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소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 김상식 주교님이시라고요?”
소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그럴 리가. 분명 라오님께서 김상식 주교님은 장지후에 의해 몸을 빼앗겼다고 들었는데...”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다. 돌아왔다.”
소장의 옆에 있던 사제들 역시 동요하며 말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정말 김상식 주교님인 거야? 그럼 장지후는?”
나는 그런 사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가 보기에. 난 장지후? 김상식?”
한참을 머뭇거리던 소장이 말했다.
“부. 분명 라오님은 장지후를 파문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 느낌은...”
혼란스럽겠지.
그들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니 당연했다.
교화로 인해 철저한 상하관계가 완성된 사제들은 그 동질감과 경외심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을 테니까.
맹신해오던 믿음과 라오의 명령 사이의 혼란.
이들 모두 상태창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라오의 명령과 상태창을 따르도록 프로그래밍 된 사람들이다.
난 그 프로그래밍에 허점을 파고든 버그나 다름없겠지.
“라. 라오님에게 연락을...”
소장이 위성 전화기를 품에서 꺼내는 순간 외쳤다.
“멈춰라!”
그러자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선 소장.
저들이 내가 장지후인지 아닌지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이상 나는 저들의 상관이니까.
장난은 이쯤 해둘까.
“꿇어라.”
내 명령에 소장과 사제들이 반사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 그래. 장지후는 파문됐어. 라오님의 은총을 받은 김상식 주교님이 아니고서야 이 상황은 말이 안 돼!”
결국 상반된 명령에 의해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는 사제들.
리틀이가 보유한 신성력은 주교급 이상이다.
만약 이 자리에 라오가 있어 명령을 갱신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라오는 미국의 반대편인 한국에 위치해 있다.
나는 소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소장.”
“예!”
“듣기로 여기 사제 많다.”
소형 대피소의 사제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 대피소의 진실.
소장이 넙죽 엎드리며 말했다.
“그. 그렇습니다.”
“몇 명?”
“처. 천사백 명입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야. 짭짤하겠는데?”
“예?”
나는 의아해하는 소장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별건 아니고 그냥 잘 먹겠다고.”
“으음. 든든하다.”
강제 교화 임무를 받은 대피소답게 사제들의 질과 양이 남다르다.
소장을 포함 최상급 사제 3명과 상급 중급 사제들의 숫자가 150을 넘었다.
거기에 더해 교화된 채 몰래 숨어 있던 사제들까지.
이들을 이렇게 간단하게 제압하다니.
“뭐. 오래 써먹지는 못하겠지.”
어찌 됐든 라오가 가진 상태창은 나보다 양적인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하니 일단 김상식 외관을 가진 놈은 무조건 장지후라 여겨라!
라고 명령하면 명령의 우선순위에 따라 저런 명령 오류 정도는 간단하게 해결될 테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가능성. 신성력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비록 라오가 가진 상태창이 양적으로 우월하다면 내 상태창의 장점은 범용성이다.
간단한 조작을 통해 경직된 라오의 상태창의 허점을 노릴 수 있으니까.
“자. 라오가 눈치채기 전에 빨리 이걸로 꿀 빨아야지.”
라오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피소가...”
그것도 중요도 1순위인 강제 교화 대피소가 통째로 날아갔다.
“...장지후. 신성력 사용법을 알아냈구나.”
교단 상태창에 오류가 있나 다방면으로 들여다봤지만 절대 오류로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
라오가 멍한 표정으로 위성 전화를 들어 강제 교화 대피소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라오님!
다른 대피소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전화를 받는 대피소 소장.
“교화가 풀렸나.”
라오의 직설적인 말에 소장이 눈에 띄게 당황해하며 말했다.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거짓말은 집어치워라. 소장.”
-......
침묵하는 소장에 라오가 말했다.
“장지후는 어디 있지? 그가 사용한 스킬은? 무슨 방법을 쓴 거지?”
-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라오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 대답해야 할 거야. 네놈들이 여전히 천둥교인 척 연기한다는 건 장지후 역시 김인호가 장치를 발동시키는 걸 두려워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지.”
장지후는 자신의 몸을 포기하지 않았다.
-......
“소장직을 유지하고 싶나?”
라오의 말에 소장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지후에게 당했으면 초인의 능력도 없어졌겠지. 그럼 네놈과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게 뭐지?”
교화와 동시에 능력도 사라진 사제들.
그들 모두가 과연 장지후에게 고마워하고 반가워할까?
세상은 여전히 도처에 괴물들이 널려있다.
그 괴물들을 상대하고 풍족한 자원을 마음껏 사용하던 사제들이 한순간에 일반 생존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네놈은 그저 운 좋게 높은 직위를 받아 그 자리에 있던 것뿐이야. 연기를 하겠다? 좋아. 장단에 놀아주지. 소장.”
-예... 예!
“오늘부로 소장직을 파면한다.”
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게 무슨...
“소장은 천둥교도 아닌가? 천둥교도라면 내 명령을 따라야지. 아닌가? 누구를 앉힐까. 부소장은 어때?”
라오가 침묵하는 소장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소장에게 소장의 직위를 주며 장지후의 정보를 털어놓으면 현재 너희의 연기를 인정해주고 넘어가주겠다 하면 실토할까 하지 않을까?”
-그... 그게...
라오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교화? 교화가 풀린 게 뭐가 어때서. 인간은 결국 탐욕의 동물이야. 소장, 지금의 위치를 유지하고 싶지 않나? 교화도 풀렸겠다 수천 생존자들의 지존으로서 모든 걸 즐겨보고 싶지 않나?”
라오가 침묵하는 소장에게 소곤거리며 말했다.
“연기를 인정해주겠다고. 넘어가주겠다니까? 원하면 힘도 내려주지. 교화가 싫으면 기도하지 않으면 될 일 아닌가? 소장. 무릎을 꿇어라.”
라오가 지긋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무릎을 꿇고 나 라오를 섬기겠다 말해라. 다시 너에게 힘을 내려주마. 그 대가는 단 하나.”
-......
“네놈이 보고 느낀 장지후에 대한 모든 것. 간단하지 않나? 어차피 네놈이 불지 않으면 누군가는 불게 되어있다.”
그 말을 끝으로 잠시 기다리자 라오의 귀에 띵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새로운 신도의 탄생을 알리는 소리였다.
라오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환영한다. 소장.”
“또 새로운 게 뭐가 있을까.”
강제 교화 공장을 털어서 모은 신성력의 양은 엄청났다.
“스킬 두세 개는 만들겠는데?”
보통 한 대피소를 털 때 수습 이상의 사제 숫자는 대략 200에서 300.
하지만 강제 교화 공장엔 무려 1,400명이나 되는 사제가 있었으니 그 양이 남달랐다.
“보자. 일단 전투 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1.5배였던 근력 강화는 꾸준한 개량을 통해 1.7배까지 끌어올렸다.
“흠.”
나는 대검을 들어올리며 중얼거렸다.
“가호 스킬이 참 쓸 만했지.”
상급 사제부터 사용할 수 있는 가호 스킬.
사제의 무기나 갑옷에 신성력을 두르는 일종의 방어 스킬이었다.
“비슷하게 무기에 신성력을 둘러 절삭력을 높인다거나...”
거 영화에서 나오는 광선검처럼 두르고 다니면 멋은 있겠다.
“...뭔가 더 좋은 거 없을까?”
그렇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가고 있는데 멀리서 사제 무리가 보였다.
“먹잇감이네.”
오토바이를 돌려 사제 무리를 향해 달렸다.
부아아앙!!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가자 사제들이 무기를 들어올려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토바이를 멈추고 무표정한 얼굴로 내리며 말했다.
“나 김상식. 꿇어라.”
그런데 사제들이 흠칫 놀라기만 한다.
“흠?”
벌써 들통났나?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겨우 한 번 써먹었는데 생각보다 빠르네.”
나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지. 폭력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척 봐도 저급 사제로 이루어진 정찰대 수준.
단숨에 해치우기 위해 자세를 잡는데 갑자기 사제들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게다리 스텝을 추는 게 아닌가.
“뭐 하는... 이런 젠장!!”
순간 벙쪘지만 나는 저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나는 바로 사제들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근육 강화! 피부 강화!”
그러자 한 사제만이 남아 계속 게다리 스텝을 추고 나머지는 나를 저지하려 달려든다.
이미 이들은 내가 장지후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공격이 아닌 방어 태세를 취해 시간을 끌면서까지 라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내용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나는 사제 하나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말했다.
“이 새끼들이!!”
바로 인간 탐지기.
빨리 이들을 처리하고 이동해야 한다.
나는 사제 하나를 패대기치며 말했다.
“전부 덤벼!!”
철컥. 철컥.
강화복을 입은 남자 수십 명이 현장에 도착했다.
“여기군.”
전투 흔적을 확인한 남자가 무전기에 입을 대고 말했다.
“여기는 알버트 대위. 현장에 도착했지만 장지후와 사제들 모두 행적을 감추었습니다.”
-나 레오 소령이다. 추적할 수 있겠나?
강화복을 입은 남자들은 바로 미국의 초인부대.
알버트 대위가 흔적을 꼼꼼히 확인하며 말했다.
“가능할 거 같습니다.”
미국의 초인부대는 교화가 알려지기 전 미국의 특수부대에서 차출한 인원으로 만들어진 초정예 부대였다.
추적술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
-좋다. 당장 추적해라. 그리고 장지후를 추살해라.
“생포해도 됩니까?”
분명 예전의 라오는 장지후의 생포를 명령했었다.
-생포는 없다. 보이는 즉각 사살하라.
“알겠습니다.”
“초인 부대?”
“예.”
내 근방에 숨어 있던 로이의 부하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초인 부대가 최소 백에서 수백 명이 동원되었습니다. 어서 도망가셔야 합니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겨우 그 숫자에 도망쳐야 한다고?”
로이의 부하 하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뭐?”
“초인 부대는... 초능력자의 상극이나 다름없습니다.”
“......”
초인 부대는 애초부터 초능력자를 견제하기 위해 창설된 부대다.
우직하고 충성심 높은 군인들과 최첨단 과학의 산물.
초능력자의 초능력에 대비해 전기와 화염은 물론 방온, 방냉까지 갖춘 초인 부대는 강하다.
“우리의 적은 초인 부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 후.”
로이 부하의 말이 맞다.
여기서 위험을 감수하고 초인 부대를 상대하는 것보다 몸을 피해 다른 더 많은 대피소를 정화시키는 쪽이 압도적으로 효과적이다.
초인 부대나 일반 신도나 만들어내는 신성력의 양은 모두 같으니까.
하지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앞으로 더 많은 사제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겨우 수백 명 초인 부대 때문에 도망치면 언제 라오를 막을 건데?”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그때 초능력자 부대의 존재를 알리고 죽은 마크의 말이 떠올랐다.
“장비. 그래. 마크가 그랬어. 초능력자 부대엔 초능력자 전용 장비가 있다고!”
내 말에 초능력자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그... 그건...”
“왜 사용하지 않는 거지?”
초능력자들의 대피소야 자연적으로 만들었으니 그렇다 치지만 장비까지 거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잠시 주저하던 로이의 부하가 말했다.
“...부작용 때문입니다.”
“부작용?”
초인들 장비 역시 민간인이 사용했다간 단번에 온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 가해지듯 온전히 아무 패널티도 없는 힘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도대체 부작용이 어느 정도길래?”
“...초인은 몸을 다루니 육체적 부작용이 있습니다. 초능력자 중에도 신체계열 초능력자는 초인과 비슷하여 장비도 비슷하지만 그 외에 대부분의 초능력자는...”
로이의 부하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머리로 싸웁니다.”
스킬은 상태창으로 발동이 된다고 하나 그걸 컨트롤하는 것은 사람.
하지만 사람의 뇌용량은 한계가 있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초능력자가 인지능력과 반응속도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100퍼센트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설마.”
“예.”
로이의 부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초능력자 장비는 뇌를 강제로 각성시켜 더욱 효과적이고 완벽하게 능력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당연히...”
“뇌에 과부하가 걸리겠군.”
“예.”
나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약물?”
“예. 약물이 투여됩니다. 초능력자의 장비는 사실상 지속적이고 최대한 안정적으로 약물을 투여하는 기계에 불과합니다. 물론 세상에 부작용이 없는 약물은 없지요.”
< 16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