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
로이는 신들 역시 실제로 결합되기 전엔 상대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뭐 신들이 초능력자 탄생 시스템이 적의 수준에 맞춰 적절하게 조절하도록 레벨링 시스템을 만들어 둔 거라 생각해 넘어갈 수 있다.
이런 포괄적 의지 투영은 많은 신성력을 소모하지만 애초부터 미지의 적을 상대하기 위한 시스템이니까 어쩔 수 없이 넣은 걸 수도.
나도 약물 방지 스킬이 포괄적인 명령에 의해 많은 신성력을 잡아먹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판단해 사용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왜 꼭 발동조건이 적 그러니까 괴물의 죽음이어야 하지?”
적을 죽이는 것에 대한 동기부여?
그게 굳이 저런 포괄 명령을 집어넣어 초능력자 탄생 시스템의 신성력 소모를 늘려야 할 중요한 요소인가?
게다가 상대 세상이 타협 가능한 지성 생명체가 사는 세상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다못해 우리도 다른 조직이랑 불화가 있으면 대화부터 하는데.”
전쟁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손해가 발생하기에 폭력을 동반한 전쟁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최후의 수단인 전쟁을 결심하는 유일한 조건은 단 하나.
“...전쟁을 통한 손해보다 이익이 압도적으로 높을 때.”
물론 이 모든 건 가설에 불과하다.
나는 라오가 아닌 신들과 접촉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그러니 확인이 필요하다.
“저 군집을 잡는다.”
나는 장비를 착용하며 말했다.
“전부 생포해와.”
“키에에엑!!!”
초인 병사들에 의해 잡혀온 괴물들을 가장 안쪽 방벽 안으로 몰아넣었다.
“장지후 님.”
김인호의 말에 나는 괴물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선 라오님이라고 불러.”
“...예. 라오님. 저 괴물들을 왜 잡아오신 겁니까?”
방벽을 뛰어넘기 위해서 계속 뛰어오르는 괴물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알아볼 게 있어서.”
“알아볼 거요? 괴물에 대한 연구는 거진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괴물.
피와 살엔 독성을 머금고 있고 단단한 외피로 무장하고 있지만 생식기가 없는 정체불명의 생명체.
여기까지가 현재 인류가 파악한 괴물의 정보였다.
그런데 의문이 한 가지 생기자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말입니까?”
생식기도 없고 오로지 전투만을 위한 생명체.
저런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게 가능한가?
마치 이건 기타 잡스런 기능을 제외하고 오직 전투의 효율성만을 보고 만들어 낸 듯한 모양새.
내가 스킬을 만들 때와 똑같다.
“한 마리 잡아올려.”
초인 병사에 의해 끌려온 괴물이 나를 보며 굉음을 냈다.
“키에에에엑!!”
나는 괴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자. 너희는 도대체 뭐냐. 어떻게 생겨먹은 거냐.”
괴물의 내부야 진작에 파악이 끝났지만 내가 지금 의심하고 알아보려는 건 그게 아니다.
리틀이가 내 의지를 받고 괴물의 안쪽을 파고든다.
“키에에에에!!”
“......”
괴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조를 끝낸 나는 손을 떼며 말했다.
“...신성력이 있어.”
괴물의 신체 내부에 신성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라오의 것도 내 것도 아닌 미지의 신성력.
“역시 만들어진 생명체였어.”
그래.
이런 생명체가 자연 발생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그렇다면 괴물을 죽임으로써 신들이 얻고자 하는 건?
“잘 가라.”
나는 스킬로 강화된 주먹을 괴물의 머리에 내리꽂았다.
퍽!
단숨에 두부로 파고든 내 주먹에 괴물이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크륵.”
곧바로 눈을 감고 괴물이 품고 있던 신성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던 내 미간이 찌푸려진다.
“이것 봐라?”
분명 괴물이 품고 있던 신성력이 무언가에 끌리듯 어디론가 날아가려 한다.
본래라면 나는 나의 신성력만을 흡수할 수 있고 그건 라오도 마찬가지.
그래서 라오가 내 신성력으로 가득 찬 교단 상태창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거 아닌가.
하지만 나는 무의식중에 리틀이에게 의지를 투영했다.
흡수하라고.
그렇게 어디론가 이동하던 신성력을 리틀이가 덮친다.
“...흡수됐어?”
그리곤 자연스럽게 리틀이의 일부가 된 괴물의 신성력.
“설마...”
흡수되어서는 안 될 신성력이 흡수가 된다.
아마도 이 괴물을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저 웜홀 너머 세상의 신이 가진 신성력이겠지.
“...괴물을 죽이는 건 이 신성력을 흡수하기 위해서?”
나는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신이 거짓말을 했다?”
거짓은 믿음으로서 탄생한 신격에 큰 부담을 준다.
그렇다면 신은 로이에게 무슨 거짓말을 한 걸까.
아마도 최소한으로 거짓말을 했을 텐데.
“...세계가 합쳐지고 그 위기를 초능력자로 극복... 그렇다면 저쪽 신도 마찬가지 입장인 거 아니야. 그렇다면 괴물을 저쪽 신이 이쪽을 대비하기 위해 만든 거라 생각하면...”
아.
나는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신의 대리전.”
로이는 말했다.
세상이 커지고 인력이 강해지면 두 세상은 서로 가까워지며 결국 합쳐진다.
피할 수 없는 재앙.
하지만 만약 타협을 통해 두 세상이 평화롭게 공존한다면?
“...합쳐진 두 세상은 더욱 거대해지겠지.”
더욱 거대해진 세상엔 더 강한 인력이 발생할 거고.
그렇게 계속해서 거대해지는 세상의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신한다.
“두 세상의 신 모두 타협을 통한 해결을 원하지 않았다는 거.”
저쪽 세상의 신은 괴물을 대리전 선수로 이쪽 세상의 신은 초능력자를 선수로 내세운 거다.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양측 신들은 서로의 세상이 가까워짐을 느낀다.
그리고 피할 수 없지.
그래서 합의를 한 거다.
양측 세상의 생물로 대리전을 치르기로.
그 대가는 상대측 세상의 신성력.
“아!”
나는 괴물이 신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체가 아닐까 의심했다.
그만큼 한쪽 성능으로만 치우쳐져 있었으니까.
“한 달... 맞아. 괴물은 딱 한 달 동안 미친 듯이 달려들었어.”
한 달 이후 웜홀에선 더 이상 괴물을 토해내지 않았었다.
그 시기가 언제던가.
내가 준비한 대피소와 여러 방법 등으로 생존자가 20억까지 줄었을 때다.
즉 이쪽 세상의 사망자 숫자가 급감했을 때.
나는 창백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성력 공급이 끊겨서 괴물을 추가로 만들지 못한 거야.”
이쪽 세상 사람을 죽여 얻은 신성력으로 계속해 괴물을 만드는 알고리즘.
그런데 사망자가 급감했으니 괴물 추가 생산이 멈춘 거다.
마치 나 때문에 초능력자 숫자가 급감했듯.
“신들 입장에서 이기기만 하면 완전 꿩 먹고 알 먹고네.”
승리하면 저쪽 신의 신성력을 갈취할 수 있고 덤으로 이쪽 세상 사람의 숫자도 급감하니 세상의 크기도 작아진다.
그런데 저쪽 세상의 신도 신격에서 탄생했을 거 아닌가.
“왜 저쪽 세상엔 지성 생명체가 하나도...”
공포스런 가정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라오의 계획처럼 자신의 신도들을 모조리 자기희생 시킨 뒤 괴물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면?”
한마디로 지구의 신들은 신도들을 유지해 선순환 구조를 통한 장기전을 계획한 거고 저쪽 신은 모든 자원을 끌어모은 영혼의 한타를 준비한 거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모두 가정일 뿐이지만...”
모든 정황이 맞아떨어진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게임하듯 괴물을 죽이니 레벨이 오르는 거라 여겼지만 나와 일반 초능력자 그리고 생존자들의 보는 시선이 다르다.
초능력자들과 생존자는 일종의 플레이어로서.
나는 프로그래머로서.
“...각자 세상의 존패를 걸고 싸우는 대리전...”
승자가 모든 걸 가지는 총력전.
상대측 세상의 신성력을 얻어 신격의 크기를 유지함과 동시에 우리 측 세상의 크기도 줄여 인력의 발생을 억제한다.
로이는 말했다.
신은 자신을 탄생시킨 인류의 자식임과 동시에 부모라고.
그 말은 틀렸다.
신에게 인류는 그저 자신의 신격을 유지시켜줄 자원에 불과하다.
우리 측 신은 우리를 죽이지 않았으니 더 착하다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힘이 약해진 라오조차 나에게 종말이란 미래를 예지했는데 온전한 힘을 가지고 있던 신들이 나와 천둥교가 대두되어 다급히 로이에게 예지를 내리기 전까지 아무런 언급도 해주지 않은 이유가 뭐겠나.
“...우리 측 신들도 어느 정도 인간의 숫자가 줄기를 원했던 거야.”
다 똑같은 놈이다.
신?
이딴 게 신이라고?
“...신격이 모여 탄생한 지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하지만 마지막 의문이 남는다.
분명 나와 라오는 서로 간의 신성력을 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들의 신성력은 서로 간에 흡수가 가능한 걸까.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신의 존재 여부.”
모든 신도를 희생시켜 괴물을 만들 정도로 총력을 기울일 정도니 저쪽의 신 역시 스스로를 봉인했겠지.
그렇다면 현재 양 세상을 통틀어 의지를 가지고 있는 신적 존재는 나와 라오뿐이다.
그 존재 여부가 상대 신성력을 흡수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하는 게 아닐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김인호!!”
내 말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인호가 다급히 들어오며 말했다.
“예! 라오님.”
“나 믿지?”
“그거야 당연히...”
“한 가지만 묻자. 만약 내가 네 힘을 흡수해서 가져가겠다고 하면 받아들일 거야?”
내 말에 김인호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흡수라니... 설마 초능력 말입니까?”
“그래.”
내 말에 잠시 멍하니 있던 김인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만약 인류에 도움이 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좋아.”
나는 김인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흡수해!”
김인호가 양손을 뻗으며 외쳤다.
“화염!!”
대한민국 최강의 화염 초능력자 김인호.
원래라면 그의 양팔이 강력한 화염으로 뒤덮여야 했으나 그의 팔에선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히야. 진짜 사라졌습니다. 상태창도 더 이상 안 나오고.”
김인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제 완전 일반인이군요.”
하지만 난 김인호의 너스레에도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흡수했어...”
초능력자의 신성력을 흡수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나.
봉인된 신의 신성력은 내 것으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것.
“...내 등장으로 속이 탔던 건 라오만이 아니었어.”
대리전을 준비해오며 봉인 직전이던 신들 역시 마찬가지.
괴물을 죽여 상대측 신들의 신성력 갈취해 오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뒀는데 이게 웬일.
갑자기 나와 천둥교가 화려하게 등장해 사람들을 모조리 천둥교의 신도로 만들어 시스템을 박살 낸 거다.
“원래라면 초능력자 각성 알고리즘은 신도들의 믿음과 괴물에게서 갈취할 신성력 이 두 가지로 구성되어야 하는데 한 축을 천둥교가 모조리 삼켰지.”
그렇게 괴물에게서 갈취한 신성력만으로 간신히 버텨왔지만 괴물의 등장도 멈추는 바람에 사냥속도가 둔화되니 새로운 신규 초능력자 각성도 중지된 거고.
선순환이 천둥교의 등장 때문에 악순환으로 변한 거다.
그렇기에 다급히 로이를 통해 초능력자들을 규합하고 나를 자신들의 대리마로 삼은 것이다.
이게 모든 정확으로 추론한 현재까지의 상황.
“...전부 내 상상이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나도 초인들이 보내온 신성력에 황홀감을 감추지 못했었다.
다시 말해 신들도 신성력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말.
그들은 그저 라오와 마찬가지로 신성력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 찬 신격을 지닌 지성일 뿐이다.
“하아. 믿을 새끼가 하나도 없구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라오를 죽였다 치자.
봉인된 신들의 시나리오대로라면 난 괴물을 모두 처단한 뒤 은퇴를 할 것이고 천둥교도 당연히 해체시킬 거다.
그리고 살아남은 로이의 입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지겠지.
신들이 인류를 지키기 위해 했던 노력을.
그럼 자연스럽게 본래의 위치로 돌아갈 거고.
“...인류의 수가 줄도록 학살을 방치한 신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신들이 한 짓은 자신들에게 선택받은 일부의 사람들만을 살리는 거였다.
그리고 나머지 일반인들의 희생을 통해 세상의 크기를 줄이고.
“그럴 수는 없지.”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 아무도 의지해선 안 되는 거였어.”
믿을 건 오직 나 스스로뿐이다.
“...그나저나 내 머리가 이렇게 좋았나?”
겨우 괴물을 왜 죽이나로 시작한 의문이 여기까지 오다니.
“뭔가 달라진 거 같은데... 약물이 과했나? 뭐. 당장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모든 상황을 파악했으니 이제 대책을 만들 차례.
“초능력자들. 어떻게 해야 하지?”
특히 신과 직접 교류한 로이.
과연 그는 아군인가 적군인가.
“더 이상 뒤통수는 이쪽에서 사양이야. 인호!”
“예!”
“따라와. 로이에게 가자.”
< 17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