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
초인 부대 전원을 교화로부터 정화시킨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대책 회의였다.
“라오가 어떻게 나올까?”
내 질문에 김인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초능력자들부터 모조리 제압했을 겁니다. 천둥교 산하 대피소에 사제와 초인 부대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건 초능력자들뿐이니까요.”
나는 고개를 돌려 로이의 부하를 바라보았다.
“뭐 정보 들어온 거 없어?”
내 말에 로이의 부하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대피소에 잠복해있던 대원들 대부분으로부터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후.”
결국 이렇게 됐군.
자폭 장치가 무력화된 순간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멍청하게 속아 넘어가서...”
김인호가 또다시 자책을 하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네가 속을 만했어.”
솔직히 지금 현시점으로만 놓고 봤을 때 라오가 나보다 더욱 인간에 가까우니까.
문제는
“라오가 정체를 드러내면 어떻게 되는 거지?”
라오가 지금껏 무력하게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의 믿음이 자신이 아닌 나를 향해 있기에 그러했던 거다.
그런데 이제 진짜 정체를 드러내 사람들의 믿음이 자신에게 향하도록 만든다면?
“......그 부분은 제가 다시 로이님께 여쭤보겠습니다.”
그러자 김인호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말했다.
“로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아!”
김인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미국의 초능력자 부대 대장!”
현재 김인호는 내 능력의 기원, 로이와의 만남 등의 정보는 하나도 알려주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기다려 나중에 알려줄 테니까.”
이건 나와 라오 만의 싸움이 아니다.
전 세계 모든 신도들과도 얽혀있는 전쟁.
그들의 기도가 어디로 향할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들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해줄 사람은 김인호뿐이었다.
“김 대장.”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재회의 인사가 늦었어. 오랜만이야.”
내 말에 김인호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벌써 4년 전이네.”
몸을 빼앗긴 이후 처음으로 만난 과거의 지인.
“나중에 거하게 회포를 풀자고. 일단은 대책이 먼저니까. 그러니 우선 묻자.”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라오가 이제 천둥신 라오를 믿으라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할 거 같아?”
내 말에 김인호가 두어번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어떻게 하다니요? 평소랑 똑같은 거 아닙니까?”
“응?”
“장지후 님이 매일 본인이 천둥신 라오라 하고 다니시지 않았습니까? 그냥 평소처럼 기도하는 거죠.”
“...그러네.”
질문이 잘못됐다.
“다시 묻자. 만약 라오가 그동안 자신이 라오신을 사칭했다며 사실 천둥신 라오는 따로 있다고 천둥신 라오에게 기도를 올려라! 라고 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어... 그게 중요합니까?”
“엄청.”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김인호가 말했다.
“뭐. 시키니 하긴 할 텐데...”
“그래?”
큰일이군.
우리가 천둥교보다 유리한 점은 나란 존재 하나뿐인데 만약 저렇게 라오가 사람들의 믿음을 자신에게로 돌려 조금이라도 힘을 되찾으면 승산은 없다.
나와 로이의 부하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자 김인호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아니. 무슨 일인지 설명을 좀 해주시면...”
“후... 설명해주지.”
나는 김인호에게 믿음과 힘 그리고 신격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믿기 힘든 설명이 이어지자 놀라워하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오가던 김인호가 말했다.
“그럼 지금 장지후 님이 신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신격이 탄생하고 신이 생겨나지만 난 그저 작은 신격이 생겨난 인간일 뿐이야.”
“사람들이 진짜 라오신에게 기도를 올리면 라오가 힘을 얻는다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러자 오묘한 표정을 짓는 김인호.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건 알아. 하지만...”
“아니. 아니.”
김인호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믿지 못하겠다는 게 아니라... 아까 강한 믿음이 모여 신격을 형성하고 신성력이 생긴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아.”
그러자 김인호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걱정 안 하셔도 될 거 같은데...?”
“뭐?”
이게 무슨 소리지?
“정말 라오신이 있다고 굳게 믿어야 힘이 모인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도대체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게 만들어? 맞다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그 존재를 굳게 믿을 리가 없잖습니까.”
김인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애초부터 장지후 님을 진짜 신이라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우리가 믿고 따르며 기도를 올린 건 인류의 구원자이자 예언자인 라오지 신 라오가 아닙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진짜 천둥신이 따로 있다고 굳게 믿으라니... 구원자에 대한 존경과 경애의 뜻으로 지시에 따르기는 하겠지만 진짜 존재한다고 믿을까요?”
-일리가 있습니다.
다급히 로이와 연락을 취해 김인호의 말을 전하자 로이가 긍정적인 답을 해준다.
-믿음. 그 추상적이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이 힘으로 발현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당연히 깊은 믿음이 모이고 모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 믿음이 인간에 대한 존경심 또는 경애라 할지라도?”
-저도 모든 걸 알지는 못합니다. 애초에 홀로 전 인류의 믿음을 독차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에...”
그렇긴 하지.
종말이라는 특수 상황.
기댈 곳이 나뿐인 생존자들.
이 모든 것을 예언하고 준비해온 나.
이런 여러 요인이 합쳐져 탄생한 게 지금의 천둥교 아닌가.
“그럼 어느 정도 안심해도 된다는 소리야?”
-물론 방심은 금물입니다. 그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 해도 라오에겐 두 번째 방법이 있으니까.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교화...”
“역시 안 되나.”
라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지후. 모든 일을 망친 놈.”
종말 전 장지후는 신체 능력 그리고 세뇌 초능력을 가진 사이코 초능력자였고 종말 후엔 이 모든 사태를 예지하고 대비한 예언자였다.
그리고 문제는 이 어디에도 진짜 신의 존재를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라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몇 대피소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보았지만 결과는 모두 같았다.
신도들은 천둥신 라오를 위해 기도를 올린다 말은 하지만 그들이 떠올리고 연상하는 인물은 바로 장지후.
마치 그의 괴짜 짓에 어울려준다는 느낌.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장지후는 물론 라오도 장지후와 기싸움을 하며 기도를 하라고 했다가 말라고 했다가 어쩔 땐 교화를 시켰다 교화를 시키지 않았다 오락가락했던 게 수십 차례다.
거기에 적응한 생존자들로선 라오의 뜬금없는 주장이 또 다른 괴짜 짓으로 보일 수밖에.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장기간에 걸쳐 라오신의 존재를 설파하고 교리를 확립시키며 바닥을 다져나가면 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라오는 계시 스킬로 전 세계 사제들에게 말했다.
“플랜 B로 간다.”
-저희 예상이 맞은 거 같습니다.
로이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라오가 라오신의 존재를 밝히지 않고 사람들을 무차별로 교화시키고 있습니다.
최악보단 차악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이 반발할 텐데?”
-대원들을 워낙 많이 잃어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지는 못했지만 각 대피소에 엄격한 규정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라오가 그 정도로 만족할까?”
절대 아니겠지.
라오도 알고 있다.
나에게 시간을 주면 줄수록 자신에게 더더욱 불리해진다는 사실을.
“...일부 대피소를 통째로 교화시키는 중일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피소를 통째로 교화시킨 뒤 멀쩡한 척 생활하게 만든다.
내가 늘 해오던 방법이다.
단지 나는 정부와 시민들의 눈치로 조금씩 몰래 했고 라오는 대놓고 한다는 게 다를 뿐.
방법이야 간단하다.
“초대형 괴물 군집이 접근한다는 핑계로 경로상 대피소를 전부 봉쇄시킨 뒤 교화를 진행하면 전부 교화시킬 수 있어. 어차피 이제 눈치 볼 초능력자도 없으니까.”
지금도 수많은 괴수 군집이 지구를 헤집고 돌아다니고 있다.
이보다 확실하고 좋은 핑계는 없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지금이라도 모든 초인 부대를 이끌고 한국으로 가겠어.”
-무모합니다.
“무모해도 어쩔 수 없어. 지금이 아니면 늦어.”
아직 조금이라도 내가 유리할 때.
다시 수천 명 초인의 힘을 빌려 라오를 눕힌다.
-라오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아시고요. 아직도 라오가 한국 본단에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
로이가 정확하게 내 계획의 허점을 지적했다.
-라오는 이미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딘가로 피해있을 게 분명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사실 나도 내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잘 안다.
그저 이렇게 있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비참해서 뱉은 말.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설사 한국에 없다 해도 한국의 사제와 초인 부대를 정화시키면 그만큼 라오에게는 손해야! 조금이라도 계획을 늦출 수 있다고!”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압니다. 그런데 라오가 아무런 준비도 안 했을까요?
“......”
-이동수단은 한정돼 있습니다. 종말 전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것. 배로 한국까지 간다? 그 많은 초인 부대와 함께 이동하려면 대형선을 움직여야 하는데 구할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한국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아십니까? 다른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웜홀?
로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외부에서 웜홀을 공략할 때랑은 다릅니다. 웜홀을 통해 방벽으로 쳐들어왔던 괴물들의 최후를 잊으셨습니까?
집중포화에 의한 전멸.
심지어 웜홀에는 아무런 장비도 가져갈 수 없다.
당연히 맨몸으로 웜홀을 통과한 초인의 말로 역시 괴물과 같을 거다.
“젠장!”
내가 의자를 걷어차며 씩씩거리자 로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저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의 초인 부대부터 정화시켜 아군으로 만들고 그다음은 남미. 이렇게 차근차근 나아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라오가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포기하고 웜홀을 틀어막은 뒤 나머지 대륙의 모든 사람을 교화시키면 어떡할 건데.”
-......
이번엔 로이가 말문이 막혔다.
“그다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자기희생을 시켜 계획을 진행하면? 미국이랑 남미 사람들만 사는 거네?”
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구하려던 건 미국이 아니라 전 인류였어. 혹시 너도 뭐 팍스 아메리카! 뭐 이런 부류야?”
-오해 마십시오. 저는 가장 현실성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뿐입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후. 미안하다. 좀 흥분해서.”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자. 마음을 가라앉히자.
어차피 라오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있다.
로이의 말마따나 이동에 시간을 소모할 바에 근처 사제와 초능력자들을 때려잡는 게 라오에게도 더 큰 타격이 되겠지.
“일단 알았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향후 계획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내 허락에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김인호였다.
“무슨 일이야?”
“근처에 괴물 군집이 나타났습니다.”
방벽 위로 올라가보니 저 멀리서 수백 마리의 괴물 군집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처리할까요?”
현재 정화된 초인 부대의 수는 무려 1만.
수백 마리 괴물 군집쯤이야 순식간에 도륙할 수 있었다.
“그럴까?”
겸사겸사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겸 전투 준비를 하던 나는 갑작스런 의문이 생겼다.
“괴물...”
“예?”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나는 김인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지막 레벨업을 한 게 언제야?”
내 말에 김인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마... 삼 년 전이 마지막일 겁니다. 그 후로 레벨업을 한 적이 없네요.”
“삼 년...”
분명 로이는 신들이 두 세상의 결합을 대비해 초능력자 탄생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했다.
실제로 종말이 터지기 일 년여 전부터 하나둘 초능력자들이 탄생했고.
그런데 이상하다.
“어째서 괴물을 죽여야 레벨이 오르도록 설정한 거지? 아니. 그 이전에.”
나는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뚜껑 까기 전엔 상대 세상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신도 모른다며. 그런데 레벨업을 위해선 상대 세상의 생명체를 죽여야 한다고? 타협이 가능한 지성 생명체일 가능성은 고려조차 안 한 거야?”
< 17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