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155화 (156/188)

< 155화 >

“내 거라고...”

예상은 했다.

일반인에 불과한 내가 상태창이 모아둔 신성력을 뽑아내 리틀이를 만들어냈으니.

“그래.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한 거지.”

“예. 그래서 희망이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해준 말들. 전부 신들이 알려준 거야?”

“대부분은 그렇고 일부는 제 예측입니다.”

“뭐. 다 좋아. 나를 위해 기도해서 모인 신성력이니 내 거라고 치자. 그런데 지금 상태창은 라오 손아귀에 있는데?”

여태까지 로이가 해준 말로 미루어보아 상태창은 내 예상처럼 신성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툴이다.

문제는 라오가 내 몸을 강탈하며 그 툴까지 통째로 가져갔다는 거지.

“내가 여기서 얍 하면 라오가 가지고 있는 신성력을 강탈할 수 있어?”

“역시 인류의 희망입니다. 라오의 당황했을 얼굴이 보이는군요.”

“그래?”

그렇게 대단한 건가?

그냥 되길래 한 건데.

“아마 육신을 빼앗겨 정신만 남은 상태라 더욱 수월했던 거 같습니다. 수련을 하는 도인들도 부동자세를 통해 정신을 수양하지 않습니까.”

로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에 반해 장지후 님은 아예 부동을 취할 육신조차 없었으니까요.”

에...

칭찬인가.

하긴.

생각해보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리틀이를 조종하는 데 모든 심력을 쏟아부었었다.

그래서 탈출했을 때 이미 몇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는 소리를 듣고 경악하지 않았었나.

“아무튼 좋은 소식입니다. 게다가 라오가 강제 현신을 사용했다니 현신까지 필요한 신성력을 다시 제로부터 모아야 할 거구요.”

“그러고 보니 내가 리틀이한테 뭐라도 해보라고 한 적이 있거든?”

리틀이가 반토막이 나며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던 이야기를 해주자 로이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마 신들이 만들어둔 알고리즘에 신성력이 공급된 걸 겁니다. 아마 그 정도 양이면 새로운 신규 초능력자가 각성했을 수도 있겠군요.”

“...리틀이가 반토막 나며 초능력자를 각성시켰다고?”

믿음이 모여 신격이 되고 신격이 곧 신이다.

심지어 신들의 알고리즘에 신성력을 공급해 새로운 초능력자까지 만들어냈다니.

그럼 난 지금 뭐야?

“내가 신이라도 된 거야?”

로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신은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과거 수많은 선지자들이 민중의 믿음을 받아 선인의 경지에 이르렀었지요. 굳이 분류하자면 선인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일반인은 아니란 거네?”

장지후. 대단하다. 이젠 사람도 아니란다.

“이제 이 힘으로 후다닥 라오를 때려잡으면 되는 거야?”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요.”

나도 알아.

그게 가능하면 진작에 했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신들은 말했습니다. 종말 후 라오로 인해 엉크러진 이 현 상황에서 유일하게 신성력을 다루고 사용하며 충분한 양을 보유한 사람은 장지후 님뿐일 거라고.”

“아...”

신들은 모든 힘을 쏟아부은 뒤 이미 봉인됐고 라오는 내 육신을 차지해 상태창을 사용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라오 역시 그저 상태창을 사용하고 있는 초능력자에 불과하다.

오직 나만이 상태창이란 범주를 벗어나 신성력 그 자체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말.

“장지후님. 초능력자의 상태창은 전투와 생존에 치중되어 있고 라오의 상태창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데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있습니다. 신은 모두 힘을 잃고 봉인되어 라오의 존재를 알기 전 짜놓은 알고리즘. 믿음을 모아 초능력자를 만들고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힘을 내려준다는 이 선순환 구조는 이미 무너졌습니다.”

그래.

나로 인해서.

“그 알고리즘은 라오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못했습니다. 그럼 새로 만들어야지요. 라오를 막는데 특화된.”

로이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신성력을 가지고 다룰 수 있는 분께서.”

“에...”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나는 어안이벙벙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예. 자유로운 신성력은 범용도가 높지만 그 범용도만큼 소모도 엄청납니다. 왜 신들이 직접 사태를 막지 않고 상태창이란 알고리즘을 통해 인간이 직접 싸우도록 했는지 상기해보십시오.”

“...너 혹시 미쳤니?”

신이 아니라면서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요구하는 로이.

“인류의 희망은 그것뿐입니다.”

로이가 배정해준 방에 드러누운 나는 로이의 말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나보고 상태창을 직접 만들라고...”

와.

미쳤다.

“그걸 내가 어떻게 만들어!!”

신이 하다 하다 안 돼서 고안한 게 그거잖아!

근데 나보고 그걸 만들라고?

그것도 라오에 특화시켜서?

“지렁이보고 여의주 만들라는 소리랑 뭐가 달라!”

로이는 절망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신성력을 사용해 각종 초능력을 사용했다면 결코 어렵지 않을 겁니다. 결국 모든 걸 움직이는 건 의지. 믿음도 의지요. 생각도 의지.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세요. 아. 물론 이 말은.

로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도 신한테 전해들은 겁니다. 해본 적도 없고요. 아무튼 부탁드립니다. 인류의 구원자님.

“...지미럴.”

내가 싼 똥 내가 치운다니까 똥 치울 빗자루도 나보고 직접 만들란다.

“하. 희망은 무슨.”

절망감과 무력감에 힘이 쭉 빠졌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후. 그래. 뭐라도 해봐야지. 리틀아.”

-꿈틀.

“상태창을 만들어라. 얍!”

-......

“역시 안 되네.”

신 놈들.

나한테 너무 큰 기대를 했는데.

“안됐수다. 망한 거 같으니.”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하우. 내가 멍청해서 꾐에 넘어갔어. 나중에 죽으면 사죄하겠수. 아. 신은 죽어도 못 만나나?”

한참 중얼중얼 헛소리를 지껄여도 봤지만 도대체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에휴. 산책이나 가자.”

“와!!”

기형적으로 생긴 집 사이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평화롭네.”

비록 문명의 모든 이기가 제거된 삶이지만 그 어디보다 안전하고 평화롭다.

사제와 초인 그리고 일반인 간의 계급 다툼도 없고 무엇보다 전부 로이의 그 환상을 본 덕인지 지금의 삶을 즐기려 노력한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야 그렇다 치고 여기 전부 초능력자들이잖아?”

여기에 도착하고 난 뒤로 초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잠시 고민을 해보니 답이 나왔다.

“...각성은 물론 초능력의 사용 역시 사람들의 믿음으로 모인 힘이 소모된다고 했었지?”

이들은 전투를 제외한 모든 활동에서 초능력 사용을 자제해 그렇지 않아도 망가진 알고리즘의 선순환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다.

그때 한 아이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깨너머로 힐끔 보니 아이는 내가 다가왔는지도 모른 채 나이프로 나무토막을 이리저리 깎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나무토막을 깎던 아이가 완성품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됐다!”

위험한 나이프를 손에 쥐고 있기에 궁금한 걸 참고 있던 나는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뭐 하니?”

내 말에 뒤를 돌아본 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히익!!”

“워워. 진정해. 나쁜 사람 아니니까.”

놀란 아이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나 장지후라고 해. 라오라고 하면 알아볼라... 아.”

나 지금 상식이 몸이지?

거대하고 흉악한 지상최강의 남자.

그런 내가 뒤에 서있었으니 아이가 놀랄 수밖에.

“아... 아...”

“임마. 쫄지 마. 내가 나쁜 놈이면 여기 있을 수나 있겠어?”

내 말에 조금 진정이 된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네...”

“그보다 방금 만든 게 뭐야?”

아이의 손에 들린 완성품은 ㄱ자 모양으로 생겨있었다.

“총?”

총 비스무리한 걸 만들어서 총놀이라도 하려는 건가?

“아. 이거요?”

아이가 자신에 손에 들린 나무토막을 보며 말했다.

“이건 손잡이에요.”

“손잡이?”

“예.”

아이가 근처에 놓인 나무 장난감 하나를 들고왔다.

“아빠가 만들어준 거야?”

아이가 만들었다기엔 나무 장난감 안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 톱니바퀴나 구조가 상당히 정밀하다.

“아니요. 이거 제가 만들었어요.”

“오. 대단한데?”

내 칭찬에 아이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헤헤. 심심해서 계속 개량하면서 만드는 중이에요.”

“그런데 그게 손잡이라고?”

“예.”

아이가 완성된 나무 손잡이를 장난감 어딘가에 꽂아넣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와!”

이어진 톱니바퀴들끼리 맞물려 장난감이 앞으로 전진하는 게 아닌가.

“헤헤. 성공이다.”

“이야...”

약간은 어설프다고 생각한 ㄱ자 손잡이가 저 장난감에 연결되는 순간 저 장난감의 움직임을 담당할 훌륭한 일부가 됐다.

“부품이라...”

아이가 신이 난 표정으로 다시 손잡이를 뽑아냈다.

“왜 뽑는 거야? 잘 굴러가는데?”

“헤헤. 이건 시제품이었고 움직이는 걸 확인했으니 더 제대로 만들어야죠.”

“...시제품... 완성품.”

그래.

리틀이는 일종에 원석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리고 내 의지는 리틀이를 움직이는 도구고.

저 장난감 역시 아이의 손을 거치기 전 그저 숲의 흔하디흔한 나무 조각이었을 거다.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내가 리틀이에게 지시랍시고 했던 건 돌덩이보고 대리석으로 변하라는 수준의 멍청한 지시였다.

“...처음부터 하나씩 부품처럼 맞춰나갔어야 하는 거야.”

“예?”

나는 의아한 표정의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맙다. 큰 도움이 됐다.”

“에... 뭐가요?”

“만약 내가 인류를 구한다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네 덕분일 거다.”

단숨에 방으로 돌아온 나는 리틀이를 느끼며 말했다.

“리틀아. 일부만 떼어내봐.”

-꿈틀.

하지만 꿈틀거리기만 하는 리틀이.

“의지가 부족한가? 흡!!”

정신을 집중해 리틀이의 일부를 떼어내려 했지만 리틀이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다.

“...잘못 생각했나?”

생각해보면 상태창이라 추정했던 거대 덩어리 역시 한 덩어리로 뭉쳐있지 않았나.

“...리틀이를 분리해내는 게 아니라 리틀이 안에 담당 파트를 나누게 되면... 해보자.”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자. 상태창을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태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바로 눈에 보이는 상태창 그 자체 아니겠나.

나는 리틀이의 일부를 향해 말했다.

“자. 너는 이제부터 하얀 백지다. 하얀 백지.”

그러자 리틀이의 일부가 내 의지를 받아들인 듯한 느낌이 난다.

“상태창!”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는 리틀이.

“...설마 더 기초단계부터?”

상태창이라 외쳐야 상태창이 뜰 거 아닌가.

나는 그때부터 리틀이를 세세하게 나누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우선 이 부분. 이제부터 상태창이란 소리를. 그것도 내가 말하면 요기 상태창 부분에 신호를 보내. 어... 얘는 그냥 상태창이잖아. 얘를 눈앞에 구현하려면...’

겨우 상태창 하나 그것도 백지상태로 띄우려는 건데도 무수히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사람이 단순히 손을 뻗어 물건을 집는다는 행위를 할 때도 수많은 관절이 움직이는 것처럼 수많은 과정이.

상태창을 출력할 부분과 상태창 부름을 인지할 부분, 이 모든 동작이 가능하도록 해줄 동력원까지.

그렇게 한참 동안 조정한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제발 됐으면 좋겠는데.”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상태창!!”

상태창을 외친 난 조심스럽게 감았던 눈을 떴다.

“아...”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인 건.

“백지. 백지 상태창.”

내가 상상했던 그 백지 상태창의 자태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손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된다!!! 된다고! 만들 수 있어! 상태창! 내가 만들어냈다!!!”

“그건 불가능하겠지요. 이미 그 신성력들은 상태창에 귀속된 상태이니까.”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건데?”

내가 가진 신성력은 내 안에 있는 리틀이가 전부.

상태창이 모아놓은 신성력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 대답을 해드리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말해봐.”

“신들은 라오가 통제를 벗어난 장지후 님의 상태창을 강탈하기 위해 몸을 빼앗으리라는 것 까지는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하지만 그 후에 어떻게 될지는 장담하지 못했었습니다.”

“장담을 못 했다고? 거 정말 무대포구만? 만약 내가 못 나왔으면 어떡하려고 했어?”

로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 생각했기에 이런 대피소를 만든 거 아닙니까. 라오의 눈을 피해 살아갈 터전. 인류를 보존할 방주.”

“흠...”

“그럼 이제 말씀해주십시오.”

로이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어떻게 탈출하신 겁니까?”

여태까지의 일을 설명해주니 로이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상태창에 간섭하여 강림 스킬을 사용하고 신성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셨다고요. 아아.”

“왜 그렇게 좋아해?”

“일개 인간이 상태창의 도움도 없이 신성력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그것 자체부터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겁니다.”

로이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15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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