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벌써 4개의 대피소를 정화시켰다.
순찰 돌던 사제들을 공격해 정화시킨 뒤 사제들을 끌어들여 정화시키고 또 불러들이고.
그렇게 정화시킨 사제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상식이 몸에 강림한 지 삼 일 뒤에서야 계시로 명령을 들을 수 있었다라.”
계시 스킬에 이상이 생겼다는 뜻이겠지.
곧바로 추적해올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추적대가 구성되는 데 시간이 걸렸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흠. 그럼 다른 스킬들에도 영향이 있었을 수 있다는 말이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게다가 대피소를 벌써 4개나 정화시켰는데 계속 똑같은 수법에 똑같이 당하고 있고.”
천둥교를 완벽하게 통제하던 교단 상태창이 아직도 정상은 아니라는 뜻.
“후후. 아주 좋네.”
나는 내 몸 안에 리틀이를 느끼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리틀이가 커졌어.”
소모한 신성력보다 사제들에게서 뽑아낸 신성력이 곱절은 많다.
게다가 정화된 대피소로부터 소량이나마 신성력이 꾸준히 공급되고 있었다.
“역시 신성력은 내 육신이 아닌 내 정신에 귀속된다는 뜻이겠지.”
리틀이도 그렇고 신성력도 그렇다.
사람들과 교단 상태창 간의 연결고리를 끊으니 사람들로부터 모인 힘이 내 안에 깃든 리틀이에게 모여든다.
리틀이는 나에 대한 믿음이 모여 탄생한 나의 신격.
중간에서 빨아먹던 연결선을 끊으면 나에게 올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이 맞았다.
“좋아. 이렇게만 가자.”
사제들을 정화시켜 신성력을 흡수하고 사람들의 믿음을 모으고.
그렇게 모인 힘으로 스킬을 만들어 라오 뚝배기를 깨는 거다.
“자... 다음 대피소가...”
“으드득.”
장지후가 내부에서 뒤집어 놓은 교단 상태창은 거의 마비 수준이었다.
게다가 상태창을 구성하고 있는 신성력은 대부분 라오의 것이 아닌 장지후의 것.
그나마 사제들로부터 모인 자신의 신성력을 모조리 때려 박아 계시 스킬을 시작으로 하나둘 복구하는 것도 상태창을 만든 장본인이자 오랜 시간 신으로 살아오며 신성력을 다뤄온 라오의 노련함 덕분이었다.
그렇게 얼마 전 신도 지구본 스킬을 재활성화시키고 이상은 없나 살피던 라오는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대피소 여럿이 통째로 증발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구본 위에 보여야 할 신도들의 빨간불이 모조리 사라졌다.
“...괴물일 리는 없어.”
애초부터 괴물을 상정해 만든 대피소가 생존자 하나 남기지 못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것도 비슷한 시기에 이렇게 갑자기.
신들이 모조리 봉인된 세상에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
라오가 이를 갈며 말했다.
“장지후... 끝까지 날 방해할 셈이더냐.”
잠시 지구본을 노려보던 라오가 말했다.
“설마 모두 죽이기라도 한 건가?”
잠시 고민하던 라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장지후의 성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라오였다.
“그럼 강제로 교단 상태창과의 연결을 끊었다는 이야긴데...”
충분히 가능성은 있는 일이었다.
장지후와 함께 있던 크리스 역시 확인결과 교단과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한 대피소당 아무리 작아도 수백에서 수천 명에 이르며 수십 수백의 사제들이 지키고 있다.
아무리 초능력자의 도움을 받아 제압을 한다고 하더라도 충성스런 사제들이 자신이나 본단으로 위성 전화 한 통 날릴 시간도 없었을까?
라오가 위성 전화를 들어 한 대피소의 소장에게 직통 전화를 걸었다.
-뚜. 뚜.
소장이 전화를 받지 않자 라오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모두 데려간 건가.”
라오 자신의 진짜 목적을 알려주고 교화에 풀린 사제들과 신도들을 데리고 도주.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 아닌가.
그렇게 라오가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예. 전화 받았습니다.
라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34번 대피소 소장 맞나?”
-헛! 라오님!
소장이 깍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제가 레오 소장입니다.
“......”
막상 소장이 전화를 받았지만 라오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대피소에 별다른 일 없었나?”
-별다른 일이라니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없었다고?”
-어... 예. 딱히 떠오르는 게...
라오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말했다.
“혹시... 장지후가 나타나지 않았나?”
그러자 소장이 격노하며 외쳤다.
-장지후가 나타났습니까?! 그 배덕자가 어디 있는지 알려만 주신다면 모든 사제들을 이끌고 잡아 오겠습니다!
연기인 건가 아니면 정말 교화가 안 풀린 건가.
라오가 교단 상태창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오작동 한 건가?”
확신할 수 없다.
상태창은 수없이 기나긴 세월 동안 라오가 직접 가다듬고 만든 역작.
그만큼 복잡하고 정교함을 자랑했다.
다급히 손을 보았으니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간 오류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예?
“...아니다.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장지후가 나타나면 언제라도 연락을 해라.”
-물론입니다!
통화를 마친 라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단 상황 파악이 우선이다.”
차라리 오작동이면 다행이지만 만약 저들이 교화가 풀려놓고도 자신을 속인 거라면?
“...젠장!”
차라리 대놓고 적대해오면 변질자의 굴레를 씌워 처리하겠지만 표면상으로 저들은 여전히 라오를 믿는 천둥교의 신도들이다.
그리고 라오가 이렇게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바로 초능력자 부대 대장 김인호.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마스터키의 존재 때문이었다.
“밖에서 큰 소리가 들리던데...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미국 대피소 몇 군데에서 불만이 터져나와서.”
김인호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고마운 줄을 모르고. 어디 대피소입니까?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라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해결했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꺼진 불씨도 다시 보라는 말이 있죠.”
그리고 잠시 이어지는 신경전.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라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날 의심이라도 하는 건가? 라오가 몸을 빼앗은 거라고?”
라오의 직설적인 말에 김인호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저는 그저 더 철저히 움직이려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좋아. 잘하고 있네.”
김인호가 가져온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미국 현황 자료입니다. 미국이 확실히 땅덩이가 넓어 수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군요.”
“어쩔 수 없지.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수밖에.”
“아무튼 자료는 건네드렸으니 가보겠습니다.”
“그래.”
김인호가 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라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난 라오다. 천둥신 라오라고.”
라오가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만약 정말 상태창 오류가 아니라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하겠군.”
“이쪽이던가...”
오토바이를 타고 대피소를 하나둘 박살 내가며 홀로 전진하는 이유는 라오에게 초능력자 부대의 전력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현재 초능력자 부대는 내 비밀 무기나 다름없고 어차피 신성력 흡수는 나밖에 할 수 없으니 혼자 다니는 게 편하다.
물론 수시로 로이와 연락을 하며 혹시 나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구하러 올 대기조가 내 근방에서 대기 중이었다.
“어?”
그렇게 한참을 가던 중 눈에 보인 한 소형 대피소.
현재 미국은 메인 대피소를 중심으로 소형 대피소를 건설하며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는 중이었다.
모든 걸 준비해온 41개국과 다르게 맨땅부터 하나씩 다져가고 있으니 그 속도는 느릴 수밖에.
“그럼 이 근방에 대피소가 또 있다는 뜻인데.”
나는 지도를 힐끔 보며 말했다.
“지도에는 없는데.”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대피소를 빼곡히 표시한 지도.
분명 내가 만든 대피소는 아니었다.
“...뭐. 4년이나 지났으니까.”
소형 대피소의 평균 인원은 신도 50에 사제 1~2명.
“가뿐하게 빨아먹고 갈까?”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소형 대피소에 접근해 문을 두들겼다.
-쿵쿵.
강철로 만든 문이 요란하게 울렸다.
“계십니까?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 문.
“...없나?”
그러고 보니 이 소형 대피소 주변엔 개간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다.
소형 대피소의 목적이 무엇이던가.
괴물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만들어 효율적으로 농사를 짓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소형 대피소 주변이 전혀 개간이 안 돼 있다고?
“...지어진 지도 제법 돼 보이고.”
여러 가지 의문점에 고개를 갸웃갸웃거리는데 문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아. 지나가던 사람인데요. 잠시 신세 좀 질 수 있을까 해서...”
그러자 그 남자가 경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십니까?”
“예.”
“혹시 초인? 초능력자?”
“둘 다 아닙니다.”
“...들어오시지요.”
끼익.
호오.
의외로 순순히 열어준다.
아무리 사제가 상주하는 소형 대피소라도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경계하기 마련인데 초인인지 초능력자 인지 확인도 제대로 안 하고 들여보낸다라.
나는 몸을 숙여 소형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안녕하시...”
인사를 하던 나나 문을 열어준 사람이나 동시에 모두 멈춰섰다.
“어라.”
이거 일반 대피소가 아닌 거 같은데.
어디서 많이 본...
“자. 자. 자. 자.”
사제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경악하며 외쳤다.
“장지후!!”
나는 안으로 몸을 완전히 집어넣은 뒤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것 봐라.”
15명의 사제복을 입은 사제들.
그리고 침대마다 꽁꽁 묶인 채 겹겹이 쌓여있는 사람들.
“여기 사제 공장이었구나?”
내가 초창기 깡패들을 납치해 강제로 교화시켰던 사제 공장.
이 소형 대피소는 그 사제 공장 풍경과 완전히 똑같았다.
“읍읍읍!!”
온몸이 묶인 채 울부짖는 사람들.
아마도 김인호와 초능력자들 몰래 교화 중이던 사람들이겠지.
“그래서 순순히 열어준 거구만?”
15명의 사제라면 초능력자 하나쯤 상대하는 건 간단한 일이니까.
아마도 날 지나가던 사람이라 생각해 이들과 마찬가지로 납치하여 교화시킬 생각이었나보다.
“모. 모두 전투준비!!”
가장 안쪽에 있던 사제의 외침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가워. 한번 놀아보자고.”
“으아아아!!”
신성력을 뽑힌 사제들이 머리를 부둥켜 잡고 괴로워한다.
“네가 마지막이야.”
내 말에 중급 사제가 악을 쓰며 외쳤다.
“라오님께서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
“그러든가 말든가. 일루와. 대가리 깨줄 테니까.”
그렇게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어...”
묶여있던 사람 중 하나가 기어와 내 다리를 감싸며 광기 어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본 중급 사제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 잘한다! 나머지도 어서 달려들어!”
그런 중급 사제의 말에 묶여있던 사람 중 일부가 기어서 나에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교화가 막바지인 사람들.”
며칠만 더 지났으면 완벽한 천둥교의 사제가 됐을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흠. 여기 있는 사람들마다 전부 교화 정도도 다르겠지?”
이거 실험할 수 있는 기회 아닌가?
교화의 정도에 따라 신성력이 어떻게 분포되어있는지 실험을 하면 다음 스킬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다.
나는 내 다리를 감싼 사람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올렸다.
“읍읍!!”
“광신도가 무섭긴 무섭네. 그 꼴을 하고도 정신 못 차리고 덤벼드니. 보자...”
남자의 가슴팍에 달린 이름표.
“입고일. 이름. 딱 내가 하던 방식 그대로구만.”
입고일을 통해 재고 관리하듯 깡패들을 교화시켜나가던 그 사제 공장과 똑같은 방식.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그럼 실험을 시작해볼까?”
< 159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