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라오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장지후를 잡았다.”
언제나 모든 사태의 원흉은 장지후였다.
상태창을 강탈하고 멋대로 자신의 흉내를 내며 이젠 밖에서 사제들을 때려잡고.
그랬던 장지후를 드디어 잡았다는 레온 소령의 보고에 라오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제 마음 놓고 강림의 날을 기다리면 된다.”
그렇게 의자에 앉아있던 라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뭐. 뭐야!”
분명 장지후를 잡았다 했던 레온 소령과 초인 병사들을 나타내던 빨간불이 순식간에 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일단 연결선은 모두 끊었고.”
이제 초인 병사들의 몸에서 교화 부분만 톡 떼서 제거하는 거다.
“음...”
그런데 리틀이야 내가 직접 의지를 부여한 거니 부분별 구분이 가능하지만 이미 교화부터 신체 능력 강화 등 여러 가지 파트가 모두 합쳐진 초인 병사들의 신성력 덩어리는 어디가 교화 파트인지 알 방법이 없다.
물론 교화 실험을 통해 혹처럼 부풀어 올랐다 흡수된다는 걸 확인했지만 이게 현실에서 실제로 만질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니 더욱 난감하다.
“구분할 수가 없네.”
아무리 관조해보려 해도 그저 신성력 덩어리로만 느껴진다.
“흐흐흐.”
레온 소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발악해봐라. 라오님에 대한 충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상태창과의 연결선을 끊었지만 여전히 교화는 풀리지 않았다.
“그냥 흡수해버릴까... 응?”
잠깐만.
생각해보자.
신성력은 결국 소모품이잖아.
교화 파트는 사람의 정신을 계속해서 라오에게 종속되도록 만드는 기능을 지녔을 테지.
당연히 지속적으로 신성력이 공급되어야 한다.
근데 그게 사람 개인이 혼자서 만들어낸 신성력으로 충당이 될까?
“절대 감당이 안 되지. 그러고 보니 사제들이 가호 스킬을 사용할 때 교단 상태창에서 신성력이 빠져나갔었잖아.”
이제 알겠다.
신성력은 일방통행이 아니었다.
“그래. 겨우 하루에 혼자서 10 만드는 데 그걸로 이런 육체와 교화가 유지된다는 게 말이 안 돼.”
신도는 교화도 신체 능력 강화도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소모되는 신성력 없이 그저 일방적으로 공급만 해준다는 뜻.
그렇게 모은 신성력을 사제들의 육체와 정신을 유지하는 데 소모하는 거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연결선을 끊었단 말이지.”
상태창에게 추가로 신성력을 공급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교화 파트가 작동을 멈추겠지. 연료가 없는 차는 움직이지 못하니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교화가 풀리게 되는 거다.
“흠... 그런데 그렇게 되면 신체 강화도 같이 풀리는 거잖아.”
그럼 말짱 도루묵 아닌가?
그럴 바엔 그냥 모두 흡수해버리고 말지.
나는 포박된 레온 소령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중얼거렸다.
“아니지. 연료가 없다고 차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오. 그래!”
나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려치며 말했다.
“일단 교화를 푼 다음 내가 연료공급을 해주면서 확인하면 되잖아!”
지금이야 한 덩어리로만 느껴져 파트 구분이 불가능하지만 연료를 모두 소모시킨 뒤 내가 직접 각 부위에 신성력을 주입해보면 교화 파트를 찾아낼 수 있다.
“교화가 작동하면 공급을 멈추고 신체 능력이 활성화되는 곳을 찾아 거기에만 신성력을 공급해주면?”
교화 파트는 연료 부족으로 정지되고 신체 능력 활성화만 가능해지는 거다.
“캬. 나 알고 보면 머리 좋은 거 아니야?”
그렇다면 리틀이와 연결선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거야 뭐 크게 어렵지는 않을 거 같으니 나중에 하고.
나는 손짓으로 로이의 부하를 불렀다.
“예. 장지후님.”
“얘네 데려가서 빡시게 좀 굴려.”
“예?”
로이의 부하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 굴리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 노역을 시키든 연병장을 돌게 하든 좌우지간에 빡시게 굴리란 말이야.”
나는 레온 소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천둥교 물 좀 빼줘야겠다.”
꽁꽁 묶인 채 어디론가 실려 가던 레온 소령이 이를 갈며 말했다.
“장지후...”
그때 옆에 있던 부관이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령님.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요.”
레온 소령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도 모른다.”
레온 소령과 200의 초인 병사는 물론 후방에서 포위를 하고 있던 300의 본대까지 모두 잡혔다.
그렇게 잡힌 초인 부대는 무장을 해제당하고 초능력자들에게 포박된 채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기다리자. 기다리면 라오님께서 구원병을 보내주실 거다.”
레온 소령의 말에 부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시간이 걸릴 겁니다. 가장 가까운 초인 부대도 300km 정도 떨어진 대피소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수도 저희랑 비슷한 수준이고...”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라오님께서 우리 위치를 모두 파악하고 계실 터. 우리는 조용히 반격의 때를 기다리면 그만이다.”
레온 소령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우리를 바로 죽이지 않은 게 장지후의 실수다.”
그때 어디론가 이동하던 차량이 멈춰섰고 잠시 후 초능력자 하나가 차 문을 열며 말했다.
“내려. 이제 걸어서 이동한다.”
로이의 부하는 라오의 추적을 염두에 두고 지하철역을 통해 지하로 이동했고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한 작은 건물.
하지만 내부는 결코 작지 않았다.
“이야. 대단한데?”
겨우 지상 3층 건물에 어떻게 500이나 되는 초인을 수용하나 싶었건만 로이의 부하가 숨겨진 장치를 작동시키자 숨겨진 지하 통로가 나타났다.
“이것도 미리 준비한 거야?”
“예. 로이님의 예언대로라면 세상은 이미 천둥교에게 먹혔을 테니 도처에 몸을 피할 쉘터는 필수입니다. 특히나 미국은 저희 본거지 아닙니까. 미국 전역에 이런 숨겨진 쉘터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미국이 가장 대비가 잘되어 있다던 로이의 말이 실감이 난다.
“좋아. 장소는 해결이네.”
나는 포박되어 끌려온 초인들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굴리게?”
“에...”
로이의 부하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방치된 지 오래됐으니 청소부터 시킬까요...?”
라오가 머리를 양손으로 싸매며 중얼거렸다.
“또 당했구나. 또 당했어.”
초인 병사들이 전멸한 건지 교화가 풀린 건지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장지후에게 당했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했다.
레온 소령과 200의 초인 병사를 시작으로 300의 초인 병사가 추가로 당했다.
초인 부대는 천둥교가 자랑하는 최정예 부대.
그런 초인 부대가 당했다면 이제 소수의 사제로 장지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단번에 숫자로 압살시키는 것.”
하지만 그 정도로 티 나게 사제들을 동원하면 김인호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라오가 목에 장착된 기계 장치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것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전 세계의 초인 부대를 총동원해 단숨에 장지후를 쳐죽이고 더 많은 사람들을 교화시킬 수 있다.
“...그래. 장지후보다 이게 먼저다.”
이 기계 장치만 처리할 수 있다면 아직 성장단계인 장지후는 라오의 상대가 아니었다.
“강제 해체는 위험하다. 그렇다면...”
키를 쥔 김인호의 제거 또는 키를 강탈.
하지만 김인호는 하루의 절반 이상 키를 쥔 채 라오의 측근 노릇을 하며 달라붙어 있다.
“...무작정 제거하는 건 위험해.”
김인호는 전직 요원 출신으로 자기 자신이 불시에 암살당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일 만큼 철저한 사람이다.
만약 김인호를 암살했는데 알고 보니 김인호가 들고 있는 키는 페이크고 김인호의 측근이 들고 있었다면?
“김인호가 진짜 키를 꺼낼 수밖에 없고 동시에 망설일 수밖에 없는 상황.”
라오가 이를 갈며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전부 한꺼번에 제거해주마.”
“...김상식 주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예.”
영국 쪽과 연락을 담당한 초능력자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천둥교 최강의 전사로 언제나 최전선에서 활약하던 김상식 주교 아닙니까. 그런데 수십 일 전부터 그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김인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라.”
“예. 말로는 임무를 맡아 파견 나갔다고 하는데...”
“주교급이 각국 본단을 벗어나는 일은 극히 드물지. 그것도 이렇게 오래.”
주교는 각 국가의 본단에서 생존자들과 천둥교를 통솔하는 최상위 사제였다.
사제들에겐 하늘과 같은 상관이자 그들의 왕이나 다름없는 주교.
그런 주교가 이렇게 오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거기다 김상식 주교는 김석주 주교의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걸로도 유명하지.”
보통 주교는 한 지역의 지도자로 휘하 사제들을 거느리고 단독 판단을 하는 독립 지휘관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만큼은 예외적으로 김석주와 김상식 주교가 언제나 함께 붙어다녔었다.
과거 라오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라오는 말했다.
-어... 상식이는 좀 혼자 두기 불안해서? 아무튼 그런 게 있어.
“라오님은 분명 김상식 주교를 혼자 두기 꺼려 했어. 힘이면 힘, 지위면 지위. 다른 주교들보다 월등하면 월등했지 절대 부족하지 않은 김상식 주교를. 그런 김상식 주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라.”
김인호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병? 아니야. 중급 사제만 돼도 그 흔한 감기조차 안 걸리는데 그 김상식 주교가? 그럼 부상?”
괴물과의 전투로 부상을 입어 요양 중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김인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도저히 그 괴물 같은 김상식 주교가 부상당하는 모습이 연상되질 않는군. 그도 아니라면...”
김인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라오의 밀명... 라오의 명령이 아니라면 절대 자리를 이탈할 김상식 주교가 아니지.”
김인호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초능력자가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계속 찾아보자. 아직은 정보가 너무 부족해.”
김인호는 정보 요원 출신의 감으로 현재 물밑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정보가 너무 한정적이었다.
-똑. 똑.
누군가가 김인호의 방문을 노크하자 김인호가 초능력자에게 검지를 들어올려 주의를 준 뒤 말했다.
“들어와.”
방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한 사제였다.
“김인호 대장님.”
“무슨 일이야?”
“라오님께서 찾으십니다.”
“어서 와.”
라오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언제나 같은 모습의 라오가 김인호를 반겨준다.
“부르셨습니까?”
김인호의 말에 라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야기가 좀 길어질 수도 있으니까 이쪽에 앉아.”
김인호가 자리에 앉자 라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요즘 많이 바쁘지?”
“뭐... 늘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몇 분간 이어지던 침묵 끝에 라오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솔직히 털어놓고 싶어서 불렀어.”
“솔직히요?”
“그래. 저번에 아니라고는 했지만...”
라오가 김인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의심하고 있는 거 맞잖아.”
“......”
“그래. 어떤 점에서 의심이 생겼는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라오가 자신의 목에 달린 장치를 손으로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어. 만약 모든 사실을 다 밝힌다면 내가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라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웬만해선 너 모르게 모든 사태를 수습하고 나중에 정말 나중에 모든 일이 종결되면 알려주려고 했었다. 만약 이 이야기를 네가 알게 되면 당장 그 기폭장치를 눌러 내 대가리가 날아갈 수도 있었으니까.”
라오가 꺼내려는 말이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김인호가 품 안에 손을 집어넣자 라오가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거봐. 말만 꺼내도 이러니 내가 어떻게 다 털어놔!”
“안 누를 테니 말씀하시죠.”
라오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후... 그래 좋아. 이미 숨기기엔 너무 일이 커졌고 네 도움도 필요하니 솔직하게 다 말해줄게. 대신 성급하게 누르지 말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
“들어보고 판단하겠습니다.”
라오가 김인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라오가 내 몸을 차지했다.”
라오의 말에 김인호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 그걸 왜...”
“아니.”
라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확히는 차지했었다지. 내가 다시 되찾았으니까.”
< 16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