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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156화 (157/188)

< 156화 >

한참 동안 눈을 감고 명상을 하듯 리틀이를 조종하던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이거 재미있는데?”

리틀이의 부분 부분을 나누어 a의 조건이 발동했을 때 b를 이행하라 같은 아주 간단한 명령을 주입한다.

그럼 그 명령이 주입된 부분끼리 조합되어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지금 내 눈앞에 떠 있는 상태창처럼.

“바보...”

지금 내 상태창에는 바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흐흐.”

이 조합이 참 오묘하다.

내가 초보라 그런지 생각한 대로 만들어도 엉뚱하게 발현될 때도 있으며 각 파트 간의 명령이 꼬여 오류가 나기도 한다.

마치 프로그래밍처럼.

“하긴 생각해보면 프로그램도 의지 없이 주어진 명령으로만 움직이는 거잖아. 리틀이도 마찬가지고.”

리틀이는 사람들의 나에 대한 믿음으로 만들어진 신성력이다.

그리고 이 신성력은 오로지 나만이 사용할 수 있고.

“아.”

그러고 보니 라오는 상태창의 모든 잉여 신성력을 사용해 불완전 현신을 했었다.

그때 난 라오의 힘을 피해 상태창안으로 리틀이를 보내 신성력을 흡수했고.

“이제 알겠다.”

분명 잉여 신성력이 없는데 왜 거대 덩어리는 여전히 남아있을까 의문이었는데 그 거대 덩어리는 잉여 신성력이 아닌 교단 상태창 자체를 구성하는 파트였던 거다.

“그래서 교단 상태창에 노이즈가 꼈었구나.”

파트 하나만 잘못 건드려도 오류가 나는데 리틀이가 통째로 안에서 파트 구분 없이 흡수했으니 그 타격이 얼마나 컸을까.

“그런데 교단 상태창 자체는 라오가 만들었을 텐데 왜 내가... 아니지.”

라오는 사람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상태창을 만들었다.

그럼 점차 늘어나는 사람에 따라 상태창의 힘도 늘려야 했을 거고.

“...상태창 자체의 알고리즘은 라오가 만들었지만 상태창이 점차 성장하며 늘어난 신성력은 라오의 것이 아닌 나의 것.”

당연히 라오의 통제를 벗어날 수밖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오 속 좀 썩었겠는데?”

겨우 만든 상태창인데 엉뚱하게도 나란 놈을 위해 모인 신성력으로 물갈이가 되고 간신히 몸을 빼앗았더니 이젠 상태창 자체를 공격해대니 미쳐버릴 수밖에.

라오가 말했듯 상태창은 라오의 모든 것이었으니까.

“이제 알겠다.”

내가 라오로 인해 속을 썩고 있는 동안 라오는 자신의 손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상태창을 보며 좌절하고 있었겠지.

몸을 빼앗길 당시 내가 신성력의 본질에 대해 모르고 있기에 당했지만 리틀이를 조작해보니 알겠다.

지금의 나라면 라오에게 절대 빼앗기지 않을 거다.

“그걸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젠 반대로 라오에게 빼앗긴 몸은 물론 상태창도 되찾아올 수 있다는 뜻이지.

라오는 그저 만들어진 상태창을 이용해 나를 위해 모인 신성력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니까.

“뭐. 그것도 내가 다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때 이야기지만.”

좋아.

대충 감이 잡혔다.

“이걸로 대 천둥교 전용 상태창을 만들고 라오를 때려눕힌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로이에게 가볼까?”

“예?”

내 말을 전해 들은 로이가 경악하며 말했다.

“벌써요?”

“어. 생각보다 쉽던데? 봐봐.”

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태창.”

그러자 내 눈앞에 나타난 상태창.

“아. 맞다. 상태창은 다른 사람 눈에 안 보이...”

“바... 바보?”

로이가 내 상태창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백. 백지에 바보라고 적혀있는데 제가 잘못 본 겁니까?”

“어? 너 한글 읽을 줄 알아? 아니 그보다 이게 보여?”

“보. 보입니다.”

시종일관 나보다 우월한 정보를 바탕으로 나를 가르치듯 이야기하던 로이의 당황한 모습을 보니 신이 난다.

“흠. 이걸 숨기려면 또 다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말인데.”

나는 단순히 내가 상태창이라 말하면 상태창이 떠오르도록 만드는 것만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리틀이의 일부에 투명화 능력을 떠올리며 상태창 부분들과 연결시켰다.

“어?”

“어?”

나도 안 보인다.

여러 가지 조정을 거쳐 드디어 나만이 볼 수 있는 상태창이 완성됐다.

“자. 봤으니 믿겠지?”

“노. 놀랍군요. 제가 헛것을 본 건 아니죠?”

“다시 보여줘?”

투명화 부분의 연결을 해제했다.

“...보입니다.”

다시 투명화 부분을 연결시키자 로이가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젠 안 보이는군요.”

상태창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내 모습에 잠시 넋을 잃고 있던 로이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무튼 좋은 소식입니다. 인류는 아직 희망이 있어요.”

“뭐. 일단 대충 개념은 알겠어. 그리고 왜 나만 할 수 있다는 건지도 알겠고.”

이건 만든 본인.

그것도 직접 만든 본인이 아니면 수정할 수도 고칠 수도 없다.

나만이 부분 부분에 무슨 의지를 투영했는지 알 수 있는 데다 구조 또한 복잡하기 그지없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내가 아니면 아무도 리틀이를 조종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천둥교에 비하면 역부족이야.”

겨우 백지에 바보 적힌 상태창 띄우는 데도 이렇게 한참 걸렸다.

“혹시 생각해둔 대책 있어?”

내 말에 로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은 라오의 목줄을 더욱 단단히 묶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줄?”

김인호?

“예. 김인호가 라오의 목에 걸린 기계 발동장치를 가지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워. 그거 기밀인데 어떻게 알았어?”

천둥교 최고 지도자의 목숨을 단번에 앗아갈 수 있는 키의 존재.

당연히 김인호와 그의 명령을 받는 일부 초능력자밖에 모르는 기밀이다.

로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는 모두 초능력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천둥교 측에 첩자 하나 보내는 건 일도 아니지요. 초능력자는 귀중한 인력이니까.”

“...그럴 만도 하네.”

생존자 중 초능력자가 있으면 바로 초능력자 부대에 합류시켰었다.

거기다 전투 능력자라면 더 우대해주고.

이런 조직의 존재 자체를 몰랐으니 의심 자체를 한 적이 없다고 해야 하나.

“잠깐. 그럼 왜 내가 몸을 빼앗긴 걸 알고도 김인호한테 언질을 안 한 거야?”

바로 라오를 골로 보낼 텐데.

그러자 로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희망의 불꽃이 남아있다면 아직 라오는 죽어선 안 됩니다.”

“어째서?”

“현 인류가 지금처럼 자리를 잡은 건 90퍼센트 이상이 천둥교와 사제들의 힘이니까요. 그들이 일거에 사라진다면 인류는 다시 괴물의 위협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오가 죽으면 다시 다 돌아오는 거야?”

그러자 로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도 제가 라오를 죽여선 안 된다 판단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라오가 사라진 뒤 사제들이 어떻게 될지는 상태창을 만든 라오 본인 외엔 아무도 모르니까요.”

하긴.

여러 파트들 중 함정 파트가 준비되어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리틀이를 예로 들자면 내가 10일 동안 상태창을 소환하지 않으면 죽은 걸로 판단, 자폭한다 같은 파트를 만들어 둘 수도 있는 거니까.

“장지후 님이 몸과 상태창을 되찾는 게 최선입니다. 물론.”

로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장지후 님이 실패한다면 차선책으로는 고려해야지요.”

“...웬만하면 참아.”

정말 라오에 대한 경계심이 극도로 올라 장착시킨 거지만 희망이 보인 이상 나도 어지간하면 내 몸을 되찾고 싶다.

“그럴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목줄을 강화시킨다고? 어떻게?”

“김인호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줘야죠. 라오가 어쩌면 바뀐 걸 수도 있다는 경각심.”

“야. 야. 그건 니가 걔를 몰라서 그래. 그놈 퍽하면 마스터키 들이밀면서 누를까요 하는 놈이야!”

“하하. 그게 그렇게 쉬울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인호는 그 누구보다 인류에게 라오가 있고 없고의 차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최대한 생존자들의 생존력을 높이려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인류가 지금만큼 문명을 복원한 데에는 천둥교의 지대한 영향이 있기에 가능했다.

라오를 죽인다는 건 즉 인류가 적응하기도 전에 보호막을 걷어낸다는 뜻.

“...차라리 김인호를 초능력자들이랑 같이 이쪽으로 데리고 오는 건? 이쪽이 위험하면 일단 다른 곳이라도...”

“불가합니다.”

로이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라오가 마음껏 활동하지 못하고 억제되어있는 이유는 대피소 곳곳에 초능력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감시의 눈길이 사라지면 라오는 더욱 본격적으로 움직일 테죠. 차라리 경계심만 주어 내부에서 투닥거리도록 만드는 게 지금으로선 더욱 옳은 판단입니다.”

“흠... 뭐. 그렇다고 치고 경계심은 어떻게... 아. 설마.”

이목을 끌기 위해서라기엔 초능력자들의 도를 넘어선 희생.

“그래서 그렇게 영국에서...”

“예. 맞습니다.”

영국 전역에서 벌어진 추격전.

아무리 천둥교가 탄탄하다지만 그런 도처에서 벌어진 추격전의 정보를 모두 막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김인호도 이상 현상을 느꼈겠죠. 하지만 확신은 할 수 없는 상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러다 정말 터뜨리면 어떡하려고?”

“평소 누를까요? 라고 말하며 장난치는 건 반대로 아니란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후후. 김인호가 평소 얼마나 장지후 님을 따르고 존경했는지 아십니까? 인류의 구원자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을 단지 의구심만으로, 그것도 따르고 존경하던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끙...”

“대신 의심하겠지요. 더욱 세밀하게 관찰하고 달라진 점을 찾고. 그리고 그게 라오의 목을 더욱 옭아맬 겁니다. 모두 장지후 님 공이군요. 스스로의 목에 폭탄을 설치하는 용기. 역시 대단하십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휴. 이젠 나도 모르겠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무튼.”

로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오는 이제 달라진 김인호로 인해 더욱 마음대로 하지 못할 겁니다.”

“...약탈자 토벌...”

김인호가 굳은 표정을 하고 말했다.

“약탈자들이 차량을 운행했다고.”

한두 대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김인호의 조사 결과 약탈자가 운행한 거로 추정되는 차량이 밝혀진 것만 수십 대.

김인호는 천둥교를 제외하고 그 정도 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 조직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확신했다.

“...내부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나?”

교화를 거부한 초인들이 들고일어난 건가.

아니면 새로운 세력?

그도 아니면...

“...설마... 아닐 거야.”

하지만 천둥교는 분명히 처음엔 이 일을 숨기려고 했었다.

후에 약탈자 토벌이라 공지했지만 자신은 라오가 마스터키를 넘기고 라오신의 존재까지 털어놓을 만큼 서로 간에 비밀이 없는 사이다.

“...영국 대피소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한 일이라 말은 했지만... 아니야. 아닐 거야.”

라오는 여전히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교화 역시 적극적이지 않다.

“...사실은 이미 몸을 빼앗겼고 단순히 기계 장치 때문에 억지로 라오님의 연기를 하고 있다면?”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그 진상이 수면 밖으로 나온 거라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만약 그런 거라면...”

인류의 희망이던 라오님의 몸을 빼앗은 라오신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

마스터키를 만지작거리던 김인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만약 내 착각이라면 어떡하지?”

정말 단순한 해프닝이었다면?

자신의 손으로 인류의 구원자를 죽이는 꼴이 된다.

라오를 위해 목숨까지 던질 각오가 되어있는 김인호 입장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

“...어떻게 해야 하지.”

라오는 언제나 사소한 변화만 있어도 누르라 말했지만 그걸 실천으로 옮기는 건 또 다른 일이다.

김인호는 한참을 망설이다 말했다.

“부관.”

김인호의 부관이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예. 대장님.”

“오늘부터 내 숙소 경비를 배로... 아니다.”

아직 모든 걸 파악한 게 아니니 섣부른 경계는 라오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터.

“기존 경비는 그대로 하되 내 주변 방의 거주 초능력자 수를 늘려. 비밀리에.”

부관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겁니까?”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아. 그리고 각 대피소 현황파악도 좀 더 신중하게 하고 보고 횟수도 늘려. 그냥 요즘 나태해진 거 같아서 그런 거야.”

“알겠습니다.”

부관에게 지시를 내린 김인호가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정말 라오님의 몸을 빼앗은 거라면.”

김인호가 이글거리는 눈을 말했다.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내 목숨을 걸고.”

< 15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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