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176화 (177/188)

< 176화 >

라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역시 인간은 어쩔 수 없군.”

인간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방법인 건 잘 알고 있다.

“라오님.”

사제들이 다가와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라오가 주교들을 힐끔 보며 말했다.

“일단은 살려둬라.”

하지만 종말의 연쇄라는 비운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렇기에 라오는 강제로라도 자신의 대업을 이룩하기 위해 교단 상태창을 만들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태연한 척해도 직접 마주했을 땐 망설이는 게 인간이니까. 아직 효용 가치가 있다.”

“알겠습니다.”

라오가 뒤를 돌아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어찌해야 할까.”

모든 인간이 자기희생을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장지후의 훼방은 치명적이었다.

“실패인가.”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방으로 돌아가던 라오의 뒤에서 사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오님!”

“뭐지?”

사제가 요란하게 울리는 위성 전화기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자. 장지후입니다.”

“뭐지? 거래는 끝난 거 아닌가?”

-한 가지 제안을 할 게 있어서.

장지후의 말에 라오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제안이라...”

장지후의 말을 듣고 언제 한번 끝이 좋은 적이 있던가.

“나한테 썩 득이 될 거 같진 않군.”

-그전에 내 동생들. 아직 살아는 있어?

장지후의 말에 라오가 주교들을 힐끔 보며 말했다.

“아직은.”

-다행이네.

“금방 죽을 목숨이긴 하지만.”

라오의 말에 장지후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제안을 하려고 하니까.

“말해라.”

-우선 첫째. 난 네 계획이 실행 가능만 하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물론 그 과정은 마음에 안 들지만.

“......”

-세상을 둘로 쪼개 인력을 직접 관리하여 종말을 막는다. 괜찮은 방법이야. 음음. 게다가 나도 종말을 막으려고 말 안 듣는 놈들 강제로 대비시켰잖아. 어떤 면에선 일맥상통한다 해야 하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악을 지르던 장지후의 갑작스런 변화.

라오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용건만 말해라.”

-음... 그러니까 내 말의 요지는 인간의 희생만 제외하면 네 계획에 동참해도 괜찮겠다 이 말이지.

장지후의 말에 라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계획에 동참하겠다고? 웃기는 소리. 게다가 인간의 희생이 없으면 애초에 그만한 신성력을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왜. 눈먼 신성력 있잖아.

장지후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초능력자 알고리즘과 저쪽 세상에 괴물을 만들어내는 시스템.

“두 개 모두 서로의 세상을 지키고 상대 세상을 밀어내기 위해 신들이 사력을 다해 만든 시스템이잖아?”

나는 김인호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성력이란 연료가 없어서 작동이 안 되는 거지, 그 시스템 자체는 건재할 거 아니야.”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거 전부 너 가져.”

-내 계획을 너무 쉽게 보는군.

라오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의 자기희생은 물론 봉인된 신들의 신성력까지 모두 끌어모아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즉 네가 말한 것도 모두 포함된 계획이라 이 말이다.

그렇겠지.

“하지만 상황이 다르잖아.”

-뭐?

“신격을 얻고 다뤄보니 알겠어.”

처음 상식이의 몸에 강림했을 당시 묘하게 친밀감을 표하던 사제들.

라오의 명령만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내 신성력을 가진 사람들은 나에게 친밀함을 느낀다는 뜻이었다.

초인 부대가 교화에서 풀리고도 나와 함께하는 이유가 단지 의리와 정의감 때문일까?

난 이 신성력 간의 친밀감도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지금 이 상태로라면 넌 절대 계획을 실행할 수 없어.”

-...단언하지 마라.

“아니 확실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교단 상태창을 구성하고 있는 내 신성력. 신성력은 본질이야. 즉 나에게 더 끌린다는 말이지. 그렇기에 겨우 연결선만으로도 이 정도의 막대한 신성력을 뽑아낼 수 있는 거고. 시간은 내 편이라 이거지.”

-......

“넌 지금 굳이 비유하자면 빚에 잠식된 기업의 전문 경영인이야. 어떻게든 운영해서 나온 이익으로 기업을 정상화해보려 하지만 이미 빚이 빚을 낳는 수준이고. 틀려?”

나는 침묵하는 라오에게 말했다.

“문제는 네가 실패를 인정하고 사제들을 모조리 자기희생 시킨 뒤 그 힘을 가지고 다시 봉인해서 숨어버리는 거야. 수천만의 목숨이 걸린 문제라고.”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뭐지.

“상태창을 분리하자.”

내 말에 라오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헛소리.

“두 세상의 신들이 만든 시스템의 신성력을 네 것으로 흡수해서 균형을 맞춘 뒤 분리 독립하자고.”

내 말에 라오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네 말처럼 지금이라도 사제들을 모조리 자기희생 시키면 되는데?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안 그러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 아까 기업을 비유로 들었지? 빚쟁이 입장에서 아직 돈도 못 받았는데 기업이 파산을 하려 한다?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나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철저히 뜯어먹어 주마.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 신격 가진 놈이다. 지금이야 흡수 정도지만 내가 원격으로 상태창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확신할 수 있어?”

-장지후...

궁지에 몰린 라오지만 그런 라오의 손엔 수천만의 목숨이 달려있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든 돌려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태연한 척 신경 쓰지 않는 척해야 상대가 자신이 가진 패의 가치를 오판한다.

“사제 수천만 명? 그보단 십억 넘는 일반 신도들의 목숨이 더 소중해. 여차하면 정말 포기하고 나머지라도 살리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어.”

-......

나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 선택해. 안전하게 신들 신성력 먹고 분리 독립할래 아니면 나랑 진흙탕 싸움할래.”

-...두 선택지 모두 내가 대업에 실패한다는 걸 가정하고 있군.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니지, 아니지.”

지금까지 한 말은 모두 시간을 끌고 사제들을 구하기 위해 한 제안.

이제부턴 라오가 도주하지 못하도록 만들 카드를 내밀어야 한다.

“내가 아까 말했잖아. 동참하고 싶다고. 그 계획. 나랑 같이하자.”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김인호가 나와 라오의 대화를 되뇌며 말했다.

“정말 이 계획대로 진행돼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내가 라오에게 제안한 계획은 간단했다.

우선 서로 분리 독립.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라오의 현신을 도운 뒤 천둥신 라오를 전면에 내세워 단기간이 아닌 장기에 걸쳐서 필요한 신성력을 모으자는 것.

라오가 급하게 사람들을 교화시키려 했던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기존 신들의 존재와 초능력자.

초능력자들은 신들이 만든 초능력자 알고리즘에 의해 각성한 존재.

신들은 영원히 봉인된 게 아니다.

초능력자의 각성이 멈추긴 했지만 아직 로이를 비롯한 수많은 초능력자가 도처에 널려있다.

이들을 통해 어느 정도라도 신성력을 회복하여 봉인에서 풀리면 라오와의 마찰이 불가피하다.

당연히 라오는 교화를 통해 더 많은 사제를 확보.

추후 발생할지도 모를 신들과의 마찰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 거다.

둘째는 나.

내가 계속 라오를 방해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보유한 힘도 강해진다.

그러니 내가 더욱 성장하여 계획을 무너트리기 전에 철옹성을 쌓아야 했다.

어찌 됐든 두 이유 모두 자신의 계획을 훼방 놓을 자들의 존재가 문제인데 내 제안으로 이 두 가지 요인이 모두 사라진 거다.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라오의 계획이 성공한다는 보장 자체가 없는 데다 지금 이 구도라면 후손들에게 라오를 떠넘긴 꼴이니까.”

“그렇습니까? 그런데 라오는 신들이 만든 초능력자 알고리즘은 가장 큰 방해일 텐데 왜 진작에 손보지 않은 걸까요?”

“안 한 게 아니야 못 한 거지.”

원래 라오의 계획대로라면 이미 교단 상태창을 통해 어느 정도 신격을 회복했어야 했다.

그럼 그 신격을 이용해 신들이 만든 초능력자 알고리즘까지 흡수하면 끝.

그런데 내가 중간에서 일을 틀어지게 만드니 이도 저도 하지 못한 거지.

“아무튼 라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더 이상 급하게 일을 진행해야 할 이유가 사라져.”

물론 빨리하고 싶겠지.

하지만 지금 상태라면 어차피 내 훼방으로 인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거고 수천만 사제의 자기희생으로 모은 신성력만 가지고 훗날을 기약해야 하는데 그 또한 수백 년이 될지 수천 년이 될지 라오 자신도 알 수 없는 상황.

“뻥카 나이스 아이디어.”

내가 엄지를 들어 올리며 칭찬하자 김인호가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저는 그냥 자기희생을 대신할 신성력 공급처를 뻥카로 지르자 말한 것뿐이지 그 뒤는 전부 장지후 님이... 아니 라오님이 생각해내신 거라 칭찬받을 정도는...”

“뭐.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게다가 뻥카 맞잖아?”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절대 그냥 둘 생각이 없으니까.”

내가 라오에게 동참하겠다는 방식은 간단했다.

본래의 세상이라면 사람들의 믿음이 모여 신격을 이루고 신격에서 신이란 인격이 탄생한다.

그렇게 탄생한 신은 자신에게 모인 신성력을 이용해 다른 세상과의 간섭을 차단한다.

하지만 난 라오에게 이 다른 세상과의 간섭 차단을 무시하고 그냥 쭉 모으기만 하자고 제안했다.

천둥신 라오가 전면에 나와 사람들의 믿음을 교화란 인위적인 방식이 아닌 평화적 방식으로 진행.

초능력자 알고리즘을 흡수했으니 신들 걱정도 없고 나도 강제 교화만 아니면 적극 동참해준다니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도 겉으로만 보기엔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문제는 간섭을 차단하지 않으니 다음번 세상과의 접촉이 급속도로 진행될 거고 라오의 계획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

“그런데 전부 라오가 장지후 님을 믿는다는 가정하에 이뤄지는 거 아닙니까.”

“믿을 수밖에 없어.”

김인호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라면 절대 안 믿을 거 같은데요.”

그때 위성 전화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린다.

“여보세요.”

-나다.

라오였다.

-네 제안. 지금 현 상황에서라면 최선책이긴 하군.

“그렇지?”

-하지만 너와 나 사이엔 신용이 없다. 내가 뭘 보고 널 믿어야 하지?

“믿어도 돼.”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신격을 걸고 약속할 거니까.”

-......

잠시 침묵하던 라오가 말했다.

-신격을 걸고 약속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나?

“글쎄? 대충 석호 보내서 낚으려는 걸로 보아 불이익이 상당할 거 같다는 정도?”

-신격은 신 그 자체다. 그런 신격을 건다는 건 신의 모든 것을 건다는 것과 다를 바 없지.

나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내가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데?”

-신격은 결국 믿음으로 인해 탄생한다. 그런데 그런 신격이 스스로의 본질을 부정하는 셈이지.

“호오.”

-신격을 건 약속이 어겨지면 그 존재는 소멸한다.

죽음도 아닌 소멸.

“신격은?”

-신격도 중심축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다.

“호오. 그럼 내가 약속 어기기를 오히려 기대하겠네?”

내가 소멸된 세상에서 흩어진 신성력을 가져갈 수 있는 존재는 라오뿐이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좋아 좋아. 신격을 걸고 약속하지.”

-본질 자체의 문제이기에 애매한 단어 사용 정도론 소용없다.

“에헤이. 거참 의심 많네. 걱정 말라니까? 대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도 약속 하나만 해주라.”

< 17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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