는 곤란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폰테인 그룹에 저항하여 들고 일어선 자들이었다.

그 구심점이 본인들이라 해도, 이들의 목소리와 분노를 잠재울 방법은 없었다.

모두가 자아를 가진 개인이었고, 억울하게 큰 상처를 받은 피해자였으니까.

“비토 폰테인이다! 쓰러진 노인이 비토 폰테인이다!”

때마침, 누군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시위대 틈에 섞여 있던 한 사람이 그리 말하며 행렬을 벗어났다.

호수에 던진 작은 조약돌이 일으킨 파문이 잔잔하게 시위대 사이를 파고들었다.

“저 이상한 노인네가 비토 폰테인이라고?”

“그렇다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 일단 사로잡고 봐야지!”

“이러지 말고, 패밀리 놈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저놈을 잡자고요!”

최초로 정체를 알아챈 남자의 등 뒤로 수많은 사람이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다급한 것은 반대쪽도 마찬가지.

상부에서 비토 폰테인의 신병을 확보하라는 지시가 내려지자, 패밀리의 행동대원들도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정지! 정지!”

“전진하면 쏜다! 시위대는 모두 100m 이상 뒤로 물러나라!”

확성기를 통해 경고한 패밀리의 간부는 곧바로 다음 명령을 내렸다.

자극을 피하려고 감춰 놨던 총기가 지급되었고, 차갑고 무감정한 장전 소리가 스칼렛의 귀를 때렸다.

‘이대로는 모두가 위험해져.’

스칼렛은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다.

루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루카라면, 루카라면.

여러 방안을 고민하던 소녀는 이윽고 두 손에서 밝은 빛을 내뿜으며 날아올랐다.

염동력을 이용한 부유술.

기술의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자연히 깨달은 응용법이었다.

스칼렛은 공중을 날아 제일 먼저 비토 폰테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능력의 가용치를 최대한 발휘해 근처 주변에 역장을 만들었다.

파아앙! 바닥에 깔려 있던 콘크리트 벽돌이 밀려났다.

강풍을 일으키며 생성된 역장의 힘에 시위대 몇몇이 멀리 나가떨어졌고, 스칼렛은 움푹 파인 거대한 원 안에서 외쳤다.

“모두 떨어지세요! 이러다가는 모두 죽거나 다칠 거에요!”

스칼렛의 호소에도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누군가는 본인을 밀어내는 역장으로 끊임없이 달려들었으며, 폰테인 패밀리는 기관단총을 발사하며 스칼렛을 공격했다.

수많은 총알이 역장의 힘에 밀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공간으로 들어오려던 사람들도 파도에 밀려나듯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쪽에서도 이 파국을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거기 시위대 여자! 당장 시위대 쪽으로 물러서! 안 그러면 실력행사에 들어간다!”

스칼렛은 역장을 유지하며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젊은 남자, 그는 안면을 구기며 스칼렛에게 경고했다.

그의 주위로 무반동총, 박격포, 중기관총 등등의 고화력 무기가 대거 집결해 있었다.

게다가 흉흉한 기운을 내뿜는 오러 사용자들도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제발.”

소녀는 울상을 지으며 역장을 유지했다.

저들이 진심으로 덤빈다면 막아 낼 수 있을까.

될 리가 없다. 특히 마공학 무기는 이 공간에 영향을 받지 않을 테니까.

“언제까지 참아야 해! 그냥 다 죽이고 아버지를 구해 와!”

이윽고 젊은 남자가 신경질을 부리듯 명령을 내렸다.

일촉즉발의 방아쇠가 당겨지기 직전까지 몰리자.

그으으으.

쓰러져 있던 비토 폰테인이 괴성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전에 보았던 좀비와 상태가 비슷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좀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급에 해당하는 좀비나 임프를 뛰어넘는 존재감. 루카가 알려 준 계보에 따르면 중급에 근접한 강력함이 묻어나왔다.

스칼렛은 곧바로 역장을 해제하며 전투 준비에 나섰다.

그러던 그때, 바로 뒤에서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태까지 유혈 사태를 막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칼렛은 붉은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몸을 돌렸고, 그곳에는 중절모를 쓴 남자 여럿이 서 있었다.

다가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방금까지 호기롭게 떠들던 폰테인 패밀리도 그들의 등장에 동작을 멈추었다.

“아저씨들은 누구세요?”

“저희는 핑거톤 탐정 사무소 사람들입니다. 루카 씨의 요청으로 이곳의 상황을 중재하기 위해 왔습니다.”

핑거톤의 탐정들은 곧바로 비토 폰테인을 둘러쌌다.

그들의 손에는 어느새 마공학 리볼버가 들려 있었고, 모두 제각기 다른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폰테인 회장님, 제 말 들리십니까?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면 응답해 주십시오.”

탐정들은 침착하고 무미건조한 말투로 돌아가며 마인이 된 노인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당연히 그는 답을 내놓지 못했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탐정들에게 달려들었다.

“의식이 없으시다면 치료 행위가 불가능하기에, 관련 법령에 따라서 마족으로 규정하고 처분하겠습니다.”

이윽고 섬광이 연달아 터졌다.

수십 개의 오러탄이 비정하게 비토 폰테인의 몸을 꿰뚫었다.

한순간에 걸레짝이 된 노인이 쓰러지더니, 이미 마인의 일부가 된 부분부터 잿가루처럼 변해 바람에 휘날렸다.

스칼렛은 더 없이 침착한 탐정들의 일 처리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 * *

비토의 개인 창고 앞.

폰테인 타워의 일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그곳의 경비에게도 명령이 떨어졌다.

“최소 인원만 남기고 모두 폰테인 타워로 간다. 여기 경비는 내부 인원들이 알아서 맡는다니, 걱정하지 말고 가!”

패밀리 소속의 행동대원이 소리치자 일반 경비원들도 모두 개인 창고를 빠져나갔다.

이제 남은 건 최소한의 인원들이 전부. 나와 프레스턴은 그곳에 몰래 들어가 커다란 창고가 모여 있는 중심으로 향했다.

“시위대 쪽은 너무 일을 크게 키운 거 아닌가.”

“그래서 제가 핑거톤의 탐정들을 빌려서 막은 거잖아요.”

“아니, 사람들이 크게 다칠 수도 있지 않았냐는 거지.”

“그래도 목격자가 수천 명 정도는 있어야 비토 폰테인이 마인이라는 사실을 숨기질 못할 테니까요. 아시잖아요? 폰테인 그룹이 어떻게 사람들 입을 막는지.”

“……애당초 비토를 마인으로 만든 건 자네지 않나.”

프레스턴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 나중에는 무역 연합의 총독이 되겠다고 통째로 황무지를 갖다 바칠 사람이라니까?

나는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이후에 일어날 피바다를 약간의 핏방울로 막은 거지.

“그게 핵심이죠. 제가 마인으로 만들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르게 알 테니까요. 그 극소수는 입을 막으면 되고요.”

“자네가 방금 욕한 폰테인 그룹의 방식과 같은 것 같은데.”

“제가 욕을 했나요? 저는 그 방법 완전 좋아하는데. 이게 다 정의를 위한 일이라고요. 저엉의. 즈엉의.”

“어지럽군. 일단 그 정의의 실체부터 확인하고 마저 듣도록 하지.”

나와 프레스턴은 별 탈 없이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경비병에게 들킬 일은 없었다.

나는 은폐의 반지를 착용했으며, 프레스턴은 오러를 이용해 본인의 존재감 자체를 지워 버렸으니까.

“그러니까 여기에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 통로가 있다는 말이지?”

“예, 서류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어요.”

말이 개인 창고지.

이곳에는 큰 체육관에 버금가는 건물이 여럿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안쪽 깊숙한 중심부의 건물로 프레스턴을 안내했다.

그는 창고로 무사히 들어와 내부를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예전에도 살펴본 곳이네. 뭔가 이상한 게 있었다면 내가 알았겠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류에는 그렇게 쓰여 있던걸요.”

이 창고는 큼지막한 컨테이너 박스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입구를 찾는 척하면서 한 컨테이너 박스 앞에 섰다. 유일하게 자물쇠로 채워져 있지 않은 것.

여기가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였다.

덜컹, 두 문고리를 잡아당기니 어두웠던 공간 안으로 햇볕이 비추었다.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아주 작위적으로 어떤 물건을 보관했다는 낌새조차 없이.

“창고에는 먼지가 많은데, 이쪽 컨테이너에만 발자국이 많이 찍혀 있더군요.”

“흠, 내부는 깨끗하군. 수상한 흔적이나 낌새는 없는데.”

그야 당연하다.

입구는 [초감각]마저 속이는 환각 마법이 펼쳐져 있으니.

행복의 악마, 단델리온은 몇 년 뒤에 이곳을 침략할 마족의 선봉장이라 볼 수 있다.

상위 마족과 고위 마족에 이어 ‘악마’는 사단장 정도의 계급.

단델리온은 축지법이 아니라, 환각 마법이 주특기인 장군님이다.

그렇기에 황무지의 최종 병기라 할지라도, 단델리온이 공들여 제작한 흑마법을 간파하는 건 어렵다.

‘뭐, 나야 여기를 수십 번은 더 돌아다녔으니.’

천 마디 설명보다 사진 한 장이 낫지 않은가.

나는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 시미터를 뽑고 철제 벽에 검술을 펼쳤다.

그림자 검술 3번, [달빛 베기]

쩌엉!

무를 베듯 X자로 잘려야 할 철판이 공간을 울리며 파르르 떨었다.

프레스턴은 그 순간에 느껴진 미미한 기운에 눈썹을 움직였다.

“후우, 봤죠? 여기에 벽으로 위장한 환각 마법진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나머지는 아저씨가 마저 부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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