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룰루루.”
김상식.
정확히는 라오가 강림해있는 김상식에게 마지막 지시까지 마치면 초인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크리스는 절로 흥이 솟아올랐다.
“나도 이제 초인이 되는 거야!”
그때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근데 도대체 무슨 비밀 임무일까?”
말을 걸면 자꾸 짜증을 내서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천둥교의 지존이 수행원 하나 없이 비밀리 움직여야 할 일이 뭐가 있을까.
“뭐. 나야 하라는 대로 하면 그만이지만... 어?”
길을 걷던 크리스의 눈에 수십 명의 사람이 크리스 쪽을 향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제님들이네?”
모두 천둥교의 사제복을 입고 있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크리스에게 접근한 사제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크리스티안. 맞나.”
“아. 예.”
“김상식 주교...님과 함께 있던?”
“맞습니다만...”
사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좋아. 날 따라와라.”
사제의 말에 크리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피소까지 보호해 주시는 겁니까?”
“그래.”
“이야.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제들의 보호를 받으며 대피소로 가던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여긴 대피소 방향이 아닌데요.”
사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잠시 들릴 곳이 있다.”
그러자 크리스가 뒤통수를 긁으며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 그건 좀 곤란한데.”
크리스의 말에 사제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우리 천둥교 사제들의 지시를 어길...”
“그게 아니라요.”
크리스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김상식 주교님이 이걸 대피소에 있는 한 사람한테 전해주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아주 급한 거라고 하시던데요.”
크리스의 말에 사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주 급한 거라고?”
“예. 제시간에 전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무조건 대피소로 곧장 가라고 하시던데.”
“무슨 내용이지?”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글쎄요. 이걸 무슨 내용이라고 해야 하나...”
그때 사제가 크리스 손에 들린 종이를 낚아채 갔다.
“어!”
종이 속 내용을 확인한 사제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암호인가.”
종이엔 숫자 16개가 불규칙하게 나열되어 적혀있었다.
“이걸 누구한테 전해주라 했다고?”
“예.”
잠시 고민하던 사제가 말했다.
“모두 대기.”
부하들을 멈춰 세운 사제가 종이를 쥐고 조금 떨어진 장소로 이동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예. 예. 장지후가 크리스티안에게 뭔가 암호가 적힌 종이를 주고 누군가에게 전해주라고 했다 합니다. 예. 어떻게 할까요.”
한참 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의 말을 경청하던 사제가 말했다.
“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를 마치고 돌아온 사제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급한 임무가 있었으면 진작 말씀하셨어야지요.”
“아하하. 대피소로 바로 가는 줄 알아서...”
“그럼 저희는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이 근방은 안전하니 먼저 대피소로 가시지요.”
“예. 여기까지라도 감사합니다.”
허리를 꾸벅 숙이고 인사한 크리스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사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뒤를 밟아. 접선 책이 있는 것 같다.”
사제들이 자신을 미행하는지 꿈에도 생각 못 한 크리스가 장터 한구석에 도착해 콧노래를 불렀다.
“여기 있으면 나한테 다가올 거라 했는데.”
그렇게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하암.”
길게 하품을 한 크리스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왜 이렇게 안 오지?”
“어떻게 된 거지?”
미행을 하던 사제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우리가 숨어 있는걸 눈치챈 건가.”
급한 임무라면서 한 시간이 넘도록 접선 책이 나타나지 않다니.
그때 크리스가 한차례 한숨을 쉬고 어디론가 이동하자 부하가 사제에게 말했다.
“상급 사제님. 어떻게 할까요.”
“음...”
원래 계획대로라면 크리스가 대피소에 도착하기 전에 신변을 확보하여 초능력자들 귀에 아무런 정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비밀 장소로 납치.
고문과 함께 교화작업이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저 암호문 때문에 계획을 수정한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데리고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아. 나가자.”
어디론가 향하던 크리스의 눈앞에 아까 만났던 사제들이 다시 나타났다.
“어? 금방 오셨네요?”
사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하하. 그나저나 어디 가십니까?”
“저희 집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사제가 살짝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이대로 보내면 너무 섭섭할 거 같군요. 김상식 주교님을 수행한 분께 자그마한 보답을 하고자 하니 따라오시죠.”
사제의 말에 크리스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보. 보상이요?”
“예. 무기면 무기, 식량이면 식량. 원하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우와.”
하지만 신나서 방방 뛰던 크리스가 이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어쩌죠. 김상식 주교님이 만약 접선자가 한 시간 넘게 나타나지 않으면 곧장 집으로 가 대기하라고 하셨는데.”
“...집으로 가라 말씀하셨다고요?”
“예. 집에서 꼼짝 말고 대기하라고요. 절대 다른 곳에 가면 안 된다고...”
사제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른 접선 방법인가...”
“예?”
“아. 아닙니다. 그전에 그 종이 좀 다시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음... 뭐 이미 한번 보셨고 딱히 특별한 언급도 없었으니 상관없겠죠.”
종이를 건네받은 사제가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뭘요. 저 이만 가봐도 될까요?”
“그러십시오. 보상은 추후 따로 챙겨드리겠습니다.”
다시 크리스를 풀어준 사제가 부하에게 말했다.
“상단 좌측부터 13, 8, 21, 22 두 번째 줄은 중간에...”
사제의 말을 받아적은 부하가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암호는 상부에 넘기고 우리는 저자의 집 근처에서 접선자가 오는지 숨어서 기다린다.”
“그럼 교화는...”
사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자가 사는 소형 대피소는 장터에 가까운 곳이야. 한 달 넘게 걸리는 교화작업을 하기엔 너무 눈에 띈다. 일단 감시만 해.”
-무슨 암호를 남기신 겁니까? 아. 중요한 거라면 말씀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운전을 하며 말했다.
“뭐긴 뭐야. 페이크지.”
어차피 크리스는 대피소에 두고 온 가족 때문에라도 돌아갈 수밖에 없다.
라오의 대응이야 뻔하지.
감금 교화.
간단하지 않나.
하지만 여기에 뭔지 모를 암호가 더해진다면?
“원래 거짓말은 9의 진실 속에 1을 숨기는 거야. 대놓고 수상한 걸 투입하면 크리스를 함부로 하지 못하겠지.”
나를 안내해준 데에 대한 사소한 보답 겸 라오에게 먹이는 작은 엿이다.
골머리 좀 썩어보라고.
“그나저나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리네.”
도로에 널브러진 차를 밀어내며 가다 보니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때 내 몸 안에 있던 리틀이가 살짝 움직였다.
-꿈틀.
“응?”
일정한 방향으로 조금씩 꿈틀거리는 꿈틀이.
마치 무언가에 끌리기라도 무성한 숲을 향해 계속 조금씩 움직인다.
“뭔가 있나?”
나는 차량용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난데.”
-예.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9시 방향에 뭔가 있는 거 같다.”
“장지후가 탄 걸로 추정되는 차량 5대 발견.”
숨어있던 사제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북쪽 방향으로 이동 중... 자. 잠깐.”
갑자기 차가 멈춰 서자 당황한 사제가 말했다.
“뭐지. 갑자기 멈춰섰다. 어...?”
그때 한 차량 위에 갑자기 거대한 스파크가 생겨났다.
사제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동료들에게 외쳤다.
“피. 피해!!”
사제를 일거에 제압한 로이의 부하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냥? 감?”
지금도 리틀이가 제압된 사제들을 향해 계속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혹시 배고파서 그래?”
이 사제들 신성력이 먹고 싶어?
오냐.
간만에 식사다.
나는 사제들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내가 내린 힘. 내가 다시 가져가마.”
“아. 안 돼!!”
간단한 식사를 마친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걸로 6명도 구원되었군.”
6명의 사제가 지니고 있던 신성력과 연결 끈을 모두 흡수해버렸다.
“으으윽!! 크아아악!!”
크리스 때와는 다르게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제들.
“새 인생 신나게 살아보라고.”
이들은 교화에서 벗어나 좋고 나는 신성력을 흡수해서 좋고.
“그나저나 대단하네.”
이 정도 초능력자는 내가 본 초능력자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하하. 감사합니다.”
“아무튼 사제 위치도 파악이 가능할 줄이야.”
리틀이 너 만능이구나?
-꿈틀.
“적은 양이긴 하지만 신성력이 모이니 기분은 좋다.”
“이제 가시지요.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어서 가자.”
시간이 흐를수록 사제를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간다.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런 거 같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우리가 웜홀을 향해 달리는 건 이미 들통났다.
-사방에서 포위당하기 전에 슬슬 흩어져야 할 거 같습니다.
“...과연 속을까?”
-속도록 만들어야지요.
“후. 나를 위해 희생하겠다는데 이름 정도는 알아야지. 이름이 뭐야?”
-루크입니다.
나머지 3명의 이름도 모두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모두 기억해 주겠어. 루크 난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지?”
그러자 루크가 갑자기 엉뚱한 말을 했다.
-조수석 수납함을 열어보시지요.
그의 말에 따라 조수석 수납함을 보니 작은 지도가 한 장 들어있었다.
-위치가 표시되어 있을 겁니다. 거기로 가시면 됩니다.
위치를 확인한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 잠깐. 여기는...”
추적대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10성자의 일인이라 불리던 김석주 주교.
늘 장지후를 형님으로 모시던 김석주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지후는 지금 웜홀로 도주하고 있다.”
김석주에게 레벨을 올리고 스스로를 교주에 임명한 라오의 명령은 절대적.
설사 과거 형님으로 모시던 존재라 해도 마찬가지다.
라오의 심기를 어지럽힌 장지후는 그에게 악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5갈래로 나뉘었으니 추적대를 다섯으로 쪼갠다.”
김석주의 말에 사제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김석주 주교님. 다섯 모두를 완벽히 포위하기엔 사제 숫자가 부족합니다.”
“더 동원할 수는 없나?”
“이미 한계입니다. 더 동원했다간 초능력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김석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경로상 웜홀에 가장 가까운 차량에 집중... 아니 간악한 장지후라면 반대의 경우도 고려해야겠지. 충분히 속이고도 남을 테니까.”
잠시 고민하던 김석주가 말했다.
“일단 가장 단거리 경로로 달리는 차량과 세 번째는 포위시키고 나머지는 추적대를 붙이는 정도로 간다.”
사제가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차는 어떻게 할까요?”
5대의 차량 중 유일하게 웜홀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달리는 차.
“추적대만 붙여.”
설사 저 차량에 진짜 장지후가 타고 있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웜홀에서 반대로 멀어지는 사이 나머지 차가 하나둘 포위되어 잡힐 거고 그러는 사이 방벽의 방어는 더욱 두터워진다.
한마디로 저 차에 장지후가 타고 있는 건 시간을 버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설사 장지후가 정말 저 차에 타고 있다 한들 나머지 4차가 잡히고 나서 혼자 뭘 할 수 있겠나.
“모두 움직여. 라오님의 지엄한 명령이다. 장지후를 생포해라.”
< 15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