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로이의 말과 동시에 어디론가 정신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어디선가 많이 느껴본 듯한 느낌.
‘그래.’
라오에게 몸을 빼앗겼을 때.
“사람들을 교화시켜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입이 움직인다.
“더 많은 신성력이 필요하다.”
나 지금 설마 다시 내 몸으로 돌아온 거야?
딱 그 기분인데?
‘설마 로이가...’
아니.
그럴 리 없다.
‘로이는 나한테 직접 보여주겠다고 했지?’
설마 이건 환상인 건가?
그래.
이건 환상인 게 분명해.
“현신의 날이 머지않았다.”
라오의 말에 사제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도대체 나한테 뭘 보여주려는 거지?’
이런 건 라오에게 몸을 빼앗겼을 때 실컷 느꼈었다고.
“초능력자도 모두 제압했고 내 앞길을 막을 자는 더 이상 없다.”
라오가 광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가라! 온 세상을 라오로 물들여라!!”
하루. 이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도대체 이거 언제 끝나는 거야?’
너무나도 무료해서 예전처럼 리틀이라도 만들어볼까 했지만 실패했다.
‘환상이라 그런 거 같긴 한데...’
“크악!!”
이 환상 속에서 천둥교는 이미 모든 초능력자를 제압하고 종말 세상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당연히 목줄이 풀린 라오는 사제들을 동원.
사람들을 교화시켜나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 살려주세요! 제 딸이 아픕니다!”
한 생존자의 말에 사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약과 치료는 교화된 사제에게만 제공된다.”
생존자가 사제에게 고함을 질렀다.
“너네가 전부 몰수해가서 그런 거 아니야!!”
“설마 라오님이 만든 규정에 불만이라도 있는 건가? 불순분자군.”
사제가 단숨에 생존자를 제압했다.
“으윽!!”
모든 사람을 동시에 교화시키기엔 사제의 숫자는 한정적이고 공간 역시 부족할뿐더러 동료가 당한 걸 본 생존자들이 도주해 숨어들게 분명했다.
그래서 라오와 천둥교가 택한 방법은 사람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일 만큼의 빡빡한 규정을 이용.
조금이라도 위반한 사람은 모조리 교화시키는 방법이었다.
“라오님의 말을 어겨 대피소의 기강을 어지럽힌 죄.”
“아. 안 돼!!”
“교화형에 처한다.”
사제에게 제압당한 생존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외쳤다.
“도와주세요!! 제발!! 내가 교화되면 아픈 내 딸은 혼자 남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생존자들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소용없다. 여기서 법 집행을 방해한 자 역시 교화형이니까.”
여기서 생존자를 도와 사제를 방해해 교화될 것이냐 아니면 침묵하고 외면한 채 최대한 규칙을 지키며 안전한 대피소에서 살아갈 것이냐.
사람들의 선택은 뻔했다.
한순간 화를 참지 못해 고함을 질렀던 생존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애원하며 말했다.
“어. 어차피 교화될 거 딸아이라도 살려주십시오!”
“약과 의료는 교화된 사제에게만 지급된다.”
생존자가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교화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럴 수 없다.”
“어. 어째서.”
“우선 첫째.”
사제가 남자를 포박하며 말했다.
“넌 아직 사제도 아니고 교화되지도 않았다.”
“그. 그런..”
사제가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둘째. 약과 의료지원은 사제에게만 된다. 즉.”
사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교화되는 것과 네 딸의 병은 전혀 상관없다는 말이다.”
“이. 이 악마 같은.”
“병을 치료받고 싶으면 네 딸이 직접 자진해서 교화되는 방법뿐이다.”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좀 돌아가자!! 도대체 언제까지 이걸 봐야 해?’
고삐 풀린 라오는 거칠 게 없었다.
교화형에 당하는 사람이 줄어들자 식량 배급을 줄이고 규정을 더욱 빡빡이 만들어 범죄자들을 늘린다.
그렇게 교화된 사람들은 그들을 교화시킨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나간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라오님.”
사제가 라오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중국 대피소 생존자들이 무리를 만들어 대피소를 나가겠다고 합니다.”
“몇 명이지?”
“500명입니다. 자신들끼리 자신들만의 쉘터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라오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웃기는 소리. 뭘로 괴물과 상대할 건데. 총? 칼? 그 모든 건 우리 천둥교의 것이다. 만약 나가고 싶으면 모든 무기와 장비를 반납하라고 해.”
라오의 말에 사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미 그렇게 전했지만 모두 반납하고라도 나가겠다 합니다.”
“호오.”
라오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괴물이 무섭지도 않다 이건가.”
외부에 돌아다니는 괴물보다 대피소의 규정 그리고 교화가 더욱 무섭다 생존자들이 판단한 것이지만 라오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좋아. 나가라고 해. 그리고 그놈들 쉘터가 완성되어갈 때쯤.”
라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제들을 보내 모두 제압해서 몰래 교화시켜. 그다음부턴 나가고자 하는 놈들을 모두 그쪽으로 보내는 거다.”
내가 초인들을 상대로 써먹었던 방법이다.
마치 교화에 자유로운 듯한 장소를 만들어주지만 실상은 이미 모두가 교화된 한 통속.
하지만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다.
사람들에게 두 개의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어이!! 로이! 이제 되지 않았어?! 나 좀 내보내줘!!’
내 외침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는 로이.
‘하아 돌아버리겠네.’
하지만 내 고통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한 달. 두 달. 세 달.
처음엔 이미 한번 해본 거라 버틸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착각이었다.
‘제발! 그만!!’
아무것도 못 하고 정신만 또렷이 남아있는 여긴 지옥이었다.
리틀이의 존재와 신성력을 다루며 시간을 보냈던 그때와는 달랐다.
‘야 이 새끼야!! 그만하라고 그만! 벌써 세 달째야!!’
미쳐버릴 거 같다.
무료함을 넘어 분노.
이젠 분노를 넘어 정신까지 혼미해진다.
거기다 라오와 천둥교에 의해 자행되는 만행을 가만두고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힘들게 한다.
1년이 지났다.
‘정말 이게 환상인가?’
이런 것일 줄 알았으면 어떻게 해서든 거부했을 텐데.
“사제들은 들어라.”
라오가 환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오늘이다.”
라오가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말했다.
“나 라오가 현신하는 그날 말이다!!”
라오의 말에 사제들이 목청이 터지도록 고함을 질렀다.
“와!!!”
‘오늘이었나.’
거의 하루 종일 멍하니 있다 보니 정신을 놓고 있어서 몰랐다.
“많은 역경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
라오가 감회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드디어 종말을 막아낼 마지막 퍼즐이 완성됐다. 내가 해낸 거라 이 말이다!!”
‘종말?’
종말이란 말에 잠들어있던 정신이 번쩍 든다.
“보아라! 나 라오의 진정한 모습을!! 현신!!”
그 말이 끝나자 라오의 몸에서 거대한.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고 쳐다보기조차 힘든 무언가가 방출된다.
“아... 아...”
사제들 역시 느꼈는지 하나둘 라오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이. 이건.’
나를 몰아내기 위해 사용했던 임시 현신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때가 강대한 힘을 가진 인간의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느끼기만 해도 절로 두려움과 동시에 경외감이 느껴지는 진짜 신의 현신이었다.
그때 그 강대한 존재감이 내 몸에서 떨어져나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천둥신답게 천둥 소리가 우레처럼 울려 퍼진다.
-내가 바로 천둥신 라오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사람의 머리에 직접 때려박는 듯한 소리.
“라오시여...”
사제들이 경건한 자세로 라오의 현신을 우러러보는 사이 내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몸에서 나갔어?’
그럼 내가 내 몸을 컨트롤할 수 있는 거야?
“어?”
말이 나온다.
손가락도 움직여지고.
“몸이... 움직여져.”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몸이 움직여진다고!!”
하지만 환희에 찬 기분도 잠시.
그때 내 뇌리에 라오의 목소리가 꽂혔다.
-모두 꿇어라.
라오의 목소리가 들리자 내 몸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쿵.
‘모. 몸이.’
-나를 따르라. 내 너희의 유일한 신이 될지니.
‘아아.’
라오의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라오님.”
-내 제1 사도 장지후여.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라오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너를 천둥교의 초대 교주로 임명하겠다.
라오님께서 나를 지목하고 교주로 임명해주셨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을까.
“감사합니다. 제 모든 걸 라오님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목숨까지도.”
행복하다.
이런 행복이 또 어디 있을까.
“으아아!!! 장지후!!!”
교화를 피해 도망쳤던 생존자들이 내 눈앞에 끌려왔다.
“감히 라오님의 은총을 거부하다니.”
괘씸하다.
하지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나 상관없다. 은총을 받으면 너도 달라질 테니.”
“개소리하지 마!!”
발버둥 치는 생존자를 보며 말했다.
“나 또한 그리 생각했다.”
과거의 난 라오님을 배신한 배덕자였다.
라오님을 속이고 괴롭히고.
“교화는 나쁜 것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우리 인간은 약하다. 그리고 불완전하다.”
교화는 알파이자 오메가.
불완전한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라오님의 축복.
이 자도 그걸 느끼고 나면 달라지겠지.
“걱정하지 마라. 너 역시 우리와 같이 축복을 받을지니. 라오님의 은혜에 감사드려라.”
“안 돼. 안 돼!!”
“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을 교화시켰다.
교화가 불가능한 초능력자들은 모두 주살시켰고 이제 인류는 모두 완벽해졌다.
-교주 장지후.
“아아. 라오님.”
-그동안 수고 많았다.
“아닙니다. 라오님을 위해서라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습니다.”
-현신한 지도 벌써 10년. 네가 나를 위해 일해온 시간이다.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라오님의 자애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천둥교의 사제다. 아주 기분 좋군.
라오님이 즐거워하신다면 그의 신자로서 축하를 드리는 게 도리.
“축하드립...”
-장지후 교주.
“예?”
-인격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무어라 생각하나.
“라오님을 기리는 저희의 믿음과 경애 아니겠습니까.”
-비슷하지만 틀렸다.
틀렸다고?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무지한 저를 깨우쳐주십시오.”
-바로 자기 희생이다. 다른 이를 위한 자기 희생. 거기서 뿜어지는 힘이 바로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아. 그렇군요.”
-그러하기에 너희가 필요하다. 장지후. 그리고 모든 천둥교의 신도들이여.
라오님의 말씀이 머릿속에 박혀온다.
-나를 위해 죽어라. 너희들의 죽음이 종말을 막을 것이다.
자기 희생.
아.
라오님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친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이런 영광스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벅찬 심정으로 내 관자놀이에 늘 휴대하는 권총을 꺼내 겨누었다.
“라오를 위하여.”
“허어어억!!!”
갑자기 정신이 돌아왔다.
로이가 보이고 그의 방이 보인다.
그리고.
“크아아아악!!!!”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많이 아프실 겁니다. 다들 그랬으니까요.”
“으아아아아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고통.
마치 십 년간의 기억을 머릿속에 때려 넣는 듯한 느낌이었다.
“머. 머리가!!”
“짧게는 일 년에서 길게는 십 년. 만약 정말 그 기억이 일시에 사람 머릿속으로 들어간다면. 심지어 그 기억이 자의가 아닌 조종당해온 기억이라면 사람은 미쳐버릴 겁니다.”
로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바닥을 뒹굴며 외쳤다.
“이 개자식!!”
“다행히 제 능력에 의해 본 환상 속 기억은 진정한 기억이라기보단 정보의 형태로 기억되기에 큰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만.”
로이가 발버둥 치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기억 속에서 느꼈던 비참함과 무력감 상실감은 그대로라는 거.”
“으아아아아악!!!”
“그게 바로 사람들이 나를 따르고 기꺼이 몸을 내던지는 이유입니다. 그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차라리 죽는 게 나으니까요.”
“헉헉.”
아직도 식은땀이 나고 몸에서 경련이 일어나지만 조금 나아졌다.
“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어떠셨습니까?”
“어. 얼마나 지난 거지?”
“단 1초였습니다.”
로이가 손가락을 하나 들어올리며 말했다.
“1초.”
“겨. 겨우?”
앞선 1년은 몸에 갇혀서, 나머지 9년은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고 라오의 말만 맹목적으로 따랐다.
그리고 뒤에 9년 동안 내가 벌인 일은 참혹 그 자체.
특히 마지막 자살로 끝맺음한 기억의 끔찍함은 말로 표현조차 하지 못할 지경.
정보형태로 기억된다 로이는 말했지만 아직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질 않는다.
근데 그게 겨우 1초 동안 벌어진 일이라고?
“보셨으니 아셨을 겁니다.”
로이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라오가 바로 종말입니다. 그리고 라오가 막으려는 건 인류의 종말이 아닙니다.”
< 15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