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
“자. 이걸로 끝.”
나에게 신성력을 모두 강탈당한 로이가 이를 갈며 말했다.
“장지후...”
“그동안 수고 많았어. 이제 모두 내려놓고 쉬어.”
진심이었다.
비록 방향은 다를지 몰라도 로이가 인류를 위해 해온 노력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니까.
“넌 인류의 마지막 보루를 네 손으로 무너뜨린 거다.”
“흠...”
나는 로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류의 마지막 보루.”
“그래!!”
로이가 절규하며 외쳤다.
“그 간악한 라오에게 속아 인류를 배신하다니! 널 믿은 내가 바보였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었잖아?”
라오에게 교단 상태창을 받고 종말을 겪었으며 몸을 빼앗겼다.
그리고 예언을 받은 로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고 라오에 대항해 싸웠다.
이 모든 일들의 공통점.
바로 내 의지가 아닌 신 또는 누군가의 의도대로 움직였다는 것.
“대피소. 그리고 인류 보존 계획. 모두 신들이 계획한 거잖아.”
“그게 어쨌다는 거냐!”
로이가 나에게 달려들자 초인 병사들이 그를 막아섰다.
초인 병사들에 의해 뒤로 밀리면서도 로이가 악을 지르며 외쳤다.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준 게 바로 그분들이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진작에 죽은 목숨이었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그건 그래. 그것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야.”
대피소를 만들고 사람들을 구하고.
하지만 그건 라오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교단 상태창으로 종말에 대비해오지 않았으면 지금의 인구가 유지될 수 있었을까?
라오의 불순한 의도는 둘째치고 그가 인류의 생존에 기여한 공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결과가 좋다고 수단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신들의 개입 덕에... 아 물론 라오도 포함.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은 건 사실이야.”
“그걸 아는 놈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하지만 그 결과가 모두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결과라면? 결국 우리 인류는 장기말에 불과했다면?”
로이가 멈칫하며 말했다.
“뭐?”
“더 이상 다른 자의 의지로 움직이는 건 사양하겠어. 이젠 내 의지로 그리고 인류 각자의 의지로. 왜 우리의 의지로 신이 덕을 봐야 하는 거지?”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로이를 보고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이해하길 바라고 한 말은 아니야. 내가 깡패 출신이라 그런지 이익에 좀 민감해서 남 잘되는 꼴을 못 보거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좋게 좋게 생각하라고. 신들이 나를 구해야 인류에게 희망이 생긴다고 했다며.”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이것도 신들이 예상한 결과 중 하나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을 거 같다는 말이지.”
“여.”
내 인사에 라오가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고는 들었다.”
“응. 전부 흡수했어.”
5만 초능력자에게 흡수한 막대한 신성력.
물론 교단상태창에 차곡차곡 쌓인 신성력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그렇게 내버려둬도 되는 건가?”
나는 의자에 철푸덕 앉으며 말했다.
“이제 초능력도 없는데 지들이 더 이상 뭘 어쩌겠어. 내버려둬.”
모든 신성력을 흡수당한 초능력자들은 내가 처음 약속한 대로 살고 있던 대피소에 그대로 두고 돌아왔다.
“아니면 뭐. 교화라도 시키게? 그거 5만 명 해야 얼마나 한다고. 지들끼리 살게 둬.”
라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까.”
“그런데 라오.”
“뭐지.”
“이제 봉인된 신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모든 힘을 털어 넣어 만든 초능력자 알고리즘은 라오가 흡수해 버렸고 마지막 동아줄이던 초능력자들까지 전멸당했다.
그렇다면 신들은 어떻게 되는걸까?
“모든 힘을 잃고 봉인된 신. 신도도 없고 신성력도 없는 신이 어떻게 될 거 같나?”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 아니야.”
라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계속 봉인되어 있는 거다. 영원히. 그게 바로 잊혀진 신들의 말로지.”
나는 라오를 위아래로 ㅤㅎㅡㄾ어보며 말했다.
“흠...”
라오야말로 잊혀진 신의 대명사 아닌가?
내 눈빛을 읽은 라오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나 말인가?”
“대답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되고.”
“어려울 거 없지. 난 특별하니까.”
“우엑. 자기 입으로 자기가 특별하대.”
라오는 내 반응에 전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난 특별하다. 그렇기에 나만이 이 종말의 굴레를 끊어낼 수 있는 거다.”
“그래. 그래. 특별해. 특별해. 아무튼 현신까지 얼마나 더 모아야 한다고?”
내 말에 라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일 년. 일 년만 더 신성력을 모으면 현신에 필요한 모든 신성력을 모을 수 있다.”
“일 년이라...”
라오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머지않았다. 천둥신 라오가 현신할 날이.”
“그리고 내가 내 몸을 되찾는 날이기도 하지.”
라오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엉뚱한 짓거리만 하지 않는다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걱정 마시라니깐. 초능력자들 능력 모두 뺏은 거 보면 모르겠어? 아무튼 나 가본다.”
대피소 복도를 걸으며 중얼거렸다.
“특별하다라.”
잊혀진 신이 힘을 보존하는 방법.
라오가 다른 신들과 다른 이유.
“신들이 신격을 봉인하는 이유는 신격을 유지하는 데 소모되는 신성력이 막대하기에 그렇다고 했지?”
하지만 리틀이는 신성력을 소모하지만 않으면 언제나 그 상태 그대로다.
“신격. 신성력.”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 년 뒤에 현신이라 이거지. 나도 그럼 슬슬 준비해볼까?”
“괴물 사냥?”
“예.”
사제의 보고를 들은 라오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장지후가?”
“휘하 초인 부대를 이끌고 괴물 군집을 찾아 사냥하고 다닌다 합니다.”
“괴물 사냥이라...”
괴물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다.
괴물을 잡아봐야 초능력자 알고리즘에 신성력을 공급해주는 꼴이니 괴물 사냥에 적극적이지 않던 라오였고 생존자들 역시 자신의 생활터전과 안전한 쉘터가 확보되면 괴물 일종의 자연재해로 여기며 피하기 바빴으니 사실상 대규모 괴물 사냥은 중단된 지 오래였다.
“흠.”
초능력자들의 신성력을 욕심냈던 장지후.
신격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신성력에 대한 욕심을 부리는 건 당연했다.
자신의 존재 그 자체이며 힘이니까.
“괴물을 죽여 신성력을 모으는 건가.”
웜홀 너머 세상의 신이 창조한 괴물.
“다른 특이 사항은?”
“그것 말고는 없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괴물 사냥이라...”
라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군.”
“장지후가 괴물 군집의 위치와 정보 그리고 무기와 총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거절할까요?”
“아니. 제공해 줘라.”
안 보이는 곳에 숨어있는 것보다는 감시하에 두는 편이 더 나으니까.
“괴물을 잡아봤자 얻을 수 있는 신성력은 한정적이지. 아무리 장지후가 날고 기어봤자 소용없다.”
“흣차.”
괴물의 공격을 피하며 괴물의 미간에 총알을 발사했다.
“키에엑!!”
정확한 사격에 괴물이 단숨에 절명했다.
“역시 총이 제일 깔끔해.”
그리고 초인 부대 역시 천둥교에게 제공받은 무기로 괴물들을 학살해 나간다.
총알의 공급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 총기보단 초인들이 냉병기에 의존해 괴물과 싸우는 게 기본 교범.
하지만 지금 내 휘하 초인 병사들의 육신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신성력은 리틀이가 제공하니 신성력을 최대한 절약해야 하는 입장에서 총만큼 효율적인 무기는 없다.
게다가 아무리 한정적이라지만 세계 최대의 단체 천둥교에서 겨우 만 명 넘는 부대가 사용할 총알이 없겠나.
내 것도 아니니 마음껏 쓰면 그만.
“좋아. 좋아.”
나는 괴물들이 죽어나가며 새어나오는 신성력을 무차별적으로 흡수했다.
“후우.”
원래라면 초능력자 알고리즘을 통해 흡수된 뒤 초능력자들의 레벨을 올리는 데 사용되었을 괴물들의 신성력.
“양이 제법 된단 말이지.”
하나하나에서 나오는 양은 적을지 모르나 만 명이 넘는 초인 부대가 죽인 괴물의 모든 신성력을 나 혼자 독식하고 있다.
방벽을 방패 삼아 초능력자들이 폭렙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거긴 수천 명이서 나눠 먹지 않았나.
이 괴물 군집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성찬이다.
일석이조 아닌가.
난 신성력을 얻고 괴물 수가 줄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지고.
나는 충만한 신성력을 느끼며 말했다.
“모두 죽여버려!”
괴물 군집을 전멸시키고 늘어난 신성력을 느끼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데 안내역이라 부르고 사실상 감시를 맡고 있는 사제가 다가와 말했다.
“장지후 님.”
“왜.”
“다음 군집 정보입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주 적극적으로 밀어주네?”
“괴물을 죽이는 게 인류를 위한 길이니까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누구 의견이야? 너? 라오?”
“모두의 의견입니다.”
라오는 괴물 사냥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현신에만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마치 현신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래? 그럼 잘됐네.”
교단 상태창의 최종 스킬이 현신인 것도 그런 라오의 의중을 잘 반영하고 있다.
“무기 좀 더 지원해줘. 중화기나 이런 거.”
“상부에 물어보겠습니다.”
긍정적인 대답을 한 사제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김인호 대장과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습니까?”
김인호와 그의 측근들 그리고 석주, 석호 형제까지.
그들의 행방을 묻는 사제의 말에 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걔들은 이제 일반인이잖아. 잘못해서 휘말렸다 죽으면 어떡해. 게다가 아직은 좀 교화에 거부감이 있다고 불안하다 해서 미국으로 돌려보냈어.”
“도착했다.”
웜홀을 통해 미국을 돌아온 석주, 석호 형제와 김인호.
그런 그들을 따라온 김인호의 측근 10명과 그들의 호위로 선발된 50의 초인 병사들까지.
김인호가 석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맡은 임무는 숙지하고 계시겠죠?”
석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고는 있지. 그런데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가네.”
석주가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며 말했다.
“어째서 기껏 정화시킨 사람들을 다시 천둥교 신도로 만들라는 거야?”
장지후가 그들에게 비밀리 내린 임무는 바로 정화된 미국의 대피소 사람들을 다시 신도로 만들라는 것.
“라오가 사람들을 강제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며. 그럼 그냥 놔두면 될 거 아니야. 정화된 사람들을 다시 신도로 만들면 신성력이 더 빨리 쌓일 텐데?”
“제가 그분의 속내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직도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그 정화된 사람들 연결선인가 뭔가로 형님이랑 연결시켜 뒀다며. 그럼 자기 신도를 라오에게 넘기는 꼴이나 다름없잖아. 형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김인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늘 하시는 말씀 있지 않습니까. 이해하지 마라. 그냥 믿어라.”
“그거야 형님이 무식해서 본인도 잘 모르니 그냥 뱉는 말 아니야? 뭐...”
석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안 할 건 아니지만.”
김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흩어집시다. 모든 사람들을 다시 천둥교 신도로 만드는 겁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 18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