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로 살아남기 31화>
31. 라스트 갓파더(3)
“이세계? 깽판?”
비토 폰테인은 내 말을 갓난아기처럼 반복했다.
참나, 어디서 개수작이야.
나는 은근슬쩍 넥타이로 향하던 그의 손목을 확 꺾으며 보석이 박힌 핀을 가로챘다.
“넥타이핀에 좋은 게 있나 봐? 손이 왜 거기로 가시나.”
장식용처럼 보이는 이 넥타이핀에는 보호 마법이 걸려 있다.
일정량의 오러를 흘려보내면 미리 저장된 보호막이 발동되는 방식.
앞에서는 고고한 척이나 하면서, 뒤에서는 이렇게 살아나갈 수단을 만들어 놓는다 말이야.
원래의 계획이 실패하자, 비토는 머리를 굴려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좀 진정하고 대화로 풀지, 도대체 총은 왜 쏜 건가?”
“마공학 리볼버는 장전할 때, 몇 초 정도 시간이 걸리잖아. 탄약을 미리 장전한 일반 총기가 이런 상황에서는 훨씬 대응이 빠르지.”
“……아니! 내 말은 무슨 이유로 총을 쐈냐는 말이네!”
“그건 비밀.”
역정을 내는 비토에게 썩소를 날려 준 뒤. 나는 재빨리 압축 주머니에서 시미터와 마공학 리볼버를 꺼냈다.
이 독사 같은 노인네와는 말을 많이 섞지 않는 편이 이롭다. 무의미한 대화 속에서도 해답을 찾아내는 위인이니까.
콰앙!
무기를 모두 착용했을 무렵.
바깥에서 대기하던 경호원이 문을 부수며 들어왔다.
모두들 마공학 무기를 들었고, 걔 중에는 중기관총도 있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너는 이미 포위됐다! 회장님을 풀어 줘라!”
“지금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 준다. 두 손을 들고 뒤로 돌아서!”
나는 비토의 머리에 권총을 겨눈 채로 천천히 그의 뒤로 돌아갔다.
움직이면 쏜다며? 경호원들은 대부님이 있어서 그런지, 방 안에 총을 갈겨대는 결례를 범하지 않았다.
아니면 회장님 대가리에 자살골을 넣은 반역자가 되는 게 싫던가.
“자자. 일단 다들 진정하시죠. 저는 볼일만 끝내면 여기서 순순히 사라질 생각이니까요.”
“그 용건이 뭔가. 내가 빠르게 끝내도록 도와주지. 다들 총 내려! 이 미친……. 이 사람을 자극하지 마!”
총알받이가 된 노인이 희망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막연한 희망은 위험한 거라고. 나는 마공학 리볼버에 오러를 주입하며 답했다.
“내 목적이 당신 멱을 따는 건대도?”
“……거짓말하지 말게. 내 목이 탐나는 인간이 많은 건 알고 있어. 누구인지 묻지는 않을 테니 금액만 말하게. 내가 그 10배를 주지. 아니면 자네를 연합 의회에 초청할 수도 있네.”
거참, 시끄러운 양반이네.
비토는 어떻게든 나를 회유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조금 전에 내가 보여 준 실력. 제아무리 선빵은 필승이라지만, 회사의 엘리트를 단숨에 넷이나 죽였다.
본인을 구하기 위해 문을 부수며 들어온 이들도 죽은 경호원들과 실력은 비슷할 터.
‘무엇보다 비토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지.’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를 모르니, 자신이 죽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돈, 권력, 명예, 여자 등등.
사람들이 욕망을 느낄 만한 요소들이 비토의 입에서 차례대로 나왔다.
뭐 하나라도 걸리라는 느낌인데. 정작 제일 중요한 게 빠졌잖아.
나는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토 폰테인의 죽음이 필요하니.
“좀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
나는 쌍욕을 씹어뱉으며 비토를 강제로 자리에서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왼팔로 감싸며 손에 든 리볼버의 총구를 턱에 갖다 댔다.
“누구라도 움직이면 다음 달부터는 월급 없다?”
월급쟁이들의 애간장을 살살 태우며, 나와 비토는 왈츠를 추듯 몸을 포갠 채 옆으로 이동했다.
세븐 시티의 최고층 건물. 메인 혹은 폰테인 타워라 불리는 이 건물은 지구의 빌딩처럼 외벽이 모두 유리다.
저들은 탈출구가 없다고 소리쳤지만, 사방이 모두 잠재적 탈출구라는 이야기.
핑! 핑! 핑! 핑! 핑! 핑!
나는 커다란 유리의 모서리에 오러탄을 쏘고서 발로 유리를 걷어찼다.
후우웅, 금이 쩍쩍 생기며 유리가 떨어져 나간 공간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사람 두엇은 충분히 나갈 수 있는 공간. 내 앞을 가려 주고 있던 비토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자, 잠깐!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날 죽여서 무슨 이득이 된다고!”
“세상 공기가 맑아지지 않을까. 그보다 이 물건 잘 알지?”
나는 농담을 던지며 45구경 권총을 집어 던졌다.
이어서 마공학 리볼버를 비토의 관자놀이에 겨누고서, 압축 주머니에서 검은색 액체가 든 주사기를 꺼냈다.
일전에 릴리트를 해치우고 얻은 ‘광폭화의 묘약’이었다.
내가 마기를 풀풀 풍기는 액체를 꺼내자 경호원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당연히 이제 곧 주사를 맞게 될 비토 어린이도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다.
“제발!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날 죽이려면 아까 총으로 쏘면 될 일이 아닌가!”
“그러게 말이야. 내가 당신을 죽일 거였으면 진즉에 죽였겠지.”
“그렇다면!”
비토 폰테인이 발작을 멈췄다.
활로의 실마리. 만약 누군가가 보낸 암살자라면 이런 활극을 벌이지도 않았을 터.
저 루카라는 개새끼는 분명 원하는 게 있다. 그게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비토 폰테인은 끊임없이 고민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응, 열심히 생각해 봐.
푸욱, 나는 그런 폰테인의 목에 주삿바늘을 꽂아 주었다.
“커허억. 끄으으으……!”
“엄살은, 이거 한 방으로는 죽지도 않으면서.”
무협지에서는 칠공분혈이라고 했던가.
평범한 사람을 마인으로 제조하는 광폭화의 묘약. 그 액체가 비토의 몸속을 파고들자 이목구비에서 검붉은 혈액이 쏟아졌다.
하지만 방 내부는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경호원들도 동요하지는 않네.’
이들이 침착한 이유는 잘 알고 있다.
비토 폰테인의 신체에 깃든 마법이 마기를 몰아낼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스펠 서저리, 고도로 압축된 주문식을 신체에 이식하는 기술로 상류층들이 억만금을 줘서라도 받는 마도공학의 한 갈래였다.
비토가 받은 시술은 상처를 엄청난 속도로 회복하는 ’힐링 팩터‘.
주기적으로 상급 마정석을 소비해야 하지만, 그 정도야 회장님에겐 싸게 먹히는 거겠지.
실제로도 관통되었던 복부에서는 출혈이 멈췄다. 거기에 혈관으로 퍼졌던 마기도 아주 조금씩 희석되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주사를 하나 더 놓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두 번째 주사를 꺼냈을 때, 그나마 안심하고 있던 경호원들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상황 보면 잘 알겠지? 다들 내 눈앞에서 사라져서 빠져나갈 길을 마련하고 군용탄 3만 개를 준비해.”
“이봐 그런 돈을 어떻게 갑자기.”
“닥쳐! 3초 뒤에도 좆같은 총구나 면상이 보이면 이 창문 밖으로 동반 투신할 거니까. 그때는 알아서들 하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그들은 후다닥 방 안에서 빠져나갔다.
경호원들이 사무실 밖으로 완전히 나갔을 때, 나는 주삿바늘을 비토의 목에 꽂았다.
그리고 마공학 리볼버를 총집에 집어넣고 비토와 함께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또 속냐 인간들아.
* * *
나는 빌딩에 한 손으로 매달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발아래에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다.
시위대와 그들을 저지하려는 폰테인 패밀리의 행동대원들.
나는 손에 들린 노인네를 의식하는 한편, 다른 한 손으로는 건물 벽의 요철을 잡았다가 놓으며 한 번에 몇 미터씩 하강을 반복했다.
“야! 이 개새끼야 당장 올라와!”
시끄러운 층간 소음에 위를 살피자, 깨진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경호원들의 욕설이 들려왔다.
나는 그들에게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외벽을 타고 내려갔다.
‘대가리에 총 맞았냐. 다시 올라가게.’
공격에 저항할 수는 없었지만, 저들이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 내 손에는 사경을 헤매는 회장님이 들려 있으니까.
위층의 말은 음소거하고, 나는 초인적인 근력과 민첩 덕분에 어느새 땅바닥 근처에 가까워졌다.
대충 거리를 가늠한 뒤, 나는 들고 있던 비토 폰테인을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 던졌다.
수없이 갈고닦은 [투척] A등급의 위력.
전신이 마기로 물든 비토는 시위대와 패밀리 사이의 공간으로 정확히 떨어졌다.
회장님 나이스샷!
나는 떨어진 지점을 확인하고 지면으로 뛰어내렸다.
내가 땅바닥에 무사히 안착했을 때.
철컥. 차가운 금속이 내 뒤통수에 닿았다.
나는 천천히 두 손을 위로 들었다.
상대는 나도 모르게 총구를 겨눌 만큼의 절대 강자. 괜히 저항해 봤자 좋을 일은 없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핑거톤의 처단자.
황무지의 최종 병기가 분노를 뱉어내며 따지듯 물었다.
“다 보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원하는 대로 비토 폰테인이 마족과 연루됐다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하. 어이가 없군. 지금 자네는 무역 연합의 하원의장을 죽였네. 그냥 처분해 버려도 상관없다는 말이지.”
살기, 주점에서는 느끼지 못한 명확한 살기가 내 몸을 휘어 감았다.
[예리한 감각]은 확정적인 죽음을 예고했고, [침.착.해]의 효과가 흐려지며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각이 그러시다면, 그냥 쏘시면 되는 일 아닙니까. 저는 하원의장을 죽인 살인범이니까요.”
“곧 있으면 그렇게 되겠지.”
“그럼, 저는 남은 시간 동안 제 맘대로 혼잣말이라도 하겠습니다. 제가 비토 폰테인을 죽인 이유를요.”
프레스턴은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그저 말이나 해 보라는 듯,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아마도 비토를 죽인 이유를 들은 뒤에 처분을 결정할 생각이리라.
“저는 몇 달 전에 우연히 레드넥의 암시장을 발견하고 그곳에 잡혔던 자유민을 구출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발견한 이상한 서류였죠.”
원래 진실과 거짓을 반반씩 섞으면 잘 모르는 법.
나는 과거에서부터 빌드업을 하며 낮고 음울한 어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류에는 마족들이 황무지에 전초 기지를 만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반군은 그 작업을 돕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설마 세븐 시티가 그 전초 기지라는 말인가.”
“맞습니다. 이 도시의 주인과 협력해서 마족 생산 공장을 만들고, 황무지 해방 전쟁의 전초 기지로 만들겠다는 말이었죠.”
“더 자세히.”
프레스턴은 흥미가 동했는지 나를 재촉했다.
잠시만 기다려 봐,
나도 이야기를 짜깁기하느라 힘들다고.
“그래서 저는 비밀리에 폰테인 그룹의 뒷조사를 했습니다. 당연히 증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서류에는 회장의 개인 창고에 공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개인 창고?”
프레스턴의 살기가 일순간 걷혔다.
사실 내 말은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상한 부분이 많다.
아무리 반군의 아지트라 해도 이런 극비 정보가 막 퍼져 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러나 프레스턴은 맥락이나 논리 따위는 모두 잊고 말았다.
비토의 개인 창고. 그곳은 [초감각]을 지닌 그가 제일 의심하던 공간이다.
‘게임에서는 나중에 프레스턴의 요청으로 주인공이 개인 창고를 조사하는 이벤트도 있었지.’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자신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준 사람을 저절로 신뢰하게 된다고.
“서류는 지금 가지고 있나. 그보다 어째서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않았지?”
“증거는 저만 아는 곳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황무지에서 비토 폰테인을 반역자로 지칭할 수 있는 사람이 있던가요.”
“음…….”
“저는 당신이 비토의 뒤를 캐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겁니다. 제 목숨을 걸고요. 주점에서 말하지 않은 건, 너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할까 봐 그랬습니다.”
수뇌부의 주장, 루카라는 해결사의 이력, 본인의 직감. 달라진 비토 폰테인의 모습.
프레스턴은 퍼즐을 짜 맞추며 점차 총구를 내렸다.
무한한 신뢰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황상 내 말이 거짓말이라는 느낌은 받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계획은 뭐지.”
“비토 폰테인은 마인이 되었고, 상황은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무런 저항도 없이 개인 창고를 뒤져 볼 수 있겠죠.”
“만약 거기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저를 죽이세요. 그 정도 각오도 없이 행동한 건 아니니까요.”
나는 팔을 내리며 뒤를 돌아봤다.
프레스턴의 눈은 강렬하게 불타올랐다.
당장이라도 마족 생산 공장을 찾아내 박살 내겠다는 다짐의 표현이었다.
“이상한 부분은 너무 많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하니 자네 뜻대로 움직이지.”
“결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폰테인 회장이 죽도록 내버려 둔 겁니까.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텐데요.”
프레스턴과 비토 폰테인은 지독한 견원지간이다.
실제로 회장이 죽는 동안 그는 잠자코 있었으니까.
나 또한 그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포장해서 답할지가 궁금했다.
“뭔가 죽게 두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원래 내가 감이 좀 좋아.”
역시 게임이랑 똑같네.
이 인간은 좋게 포장해서 말할 줄 모른다.
나는 기대했던 대답에 고개를 저으며 폰테인의 개인 창고로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