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로 살아남기-29화 (29/204)

<고인물로 살아남기 29화>

29. 라스트 갓파더(1)

데스페라도가 순식간에 주인의 총집으로 빨려 들어갔다.

100점에 가까워진 민첩력으로도 따라가지 못할 속도. 이전에 말했던 나보다 몇 수는 위에 있는 강자였다.

“이 바에서는 재밌는 만담 공연도 있나 보군. 일단 옆에 앉지?”

“근처에 우리를 지켜보는 놈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건 신경 쓸 필요 없어.”

프레스턴을 중심으로 오러로 이루어진 기막이 술집 전체를 감쌌다. 인기척을 완벽히 가리고 음성을 차단하는 보호막이었다.

안전을 확인하고, 나는 프레스턴의 옆으로 가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이제 그 재미난 소설 좀 쫙 풀어 봐.”

버번 위스키가 가득 담긴 더블샷 잔이 스르륵 밀려왔다.

공짜 술 개꿀이네. 나는 태연하게 술잔을 비우고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원하는 건 폰테인 그룹의 파멸이 아닙니까.”

“내 직업은 마족 대가리에 구멍을 뚫는 거야. 취미도 똑같고. 그 노인네가 아무리 짜증 나도 3순위라고.”

그가 바라는 게 뭔지는 잘 알고 있다.

프레스턴은 어릴 적 마족 숭배자에게 가족을 전부 잃었다. 이후로 그는 마족을 처단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나는 상대의 짜증 섞인 대답에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말하는 게 그거입니다. 비토 폰테인은 마족과 손잡고 있거든요.”

“하! 그것참 꿈만 같은 일이군.”

“못 믿는 눈치인데요.”

“아니, 내 감으로는 그 노망난 놈은 마족과 내통하는 게 분명해. 근데 심증만으로 움직일 수는 없잖아?”

다른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미친놈 취급을 하겠지.

하지만 프레스턴은 네임드 NPC, 클리프처럼 [초감각]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즉, 전혀 허황한 추측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프레스턴은 시간이 흐르고 세븐 시티로 돌아와 폰테인 그룹을 무너트리는 분기도 있다.

내 계획은 그 이벤트를 훨씬 빠르게 발생시키는 것.

일이 잘만 풀린다면 마족의 침공을 몇 개월 정도 더 지체시킬 수 있으리라.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라면 잘 알았습니다. 확실히 지금은 물증이 없기도 하고요.”

“그러면 어떻게 하루 만에 그룹을 무너트리지? 그냥 허언이었나.”

“아뇨, 증거는 내일 바로 만들 수 있거든요. 제가 보여 드릴까요?”

나는 프레스턴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위력이 많이 떨어지긴 해도, 그에게 [위압자]의 효과는 전달될 터.

그는 곧바로 흥미를 보이며 다시 한번 술잔을 건넸다.

“어떻게 보여 줄 거지?”

“내일 비토 폰테인을 만나러 가거든요. 그 자리에서 명확한 증거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해결사 증표와 그룹의 초청장.

내가 그 두 개를 테이블 위에 놓자, 프레스턴은 반신반의하는 기색으로 물건을 살폈다.

그러나 내용을 살피더니 점차 희열에 가까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소문의 해결사가 자네였군. 방법은 당연히 비밀이겠지?”

“그럼요. 취미 생활에 긴장감을 더하면 더 재밌잖아요. 놀고 싶으시면 내일 아침에 폰테인 타워로 오세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술집에서 나왔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 프레스턴은 반드시 약속 장소에 나올 테니.

순조롭게 장착된 첫 번째 폭탄. 나는 반지를 빼고 곧장 수뇌부가 있는 안토니오의 집으로 향했다.

리틀 나폴리의 밤거리.

그곳은 더욱 짙은 어둠이 내리깔려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람이 거의 돌아다니지 않는 적막한 공간을 지나자, 조금 전에 나왔던 주택에서 작은 대화 소리가 들렸다.

문을 두드리자 나를 확인한 마리아가 문을 열어 환영해 주었다.

“준비하셨던 일은 잘되셨어요?”

“네, 조력자가 저희를 돕겠다더군요. 내일 바로 행동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잘됐네요. 솔직히 일이 너무 급하게 돌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네요.”

“시간을 끌어 봤자 발각될 확률만 높아질 테니까요.”

“옳으신 말씀이에요. 아직 식사 안 하셨죠? 같이 들어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포크와 나이프를 써야 하는 만찬.

빈민의 저녁 식사라기에는 상당히 과분한 식사 자리가 나를 반겼다.

식탁에 탁자를 덧대서 만들어진 임시 테이블 위에는 당연히 내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루카, 조금 늦었네?”

“응, 잠시 만날 사람이 있었는데 조금 오래 걸렸어.”

“부인께서 정말 음식 솜씨가 좋더라. 너도 빨리 먹어 봐!”

“응. 그럼 잘 먹겠습니다.”

나는 잠자코 안토니오의 부인이 내준 음식을 먹었다.

그렇게 성대한 만찬이 끝난 뒤, 나는 사람들에 섞여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하나둘씩 침실로 들어갔고, 이내 나와 안토니오 둘만이 식탁에 남게 되었다.

이제 두 번째 폭탄.

나는 무언가 생각난 듯 갑자기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다.

“아차차, 내가 그걸 깜빡했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내일 계획에 밧줄이 필요한데, 그걸 잊고 마차에 놓고 왔네요. 지금이라도 마구간으로 가야겠습니다.”

“에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밧줄은 집 창고에도 있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집 뒷문으로 나가면 작은 창고가 있습니다. 제가 가서 꺼내 오죠.”

“아닙니다. 같이 가시죠. 혹시 담배 가진 거 있으신가요?”

“예,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술자리에는 담배가 국룰이지.

나와 안토니오는 궐련을 한 대씩 물고서 사이좋게 창고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스쳤고, 감각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잡히지 않았다.

널빤지와 철판을 덧댄 작은 창고. 나는 밖에서 담배를 태우며 기다렸고, 안토니오는 밧줄 한 무더기를 들고 나왔다.

“구석에 있어서 오래 걸…….”

푹!

창고 밖으로 나오던 안토니오의 목을 차가운 금속이 꿰뚫었다.

그는 눈동자를 움직여 피부 안으로 들어온 물건의 정체를 확인했다.

식사용 나이프, 조금 전까지 테이블 위에 깔려 있던 식기 중 하나였다.

“끅, 끅.”

그의 다리가 풀리며 눈물이 주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큰 소리를 내지 않게 안토니오의 팔을 붙잡고 천천히 바닥에 눕혔다.

“가족들은 최소한 배신자 취급은 안 당할 거야. 이번에는 영웅으로 죽는 거니까.”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리 일러 주었다.

그러자 안토니오는 어째서 본인이 배신자란 걸 알았냐는 듯,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 궁금하시다면 알려 드려야지.

“화해를 권유하는 놈이 배신자다, 혹시 이런 말 들어봤나 모르겠네. 그리고 길버트 할아버지도 이미 경계하고 있던데 뭘.”

충분한 대답이 되었으면 좋겠네!

나는 최대한 피를 흘리지 않게 안토니오를 들어 올려 처형대로 갔다.

안토니오, 이 남자는 폰테인 패밀리의 사주를 받아 시위대의 정보를 빼돌렸다.

시위대의 중요 인물, 정확한 계획과 요구 사항, 내부에서의 의견 등등.

그가 넘긴 정보로 마피아는 시위대를 철저히 짓밟았다.

당연히 이전에 그가 주선했다는 협상도 함정. 아마 거기에 나갔다면 수뇌부는 모두 죽지 않았을까.

‘쓰레기도 이왕이면 재활용하는 게 좋잖아.’

어차피 나중에는 서브 퀘스트에서 배신자로 드러나 주인공에게 처단될 운명이다.

게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안토니오가 수뇌부의 일원으로 죽었다는 것.

나는 밧줄로 그의 시체를 꽁꽁 묶고 칼을 목에서 빼냈다.

길에 혈흔이 남았기에 조사를 해 보면 금방 들통나겠지만, 아마 그 전에 난리가 날 것이다.

‘이렇게 꾸며 놓으면 당연히 폰테인 패밀리의 짓이라 여기겠지.’

세븐 시티를 부숴 버릴 두 번째 폭탄.

나는 무사히 일을 마치고 안토니오의 집으로 조용히 돌아갔다.

옷에 묻은 피는 밤이 깊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잠든 소녀를 깨우는 게 먼저였다.

“스칼렛, 스칼렛.”

나는 아무도 몰래 스칼렛을 흔들어서 깨웠다.

나에 대한 소문은 사방에 퍼트려 놨지만, 아직 스칼렛과 관련된 소문은 일부러 숨겼다.

그러니 나를 대신해 시위대를 지켜 줄 사람으로는 최적이었다.

“으응, 무슨 일이야?”

적발의 소녀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좀비처럼 상체를 일으켰다.

눈은 감겨 있었고, 머리는 게임기의 조이스틱처럼 사방으로 흔들렸다.

차라리 지금 상황을 모르는 편이 좋겠지.

“먼저 가 볼 데가 있어서 깨웠어.”

“……어디로?”

“나는 아침이 밝으면 폰테인 타워로 갈 거야. 네가 해 줄 일도 미리 알려 줄게.”

“으으으으, 듣고 있어. 듣고 있어.”

“그래, 일단 내일 거리에서 난리가 나면, 사람들이 폰테인 타워로 몰려걸 거야. 그러면 너는…….”

몽롱한 상태에서도 스칼렛은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 내일, 폰테인 제국을 무너트릴 폭탄이 모두 점화되는 순간이었다.

* * *

이튿날, 오늘도 평화로운 세븐 시티에서 크나큰 사건이 터졌다.

시위대 수뇌부의 일원으로 알려진 안토니오의 죽음.

그는 유일하게 폰테인 살생부에 올라가지 않았던 수뇌부였기에 더욱 효과는 컸다.

폰테인 그룹은 안토니오의 죽음을 해명하라!

살인마 비토 폰테인은 각성하라!

주민을 학살하는 폰테인 패밀리를 즉각 해체하라!

세븐 시티는 시위대의 함성으로 가득 채워졌다.

실종됐던 5인의 수뇌부가 리틀 나폴리를 중심으로 시위대를 다시 조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메인 타워로 행진했고, 폰테인 그룹의 내부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돌았다.

이번에는 우리가 안 그랬는데?

다른 때는 마구잡이로 죽여서 처형대에 매달고 그랬지만, 오늘 일어난 사건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협력자였던 안토니오가 죽고, 그의 사망에 분노한 시위가 일어나다니.

폰테인 그룹은 너무나 억울한 상황이었다.

조직원 중에서 범인을 찾는 동안, 타워의 최상층에서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버지, 히트맨 팀을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명령만 내리시면 바로 투입하겠습니다.”

젊은 남자가 다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와 보고를 올렸다.

말론 폰테인, 비토의 아들로 차기 마피아의 대부가 될 후계자였다.

반면에 비토는 허둥대지 않고 애완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아들아, 지금 도시에 누가 있지?”

“그…… 여행객들이 많이 왔습니다. 가뜩이나 저번 달에는 방문객이 적었는데 저렇게 초를 치면 되겠습니까.”

“여행객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핑거톤 놈들과 프레스턴이라는 총잡이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지금은 조용히 시위대를 놔두거라.”

말론은 아버지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서 여행객들이 더욱 불안해하면 그룹의 재정 상태에 빨간불이 켜진다.

힘은 휘두르기 위해 존재한다. 거대한 자본으로 엘릭서를 사들여 키운 무력을 쓰지도 못하니 짜증이 올라온 것이었다.

“아버지! 그 핑거톤 놈들이 무서…….”

“아직 철이 덜 들었구나. 지금은 힘을 사용할 때가 아니다. 우리가 안토니오를 죽였다는 증거가 있더냐?”

“아뇨, 없습니다.”

멍청한 아들의 대답에 비토는 상세하게 현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그렇다면 저들의 행동에 당위성은 없다. 그러니 차분히 기다리면 명분은 우리에게 있는 게지. 그리니 너는 조용히 안토니오의 최근 행적을 조사해 보거라.”

“누군가가 우리를 노리고 안토니오를 죽였다는 말씀입니까?”

“프레스턴, 아니면 시위대의 누군가겠지. 둘 다일 수도 있고. 지금부터 너는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거라.”

“네, 아버지.”

말론이 방을 나갔고, 그 뒤에 들어온 남자는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사내였다.

그는 허리에 찬 장검이 흔들리지 않게 손잡이를 잡고서 허리를 구부렸다.

“명령하신 대로 수뇌부의 존재를 전부 확인했습니다.”

“그놈들이 어디로 들어왔는지…… 안토니오의 죽음을 시위대의 소행으로 엮을 수 있겠나?”

“우선 신문사와 각종 계층의 사람들에게 지침을 내리겠습니다.”

“천천히, 세심하게 작업하도록 하게.”

비토가 내린 명령에 남자는 굵고 반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반드시 신뢰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핑거톤 놈들이 내 개인 창고로 가지 못하게 잘 감시하게. 프레스턴이 예전보다는 나아졌어도 여전히 폭탄 같은 놈이야.”

“그럼 창고는 제가 직접 가서 살피겠습니다.”

“로버트 경. 아니, 나의 아들아.”

“예, 말하십시오.”

“자네는 내가 마음으로 낳은 아들이네. 또한 가장 믿는 사람이기도 하지. 위급한 상황이니 부디 패밀리에 우환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 주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 그런데.”

검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그가 들어온 문을 보고서 말을 이었다.

“오늘 면접은 나중으로 미루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루카라는 해결사 말인가? 그냥 들여보내게, 우리에게 큰 선물을 가져다줄 인재가 아닌가.”

“그러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로버트라는 검사는 방을 나서며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을 불렀다.

오늘 회장과 면접을 볼 신입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밝은 갈색 머리에 검은색 눈동자.

로버트의 지시를 받은 신입 경호원은 안으로 들어와 허리를 숙이며 힘차게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이번에 새로 경호팀에 배속될 신입 사원 루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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