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로 살아남기 19화>
19. 황야의 합법자(2)
미트 타운의 북부를 지나가는 강가.
그곳은 주변 거주지를 돌아다니는 상인들을 노리는 갱단들의 천국이다. 불과 2주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지금은 그저 도살자와 폭식의 성녀의 사냥터일 뿐.
“저, 저게 뭐야!”
탕! 탕!
꾀죄죄한 차림의 무법자가 총을 쏘며 비명을 내질렀다.
압도적인 숫자임에도 무법자들의 얼굴에는 패색이 짙게 깔려 있었다.
스스로 움직이는 밧줄에 묶여 사로잡힌 동료들.
그들의 총은 저절로 공중에 떠서 한자리에 차곡차곡 쌓였고, 총격은 상대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탕! 소리를 뛰어넘는 속도로 날아간 총알이 한 소녀의 앞에서 멈춰 섰다.
아무런 저항감 없이 멈춘 납탄을 손가락으로 쳐서 떨어트린 소녀가 입을 열어 말했다.
“비에르랑 제이슨 아저씨는 어디 있어요?”
“히익, 마녀다! 마녀가 나타났다!”
무법자는 침을 흘리면서 총을 내버리고 도망쳤다.
최근에 나타난 현상금 사냥꾼들. 그들은 강가에 잠복해 있던 갱단의 은신처를 모조리 파헤치고 다녔다.
그리고 대부분의 갱단이 사라진 지금, 마지막 남은 갱단이 처참하게 털리는 중이었다.
“아아, 덥수룩한 수염이랑 목덜미에 사마귀. 아저씨가 비에르죠?”
샤아아.
소녀의 손에서 새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도망가던 무법자의 몸이 밭에서 쑥 뽑힌 무처럼 잡혀 올라왔다.
“놔! 놓으라고!”
정신 줄을 놓은 무법자는 적발의 소녀에게 꽥꽥 소리를 질러 댔다.
시끄러운 외침을 무시하며 마녀라 불린 소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 로프가 다 떨어졌네. 나머지는 루카가 가지고 있는데.”
천진난만하게 본인의 상황을 내뱉는 소녀의 모습에, 무법자는 질색하며 물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제발 죽일 거면 아프지 않게 죽여 줘!”
으아아악!
그의 비명이 재차 울려 퍼질 무렵.
갱단의 은신처 중심에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부하를 버리고 도망치면 쓰나.”
정면에 홀로 선 남자가 말하자 여섯 명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 근방을 주름잡던 현상범, 제이슨은 입술을 깨물며 불과 5분 전의 일을 곱씹었다.
강가를 넘어온 나무 보트.
그것을 발견한 직후부터 제이슨 갱단은 소녀에게 집중사격을 가했다.
한데 소녀는 죽지 않은 채로 점점 거리를 좁혔고, 정신을 차리니 부두목인 비에르의 생사가 불분명했다.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제이슨과 나머지 다섯 동료의 선택은 명료했다.
일단 살고 봐야지.
그들은 이곳을 습격한 소녀에게 다른 동료를 바치고 말을 묶어 둔 곳으로 향했다.
문제는 갱단의 말을 지키고 있던 남자의 존재였다.
완만하게 꺾인 곡도와 마공학 리볼버.
최근에 유명해진 ‘도살자’의 등장에 남은 갱단들은 모두 공포에 몸을 떨었다.
패배가 명확한 마당인지라, 제이슨은 자세를 낮추고 식은땀을 흘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이, 이봐. 굳이 우리를 전부 잡아갈 필요 없잖아. 내 현상금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내가 그 이상을 줄게! 그러니 나만 좀 풀어 줘.”
“오호, 그러면 네 똘마니는?”
“그거야…….”
제이슨이 고개를 돌리며 긴장한 부하들과 눈을 마주쳤다.
두목의 배신에 동요하던 부하들은 그의 눈빛을 보더니 일제히 소리를 질러 댔다.
“이 씨발 새끼! 지만 살려고 우리를 팔아먹어?”
“도살자님, 저놈만 잡아가세요. 저희는 현상범도 아니잖습니까!”
“이럴 줄 알았어! 여태까지 목숨 걸고 따라온 보답이 이거냐!”
웅성웅성, 재잘재잘.
상대의 혼을 빼놓으려는 듯, 부하들은 최대한 소란을 끌며 이목을 분산시켰다.
이 소란의 주모자, 제이슨은 오른손을 천천히 벨트에 거치된 총집으로 움직였다.
속도라면 자신 있다.
총을 뽑고 0.5초 만에 놈을 죽일 자신은 차고 넘쳤다.
제이슨의 속사 실력은 갱단 내에서도, 이 근방에서도 최고로 불렸으니까.
드디어 그의 손가락이 리볼버 근처에 다다랐을 때.
순간, 가만히 서 있던 도살자의 손이 잔상을 만들며 미끄러졌고.
피피피피피핑!
거의 동시에 발사된 여섯 줄기의 광선이 정확히 한 발씩 무법자들에게 적중했다.
여섯 명은 허수아비처럼 허물어졌고, 이제 지면 위에 선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도살자 루카, 나 말이다.
[스킬: [사격 입문]의 숙련도가 최대치가 되어 상위 스킬로 대체되었습니다.]
[스킬: [사격 숙련]의 등급이 ‘F’가 되었습니다. 근력+1, 민첩+2]
빙고.
나는 작게 웃으며 스킬의 등급 업을 자축했다.
한손 검, 사격, 한손 둔기, 전투. 이런 종류의 스킬은 다른 스킬들과 다르게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하면 상위 스킬이 자동으로 열린다.
이제 사격술의 스킬은 고오급. 2주 전에 상위 스킬이 열린 한손 검과 전투에 이어서 세 번째였다.
나는 리볼버를 총집에 꽂고 쓰러진 여섯 명의 발을 포박하기 시작했다.
“사, 살려 주시오.”
“죽긴 누가 죽어요. 위력도 조절해서 죽을 걱정은 없거든요.”
“하지만 이대로 두면 과다 출혈로…….”
“루카, 나 왔어!”
“오, 나머지 놈들은 모두 포박했지?”
“응, 밧줄이 부족해서 대충 기절시켜 놨어. 여기 사람들도 다 묶을까?”
“그렇게 해 주면 나야 편하지. 로프는 여기 있어.”
내 허락이 떨어지자 스칼렛은 배시시 웃으며 근처에 있던 밧줄을 염동력으로 들어 올렸다.
이어서 밧줄이 뱀처럼 움직이며 갱단원 여섯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스칼렛이 수련을 시작하고 2개월, 이제 그녀의 실력은 염동력을 통해 세밀한 작업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루카,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치료하면 되는 거지?”
“일단 여기 제이슨부터 치료해 줘. 잠시 물어볼 게 있어서.”
“응, 나한테 맡겨!”
말을 마친 스칼렛의 주위로 포근하고 새하얀 기운이 일어났다.
[치유 가속]. 햇살 같은 따스한 기운이 주변에 깃들자, 내가 부탁했던 대로 제이슨의 상처가 가장 먼저 씻은 듯이 아물었다.
“으으으. 이게 무슨……!”
“어때, 성녀에게 구원받은 소감이?”
“어떻게 상처가 이렇게 빨리 낫는 거지……?”
제이슨은 내 말을 무시하고 출혈이 멈춘 복부를 매만지며 신기해했다.
저기요, 이제 값을 치르셔야 할 시간입니다만?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아직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부위를 발로 밟았다.
“그만 놀라시고 제 말을 들으시라고요.”
“으아아아악! 흐어으어어.”
덧난 상처에서 빨간 액체가 졸졸졸 흘러내렸다.
정신이 번쩍 든 제이슨은 두려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고, 스칼렛은 걱정되는 말투로 나를 다그쳤다.
“저기 루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심하긴. 자, 수배서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읽어 볼까.”
반군 세력에 동조해 두 개의 개척지를 파괴.
그 과정에서 부녀자를 재미 삼아 가죽을 벗겨 살해.
핑거톤 탐정 사무소에 의해 가담했던 반군이 토벌된 뒤, 제이슨 갱단을 조직해서 최소 수십 명의 민간인을 상대로 강도 및 살해.
덧붙여, 이놈과 부두목의 현상금을 합하면 군용탄 500발이다.
“이래도 너무해?”
“나쁜 놈이네! 루카, 하던 거 계속해. 나는 주변에 값나가는 걸 챙길게.”
스칼렛은 염동력으로 제이슨의 머리에 돌을 던진 뒤 갱단의 천막으로 뛰어갔다.
정말 누가 키웠는지 모르겠지만 장하게 잘 키웠다니까.
나는 완벽히 교육된 스칼렛의 뒷모습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하던 일은 마저 끝내야지. 제이슨, 아까 나한테 숨겨 놓은 돈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의 일그러진 살인마, 제이슨은 다가오는 나를 보며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퍼덕였다.
* * *
나와 스칼렛은 굴비처럼 엮은 범죄자들을 데리고 미트 타운으로 복귀했다.
다그닥, 다그닥.
말을 타고 미트 타운의 중심가를 지나니, 스무 명 남짓한 제이슨 갱단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대로변으로 나와 있었다.
“이번에는 그 유명한 제이슨 갱단이군.”
“요 주변의 범죄자들은 저 두 사람이 죄다 잡아들이는 것 같아. 목을 매달아라!”
“성녀님, 도살자님! 저희 가게에서 파는 과일 맛 좀 보세요!”
한 과일 가게 아주머니가 스칼렛에게 잘 익은 사과 몇 알을 건넸다.
어째서 스칼렛은 성녀고 나는 도살자인 거야.
요새 사람들이 나에게 잘해 주기는 하는데, 그게 호의가 아니라 공포심 같단 말이지.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루카, 너도 받아.”
그런 나의 번뇌를 알 턱이 없는 스칼렛.
그녀는 야무지게 사과를 베어 물며, 하나를 나에게 주었다.
“고마워. 이제 여기부터는 내가 혼자 갈게. 너는 가서 놀고 있어.”
사과를 받은 뒤, 나는 군용탄 몇 개를 꺼내서 스칼렛에게 쥐여 줬다.
“정말? 저녁 먹기 전까지 놀아도 되는 거지?”
“물론이지. 오늘은 네가 고생이 많았잖아. 조금 있다가 저녁 먹을 때 보자.”
“알겠어. 갔다 올게!”
스칼렛은 말을 이끌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처음 수련을 시작하고 한 달 정도는 스칼렛에게 끊임없이 수련만 시켰다.
그 이후에는 나와 같이 갱단들을 토벌하러 다녔고.
‘잘 따라온 덕분에 염동력에 치유 가속까지 완벽하게 배웠고. 다음 기술도 빠르게 익혀 나가는 중이니.’
원래 교육은 채찍과 당근이라 하지 않던가.
나는 현상범을 잡을 때마다 용돈을 줬고, 스칼렛은 동기부여가 되어 더욱 열심히 수련했다.
고작 군용탄 몇 발로 퉁치는 거냐고?
어허, 원래 부모님한테 맡겨야 돈이 모이는 법이다.
흥청망청 다 써 버리면 안 되지. 암!
나는 멀어지는 스칼렛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갱단 한 두름을 이끌고 사무국 지부로 갔다.
[반복 퀘스트: <현상금: 제이슨 갱단>이(가) 완료되었습니다. 체력+2, 지능+1, 군용탄 500발]
놈들의 신원을 확인한 뒤.
수사관에게 대충 범죄자들을 인계하자, 나를 반겨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지부장이었다.
“아우! 이제 오는가. 이번에는 역대급 거물을 잡았군.”
“아이고. 전부 형님이 첩보를 잘 주셔서 일망타진할 수 있었던 거죠.”
“하하하, 이거 참 루카 아우는 겸손해서 보기 좋구먼.”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와 이 양반은 거의 의형제급의 관계가 되었다.
내가 잡아들인 범죄자가 100명도 넘고, 현상범이 34명에 포상금이 4,000발도 넘는다.
더글라스가 번 돈은 나를 소개하고 받을 금액의 두 배가 넘는 셈이니.
하긴 실적도 챙겨 주는데 돈까지 벌어 주니 오죽할까.
“참, 요즘에 연달아 큰 갱단을 통째로 잡아 와서 그런지 특별 포상금이 좀 크게 나왔네.”
“얼마나 나왔는데 그러십니까.”
“오백 정도. 내가 자네의 리먼 은행 계좌에 넣어 뒀네.”
“절반으로 나누지 않으시고요?”
“에이! 나도 염치가 있지. 사실 이번에 진짜 좋은 PMC에서 자네를…….”
내 이럴 줄 알았다.
나는 미소를 싹 거두고 지부장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지부장님, 추천서는 어떻게 됐나요? 저번에 중앙 수사국으로 보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거야 내가 잘 처리했지. 곧 있으면 연락이 올 걸세.”
“잘되었네요. 들어온 청탁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크흠, 역시 PMC는 좀 그렇지? 이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니 나도 죽을 맛일세.”
내가 미간에 힘을 주며 말하자 더글라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한 걸음 물러섰다.
딱히 나와 지부장의 사이가 좋다고 해서 내 말을 고분고분 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위압자]-
등급: 희귀
설명: 당신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느낍니다. 당신의 설득력이 ‘크게’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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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현상범을 잡다 보니 요런 특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위압자] 특성의 영향 덕분에 저도 모르게 나를 두려워하게 되었을 뿐이다.
아마 도살자라는 별명이 생기게 된 계기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업무가 끝났으니,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술집에서 뵙죠.”
“어어, 그렇게 하세.”
나는 범죄자 인도를 끝내고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런데 말을 타고 온 수사관 하나가 부리나케 지부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지? 설마……?’
나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수사관을 보며 감각을 넓게 퍼트렸다.
주위의 작은 소음이 바로 옆에서 나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렸고, 멀리 떨어진 고양이의 하품 소리마저 선명하게 귓가를 때렸다.
“응? 자네는 커스터 지부장 밑에서 일하는 친구 아닌가. 여기는 무슨 일이지?”
때마침 복도에 서 있던 더글라스가 그 수사관에게 말을 걸었다.
느긋하게 인사를 건네는 지부장과 달리, 수사관은 숨을 헐떡이며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더글라스 지부장님, 급보입니다. 세븐 시티에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