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눌렀다.
그리고 동시에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천둥교 초인 부대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멈춰섰다.
“성공인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하아.”
여태까지의 노력이 조금 허무하다고 해야 하나.
이럴 거였으면 진작에 터뜨려버릴걸.
“...이제 어쩌지...”
이 몸을 상식이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내가 돌아갈 몸이 사라졌다.
“...뭐 일단 현신은 막은 듯하니...”
그런데 그때.
무릎을 꿇고 있던 초인 부대 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단 상태창을 품고 있던 내 몸이 날아갔으니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관찰하는데 갑자기 초인 부대 대장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게 진짜 마스터키구나.”
본단 대피소 가장 깊숙한 방.
“후후후.”
라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마스터키와 이 장치는 무선으로 연결되어 있지.”
키에서 신호를 보내면 장치가 작동하겠지만 만약 키에서 장치로 보내는 신호가 닿을 수 없는 장소에 있다면?
당연히 장치는 작동하지 않는다.
김인호가 웜홀로 떠나자마자 라오는 대피소 내부 가장 깊숙한 장소에 위성 전파조차 통과하지 못할 만큼 두터운 벽의 쉘터를 만들었다.
콘크리트와 알루미늄으로 뒤덮인 이 쉘터 안에만 있다면 그 어떠한 전파도 통과하지 못한다.
라오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제 김인호가 가진 마스터키. 그 마스터키만 확보하면 내 앞길을 막을 자는 없다.”
“전원 공격 준비!!”
초인 부대 대장의 말에 초인 병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김인호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뭐야? 교화가 안 풀렸어? 설마...”
김인호가 계속해서 버튼을 누르는 모습을 보며 초인 부대 대장이 말했다.
“소용없다. 라오님께선 안전한 곳에 계시니.”
그리곤 김인호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놔라. 지금이라도 내놓으면 편안하게 죽여주지.”
나는 멍하니 상황을 파악하다 김인호에게 외쳤다.
“야!!”
“예?”
“그거 나한테 던져!!”
분명 라오가 무언가 술수를 부린 게 확실하다.
하지만 만약 자폭 장치 자체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면 저 초인 부대 대장이 저 마스터키를 노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일단 마스터키 확보가 우선이다.
나는 김인호에게 날아가며 외쳤다.
“어서!!”
내 외침에 김인호가 다급히 마스터키를 나에게 던졌다.
나에게 날아오는 마스터키를 잡으려는 바로 그 순간.
-탕!
총성음과 함께 마스터키가 내 눈앞에서 산산이 부서져 내린다.
그 모습을 보며 초인 부대 대장이 광기 어린 표정으로 외쳤다.
“이로써 라오님의 앞길을 막을 자는 없을지니. 천둥신 라오 만세!!”
“만세!!”
중국의 한 대피소.
사제와 함께 제1 사도의 자격을 부여받은 초능력자들이 대피소 방에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크으.”
중국인 초능력자가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맥주를 손으로 닦으며 말했다.
“이게 얼마 만의 맥주야?”
“그러니까.”
종말이 시작된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당연히 종말 전 생산됐던 물품은 이제 씨가 말라 일반 생존자는 구경도 하기 어려운 수준.
여러 생산시설을 재가동시키며 문명을 복구해나가고 있지만 술 같은 기호식품은 당연히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맥주를 구해온 초능력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생존자 하나가 묻혀있던 맥주 한 박스를 구해 왔길래 쌀 20kg이랑 바꿔왔지.”
“잘했네. 잘했어.”
“냉장고에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오늘 제대로 한번 즐겨보자고!”
그렇게 초능력자들이 떠들썩하게 파티를 즐기던 바로 그때.
쾅!!
사제들이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초능력자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여기 우리 방인 거 몰라?”
하지만 초능력자들의 항의에도 무표정한 사제들이 방 안으로 끝없이 들어온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초능력자들이 맥주를 내려놓고 자신들끼리 뭉치기 시작했다.
“뭐지?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하하호호 웃고 즐기던 사제들의 갑작스런 변화.
수십 명의 사제들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맨 마지막에 들어온 건 바로 대피소의 소장이었다.
“소장님!”
초능력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죠?”
그러자 소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너희 초능력자들 눈치나 보던 힘든 세월은 끝났다.”
“예?”
눈치라니.
초능력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게 무슨 소리야? 눈치라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소장이 양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드디어 라오님께서 자유를 찾으셨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천둥교로서 세상에 다시 선다. 그리고.”
소장이 초능력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는 그 첫 재물이다.”
“이럴 수가...”
현 상황을 유지하게 만든 최후의 보루가 박살이 났다.
“후후후.”
초인 부대 대장이 말했다.
“모두 공격!”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기타 스킬들을 해제시키고 급히 배리어 스킬을 만들어 김인호 일행 앞에 만들었다.
“뛰어내려!!”
김인호 일행은 모두 10명.
동시에 플라이 스킬로 구출하기엔 신성력이 모자라다.
“큭.”
김인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뛰어내려!”
망설이며 의심할 법도 하건만 김인호 역시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깨달은 것인지 측근들에게 뛰어내릴 것을 지시하고 바로 방벽 아래로 뛰어내린다.
-투다다다!!
초인 부대의 총알이 배리어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오래 못 버티니까 빨리 뛰어내려!!”
허공에 총알의 물리력을 버텨낼 배리어를 만드는 것과 실존하는 피부를 강화시키는 것.
둘 중에 어느 쪽 난도가 높을지는 뻔하다.
총알 세례에 신성력이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빨리!!”
내 재촉에 망설이던 김인호의 측근들도 모두 방벽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나는 곧바로 배리어 스킬을 취소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김인호와 그의 측근들 밑으로 얇은 배리어 수십 장을 만들었다.
“컥!”
김인호와 그의 측근들이 배리어에 부딪히자 얇은 배리어가 순식간에 박살 난다.
배리어를 박살 내며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 덕분에 낙하 속도가 줄어든다.
“컥!”
“켁!!”
그렇게 완충재 역할을 한 수십 장의 배리어를 박살 내며 땅에 떨어진 김인호 일행이 바닥에 누워 몸을 바들바들 떤다.
나는 다급히 김인호에게 다가가 말했다.
“살아는 있냐?”
“아... 예.”
김인호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신성력 아끼는 게 생활화된 나다.
안전하게 받아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신성력이 아까우니 김인호 일행의 부상을 감수하고 방금 같은 방법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래. 살았으면 된 거야. 살았으면.”
그때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초인 부대가 나와 김인호를 보호하기 위해 다가왔다.
“어떻게 할까요?”
주변을 돌아보자 이미 방벽 위 초인 부대와 내가 정화시킨 초인 부대 간의 전투가 시작되어 있었다.
“일단 후퇴를...”
“아니.”
난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이런 사태를 예상한 라오야. 우리 퇴로에 사제나 초인 부대를 매복시켜놨을지도 몰라. 그러니...”
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방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후퇴는 없다. 오늘 반드시 방벽을 탈환한다!!”
“후후후.”
마스터키를 박살 냈다는 연락에 쉘터에서 나온 라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자유다.”
그러자 쉘터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제들이 무릎을 꿇으며 동시에 외쳤다.
“축하드립니다!”
“그래. 탄생한 이래 처음으로 맛본 굴욕이었다.”
일개 인간인 장지후와 김인호의 술수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장지후 흉내를 내며 버텨온 시간이 라오의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초능력자들은 어떻게 됐지?”
라오의 말에 최상급 사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현재 기습공격으로 차례차례 제압 중입니다.”
“조용히 움직이도록. 외부로 나간 초능력자들도 유인해야 하니.”
“예! 생존자들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라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씩 숨통을 조인다. 공포감을 조성해야지.”
갑작스런 변화는 생존자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도록 만들지만 서서히 조여드는 변화는 생존자들이 그 변화에 따라 조금씩 적응한다.
“미국 쪽은 어떻게 되었지?”
이제 목줄을 풀었으니 가장 큰 위협인 장지후를 제거해야 할 차례.
“예! 미국 각지의 초인 부대를 은밀히 규합해 방벽으로 보냈으니 좋은 소식이 올 겁니다.”
“아주 좋아.”
라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지후. 이제 네놈도 끝이다.”
전투는 순조로웠다.
“크악!!”
본래 공성전이라 하면 방벽을 끼고 있는 수비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적을 공격하려면 원거리 공격이나 방벽을 올라타 적과 조우해야 하는데 우리 측이나 천둥교 측이나 개인 소화기 정도는 거뜬히 막아내는 초인 장비를 착용한 초인 병사들이다.
방패와 방패가 부딪치니 원래라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는 전투였지만 우리에겐 나라는 치트키가 있었다.
“화염 벽!”
화염 벽을 만들어 방벽 위에 공간을 만든다.
“플라이!”
플라이 스킬로 계속해서 초인 병사를 두 명씩 방벽 위로 올린다.
그렇게 방벽 위로 올라간 초인 병사들이 화염 벽을 끼고 천둥교 초인 병사를 상대하는 사이 나는 계속해서 플라이 스킬로 우리 측 초인 병사를 방벽 위로 올려보냈다.
그렇게 전투가 지속되자 벌써 방벽 위엔 수십 명의 초인 병사가 방벽의 일부를 완전히 장악한 채 천둥교 초인 병사와 교전 중이었다.
“위험!”
합일을 사용한 초인 장교가 달려들자 나는 우리 병사가 아닌 초인 장교에게 플라이 스킬을 사용한 뒤 밑에 있는 우리 초인 부대 위에 날려 보낸 뒤 스킬을 취소해 땅으로 떨어뜨린다.
“크아아아!!”
그렇게 초인 부대 사이로 낙하한 초인 장교가 순식간에 포위된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초인 병사들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라오님과 함께라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자 천둥교 초인 병사들 대노하며 외쳤다.
“누가 라오라는 거냐! 천둥신 라오님의 이름을 사칭하다니!!”
그러자 우리 측 초인 병사가 뻐큐를 날리며 말했다.
“어쩌라고 내가 그것까지 배려해줄 이유는 없잖아!!”
그렇게 전투하는 와중에도 서로 욕 날릴 시간이 있을 만큼 유리한 전황과는 별개로 방패와 방패의 싸움은 지지부진했다.
초능력자보다 화력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초인들이 방어에 치중된, 그것도 초능력자의 능력을 막기 위해 만든 장비를 박살 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네.”
게다가 우리 측 초인 병사들이 나를 향해 엄지를 들어올리지만 사실 나는 이미 한계에 가까운 상태였다.
수십 명을 플라이로 띄우고 화염 벽을 유지하고.
거기다 김인호 일행을 지키기 위해 사용한 배리어까지.
나는 거의 3분의 2로 줄어든 리틀이를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돌겠네. 더 쓰면 이제 스킬을 두 개밖에 구성 못 하는데.”
약물 부작용 방지 스킬은 필수니 사실상 내가 유지할 수 있는 스킬은 단 하나.
물론 이미 방벽 위로 초인 병사들이 올라갔고 원래도 우리 측 초인 부대가 방벽을 지키는 초인 부대보다 두 배나 많았으니 승리는 기정사실이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라. 라오님!”
방벽 위의 우리 측 초인 병사가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기 보십시오!”
초인 병사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었다.
“ㅤㅆㅙㅅ.”
새로운 초인 부대였다.
우리 편은 이게 전부이니 라오가 보낸 거겠지.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돌진해오는 초인 부대의 숫자는 어림잡아 3,000.
방벽의 초인 부대 2,000을 합치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수적 우위도 뒤집힌다.
“어떻게 할까요?”
초인 병사는 기대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
신은 위대하지만 전능하지 않다.
심지어 난 신도 아니다.
리틀이는 이제 한계라고.
“하아. 후퇴해야 되나.”
그런데 그때.
합일을 썼던 천둥교 초인 장교가 리타이어 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리타이어.”
그래.
합일은 천둥교 스킬 중 유일하게 부작용이 있는 스킬이다.
그것도 상당히 큰.
상태창을 만들어본 경험상 부작용이 크면 클수록 소모되는 신성력 또한 줄어든다.
그렇기에 신이 만든 초능력자들의 상태창도 모두 일정한 부작용이 존재하는 거 아닌가.
“합일...”
우리 측 초인 병사들은 나와 연결된 연결선으로 신체 능력을 유지시키는 신성력을 공급받고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내가 빌려올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합일... 부작용... 잘만 하면 수가 나겠는데?”
< 16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