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
“...그렇게 해서 인간은 사상 초유의 재앙을 극복할 수 있었답니다. 질문 있는 사람?”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
“질문하세요.”
“그 괴물이 박물관에 있는 그 괴물 맞는 거죠?”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다들 저번에 견학 가서 봤었죠?”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엄청 무섭게 생겼던데.”
“내가 듣기로 옛날 사람들은 힘이 엄청 세서 그 괴물을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던데?”
한 아이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게 말이 돼? 그 정도로 강했으면 처음부터 밀리지도 않았겠지.”
“그런가? 그럼 천둥신 라오는?”
아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도 옛날 사람들 특유의 과장식 표현이겠지. 원래 창세 신화는 거창하잖아. 아마 싸우다 죽은 걸 승천했다고 표현한 거 아닐까? 안 그래요? 선생님?”
아이의 말에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당시 죽음은 일상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아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봐봐. 그치?”
그렇게 의기양양해하던 아이가 돌연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한테는 아무리 설명해줘도 안 먹혀.”
“엄마가 천둥교 신자셔?”
“어. 그것도 엄청. 내가 라오 관련해서 몇 마디만 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낸다니까.”
“긴장돼?”
건장한 남자의 말에 바짝 긴장한 청년이 굳은 표정으로 얼굴을 끄덕이며 말했다.
“긴장됩니다.”
“흐흐흐.”
건장한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운 좋은 줄 알아. 그분 뵙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알고 있습니다.”
“네가 워낙 큰 공을 세워 특별히 접견을 허락하신 거니 예의 갖추고 행동해. 알았어?”
“물론입니다!”
그렇게 차를 운전하던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왜 이렇게 막혀?”
차가 막힐 시간도 아닌데 앞에 사고라도 난 것마냥 옴짝달싹 못 하는 도로.
남자의 투덜거림에 창문을 열고 밖을 확인한 청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 진짜.”
“왜. 무슨 일인데?”
“그 자식들입니다.”
“그 자식들?”
“예. 그 라오쟁이들.”
청년의 말에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이씨. 하필 오늘 같은 날.”
남자가 차에서 내려 앞으로 향하니 피켓을 들고 있는 중년인 무리가 보였다.
“라오를 믿으십시오!”
“라오님은 돌아오실 겁니다!”
그리곤 대뜸 자동차의 창문을 두드리며 외친다.
“불신지옥 라오천국!”
저들 때문에 차들이 못 움직이는 걸 확인한 남자가 중년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이.”
남자의 말에 중년인들이 화가 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가 신성한 포교활동을 방해...”
하지만 그들의 눈에 보인 건 누가 봐도 험한 일에 종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검은 정장의 건장한 남자.
“비키시지? 너네들 때문에 차 막히잖아.”
남자의 건장한 모습에 잠시 주춤했던 중년인들이 다시 용기를 내어 외쳤다.
“이놈! 라오님을 믿어라! 그러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다!”
남자가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이 씨발놈들이 당장 안 비켜?! 당장 안 비키면...”
그리곤 품에 손을 집어넣는 남자.
“가만히 안 있는다... 나 경고했어.”
그런 남자의 협박에 새하얗게 질린 중년인들이 주섬주섬 피켓을 챙기기 시작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대충 피켓을 챙긴 중년인들은 길을 비키는 와중에도 구호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불신지옥! 라오천국!”
그렇게 남자가 대충 상황을 정리하고 차로 돌아오자 청년이 존경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 역시 형님이십니다! 저 악질들을 그렇게 간단히...”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놈들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보통 악질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런 사이비 놈들 때문에 애먼 천둥교 신자들이 욕을 먹는다니까.”
남자의 말에 청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혹시...”
“어. 나 천둥교 다닌다.”
“아. 그러시군요.”
청년이 남자의 눈치를 보자 남자가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왜 눈치를 봐? 라오쟁이라고 해서?”
“아... 혹시 제가 말실수한 건 아닐까 해서..”
“내가 다니는 신전은 천둥교 원로회 소속이야. 저런 사이비들이랑은 다르다고.”
청년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가 무교라서 그런 걸 잘 모르다 보니... 죄송합니다.”
“아무튼 저런 놈들은 욕먹어도 싸니까 내 눈치 볼 거 없어.”
그렇게 다시 도로를 질주하는 차 안에서 청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천둥교는 언제부터 믿으신 겁니까?”
“나? 우리 어머니가 좀 독실하셔. 어릴 때부터 따라다녔지.”
“모태 신앙이시구나...”
“그런 셈이지.”
그렇게 한참을 달린 차가 한 빌딩 앞에 멈춰섰다.
“도착했다.”
청년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남자의 허리는 펴질 줄을 몰랐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형님!”
남자의 인사에 험상궂은 인상의 중년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김 실장.”
중년인이 남자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나중에 시간 나면 술이나 한잔하자고.”
중년인이 부하들을 이끌고 지나가자 함께 허리를 숙이고 있던 청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구십니까?”
“경상도 흑귀 형님.”
남자의 말에 청년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부산의 전설 아닙니까!”
“그래.”
그 뒤로도 마주한 여러 암흑가의 거물들.
청년이 혼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유럽 지역에서 악명 높은 거물들이 이렇게나 많이...”
“지금 네가 만나려는 분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알겠지?”
“항간의 소문이 진짜였군요...”
“무슨 소문.”
청년이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계의 모든 암흑가 뒤엔 그분이 있다는 소문이요.”
청년의 말에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좋을 대로 받아들여.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요?”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나중에 네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설마 세계 각 지역 정부들을 쥐락펴락한다는 소문도...”
전 세계는 종말을 기점으로 모든 나라가 사라졌지만 천둥교의 활약 덕에 빠르게 원래 문명을 되찾았다.
당연히 사람들은 여전히 각 국가별 또는 인종별 성향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기에 천둥교는 사람들의 지역 성향을 고려해 어느 정도 독립성을 지닌 수십 개의 지역 정부를 만들었었다.
“그런 건 비밀이야. 비밀.”
남자의 말에 청년이 양손으로 입을 막으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렇게까지 쫄아 있을 필요는 없어.”
남자가 벽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는 그 누구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는 그분의 궁전 안이나 다름없으니까.”
“여기다.”
거대한 문 앞에 도착한 남자.
청년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이 안에 그분이...”
그 존재만으로도 모든 암흑가의 거물들이 존경을 표하는 암흑가의 황제.
이름도 생김새도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지만 암흑가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남자가 문 앞을 지키는 경비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데리고 왔다 전해드려.”
“알겠습니다.”
안쪽과 연락을 마친 경비가 문을 열며 말했다.
“손님만 혼자 들어오라십니다.”
“으...”
거대한 문을 넘어 정말 이게 방인지 의심될 정도로 넓은 방 안으로 들어온 청년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 저분인가.”
방 끝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실루엣.
어두컴컴했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청년은 확신했다.
청년이 저벅저벅 걸어 실루엣 앞에 도달했다.
“처. 처음 뵙습니다! 이신호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청년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하자 실루엣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반갑다.”
그저 목소리일 뿐이건만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이신호는 울컥한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삼생의 영광.
“네가 불법 마약 조직에 첩자로 침투한 덕에 쉽게 뿌리 뽑았다지?”
“그. 그저 저희 형님께서 시키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니지. 너네 보스한텐 내가 따로 답례한다고 전해.”
이신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형님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보자... 넌 뭐 가지고 싶은 거 없냐?”
암흑가 황제의 말투라기엔 약간 경박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 그마저도 이신호에겐 강자의 여유로 느껴졌다.
“어. 없습니다!”
“에헤이. 없을 리가 없잖아. 돈도 좋고 아니면 스포츠카도 좋고. 아무거나 말해봐. 내가 마약이라면 치를 떨어서 말이야. 소싯적에 진짜 지겹도록 했었거든.”
“저. 정말 없습니다!”
이신호의 계속되는 거절에 암흑가 황제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냥 빨리 말해주면 안 될까? 나 빨리 볼일 보고 가서 쉬게. 그게 나 도와주는 거야.”
암흑가 황제의 말에 이신호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 정말 괜찮은...”
“스읍. 그럼 그냥 돈으로 한다? 나도 그게 제일 편해. 너 월급이 얼마야?”
암흑가 황제의 말에 이신호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하. 한 달에 300만 원입니다.”
세계 각 지역은 지역 정부로 나뉘었지만 사용하는 화폐 단위는 모두 한국 단위로 통일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초창기 모든 지역의 간부들과 천둥교 수뇌 대부분이 한국 출신이어서 그게 편했으니까.
그렇게 도입된 화폐 단위는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300만 원? 겨우 그거 받아?”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까지는 없는데... 미안하다. 내가 화폐 감각이 많이 떨어져서. 그럼 몇 배를 줘야 할까. 20배면 적당한가?”
그때 한참을 주저하던 이신호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그. 그보다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소원?”
“아. 악수 한 번만 해주시면 평생의 영광으로 간직하겠습니다!”
그러자 침묵하는 암흑가의 황제.
이신호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너. 너무 나갔나?’
정체를 숨기고 있는 암흑가 황제와의 악수.
분명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암흑가 황제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자 이신호가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만나 뵈었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해서 실언을...”
그때 조용히 중얼거리는 암흑가의 황제.
“뭐지?”
“예?”
“왜 또 다가오고 지랄이야. 인력 유지 알고리즘 정상 작동 중인데? 라오는 산속으로 들어갔고 짭라오도 완벽히 정리했으니 인력에 문제는 없을 텐데?”
영문을 알 수 없는 암흑가 황제의 말.
“무. 무슨 말씀이신지...”
“하. 나. 돌아버리겠네.”
암흑가 황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설마 다른 세상에도 라오 같은 또라이가 또 있어서 자기 세상을 둘로 쪼갠 거 아니야?”
암흑가 황제가 자리를 서성이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것 말고 다른 가능성은 없어. 둘로 나누어진 채 붙어있는 세상끼리 또 끌어당기는 거야.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하아.”
암흑가 황제의 혼잣말에 이신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저기...”
이신호의 말에 정신을 차린 암흑가 황제가 이신호를 보며 말했다.
“맞다. 너 아직 있었지? 미안. 지금 좀 긴급 사태라.”
“기. 긴급 사태요?”
암흑가의 황제를 긴장하게 만들 만한 긴급 사태라니.
“어. 종말이 또 오려고 한다.”
“종... 말?”
“내가 이번엔 진짜 반드시. 완벽하게. 아무 피해도 없이 막는다. 아. 그전에.”
암흑가 황제가 이신호에게 다가와 손을 건네며 말했다.
“악수해 달라고? 자.”
얼떨결에 암흑가 황제의 손을 잡은 이신호.
“이건 네 월급 20배야.”
소원이던 악수는 물론 월급 20배에 해당하는 돈까지 받다니.
이신호는 자기도 모르게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암흑가 황제의 얼굴을 보았다.
“펴. 평생 영광으로....”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암흑가 황제의 얼굴을 본 이신호는 순간 흠칫 놀라며 말했다.
“어...?”
분명 처음 보는 얼굴임에도 어딘가 낯이 익은 암흑가 황제의 얼굴.
“왜.”
“어디서 뵌 적이...”
“자주 봤을걸?”
암흑가 황제가 지폐를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 있잖아.”
암흑가 황제에게 건네받은 지폐를 확인한 이신호.
“여기 초상화는 천둥신 라오님...”
“그래.”
암흑가 황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둥신 라오님. 재출격이시다.”
< 에필로그 > 끝
작가의 말
그 동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글의 처음 종말 설정은 160화 정도에 시작될 예정이었습니다.
200화 완결이 목표였구요.
라오도 끝 10화 정도에만 마지막 에피소드로 등장시킬 생각이었습니다.
애초에 종말은 끝의 맛보기고 제목에서도 아시다시피 종말을 막는다는 이유로 세계를 때려부수는 깽판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댓글의 종말을 기다리는 독자님들의 존재가 너무 저를 압박해왔습니다.
거기다 더해 기대를 넘어선 성적까지...
결국 최악의 선택을 했습니다.
종말을 예정보다 훨씬 앞당겨 버린거죠.
주인공은 종말에 오버스팩으로 대비해 놓고 종말을 때려부술 생각이었는데 그러기엔 모자라고, 그렇다고 괴물에 일방적으로 당할만큼 약하지도 않고.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종말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내용 고갈로 인해 라오도 조기 출현.
결국 스토리가 꼬였죠.
그 결과는 연독 박살...하하
아무튼 이번글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세계관을 새로 창조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건지, 독자의 니즈의 방향성 등등.
이번글의 경험을 통해 더욱 발전하는 소주귀신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