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교단 상태창의 신성력이 계속해서 올라간다.
“......”
라오가 이를 갈며 말했다.
“장지후...”
정확히 자신의 의도와 반대로 움직이는 장지후.
그때 라오의 머릿속으로 장지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성력이 모자란 거 같아서 보태준다.
라오가 화를 내며 외쳤다.
“장지후! 내 말에 답해라!!”
라오도 알고 있다.
저런 소통방식이 얼마나 비효율적이며 많은 신성력이 소모가 되는지.
하지만 이것 말고는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풀 방법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얌전히 나에게 협력해라! 종말을 막아야한단 말이다!”
하지만 장지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젠장!!!”
한참을 씩씩거리던 라오가 말했다.
“장지후. 듣고 있는 거 안다. 나와 거래하자. 나와 대등한 파트너로서 함께하는 거다.”
‘뭐래. 그런 놈이 내 몸을 빼앗아?’
“내가 말했었지. 신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그랬지.’
“신의 말에는 신격이 실려 있다고도 했었고.”
라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신이 거짓말을 하면 신격에 손상이 온다. 너도 느꼈겠지만 난 지금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흠.’
뭔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여?
“난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그 거짓말 한 번에 간신히 유지중인 신격이 무너질 수도 있다 이 말이다. 너한테 모든 걸 솔직히 말하는 이유는 내가 종말을 막을 거란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다.”
라오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시간이 없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어.”
‘알아.’
대충 리틀이랑 놀다보니 조금씩 이 구조가 이해가기 시작했다.
라오와 로이 둘 다 진정한 종말을 이야기했고 그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닐 테지.
하지만 난 라오에게 몸을 빼앗기며 정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거짓말을 하진 못해도 돌려서 말할 수는 있다는 거지.’
자신의 진의를 숨기고.
‘뭐. 다급해지니 이제 와서 하는 말에 설득될 만큼 순진하진 않아서. 리틀아. 계속 뱉어.’
그날부터 나는 철저히 라오가 원하는 반대로만 움직였다.
라오가 방법을 바꿔 신도들에게 기도를 지시하면 신성력을 흡수하고 다시 사제만 기도하라 지시하면 신성력을 토해내고.
그렇게 나와 라오의 줄다리기는 그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라오님? 라오님?”
“어. 어?”
김인호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많이 초췌해지셨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라오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어. 피곤해서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아. 예.”
“나가봐.”
라오의 말에 김인호가 서류를 흔들며 말했다.
“보고는 아직 하지도 않았습니다만.”
라오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해봐...”
“이번에 다시 신도들의 기도 재개를 지시하셨는데. 너무 자주 지시가 바뀌며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라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하라고 해.”
김인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라오신이 또 뭔가 했습니까?”
“......말할 수 없어.”
김인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대체 그 신은 왜 그런답니까?”
“낸들 알까.”
“신이면 신답게 중심잡고 조용히 있어야지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거 같죠?”
라오는 잠시 울컥했지만 조용히 말했다.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겠지.”
김인호가 툴툴 거리며 말했다.
“뭔 놈의 신이 그렇게 욕심이 많아요.”
“그걸 내가 어떻...”
라오가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욕심...”
“예. 욕심이요.”
“욕심이 많다라...”
김인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원래 모든 걸 가진다는 건 불가능한 법이죠.”
김인호를 돌려보낸 라오가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
라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완벽한 재기를 위해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어.”
라오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건 신답지 못했다. 인간의 잔머리에 휘둘리는 신이라니. 내가 어리석었어. 장지후.”
라오가 거울을 노려보며 말했다.
“보여주마. 신의 진정한 힘을.”
‘또 뭐하려는 거야?’
다시 신도들에게 기도를 재개하자 나는 다시 리틀이를 이용해 신성력을 뽑아 먹고 있었다.
‘뭔가 결심이라도 한 건가?’
이전과는 다른 라오의 각오어린 표정을 보니 조금씩 불안감이 차올랐다.
‘리틀아. 더 열심히 빨아.’
-꿈트으으을!!
‘이 새끼가 뭔가 하려는 거 같다. 우리도 좀 더 빨리 움직이자.’
그날 이후로 기도를 시켰다 금지시켰다 갈피를 못 잡던 라오가 완전 처음으로 돌아갔다.
신도들을 독려해 더 많은 신성력을 모으는 것.
또한 신성력 소비를 극단적으로 절제한다.
‘분명히 나를 상대로 이런저런 방법을 썼던 건 원하는 양의 신성력을 모으기가 힘들 거 같아서 아니야?’
그런데 갑자기 신성력을 꾸역꾸역 모으기 시작한다.
‘사제들 만이라면 모를까 아직 신도들 신성력 생산량에 도달하려면 멀었네.’
교단 상태창에 하루하루 신성력이 쌓여만 간다.
“......”
또한 평소 거울을 보며 나에게 말을 걸던 라오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더 찝찝하다.
‘리틀아 힘내!! 마구 빨아 먹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리틀이를 독려해 더 빨리 신성력을 뽑아 라오가 신성력을 쌓을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것 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계속해서 신성력을 빨아먹은 리틀이의 덩치가 이제 처음 느꼈던 큰 꿈틀이에 육박했다.
그리고.
‘얼마 안 남았어!’
라오의 상태창에 신성력이 쌓이는 속도가 점점 더 느려졌다.
그만큼 리틀이가 빨아먹는 양이 늘었다는 뜻.
조금만 더 양이 늘면 이젠 생산량을 넘어 모든 걸 빨아먹을 수 있게 된다.
“......”
상태창을 바라보던 라오가 말했다.
“장지후.”
얼마만일까.
시종일관 나를 무시하던 라오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게.
“너는 대단하다.”
‘뭐?’
라오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처음 너에게 상태창을 줬을 때만 해도 이정도로 잘해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라오가 거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18억의 신도와 대피소. 괴물 몰이사냥 시스템까지. 정말 모든 게 착착 갖추어져갔지.”
‘너도 인정한 거네. 내가 잘 했다는 거.’
그런 놈이 왜 욕심을 부려서 내 몸을 차지하고 통제하려고 들어?
그냥 나한테 맡기고 넘어갔으면 되잖아.
“뒷세계 인물들 위주로 전도해나갔던 게 주요했다. 만약 일반인을 위주로 했다면 진즉에 기존 주류 세력의 표적이 됐을 거니까. 그리고 그 주류 세력이 천둥교를 견제의 대상으로 여길 때쯤엔 이미 건드릴 수도 없을만한 힘을 갖춘 상태였고.”
‘암. 그렇고말고.’
사실 노린 게 아니고 되는대로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만 어쨌든 결과는 좋잖아?
“하지만 그 모든 건 나의 것이 아니었다.”
라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넌 모를 거다. 내가 이 상태창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뤘는지. 이 상태창은 내가 가진 마지막 힘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지탱할 수 있도록 해준 마지막 희망. 네놈은 그걸 짓밟았다.”
라오가 광기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넌 내 희망을 도둑질 한 거다. 장지후.”
‘역시 기도 대상에 따라 뭔가가 다른가 보구나.’
그저 변명거리를 생각하다 내 별명이라고 했던 게 여기까지 왔다.
“내 모든 걸 훔쳐가려는 널 바라보며 내가 하루하루 얼마나 큰 절망 속에서 버텨왔는지 아나?”
‘어...난 몰랐지.’
라오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거대해져만 가는 신성력들. 하지만 동시에 나의 통제에서 점점 더 멀어져갔다. 분명 내 것이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하는데...”
라오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은 남아있었다.”
‘사제들...’
라오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상태창이란 시스템에 완전히 동화된 사제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신성력은 분명 나를 위한 신성력 이었으니까.”
‘왜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전부 다 하는 거지?’
물론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라오가 나를 경계하고 초조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 아닌가.
불안감이 차오른다.
본래 악당들은 자신의 계획이 완전히 완성됐을 때 나불나불 떠드는 법이니까.
“일반 신도들에 비하면 쥐꼬리였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그 신성력을 모았다. 조금씩 조금씩. 반격의 때를 기다렸다.”
라오가 양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그때가 왔다. 너를 밀어내고 상태창이 귀속되어있는 이 몸을 차지하는 것. 그리고 성공했다. 하지만 넌 여전히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아 나를 괴롭혔지. 이제 이 악연도 끝이다.”
라오가 교단 상태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을 수 있는 최대치의 신성력을 모았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끌면 역으로 신성력이 줄어들겠지.”
바로 그게 내 목표 아닌가.
“처음부터 너무 완벽함을 바란 건 내 욕심이니. 이로 인해 진정한 현신은 늦어지겠지만 나는 라오로서 이 세상에 완전히 뿌리내린다.”
라오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현신.”
‘뭐? 현신?’
벌써 현신을 할 만큼 신성력이 모였다고?
분명 매일 모자르다 모자르다고만 하지 않았었어?
그때 리틀이가 달라붙어있던 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리틀이에게 먹힌 게 아니었다.
‘서. 설마 현신에 소모되고 있는 거야?’
저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는 덩어리가 순식간에 반토막이 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라오의 온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아...’
리틀이 컨트롤에 익숙해지고 신성력에 민감해진 나이기에 느껴진다.
라오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격의 위력이.
라오가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얼마 만에 느껴보는 힘인가.”
라오의 손에서 번갯불이 번쩍인다.
“나의 권능. 나의 힘.”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상태창에 쌓아둔 힘이 라오를 진정한 신으로 각성시켰다.
하지만 이내 라오가 처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완전한 힘을 되찾기엔 신성력이 한참이나 모자라는 구나.”
‘이게 완전한 힘이 아니라고?’
평소 라오를 괴롭히며 나도 모르게 라오를 경시해온 게 아닐까.
라오가 자신의 목에 걸린 기계 장치에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지금 떼어내면 나중이 문제이겠군. 일단은 급한 것부터 해결해볼까.”
라오가 거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지후. 네 놈의 최후다.”
느껴진다.
라오의 힘이 전신으로 뻗어 나가는 게.
몸 전체를 스캔하듯 조여 온다.
‘피해!!’
덩어리에 붙어 신성력을 흡입하던 리틀이를 황급히 떼어내 라오의 힘으로부터 멀리 이동시켰다.
“소용없다.”
부질없는 발악이었을까.
라오의 힘이 전신을 잠식해가며 리틀이가 피할 곳이 점점 줄어든다.
“너와 너의 신성력을 함께 제거해주마.”
‘어. 어떻게 해야 되지?’
본능적으로 리틀이로는 저 강대한 힘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게 느껴진다.
리틀이는 내 유일한 희망.
절대 잃을 수 없다.
‘내 몸인데 내가 피할 곳이 없다고?’
이대론 안 된다.
시간이라도 끌어야 하는데.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리틀이를 움직이는 것 뿐.
그때 리틀이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냐며 말했을 때 리틀이가 반 토막이 났던 게 생각이 났다.
분명 그 신성력이 사라진 게 아니라면 어디론가 이동했다는 뜻인데.
“저항하지 마라. 운명을 받아들여라.”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라오는 전능하지 않아.’
정말 완벽하게 힘을 회복했고 영화 같은 곳에서 표현하는 신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면 손짓 한 번에 내가 소멸했겠지.
‘지금 라오가 부리는 힘은 상태창 스킬과 달라.’
교단 상태창은 신성력을 소모해 스킬을 시전 한다는 룰에 묶여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상태창의 신성력은 스킬 외엔 사용할 방법이 없다는 말.
하지만 지금 내 온몸을 조여 오는 저 힘은 라오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그건 리틀이도 마찬가지잖아!’
역시 죽으나 사나 리틀이 밖에 답이 없다.
‘리틀아!! 방법 없어? 저건 못 이겨!!’
-꿈틀.
< 14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