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179화 (180/188)

< 179화 >

로이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피해는?”

아무리 초능력자라지만 1만이 넘는 사람이 조별로 쪼개져 이동했다.

그것도 괴물로 가득한 세상을.

“...대략 2,000명이 아직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부하의 말에 로이가 얼굴을 감싸쥐며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로이가 준비한 5개의 대피소는 섬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험준한 산.

종말 전 미국 정부에서 극비리에 만들어 두었던 벙커까지.

그렇게 섬을 탈출한 1만여 초능력자들은 무려 3개월에 걸쳐 각자 배정받은 대피소로 향했지만 지금까지 도착한 초능력자는 8,000.

어찌 보면 큰 손실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로이의 초능력자 부대는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초능력자들.

타격은 뼈아팠다.

로이가 이를 갈며 말했다.

“장지후...”

믿었다.

신들의 계시를 믿었고 장지후의 복수심을 믿었다.

물론 실패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지만 라오와 협상이라니.

사실상 항복과 다를 바 없는 결과.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한다. 밖에 나가 있는 요원들도 모두 불러들여.”

마지막 희망이던 장지후는 변절했다.

이제 인류의 보존을 위해선 라오의 눈을 피해 숨어있는 게 유일한 방법.

로이의 말에 부하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긴장 늦추지 말고.”

부하를 내보낸 로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답답하구나.”

천둥교는 장지후와의 협상 직후 강제 교화 자체를 멈추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바람직한 변화일까?

로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포기하다니.”

모든 인류의 희생도 불사할 라오다.

만약 장지후와의 협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언제라도 다시 사람들을 희생시킬지 모르는 악신.

로이가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부디 저희를 굽어 살펴주소서. 칠흑 같은 어둠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내려주소서.”

“여기군.”

무려 3달을 기다렸다.

흩어진 빨간 점들이 모이기까지.

“다른 곳은?”

내 말에 초인 부대 대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배치 완료했습니다.”

“좋아.”

그러자 잠시 머뭇거리던 초인 부대 대장이 나에게 말했다.

“저...”

“왜?”

“정말 괜찮습니까?”

많은 말이 함축된 초인 부대 대장의 말.

“초능력자들이 모두 잡혀버리면...”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초인 부대 대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무례한 말이다. 저들은 라오님을 부정하는 자들이다. 당연히 엄벌에 처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자 주저하던 초인 부대 대장이 다른 초인 부대 대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세뇌당한 꼭두각시가...”

“흥. 라오님의 은혜도 모르는 배신자들 주제에.”

두 초인 부대 대장의 차이는 단 하나.

나에 의해 정화가 되었나 안되었나.

상대는 4만이 넘는 초능력자 집단이다.

당연히 날 따르는 초인 부대만으론 포위 섬멸이 불가능하니 라오에게 부탁해 초인 부대 3만을 빌려온 상황.

교화된 초인들과 정화된 초인 간의 갈등은 당연했다.

“그만.”

나는 으르렁거리는 둘을 말리며 말했다.

“나 믿으라고 했잖아.”

내 말에 정화된 초인 부대 대장이 입을 다물었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날 믿고 조금만 참아.”

“대장님.”

부관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초능력자들까지 전멸당하면 인류에게 남은 힘은 저희가 전부입니다.”

“안다.”

“부하들도 동요하고 있습니다.”

“......”

초인 부대 대장이 장지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믿어달라라.”

사실 라오와의 협상은 정화된 초인 부대들로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큰 이탈 없이 장지후를 따르는 초인 부대들.

“지금이라도 말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만 느끼는 게 아닐 텐데.”

대장이 부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지후 님은 절대 부대를 나가겠다는 초인들을 붙잡을 분이 아니야. 만약 그렇게 불만이 크다면 나가면 될 거 아닌가.”

부관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건.”

“아마 방벽의 전투에서부터일 거다.”

자신들의 신성력을 빌려 가 후광이 비췄던 장지후.

“뭔가... 거부할 수가 없어.”

장지후만 보면 경외심이 느껴지고 그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솟아오른다.

분명 자신들은 장지후와 라오와의 협상을 머리로는 거부한다.

하지만 장지후라면 반드시 무언가를 해주지 않을까란 비상식적인 믿음이 생겨나는 기이한 현상.

맹목적인 교화와는 달랐다.

“...믿어보자.”

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에게 다른 길은 없으니까. 장지후 님이 빠지고 우리끼리 천둥교에게 대항해봐야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 같나?”

추가된 인원으로 인해 복잡해진 대피소 내부 점검을 하던 로이가 말했다.

“식량이 부족하겠군. 당분간 아껴 먹도록 해.”

“알겠습니다.”

“지금은 인류의 위기니 모두 힘을 합쳐 조금씩 양보하면...”

그때 하얗게 질린 경비대원 하나가 로이에게 뛰어오며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

“뭐?”

“초. 초인 부대가!!”

단숨에 출입구로 뛰어온 로이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초. 초인 부대가 어떻게.”

현재 로이가 있는 대피소는 깊은 산속 동굴을 극비리에 개조해 만든 대피소였다.

“설마 미행?”

섬을 탈출한 사람들을 미행했나 하는 생각이 로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로이의 부하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리가...”

그때 로이의 눈에 맨 앞에 서 있는 거한의 모습이 보였다.

“자. 장지후?”

장지후도 로이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여. 로이. 여기 있는지는 몰랐네. 내 스킬에 신도 이름 보이는 건 구현을 안 해서 몰랐어. 우리가 인연은 인연인가 봐. ”

로이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외쳤다.

“장지후!!!”

“그래. 그래. 화나는 게 당연하겠지.”

로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를 라오에게 판 것이냐!”

“음... 정확히는 라오가 나한테 양보한 거지만 너희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겠다. 그런 셈 치지 뭐.”

“으윽!”

로이가 다급히 부하에게 말했다.

“빨리 사람들을 탈출시켜!”

이 대피소에 연결된 동굴은 모두 세 곳으로 나머지 두 곳을 통해 사람들을 대피시키라는 로이의 명령.

“예.”

그때 장지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머지 입구? 거기라고 다를 거 같아?”

장지후의 말에 로이가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그. 그걸 어떻게...”

“드나드는 입구가 세 개더라고. 그래서 거기도 배치시켰지.”

로이가 절망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세 곳 모두...”

“미안. 미안.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기왕이면 순순히 잡혀줬으면 좋겠는데.”

잠시 절망해있던 로이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여기서 옥쇄한다.”

“예!”

“비록 우리는 여기서 무너지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

남은 세 개의 대피소.

“여기서 저 간악한 인류의 배신자에게 우리의 분노를 보여주자!”

“와아아아!!”

그런데 그때.

다른 대피소와 연락을 담당한 초능력자가 비틀거리며 로이에게 다가왔다.

“로. 로이님.”

“잘 왔다. 지금 당장 다른 대피소에 연락해 우리와 모든 연결고리를 끊으라 지시...”

“...끝났습니다.”

절망만이 가득한 초능력자의 목소리에 로이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끝났다고? 그게 무슨...”

“...나. 나머지 대피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초능력자가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자신들은 포위됐으니 모든 연결고리를 끊으라고.”

로이의 동공이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지. 지금 뭐라고? 나머지 세 개도 전부 포위당했다고?”

“예...”

로이가 다급히 고개를 돌려 장지후를 바라보자 장지후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머지 3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거야. 말했잖아. 여기 있는지 몰랐다고. 나머지도 모두 포위됐어.”

“......”

잠시 침묵하던 로이가 말했다.

“장지후.”

“말해.”

“부탁이다. 우리를 놔줘라.”

로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 우리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다. 이대로 모두 전멸되면 더 이상 인류의 미래는 없어.”

“......”

“우리는 네 목숨을 구해주었다. 생명의 은인이라 이 말이다!”

로이의 말에 장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아. 그래서 고민을 좀 했지.”

“그럼 제발... 하다못해 아이들이라도...”

“걱정하지 마. 아무도 죽이지 않을 거니까.”

장지후의 말에 로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교화되어 라오의 꼭두각시로 살아라 이 말이냐!”

장지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도 아니야. 너희는 교화되지 않을 거야. 라오도 확언해 줬고. 단지.”

장지후가 로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는 모든 초능력을 잃게 되겠지만.”

“뭐?”

“로이. 그때 내가 인류의 보존을 위해선 초능력도 포기할 수 있냐고 물었었지? 그때 네가 뭐라고 답했지?”

예전의 기억을 더듬던 로이가 말했다.

“모.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고...”

“그래. 지금이 바로 그때다.”

로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라오는 결국 모든 걸 망칠 거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마시고. 아무튼 대화로는 안 될 거 같으니 슬슬 시작해볼까?”

이 대피소에 수용된 섬의 인원은 모두 2,000명.

“흡!”

나는 그들과 연결된 연결선을 통해 그들의 신성력을 빨아들였다.

“큭!”

그러자 로이는 물론 섬을 탈출한 초능력자들이 이상현상을 느끼고 당황해한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별거 아냐.”

나는 빌려온 신성력을 차곡차곡 쌓으며 동시에 저장 장치의 용량도 실시간으로 늘려간다.

“다른 대피소의 초능력자한테도 빌려와 볼까?”

다른 세 곳의 대피소에 몸을 숨긴 6,000의 초능력자들.

나는 재빠르게 리틀이를 조종해 그들의 신성력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음...”

빨리기는 한다.

근데 뭔가 거리에 따라 양이 줄어든 느낌.

“뭐. 상관없겠지.”

굳이 이러지 않아도 준비한 전력은 차고 넘친다.

“모두 공격!”

“파이어!”

“어스 퀘이크!!”

초능력자들이 초능력을 사용해 초인 부대를 공격했다.

“모두 죽여! 한 놈이라도 더 길동무를 만든다!”

눈에 핏줄이 선 로이의 외침에 초능력자들이 모두 결사항전의 각오로 초능력을 발현했다.

“후퇴!”

초능력자들의 반격이 거세자 초인 부대가 갑자기 뒤로 물러서 대열을 정비했다.

그런 초인 부대를 보며 로이가 외쳤다.

“푸하하! 보았느냐! 우리의 힘을!”

그때 다시 초인 부대 대장이 외친다.

“다시 공격!”

그렇게 초인 부대의 치고 빠지기를 여러 번.

초능력자들에게 이상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어!?”

한 초능력자가 당황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초능력이 안 나가!”

초능력 알고리즘이 붕괴되어 신성력을 공급받지 못해 생긴 현상.

그러자 다른 초능력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일단은 뒤로 빠져!”

그렇게 수많은 초능력자들의 능력이 멈춰 서며 다른 초능력자와 교대를 했지만 결과는 모두 같았다.

교대를 한 초능력자들까지 능력 발현이 멈춰 서기 시작한 것이다.

“나. 나도 안 돼!”

로이가 장지후를 노려보며 외쳤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별거 아니야. 연료가 없으니 작동이 정지된 거지.”

“뭐?”

“그런 게 있어.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또다시 공격해 들어오는 초인 부대.

로이의 부하들은 계속해서 교대를 하며 저항했지만 피해는 일방적이었다.

빤히 보이는 예정된 결말.

로이가 절망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 내가 몇 년에 걸쳐 준비한 모든 게... 인류의 마지막 보루가...”

그렇게 그날.

로이의 모든 대피소와 초능력자들은 장지후에 의해 모두 제압되었다.

< 17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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