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대피소 소장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모든 힘을 잃은 네놈이 뭘 할 수 있다고. 오냐. 오늘 너를 잡아 라오님에게 바쳐 내 충성심을 입증해주마!”
아무리 김상식의 몸을 차지했다 치더라도 소장은 무려 최상급 사제.
소장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돌진해오는 장지후에게 주먹을 날렸다.
“피부 강화.”
“뭐라 지껄이는 거냐!!”
소장은 장지후의 말을 무시하고 장지후의 배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텅!
피부와 피부가 맞닿았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소리에 소장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뭐. 뭐지?”
“괜찮지? 너네 상대하려고 열심히 만든 거라고.”
소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 봐야 일반인.”
소장의 주먹이 연신 장지후의 몸에 내리꽂혔다.
텅! 텅! 텅!
소장의 강력한 육체에서 뿜어지는 주먹에 장지후는 얼굴을 가리고 속수무책으로 맞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이 정도로 나에게 덤빈 것이냐!”
소장은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쉴 새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주먹세례를 퍼부은 소장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헉헉. 끈질긴 놈.”
얼굴을 가리고 있던 장지후가 고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끝났어?”
“끝났다니! 아직 멀었다!”
소장이 다시 숨을 헐떡이며 주먹을 내질렀다.
텅! 텅!
쉬지 않고 쏟아지는 주먹세례를 묵묵히 맞고만 있던 장지후가 말했다.
“슬슬 지치지 않아?”
“뭐? 지쳐? 내가?”
“응. 대충 양을 보니 간당간당할 텐데?”
“그게 무슨...”
잠시 틈을 타 다시 땀을 닦던 소장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땀?”
최상급 사제가 된 이후 체력적으로 단 한 번도 부족한 적이 없었건만 괴물도 아닌 사람을, 그것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면서 땀을 흘리다니.
“흐흐흐.”
장지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뭔가 이상해?”
당황해하는 대피소 소장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이상하지? 벌써 지쳐서.”
소장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 놈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그래도 내가 한때 너희들 보스였는데 대우가 너무한 거 아니야?”
“헛소리하지 말고 당장 말해라!!”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를 하긴 했는데 극비 사안이라.”
뭔가 위기감을 느낀 소장이 외쳤다.
“모두 공격해!”
“하아아압!!”
사제들이 합심해서 달려들어 내 전신에 주먹과 발길질을 날린다.
다시 몸을 숙이고 그 모든 공격을 받고 있는 난.
미소를 지으며 몸 안에 축적되는 신성력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만든 스킬 흡수.
신체 접촉 시 리틀이를 이용해 신성력 흡수했던 걸 체계화 시켜 스킬로 만든 것이었다.
내 신체에 누군가가 접촉하면 즉각 리틀이를 움직여 상대의 신성력을 흡수한다.
지시를 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말 그대로 내 몸에 접촉하는 순간 자동으로 발동되는 패시브스킬이니까.
비록 붙잡고 있을 때처럼 단숨에 많은 양을 흡수할 수는 없지만 저들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단단해진 내 몸에 주먹질을 하면 계속해서 조금씩 신성력을 빼앗긴다.
“으윽.”
뭔가 이상함을 느낀 사제들이 뒤로 물러섰다.
“너네도 끝났냐?”
저들을 초인으로 만들고 유지시켜주던 정교한 시스템이 지속적인 흡수로 엉망이 되어 신체 능력을 떨어뜨렸다.
나는 손가락을 꺾어 우드득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럼 이제 내 차례다.”
“크헉!”
사제들이 내 주먹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헛차!”
나는 옆구리에 사제 하나를 헤드락 한 채 다른 한 손으로 다른 사제들을 공격했다.
“어때? 계속 맞으니까 죽을 맞이지?”
소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보고도 몰라?”
그때 내 옆구리에 끼여서 계속 신성력을 빨리던 사제가 머리를 부둥켜 쥐며 외쳤다.
“머. 머리가! 으으윽!!”
“다 빨렸네.”
나는 신성력을 모두 흡수한 사제를 풀어주며 다음 목표물을 찾았다.
“모두 뒤로 물러서!”
소장의 말에 사제들이 지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왜. 더 덤비지.”
방금 풀려난 사제를 포함 소장이 데리고 온 사제 중 5명이 바닥을 뒹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당한 사제가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내. 내가 여태까지 무슨 짓을 한 거지.”
사제가 절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소장이 정신을 차린 사제에게 외쳤다.
“당장 이쪽으로 합류해!!”
그러자 사제가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닥쳐!!”
사제의 말에 소장이 경악하며 말했다.
“뭐. 뭐라고?”
천둥교는 교화를 통해 철저한 상명하복으로 이루어진 조직.
그런 사제가 하극상이라니.
“가. 감히 최상급 사제인 나에게 그게 무슨...”
“사제는 무슨 사제야! 교리가 있기를 해 뭐가 있기를 해!”
사제가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으며 외쳤다.
“내. 내 친구가 괴물 군집을 유인하기 위해 희생당했어. 그리고 난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고. 나 또한 언젠가 그렇게 희생됐겠지.”
“숭고한 희생이었다!!”
“강제적 희생이 어떻게 숭고한 희생이 돼! 그건 그냥 개죽음이야!”
소장이 넋이 나간 표정을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가장 먼저 반기를 든 존과 탐사대 사제들.
그들에게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낀 소장이 말했다.
“저들도 그렇고 저 사제도 그렇고...”
“안 느껴지지?”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동지애니 뭐니 같은 거.”
“이. 이건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된다고!”
라오에 의해 연결된 끈이 끊겨나간다니.
소장에겐 마치 이 모든 것이 라오에 대한 불경이자 신성모독으로 여겨졌다.
“장지후 네 이놈!! 합일!!”
다급한 마음에 합일 스킬을 사용한 소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뭐지?”
“왜 사용 안 돼?”
아마 나를 죽어라고 때리는 사이 합일 스킬을 구성한 파트들의 신성력이 빨려 스킬 발동에 오류가 난 걸 거다.
“그렇게 죽어라고 때리니까 그렇지.”
“도대체 이게 무슨...”
나는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이제 끝을 보자. 내가 준 힘. 내가 수거해가마.”
나에게 모든 신성력을 뽑히고 괴로워하던 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내가 그동안 무슨...”
라오의 비밀 명령을 받아 사람들을 강제 교화시키고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소장 역시 큰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대충 감 오지? 라오가 어떤 놈인지.”
신규 대피소 건설을 위해 선택한 생존자 그룹은 비교적 선한 사람이 많은 그룹을 선택했었다.
새로운 생존자들이 늘어날수록 보급도 부족해질 테고 지휘도 어려워지겠지만 그럼에도 그 임무를 하겠노라 선포한 사람들이다.
그런 대피소 소장이었으니 그동안 자신들의 손으로 저질러온 일이 더욱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소장이 이를 갈며 말했다.
“라오 이 자식....”
“워. 워. 진정해 진정.”
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정말 뭐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장지후 님.”
“고마울 게 뭐 있어. 결국 내가 저지른 일 내가 수습하는 것뿐인데.”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한 겁니다.”
대피소 소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장이 사제.
아니 전 사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신은 돌아왔지만 동시에 힘도 잃었습니다. 대피소엔 여전히 수백에 달하는 사제들이 존재하고요.”
“어쩌긴. 전부 원래대로 돌아와야지. 그리고 평소처럼 살아가. 천둥교는 잊고.”
소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초인의 힘도 없이 어떻게 괴물들을...”
“왜 못 해. 총 없어? 초인이 사라진다고 대피소까지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라오가 저희를 가만둘까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풀려난 걸 알아도 라오는 아무것도 못 해.”
얼마나 망가졌는지 모를 교단 상태창.
김인호.
이들이 평소처럼 대피소를 운영해나가면 라오는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다.
“대피소 내 사제들을 모두 정화하고 평소처럼 운영해.”
“그게 정말 가능...”
“나 라오야.”
내 말에 소장이 흠칫 놀란다.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나만 믿어. 내가 해결해줄 테니.”
“라오... 시라고요.”
“그래. 난 내 몸을 차지하고 있는 저 악귀가 아니라 전 사이비 교주이자 동시에.”
난 스스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라오야.”
난 앞으로도 라오여야 한다.
그것만이 악신 라오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
라오가 빨아들이고 있는 인류의 힘을 내 쪽으로 돌려 라오를 저지한다.
“슬슬 다음 웨이브를 시작할까?”
“예?”
“예. 가 아니지.”
나는 존과 탐사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들처럼 사제들 불러야 할 거 아니야.”
소장의 지위를 이용해 불러모은 모든 사제들의 신성력을 흡수했다.
“이놈이 마지막이지?”
마지막으로 신성력을 흡수한 사제를 내려놓으며 외쳤다.
“혼란스러운 거 안다! 하지만 그건 너희의 잘못이 아니다. 모든 건 그런 악행을 지시하고 사람을 홀린 라오의 죄! 그리고 그 죄는 내가 직접 심판하겠다!”
한 사제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장에게도 말했지만 너희는 이제 너희의 삶을 살아라. 라오의 명령도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저 생존을 위해 평소와 같이 살면 돼! 대피소로 돌아가자!”
이 정도로 사제들의 혼란을 잠재울 수는 없겠지만 언젠간 겪어야 할 일이니까.
나는 사제들을 이끌고 대피소로 돌아가며 말했다.
“혹시 대피소에 초능력자 있어?”
내 말에 소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희 대피소엔 초능력자가 없습니다.”
천둥교의 초능력자는 대부분 초능력 부대에 소속되어 각 나라의 메인 대피소에 주둔한다.
거기다 미국 초능력자들은 진작에 괴물 러쉬로 전멸한 데다 그 직후 초능력자 각성이 급감했으니 초능력자가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할 수도.
대피소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 김상식 주교님!!”
사제들은 라오의 비밀 명을 받고 나를 추적하기에 아무 내막도 모르는 일반인들은 내 방문을 천둥교 최상층 간부인 김상식의 방문으로만 여겼다.
“반갑다. 내가 김상식이다.”
그때 소장이 앞으로 나서며 미리 말해둔 것처럼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부터 모든 대피소 사람들은 김상식 주교님과 악수회를 가진다!”
“악수회?”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말했다.
“악수회는 또 뭐야?”
“그러게?”
그때 한 사람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혹시 사제로 임명시켜주려는 거 아닐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나에게 달려든다.
“김상식 주교님! 저와 악수해주세요!”
“저부터 부탁드립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으며 동시에 그들 안에 있는 신성력을 흡수했다.
‘확실히 신도는 금방이네.’
신도는 그저 교단 상태창과 연결되어 신성력을 공급하는 생산자일 뿐.
교화나 신체 강화 같은 고급 스킬이 없으니 연결과 최소한으로 남아있는 신성력을 빨아들이면 끝이다.
그렇게 대피소 내부 사람들과 하나도 빠짐없이 악수를 한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라오가 누구더냐!”
내 말에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쳐다본다.
“라오는 종말을 예지하고 사람들을 구원한 분이다. 맞나!”
“맞습니다!”
“매일 라오를 위해 기도해라. 그가 인류의 종말을 막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
저들은 모두 교단 상태창과의 연결이 끊겼다.
과연 저들이 뿜어내는 믿음이 어디로 갈까.
“기도해라! 너희들의 믿음이 바로 힘일지니!”
바로 나.
이들이 믿고 있는 라오는 진짜 신 라오가 아닌 신을 자처하던 인간인 나다.
“라오!!”
사람들이 외쳤다.
“라오!!”
그래.
내가 바로 라오다.
< 15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