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로 살아남기 16화>
16. 황야의 3인(4)
활기가 넘치는 미트 타운의 중심가.
하루가 마무리되는 오후가 되자, 중심가는 더욱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그 인파 중 장검과 마공학 리볼버를 벨트에 찬 사내.
사내는 여러 구두가 진열된 가게 앞에서 고민하다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가게 문고리를 잡았다.
딸랑, 딸랑. 문에 달린 종소리에 계산대에 앉아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말쑥한 정장에 안경을 착용한 남자 종업원, 마른 체형에 지적으로 보이는 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여기가 미트 타운 최고의 수제화를 만든다던데, 맞습니까?”
“그러셨다면 잘 찾아오셨네. 이 집에 들어가는 가죽은 다 여기 새신랑이 직접 무두질한 제품이거든.”
사내의 질문에 답한 쪽은 옆에 있던 중년의 남성이었다.
넉살 좋게 계산대에 기댄 것을 보아하니, 이 가게의 단골이거나 친한 이웃임을 짐작하게 했다.
“가죽까지 직접 만드는 곳은 드문데, 제가 좋은 곳을 찾아왔네요.”
“하하, 아닙니다. 어떤 신발을 찾고 계십니까?”
“일단 좀 더 둘러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안경 쓴 종업원에게 말하고서 진열된 구두를 둘러보았다.
잠시 말을 멈추었던 단골 남자는 막 결혼한 새신랑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요새 에밀리랑은 어때?”
“뭐, 항상 비슷하죠.”
“좋을 때지. 이제 결혼한 지 두 달쯤 됐나?”
“예, 장인어른께서 제게 가게를 맡겨 주신 것도 그때니까요.”
“자네가 마을에 들어온 지 반년 만이었군. 참, 자네는 복도 많아. 반년 만에 이쁜 마누라에, 구두 가게도 생겼으니.”
“하하하, 제가 더 잘해야죠. 아직 구두 제작은 꿈에도 못 꾸는 도제 수준인걸요.”
종업원은 이야기를 나누며 가게에 들어온 손님의 동향을 주시했다.
사내는 한자리에 서서 구두 두 켤레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분명 둘 중 하나를 사고 싶다는 의미일 터.
“손님, 마음에 드는 구두가 있으십니까?”
“아, 예. 여기 둘 중에서 어떤 걸 고를지 고민이 되네요.”
종업원은 남자의 손가락의 끝을 쫓아 계산대에서 나왔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 두 켤레 맞으십니까?”
“네, 그거요.”
종업원이 진열장으로 가서 지정한 구두 두 켤레를 들어 올리자.
핑! 푸른 섬광과 날카로운 격발음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어? 어…….”
쿵!
종업원은 격통을 느끼며 쓰러졌다.
종아리에서 흘러나오는 핏물. 그걸 본 종업원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이내 괴성을 질러댔다.
“끄아아악! 아아아악!”
“보, 보안관! 보안관!”
비명을 질러 대는 종업원과 문을 열고 도망친 단골.
총을 쏜 사내는 쓰러진 종업원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오러를 조절하면 몸을 관통하지 않고 살릴 수도 있겠는데?
잘만 하면 비살상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마공학 리볼버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으, 살려 주시오. 제발!”
종업원은 바닥을 기어서 문을 열고 가게 밖으로 굴러떨어졌다.
어그로를 끌어 주면 나야 좋지. 나는 총집에 리볼버를 꽂고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꺄악!”
“빌, 자네 이게 무슨 일인가!”
“누가 좀 도와주세요! 저 사람이 갑자기 저한테, 저한테 총을 쐈습니다!”
역시나 중심가는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좀 전의 단골과 몇몇 상인이 총을 들고 나와 나를 둘러쌌고, 주변을 배회하던 자경단도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왔다.
거기에 더해, 수사관들과 보안관들도 총을 꺼내며 빠르게 나를 포위했다.
무대에 막이 올라가자, 나는 그들이 나서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잘 모이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위협할 생각이 전혀 없고, 오직 범죄자를 잡기 위해 총을 쐈을 뿐입니다.”
그리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수배서를 펼치자 수사관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무두장이 한스, 몰드 타운에서 재혼한 아내의 딸을 성폭행하고 아내가 그 사실을 알아채자 딸과 아내를 살해. 도주 중에 보안관보 두 명을 총으로 쏴 살해.”
그는 내가 보여 준 수배서의 글귀를 읽더니 한층 누그러진 눈빛으로 나를 째려봤다.
“이걸 증명할 방도가 있나?”
“물론이죠.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자는 8개월 전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한스가 범행을 저지른 때가 지금으로부터 10개월 전이죠. 몰드 타운에서 이곳까지 왔다면…… 대충 시기가 맞아떨어집니다.”
“이봐, 그 정도 추측으로 범인이라 단정할 순 없어. 이자는 마르고 안경을 썼지만, 수배자는 통통한 데다가 안경을 안 쓰지 않았나.”
“이건 알이 없는 안경입니다. 보시죠.”
휙.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의 안경을 빼앗아 건네주자, 수사관은 제 눈에 가져다 대며 확인했다.
“그렇군.”
짧은 말을 뱉어낸 수사관이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더 없냐고? 당연히 있지.
“한스는 원래 몰드 타운의 사냥꾼이자 무두장이였습니다. 여기 있는 구두의 가죽은 전부 이 남자가 손질했다더군요.”
“흐음.”
“수배서는 살도 쪘고 수염도 덥수룩하지만, 안경을 벗은 얼굴의 특징은 일치합니다.”
내가 직접 종업원의 얼굴과 수배서를 교차해서 보여 주니, 수사관은 머리 색깔, 치열의 배치 등을 보며 동의를 표했다.
“이제 됐습니까?”
“아니, 마지막으로 물어보지. 이자는 무장도 안 했는데, 총은 왜 쏜 건가?”
숙련도 좀 올리려고.
* * *
“정말로 잡아 올 줄은 몰랐는데…….”
더글라스 지부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뒷말을 흘렸다.
불과 몇 시간 전, 더글라스는 나에게 한 가지 미션을 걸었다.
그의 기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임무를 내가 엄청난 속도로 해냈으니, 기분이 미묘할 수밖에.
“이자가 잡은 남자가 정말 그 현상범이던가? 체격이 완전히 다르다며.”
더글라스는 내 뒤에 선 수사관에게 물었다.
혹시나 내가 엄한 사람을 잡지 않았냐는 뜻이었다.
“그의 아내에게서 이유도 없이 체중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게다가 여러 정황 증거도 많았습니다.”
“범인은 확실하다는 의미로군.”
“예, 그렇습니다.”
“새끼, 여태까지 잘도 속이면서 살았군. 알겠네, 자네는 이만 나가 보게.”
수사관이 문을 열고 나가자, 더글라스는 의자에 주저앉듯이 몸을 눕혔다.
[반복 퀘스트: <현상금: 무두장이 한스>가 완료되었습니다. 민첩+1, 지능+1, 군용탄 60발]
오예, 더글라스의 지시와 함께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엄근진을 유지해야 하는 순간. 나는 최대한 굳은 얼굴로 꼿꼿이 등을 폈다.
내가 최초에 더글라스에게 건넨 제안은 나를 ‘해결사’로 추천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부장은 거절하는 대신에 오랫동안 잡지 못한 현상범을 잡아 오면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게 그 결과고.
“이해할 수가 없군. ‘해결사’ 자리가 뭐가 좋다고? 속 시원하게 터놓고 말해 보게나.”
“저는 그저 자유와 정의를 지키는 일에 제 한 몸 바치고 싶을 뿐입니다.”
내 대답에 더글라스가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자신이 불법 스카우터 일을 하고 있는지, 수사국 요원의 면접을 보고 있는지 헷갈릴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유 무역 연합의 현상금 사냥꾼에는 구분법이 있다.
허가를 받지 않은 일반인 신분의 사냥꾼, 이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그냥 총 들고 아무 수배범이나 쏴 죽이면 되니까.’
내가 원하는 건 정식으로 연합 수사국에 허가를 받은 ‘해결사’.
활동 시 제약이 많은 일반 현상금 사냥꾼과 달리, 해결사는 훨씬 자유로우며 여러 권한도 가지고 있다.
우선 연합의 치안력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해결사의 지원 요청이 들어오면 보안관이나 수사국은 합당한 이유 없이 불응할 수 없다.
그리고 긴급체포나 제한적인 살인 면허, 임의 수색권, 범죄자를 구금할 권리까지 있다.
요약하자면, 경찰을 대신하는 사설 요원이라고 봐도 좋다.
참고로 보수는 따로 주지 않는다. 이 제도는 실적이 좋고 신분이 명확한 현상금 사냥꾼에게 주는 특혜에 불과했다.
“해결사가 되기 위해서는 지부장님의 추천서가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꼭 부탁드립니다.”
돈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벌 수 있다. 내게 필요한 건 힘과 그걸 정당하게 휘두를 권위뿐.
진심 어린 내 목소리에 더글라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내가 설명을 제대로 해 주지 않았군. 자네의 능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정부에 추천하기 위한 경력이 부족하네.”
“경력이라면…….”
“이건 자네 이력서네. 나이는 18세. 일단 여기부터 걸리는군. 그리고 개척 노동자 한 달에, 보안관보 생활도 한 달. 해결사로 추천하기 위해서는 경력에 실력까지 검증해야 한다네.”
종이 한 장이 팔랑이며 내 앞으로 날아왔다.
마치 대학교 졸업반 시절에 썼던 내 자소서 같잖아? 나는 약간의 트라우마를 느끼며 책상에서 펜과 이력서를 주웠다.
쓱, 쓱. 펜촉에 잉크를 묻혀 문서에 빗금을 치고 몇몇 숫자를 수정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더글라스는 내가 다시 수정한 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나이 22세. 50번 개척지 자경단 1년. 보안관보 1년?”
이게 뭔 개짓거리인가, 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나는 책상 위에 유리병 두 개를 올렸다.
탁, 유리와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자,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일어섰다.
“이, 이건!”
“예, 맞습니다.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다는 대륙 동부의 근력과 신속의 비약이죠.”
제아무리 오러 사용자라 해도 나이는 속이기 힘들다.
어리고 예쁜 애인과 밤새도록 놀기에는 힘에 부칠 터.
청렴한 관리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 중인 그가 마다할 이유는 없으리라.
“크흠, 마음은 고맙네만. 내 마누라는 이곳에 없어서…… 무엇보다 자네는 정의를 추구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저는 과정은 어떻든 결과만 정의로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안 되는 일은 있는 걸세. 무엇보다 자네는 실적이 없지 않은가. 한스를 잡고 주민 40명을 구출한 공적은 대단하네만, 꾸준한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말일세.”
더글라스의 입장에서는 나의 의지를 꺾으려는 의도였겠지만, 그의 말은 오히려 내가 기다려 온 말이었다.
경력은 속여도 실적까지 속일 수는 없다는 뜻.
그렇다면 실적은 진짜로 채우면 되잖아?
“실적이라…… 제가 해결사가 되기 위해서 수배자 몇 명을 잡으면 될까요?”
“20명? 30명? 보통 그 정도는 잡아야 해결사로 추천을 받는 편이네.”
30명.
나는 잠시 그 숫자를 되뇌었다. 반복 퀘스트를 깨면 능력치도 주니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런 내 심중을 파악했는지, 더글라스는 입을 열어 나를 막아서려 했다.
“자네 설마…… 그런 생각 말고 편하게 돈이나 버세.”
“돈이라면 벌 수 있습니다. 현상범을 잡으면 되니까요. 물론, 지부장님도 돈을 버실 수 있고요.”
“자네가 벌 현상금보다 자네를 소개하고 받을 수수료가 더 많지 않겠나. 자네가 나에게 군용탄 1,000발을 줄 수 있나?”
“물론이죠. 더해서 실적까지 쌓아 드리겠습니다.”
“자네가 무슨 재주로? 1년에 겨우 현상범 몇 명 잡아서는 가당치도 않네.”
“말했잖습니까, 30명을 잡겠습니다. 그것도 단기간에요. 거기에 제가 잡은 현상범은 모두 지부장님께 얻은 정보로 잡았다고 보고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상체를 앞으로 쭉 빼며 손가락을 펴 보았다.
“더해서 화끈하게 제가 받을 현상금의 50퍼센트를 지부장님께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에 제 이력서는 깔끔하게 처리해 주시기로 하고요.”
말문이 막힌 더글라스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내 손을 내밀었다.
어차피 불법적인 루트로 들어온 스카우터 업무가 아닌가. 시간이 조금 더 걸린대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희박했다.
즉, 일이 틀어져도 손해는 없다는 결론이리라.
결정을 낸 더글라스는 내가 내민 제안에 조건을 더 달았다.
“만약 중간에 자네가 포기한다면?”
“그럼 이 계약은 없던 셈 치는 거죠. 그때는 지부장님께서 추천하신 기업으로 가겠습니다.”
“훌륭하군. 근데 이대로 간다면 너무 심심하지 않겠나. 한 가지 더 추가해서 생사 불문의 현상범도 반드시 살려서 데려오도록 하게. 어떤가?”
“저는 정의를 집행하는 사람이지, 살인마가 아닙니다.”
“하하하! 참으로 정의롭고 공명정대한 친구로군!”
내 손을 쥐고 흔드는 지부장의 웃음소리는 오래도록 방 안에서 떠나지 않았다.
절대 불가능하리라 여기는 지부장의 판단에, 나 또한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