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아. 안 돼!!”
내 손짓 한 번에 방벽 위에서 농성 중이던 초인 병사 수십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6m 넘는 높이에서 육중한 강화복을 입고 지상으로 수직 낙하한 초인 병사들.
강인한 육체 덕분에 목숨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수천 명의 우리 측 초인 병사들.
나는 다시 한번 방벽 위 초인 병사들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젠장! 이게 뭐야 도대체!!”
그저 가상의 벽을 만들어 방벽 위 초인 병사들을 밀어내는 간단한 스킬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또다시 수십 명의 초인 병사들이 내 손짓 한 번에 지상으로 추락했다.
아군 초인 병사들의 경이로운 시선과 경악하는 천둥교 초인 병사들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말했다.
“이게. 이게 진정한 힘이구나.”
조그마한 리틀이로 발현했던 스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약물의 힘을 느끼며 빠르게 또 다른 스킬을 창조했다.
“합!”
내 외침과 동시에 방벽 여기저기로 반투명한 계단이 만들어졌다.
“계단이다!”
“올라가!”
비록 내가 신성력을 빌려와 신체 능력이 저하됐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입은 장비와 총기의 화력이 약해진 건 아니다.
초인 병사들이 계단을 타고 방벽 위로 오르자 천둥교 초인 부대 대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저 계단을 부셔!! 화력 집중.... 크헉!!”
지시를 하던 초인 부대 대장이 갑자기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흠.”
염동력 비스무리하게 만들어봤는데 이건 좀 비효율적이군.
나는 초인 부대 대장을 방벽 밖으로 던져버리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황홀하다.
막대한 신성력이 가져다주는 포만감이 전신을 지배한다.
“이거 좋은데...”
겨우 수천 명의 초인 병사들에게 절반씩만 빌렸음에도 이 정도라니.
그렇다면 십억이 넘는 생존자들을 자기 희생까지 시켜 발동하려는 라오의 계획이 얼마나 엄청난 걸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절대 네 마음대로 안 될 거다.”
욕심이 난다.
더 많은 신성력을 가지고 싶다.
더 엄청난 스킬을 사용하고 싶다.
지금의 난 어쩌면 라오보다, 아니.
전 세계의 모든 존재를 통틀어서 가장 신에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
그렇게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신성력을 모으는 건 라오를 격퇴하기 위해서지 신성력을 모으는 거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나도 모르게 신성력의 황홀함에 취해버렸다.
“변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다짐한 게 불과 얼마 전이야. 장지후. 정신 차려라.”
일단 전투가 먼저다.
지상을 확인하자 반투명 계단을 타고 방벽에 오르는 초인 병사들을 막기 위해 천둥교 초인 병사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는 그런 천둥교 초인 병사들을 향해 손을 몇 차례 휘둘렀다.
“크악!!”
반투명 계단 앞에서 올라오는 초인 병사들을 막아서고 있던 천둥교 초인 병사들이 지상으로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내 도움에 방벽 위에 오른 초인 병사들이 외쳤다.
“벽 위를 확보했다! 밀어붙여!!”
일단 방벽에 오른 이상 수비의 이점은 사라졌다.
불리해 보이는 곳을 향해 두어 번 손짓하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이제 방벽 위 수비대의 운명은 정해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천둥교 지원군을 바라보았다.
“자. 이제는 너희 차례다.”
“저. 저게 뭐야...”
천둥교 초인 병사들이 경악하며 말했다.
“인간이 아니야...”
교화됐다고 기존 성격과 경험 그리고 지식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초능력자부터 괴물까지 온갖 경험을 해온 초인 병사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손짓 한 번에 수십 명의 초인 병사들이 허공으로 나른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초인들을 파리 다루듯 처리하는 장지후의 모습.
“정신 차려!!”
지원군 대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인간이 저런 힘을 낸다는 건 불가능해! 분명 우리를...”
그때 한 초인 병사가 하늘을 올려다보다 외쳤다.
“내. 내려옵니다!!”
“뭐?”
병사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본 지원군 대장이 경악하며 외쳤다.
“피해!!!” 하늘에 떠 있던 장지후가 엄청난 속도로 지원군을 향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상에 닿는 순간.
쿠아아아아앙!!
땅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주변에 있던 초인 병사 수십이 하늘로 떠올랐다.
평소라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공격했겠지만 라오에 대한 충성심으로 무장했을지언정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흩날리는 흙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총구를 겨누고 멍하니 있는 병사들.
마치 작은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작은 분화구 중간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장지후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말했다.
“덤벼.”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괴물 같은 놈!!”
총이 통하지 않자 주먹을 쥐고 달려드는 초인의 머리를 가볍게 툭 쳤다.
“커헉!”
엄청난 진동으로 뇌진탕에 걸려 바닥에 쓰러지는 초인 병사.
나는 막대한 신성력을 빌려왔음에도 약점을 노리는 기존의 전투 방식을 고수했다.
물론 그 규모가 다르다.
나는 순식간에 이 초인 장비와 같은 모델을 스캔하는 스킬을 발동한 뒤 손가락을 튕겼다.
“크악!”
그러자 같은 장비를 입고 있던 초인 병사들이 같은 고통을 호소하며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다.
“으아아아아!!”
경악스런 장면에 초인 병사들의 얼굴엔 공포가 서렸다.
“항복하는 게 어때?”
“웃기는 소리!”
그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오늘 라오에게 받은 명령은 장지후와 그의 부하들을 전멸시킬 것.
그 명령 어디에도 후퇴하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나는 달려드는 초인 병사들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주면 나야 편하지.”
전투가 끝났다.
천둥교 초인 병사들은 최후의 1인까지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와아아아아!!”
승리에 도취된 초인 병사들이 방벽 위에서 무기를 들어올리며 외쳤다.
“장지후 만세!!”
“라오 만세!!”
나는 미소를 지으며 김인호에게 다가갔다.
“좀 어때?”
그러자 김인호가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판단 미스 때문에...”
“아니야. 대충 상황은 이해가 가네.”
그 누가 현재의 나를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라오는 아마 그 부분을 중점으로 김인호를 설득했겠지.
“나라도 착각했을 거야. 인간인 내가 온갖 능력을 부리고 라오가 오히려 아무것도 못 하는 신세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렇다고 해서 제 실수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김인호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다.
“라오가 풀려났습니다.”
“......”
그래.
그건 사실이다.
“대피소에 남아있던 초능력자들. 생존자들. 모두 라오의 손아귀에 떨어졌습니다.”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하면 되지.”
“예?”
“구하면 돼. 나라면 할 수 있어.”
내 말에 김인호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그런 엄청난 능력이라니. 도대체 그런 능력을 어떻게 얻으신 겁니까?”
“그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 좀 많이 복잡해서.”
김인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손짓 한 번에... 어서 한국으로 가시죠. 라오를 막아야 합니다.”
“아. 그게 말이지. 사실 이게 효율이 정말 똥이야. 똥.”
“예?”
초인 4,000명이 가지고 있을 때나 내가 절반을 빌려왔을 때나 신성력의 총합은 같다.
그럼에도 내가 압도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나.
만약 초인 4,000명이 평범하게 전투를 치러 승리했을 경우 그들이 소모하는 신성력은 그들의 신체를 유지하는 데 들어갈 신성력이 전부다.
하지만 난 초인들의 신성력을 빌려와 나가지 못하도록 틀어막는 데 소모하고 신성력을 발현하는데 모두 써버렸다.
한마디로 4,000초인의 몸을 유지하는 근간의 뿌리를 뽑아다 썼다는 소리.
이제 신성력을 빌려준 초인들이 원상태로 돌아오려면 내가 소모한 신성력만큼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
“그런 게 있어. 거의 집문서 가져다 두들겨 팬 수준이라. 아. 근데 이거 계속 유지도 낭비거든?”
“예?”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미리 당부해두는 건데 나 좀 잘 보살펴줘라.”
나는 지금도 돌아가려는 신성력을 묶어두기 위해 신성력을 소모하며 열일하던 저장장치 스킬을 해제시켰다.
그러자 빌려온 신성력으로 유지되던 모든 스킬이 해제되며 신기루 사라지듯 어디론가 날아간다.
“어?”
초인 병사들이 돌아온 힘을 느끼며 어리둥절해 한다.
“뭔가 힘이 다시 돌아오긴 했는데...”
“약한데?”
아.
빌려온 신성력으로 구성된 파트들이 빠져나가면서 리틀이의 여기저기가 구멍이 난 누더기처럼 변했다.
약물 부작용 방지 스킬도 신체 강화 스킬도 모두.
“인호야.”
나는 옆으로 쓰러지며 말했다.
“뒤 좀 부탁한다.”
모든 힘에는 대가가 따른다.
아무리 약물의 힘을 빌렸다지만 분명 내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신격을 잠시나마 자유자재로 사용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
“자. 장지후 님!!”
바닥에 쓰러진 나는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하아. 졸라 힘드네.”
번쩍.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시멘트 천장.
“끄응.”
몸을 살짝 비틀자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지후 님!!”
억지로 고개를 돌리자 수척한 모습으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김인호가 보인다.
“여. 인호.”
“괘. 괜찮으십니까?”
“아직 모르겠어. 내가 쓰러진 지 얼마나 지났지?”
김인호가 내 몸 여기저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늘로 일주일째였습니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으시죠?”
“호들갑은. 내가 마. 소싯적에 칼빵 맞고 열흘 만에 눈뜬 적도 있어. 이 정돈 별거 아니야.”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감고 몸 안을 관조했다.
“어랍쇼.”
분명 기절하기 전 누더기 상태였던 리틀이가 어느 정도 수복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된 거지?”
나 말고는 아무도 리틀이를 조종할 수 없을 텐데?
게다가 완전 수복이 아니고 애매하게 고쳐진 모양새라고 해야 하나.
마치 자연치유 중인 상처를 보는 듯한 느낌.
“햐. 신기하네.”
이놈의 신성력은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하긴 나 말고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힘이니 아직 내가 모르고 있는 게 많겠지.
일단은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나는 리틀이를 조종해 중요 스킬들을 재창조해 나갔다.
대략 10분 뒤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약물이 없으니 느리네.”
약물을 쓰다가 안 쓰니 사고 속도도 그렇고 스킬 조합도 답답하기만 하다.
“조심해야겠다.”
아무리 약물 부작용 방지 스킬이 있어도 신성력이란 미지의 힘과 뇌 그리고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모르는 약물 간의 조합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
이제 세력도 얻었겠다 당분간 약물 사용은 자제해야지.
“초인 부대는?”
“5,000명 전원 구속상태입니다.”
“별다른 일은 없었어?”
“...전투가 끝나고 삼 일째 되던 날 수천 명 규모의 초인 부대가 접근해 왔는데 저희 반격을 받고 후퇴했습니다.”
“후퇴했다라.”
아마 초인 부대와 연락이 끊긴 라오가 상황 파악을 위해 보낸 부대가 아닐까 싶은데.
“구속한 곳으로 안내해.”
“좀 더 쉬시는 게...”
“얼른 할 일부터 하는 게 나아.”
아직 초인 부대들은 교화도 연결선도 끊겨있지 않다.
거기에 더해 교화 파트만 떼어서 흡수해도 이번 전투로 소모된 신성력을 어느 정도 벌충할 수 있겠지.
“가자고. 흡수도 해야 하고 초인 병사들 몸 상태도 회복시켜야 하고 차후 대책도 논의해야 하고 할 일이 많아.”
< 17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