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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173화 (174/188)

< 173화 >

“급한 일이라고 하셔서 모시긴 했는데...”

로이가 나에게 차를 따라주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절 만나서 해야 할 급한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나는 로이가 따라준 차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해낸 가설은 어디까지나 가설.

증거라곤 정황 증거밖에 없다.

로이와 이들에게 신들은 자신들을 구원하고 목숨까지 살려준 고마운 존재다.

과연 내 말만 듣고 신들의 진의를 의심할까?

아니. 그 이전에 과연 로이는 신들의 진의를 몰랐을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차로 목을 축이며 말했다.

“로이.”

“예.”

“너와 너의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뭐지?”

내 말에 로이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거야 당연히 생존 그리고 인류의 보존 아니겠습니까.”

“생존...”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만약. 정말 만약에.”

“예.”

“완벽한 생존이 보장된다면.”

나는 로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나?”

“그게 무슨...”

“예를 들어 초능력.”

내 말에 로이가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초능력이요?”

“그래.”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로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히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 신이 내려준 힘인데도?”

내 말에 로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께서 주신 힘이 구원에 필요하다면 그것 역시 신의 뜻이겠지요.”

“그렇다 이거지...”

그래.

로이와 초능력자들이 적인지 아닌지가 뭐 그리 중요한 일인가.

애초부터 내가 종말을 대비해온 방법은 기만과 폭력 그리고 억지였다.

설득시킬 자신이 없으니 그냥 강제로 시켜오지 않았나.

“로이.”

“예.”

“이 섬의 초능력자들은 능력을 사용하지 않지?”

이 섬의 초능력자들은 초능력 각성 알고리즘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능력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었다.

“예.”

“좋아.”

나는 로이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로이. 나를 믿는다면 내가 너의 몸 안을 관조해봐도 될까?”

만약 로이가 신의 진의를 알고 있다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다.

라오와 함께 유일하게 신격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나에게 몸을 허락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뻔했으니까.

하지만 만약 로이 자신도 나에게 전해준 정보가 전부라면 허락할 거다.

내가 자신에게 힘을 내려준 신의 신성력을 어찌하지 못할 거라 생각할 테니.

“어째서입니까?”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고에서 들었다시피 엄청난 신성력을 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다루는 게 아직 미숙해. 그래서 조금이라도 연구를 통해 다양한 능력을 사용하고 싶거든?”

거짓말이었다.

통째로 흡수라면 모를까 몸 내부에 있는 신성력의 파트별 역할까지 단숨에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

“흠...”

잠시 침묵하던 로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별거 아니군요.”

나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로이의 허락을 받은 나는 로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관조를 시작했다.

‘이거군.’

로이의 상태창을 구성하는 신성력.

나는 단숨에 로이의 상태창, 초능력자 각성 알고리즘의 연결선을 끊어버렸다.

‘오케이.’

이미 김인호의 부하를 통해 초인이 교단 상태창과 연결되어있듯 초능력자도 초능력자 각성 알고리즘과 연결되어있음을 확인한 상태.

수천 명의 초인과 리틀이를 연결하며 이골이 난 나다.

순식간에 로이의 신성력을 리틀이와 연결시킨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별말씀을.”

흡수하는 건 하책이다.

이렇게 몰래 리틀이와 연결시키면 언제든 초인들처럼 신성력을 빌려올 수 있는데 구태여 의심 사는 행동을 할 필요가 있나.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해도 될까? 능력은 많을수록 좋잖아.”

“그걸로 된 겁니까?”

미국으로 돌아가는 잠수함 안에서 김인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협조를 구하고 흡수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너처럼 순순히 넘겨줄 사람이 몇이나 될 거 같아?”

종말 전에도 초능력자들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자부심이 넘쳐흘렀었다.

스스로를 신인류라 부르며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던 초능력자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이제 초능력은 최후의 순간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보루다.

그런 초능력을 갑자기 회수해간다고?

로이의 속내는 둘째치고 초능력자들의 반발은 불 보듯 뻔했다.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조치는 취해놨으니까 이제 괜찮아.”

이제 뒤통수 맞을 일은 없다.

여차하면 다 빌려와 버리면 그만이니까.

“이제 어떡하실 계획이십니까?”

“어떡하긴. 계속 초인이랑 대피소를 때려잡아야지.”

라오의 위치도 모르고 설사 알았다고 한들 당장으로선 무리다.

만약 라오가 미친 척 모든 사제들을 자기희생 시킨 다음 불완전 현신이라도 하면 지금 내 수준으론 감당할 수 없다.

“계속 잡아서 힘을... 어?”

그러고 보니 라오의 목표는 완전한 현신과 전인류 교화.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선 긴 시간과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필요로 하다.

나는 단순히 라오를 잡아 족칠 생각만 했는데 생각해보면 라오가 신성력을 낭비하게 만들수록 라오의 계획이 늦어진다는 소리잖아?

“신성력 낭비라.”

내가 라오에게 몸을 빼앗겼을 때도 라오가 가장 분노했던 부분이 바로 리틀이를 통한 신성력 강탈이었다.

그때 한 가지 가능성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연결선!”

교단 상태창과 연결된 연결선을 끊어내기 바빴지만 생각해보면 이 연결선을 쌍방향 통로 아닌가.

그 연결선을 통해 라오를 훼방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잠깐.”

나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기도를 시작했다.

내 갑작스런 행동에 김인호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라. 라오님?”

나는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인 뒤 계속해서 기도에 집중했다.

그리고 1분이 경과한 바로 그 순간.

“라오.”

그러자 어디선가 연결선이 내 몸으로 날아온다.

그런데 갑자기 멈춰선 연결선.

그리곤 바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흠.”

내 현재 상태를 굳이 표현하자면 엉성한 상태창을 가지고 있는 초능력자?

정도 되겠지.

초능력자는 신도가 될 수 없다.

아마 리틀이의 존재가 연결선이 멈춰 서며 사라진 이유겠지.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초능력자의 신성력을 탐지해 판별하는 건가? 하지만 난 좀 특별한 초능력자란 말이지.”

나는 곧바로 리틀이로 새로운 스킬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렇게... 좋아. 다시 한번 해보자.”

다시 1분의 기도가 지나자 연결선이 날아온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르게 내 몸 안에 들어와 콩알만 한 신성력을 토해낸 뒤 그 신성력과 연결된다.

“흠.”

아마 연결선과 연결된 저 자그마한 신성력은 내가 기도를 했을 때 생기는 신성력을 교단 상태창에 보내는 역할이겠지.

“리틀이는 교단 상태창 신성력을 흡수할 수 있단 말이지.”

물론 당시엔 같은 몸 안에 있는 데다 사람들이 나를 위해 모은 신성력이라 가능했고 지금은 단순히 연결선으로 연결된 거라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믿져야 본전 아닌가.

신도로 임명되어 내 위치가 들통나도 상관없다.

내가 여기서 라오가 있는 곳으로 갈 방법이 없듯 라오도 이쪽으로 오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니까.

기껏해야 강림 내지는 초인 부대를 모아 공격해 오는 건데 그 정도론 내 상대가 안 된다.

나는 내 몸 안에 생성된 콩알만 한 신성력을 숨겨둔 리틀이로 단숨에 흡수시켰다.

그러자 신성력과 연결되어있던 연결선도 그대로 리틀이와 연결되어있는 게 아닌가.

“으히히히.”

연결선은 단순히 신성력을 주고받는 통로.

초인들은 이 연결선을 통해 교단 상태창으로부터 신체를 유지할 수 있는 신성력을 공급받는다.

그렇다면 내가 더 많은 신성력이 필요하다고 교단 상태창으로 신호를 보내면?

난 리틀이의 일부에 의지를 보내는 파트를 만들며 말했다.

“신성력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보낼 수 있는 만큼 전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파트를 작동시키는 순간.

“들어온다아아아아!!!”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빨대 제대로 꽂았네!!”

이 방법을 이제야 발견하다니.

나는 밀려들어오는 신성력을 느끼며 말했다.

“교단 상태창에 파문 스킬은 없었지?”

만들어두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주마.

“순조롭군.”

라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재 전 세계 생존자 중 1,000만 명의 교화 작업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사제가 늘어날수록 교화 작업량이 늘어날 것까지 고려해 3년 안에 모든 생존자를 교화시키는 걸 목표로 작업 중입니다.”

사제의 보고에 라오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3년도 길다. 최대한 단축시키도록.”

“참모진의 의견으론 여기서 더 작업량을 늘리면 생존자들의 반발심이 커져 대피소를 이탈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상관없다. 시간이 부족해.”

라오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장지후가 더 날뛰기 전에 작업속도를 늘려.”

지금까지 모은 신성력으로 불완전 현신을 해서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렇게 되면 대업의 순간이 또다시 미뤄진다.

“북미는 포기한다.”

북미의 대피소들을 장지후의 먹이로 던져준다.

미국의 땅은 넓고 그만큼 대피소도 여기저기 퍼져있어 정화에 시간이 걸릴 터.

그사이 다른 대륙의 모든 사람을 교화시켜 안정화를 꾀하는 게 라오의 생각이었다.

“미국과 캐나다의 초인 부대는?”

“모두 남하 중입니다.”

앞선 전투로 라오는 장지후가 자신의 신격을 자유자재로 그것도 아주 능수능란하게 다뤘다.

이 말인즉슨 이 지구상에서 장지후를 상대할 수 있는 강자는 없다는 말.

“괜히 초인 부대를 모아 장지후를 공격했다가 저번처럼 모조리 빼앗기느니 차라리 남하시켜서 시간을 끌어라.”

“예.”

라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지후가 강하다고는 하나 그래 봐야 한 명. 혼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정보로 장지후는 신체 접촉을 통해서만 교화를 해제시킬 수 있었다.

십억 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악수만 해도 수십 년이다.

사실상 라오 자신을 직접 공격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을 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

“지시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런데 그때.

라오의 귀로 띵 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응?”

새로운 신도가 생겨났을 때 울리는 알림음.

“신도인가.”

습관적으로 신도 리스트를 확인한 라오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김... 상식?”

장지후였다.

나이 30살, 이름 김상식.

“이 새끼가...”

분명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게 분명했다.

라오가 다급히 지구본 스킬로 장지후의 위치를 확인했다.

“바... 다?”

바다 위에 유유히 떠있는 빨간 점.

장지후가 확실했다.

다급히 계시 스킬을 사용한 라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장지후!!!”

그러자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빨간불.

“네놈이 감히!!”

신도가 되면 라오에게 모든 위치가 공개된다는 건 상식.

이건 대놓고 잡아보라는 도발이나 다름없었다.

“오냐. 네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라오가 멈칫하며 말했다.

“설마 나를 유인하려고?”

그게 아니고서야 어째서 장지후가 자신에게 위치를 밝힌단 말인가.

라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야. 그렇게 단순한 계획을 세웠을 리가 없어.”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라오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런데 어떻게 신도가 된 거지?”

교단 상태창은 자동으로 신성력을 이미 보유한 자는 거르도록 설계되어있다.

장지후는 신격을 가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신성력을 보유한 자.

이 말은 장지후가 작정하고 신격을 숨겨 신도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라오가 불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 173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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