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현재 난 세 가지 스킬을 활성화시켜 둔 상태였다.
하나는 초능력자들에게 마크를 남기는 스킬.
또 한 가지는 바로 스피드.
“크윽!”
나는 나에게 달려드는 초인 병사의 주먹을 피해 강화복 뒤로 돌아가며 말했다.
“어라. 이건 미국제가 아니라 러시아제인데. 너 이거 어떻게 구했냐?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이건 화염에 약했지?”
나는 장비의 약물을 활성화시킨 뒤 재빠르게 스피드 스킬과 마크 스킬을 해체시키고 활성화된 뇌를 풀로 가동해 한 가지 스킬을 완성시켰다.
“자 받아라!”
급조한 스킬로 파트 구성은 화염 생성, 위치는 내 손, 물체와 접촉 시 폭발 등등으로 파트 구성이 엉성하게 돼있지만 이 정도만 해도 그냥 상상으로 발현하는 것보다는 압도적으로 효율이 좋다.
“불덩이.... 앗 뜨거!!”
내 손위에 커다란 불덩이를 초인 병사에게 던지려 했지만 그보다 앞서 내 손이 화염에 닿아 미친 듯이 뜨겁다.
급하게 스킬을 취소시킨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 몸에 영향이 없도록 했어야 하는 구나.”
이렇게 또 하나 배워가는 거지 뭐.
나는 스킬을 내 손 위가 아닌 내 손 위 허공으로 수정하고 다시 외쳤다.
“불덩이 받아라!!”
그렇게 생성된 불덩이가 초인 병사에게 작렬했다.
“크아아악!!”
온몸이 화염으로 휩싸인 초인 병사가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한다.
나는 다시 스킬을 해제하고 빠르게 스피드 스킬을 재조립한 뒤 다른 초인 병사의 공격을 피해 거리를 벌렸다.
나를 노려보는 초인 병사들을 향해 뻐큐를 날리며 외쳤다.
“어떠냐 이 새끼들아!”
중간에 실수도 하며 오래 걸린 듯 하지만 약물로 빨라진 인지 속도 덕분에 실제로 걸린 시간은 단 몇 초에 불과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마구잡이로 약물을 쓰고도 멀쩡한 이유는 바로 마지막 스킬 덕분이었다.
바로 약물의 부작용을 막는 스킬.
나는 뇌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의지 투여가 포괄적일 수밖에 없고 신성력 소모도 크다.
그래서 나는 신성력으로 뇌 활성화를 시키는 것과 뇌 활성화를 약물에 의지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을 신성력으로 막는 것, 이 두 가지 방안을 실험했고 그 결과 후자가 압도적으로 효율적이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전투 방법이 바로 즉석에서 스킬을 만들어가며 사용하는 것이었다.
“모두 밀어붙여!!”
레온 소령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저런 식으로 소모한다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마치 라오에게 무언가 언질이라도 받은 듯한 레온 소령의 모습.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편할 거야.”
모든 약점을 알고 있고 모든 초능력을 스킬화해 사용할 수 있다.
내가 초인 부대를 상대로 자신감을 비친 이유였다.
물론 옥상에 배치한 초능력자들의 존재도 한몫했고.
나는 스피드를 이용해 초인 병사들과 거리를 벌리며 계속해 마크 스킬로 초인 병사들 머리 위에 마크를 남겼다.
“죽어라!!”
신이 난 초능력자들이 자신의 능력이 약점인 초인 병사들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날린다.
“커억!!”
무적으로 소문이 난 초인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가자 레온 소령이 옥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위에 초능력자들부터 잡아 버려!!”
그러자 부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령님! 모든 창문이 철판으로 막혀있습니다!!”
시내 대부분의 건물.
특히 학교처럼 거대한 건물은 많은 생존자들이 쉘터로 가장 선호하는 장소다.
당연히 5m 가까이 뛰어오르는 괴물을 막기 위해 창문을 모두 봉쇄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거기 나랑 초능력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에 대한 대비도 안 해놨을까 봐?
“젠장!!!”
사실 사제들이 이 건물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합일을 통해 신체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동료 사제를 집어던져도 되고 직접 올라가도 되고.
하지만 레온 소령이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무거운 강화복을 입고 어떻게 올라가게? 그리고 맨몸으로 올라가면 초능력자 밥일 텐데?”
초인 부대의 단점 두 번째.
초인 부대의 사제 급수는 의외로 매우 낮다.
종말 전 나는 천둥교 사제는 최고 등급까지.
초인 부대의 등급은 최고에서 밑의 두 단계를 마지노선으로 유지시켰었다.
종말 전엔 초인 부대에 대한 장악력 때문에 그렇게 유지했고 종말 후엔 이미 장비로 강력해진 초인 부대보단 맨몸의 일반 생존자들을 고위 사제로 임명하는 게 사람들을 살리는 부분에 있어서 효율적이기에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보자. 이 정도 규모고 소령? 잘해봐야 상급 사제겠는데? 안 그래? 레온 소령?”
내가 깐죽거리자 레온 소령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정답인가 본데? 킥킥.”
물론 라오가 이들의 등급을 높이면 그만이지만 라오는 지구본만 들여다보고 있을 거 아닌가.
그래서 일부러 쓰러진 초인 병사의 신성력을 흡수하지 않고 있는 거다.
빨간불이 남아있도록.
레온 소령이 라오에게 강화를 요청하면 해결되겠지만 교화는 기본적으로 사람 개인의 성향까지 바꾸지는 않는다.
자존심 강한 군인.
그것도 특수부대 출신 군인들이 나 하나 어쩌지 못해 지원을 요청한다?
극한에 몰렸으면 모를까 절대 그렇게 할 리 없지.
“...위성 전화기.”
“예.”
그런데 레온 소령이 부관에게 위성 전화를 건네받는다.
“얼래? 설마 라오한테 전화하려고?”
레온 소령이 치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라오님께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네 놈을 잡으라고 하셨다. 수치스럽지만 여기서 더 피해를 입고 혹여 놓치기라도 하면 라오님을 뵐 면목이 없지.”
젠장.
그렇지 않아도 강한 초인 병사들인데 갑자기 전원 상급에서 최상급이 된다면?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막아야 하는데.”
나는 급히 주변 상황을 살펴보았다.
내가 끌어모은 초능력자는 모두 50명.
그들이 사전에 전해 들은 대로 각자에 맞는 마크가 달린 초인 병사만 공격하고 혹시 해당하는 초능력이 없으면 내가 급조하는 방식으로 처리한 게 모두 50명.
선발대 30을 포함해 모두 80명을 쓰러뜨리고 120명이 남았다.
“이런 젠장.”
레온 소령이 위성 전화기 버튼 누르는 모습을 보며 당황해하는 사이 초인 병사들이 다가와 나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큭!”
레온 소령에게만 신경을 쓴 탓이다.
“새로운 스킬. 새로운 스킬.”
당장 레온의 연락을 막아낼 새로운 스킬이 필요하다.
하지만 스피드 스킬은 강력한 초인 병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절대 해제할 수 없고 그렇다고 약물 부작용 방지 스킬을 해제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장비를 조작해 약물 투여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아...”
약물 부작용이 심해진 만큼 리틀이 내부에 약물 부작용 방지 스킬이 차지하는 비중도 더 커졌다.
대신 그만큼 활성화된 뇌가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
내 볼을 스쳐 지나가는 초인 병사의 주먹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라오. 위성 전화. 연락. 위성 수신을 막는다? 너무 포괄적이야. 남은 신성력으로 그런 스킬을 만드는 건 불가능해.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
머리를 숙여 느릿하게 날아오는 초인 병사의 발길질을 피하고 살짝 밀어내자 균형을 잃은 초인 병사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입. 귀. 그래 송수신을 막지는 못해도 결국 귀에 들리는 건 소리잖아. 소리 조종. 소리 조종. 아니지. 소리 왜곡? 아예 소리를 바꿔서...”
생각을 마친 나는 약물 투여량을 줄이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 났다.”
레온 소령이 차렷 자세를 하며 귀에 전화기를 가져다 대었다.
-띠이이이.
그렇게 잠시 통화음이 울리고 레온 소령의 귀에 라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돼가고 있지?
레온 소령이 큰 소리로 외쳤다.
“예! 레온 소령입니다. 현재 장지후와 그를 따르는 초능력자들과 전투 중입니다. 그런데 저항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듣던 정보와는 다르...”
그런데 갑자기 레온 소령의 말을 끊는 라오.
-그래? 아주 좋아. 훌륭해.
레온 소령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장지후는 현재 수많은 초능력을 부리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래. 수고했다. 공을 세웠구나. 큰 상을 기대해도 좋다. 아무튼 어서 장지후를 내 눈앞에 데리고 오도록.
그리고 끊어진 통화.
“라오님? 라오님!?”
나는 초인 병사들의 주먹을 피하면서 말했다.
“예. 라오님. 장지후는 이미 제압했고 나머지 초능력자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용한 방법은 간단했다.
전화기의 수신부에서 나는 소리를 내 귀에 나도록 만들고 레온 소령의 소리를 차단한 뒤 대신 내 목소리를 전화기에 흘려보낸다.
“감사합니다. 라오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저 전화기를 중간에 두고 라오는 레온 소령이 아닌 나와 대화를 나눈 것이었다.
그저 소리를 차단하고 전달하기만 하는 간단한 방법이기에 신성력 소모도 아주 적었다.
“신성력 만세다.”
약물로 인한 뇌 활성화와 신성력의 범용성이 어우러져 탄생한 간단하면서도 몹시 효율적인 스킬.
라오의 목소리를 흉내 내 레온 소령에게 지시를 내릴까 잠깐 고민도 했지만 허구한 날 계시로 듣는 라오의 목소리 구분도 못 해낼 리 없으니 깔끔하게 포기.
“역시 이게 답이네.”
뇌의 활성화로 스킬의 해제와 창조를 반복한다.
뭔가 좀 더 신에 한 걸음 다가선 기분이랄까.
신은 위대하다.
하지만 전능하지 않다.
나 역시 리틀이가 보유한 신성력의 한계로 완벽하진 않지만 동시에 주어진 범주 안에선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니 뭔가 나 자체가 한 단계 위로 올라간 느낌이 든다.
그 후로도 몇 차례 전화를 시도한 레온 소령이었지만 라오와 전화를 하면 할수록 의문만 늘어났다.
“...그만 좀 전화하라고...? 칭찬이 그렇게 듣고 싶냐니...”
지원 요청하려 전화를 했는데 마치 자신이 끝없는 자기 자랑만 늘어놓은 것처럼 말하는 라오의 말에 레온 소령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레온 소령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부관에게 말했다.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옆에서 같이 통화 내용을 들은 부관도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저.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레온 소령에게 있어서 라오는 신.
소통 오류의 문제를 전적으로 자신에게서 찾아보려 했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전파 오류인가.”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요.”
“그래. 전화기 문제였던 거야.”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레온 소령의 귀에 장지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화는 끝났나 봐?”
바닥엔 초인 병사 수십 명이 쓰러져있었다.
장지후가 한 초인 병사의 주먹을 피하며 말했다.
“거의 다 된 거 같은데.”
그러자 합일을 사용했었는지 초인 병사의 주먹이 점점 느려지며 결국 바닥에 쓰러진다.
장지후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초인과 사제는 강한 신체 능력 덕분에 방어력과 공격력은 우수하지만 스피드가 떨어져. 그래서 숫자로 커버했던 거고. 예전에 스피드 초능력자한테 농락당해서 수백 명으로 찍어누른 적도 있다고.”
“으으.”
장지후가 이를 가는 레온 소령을 향해 말했다.
“자 이제 마무리할까?”
레온 소령은 그래도 상급 사제에다 지휘관답게 비교적 좋은 강화복을 입고 거세게 저항했지만 결국 마지막 합일마저 쿨타임이 끝나 무릎을 꿇었다.
“휴...”
모든 초인 병사를 제압했다.
“자. 장지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레온 소령을 보며 말했다.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겠냐.”
전부 라오놈 때문이지.
난 속아 넘어간 것뿐이라고.
암 그렇고말고.
“자. 그나저나 초인 부대라.”
나니까 이렇게 쉽게 잡았지 대열을 갖춘 초인 부대는 절대 약하지 않다.
여기서 초인 병사들의 신성력을 모두 흡수하면 최고겠지만 아쉽다.
“일반인은 초인 장비를 사용하지 못한단 말이지...”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연결선만 잘라내고 초인의 능력을 유지시킬 수 있다면...?”
레온 소령이 천천히 다가오는 나를 향해 외쳤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나는 레온 소령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기다려봐. 형이 좋은 거 실험해볼라니까.”
< 16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