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꿈틀아 움직여!’
꿈틀이의 정체가 신성력임을 알아챘지만 아직도 꿈틀이란 별명이 입에 붙는다.
-꿈틀, 꿈틀.
그리고 조금씩 계속해서 흡수되는 신성력.
나는 라오에게 한방 먹일 생각에 흥분했다.
‘내가 지옥 끝까지 쫓아간다고 했지? 악바리가 뭔지 보여주마.’
그렇게 계속 꿈틀이를 통해 신성력을 흡수하는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신성력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거지?’
상태창을 빼면 난 사실상 그냥 일반인 아닌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라오의 신성력을 중간에서 스틸한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짜릿함.
“상태창.”
라오가 교단 상태창을 키는 순간 나는 흡수를 멈추었다.
“흠...”
‘눈치 못 챘겠지?’
아직 내가 흡수할 수 있는 신성력은 아주 소량이다.
하루에 18억 명이 180억의 신성력을 공급하는데 비해 내가 흡수하는 신성력의 양은 바다에서 물 한바가지 퍼는 수준.
“아직까진 순조롭군.”
‘역시.’
라오가 상태창을 닫는 걸 확인하자마자 나는 꿈틀이를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먹자! 먹어! 전부 먹어치우는 거야!!’
조금씩 꿈틀이를 움직이는 노하우가 쌓여간다.
‘흡!’
정신을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꿈틀이의 움직임이 격렬해지고 흡수량 또한 많아진다.
한마디로 난 지금 꿈틀이를 조종하는데 최적화된 상태라는 뜻.
‘모인다! 모인다!’
그런데 이렇게 신성력을 흡수하면 뭐가 달라지는 거지?
대충 못해도 수천은 흡수한 거 같은데.
제일 처음 흡수했을 때를 1이라고 치면 지금 흡수량은 10에 가까웠다.
라오가 상태창을 보고 있을 때는 흡수를 못해서 정확한 양까진 파악할 수 없으나 대충 느낌상 그렇다.
‘이걸 어디다 쓰는 걸까?’
상태창이 있을 때야 사제를 임명하고 온갖 스킬을 사용하는 등 여러 방면에 쓰였던 신성력인 만큼 분명 모아두면 어딘가 쓸데가 있을 텐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쳤다.
‘사제 임명! 합일! 가호!’
호기롭게 외쳤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쩝. 그럼 그렇지.’
살짝 기대했지만 역시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라오가 상태창을 켜는 때만 빼면 꿈틀이와 씨름하기 바빴으니까.
마치 신성력에 중독되어 홀리기라도 한 듯 난 모든 정신을 꿈틀이에 집중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흡!’
-꿈틀. 꿈틀.
그런데 바로 그때.
‘어?’
꿈틀이와는 다른 하지만 아주 아주 작은 새로운 꿈틀이가 내 몸 안에서 느껴진다.
‘오! 뭔가가 일어나긴 일어나네?’
흡수한 신성력 추정치가 수천을 넘어 수만에 이르렀을 때 생겨난 변화였다.
‘뭔가...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지는데.’
꿈틀이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작은 꿈틀이에선 뭔가 청량하고 아주 아주 친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넌 이제부터 리틀 꿈틀이다.’
예상컨대 꿈틀이로부터 흡수한 신성력이 뭉쳐서 생겨난 게 바로 리틀 꿈틀이 아닐까?
‘좋아! 계속 간다!’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간다.
“올해는 제법 알이 실하네.”
작물을 바라보던 농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놈 참 탐스럽다.”
동료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생활도 제법 익숙해졌지?”
“그러게 말이야. 2년 전만 해도 회사 다니던 내가 이렇게 농사를 지을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런데 그 소문 들었어?”
농부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소문?”
“식량 수급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 누에도 키운다던데?”
농부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에? 설마 그걸로 비단 만들려고?”
“그렇다는 거 같던데?”
“왜? 섬유 공장도 확보했을 거 아니야. 공장 돌리면 되는 거잖아.”
농부의 말에 동료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게 말처럼 쉽겠어? 공장은 가만두면 움직이나? 재료가 있어야 만들 거 아니야.”
“아...”
현대인이 입고 쓰는 모든 대부분의 물건은 화학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당연히 화학 공정에 필요한 화학 약품 역시 제조과정이 필요하기에 설사 기술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치더라도 이제 겨우 1차 산업인 식량을 생산하는 단계의 현 인류가 상용화를 시키기까진 무수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건 그렇지.”
동료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내가 누리던 삶이 그렇게 많은 과정을 거쳐 오는 건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플라스틱, 옷감, 하다못해 목재까지.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이룩해온 인프라가 통째로 무너진 상황에서 기술만 가지고 구현해내기란 버거울 수밖에.
“기다리면 언젠가 되겠지.”
“그렇지.”
농부가 황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라오님만 믿고 따르면 다시 옛날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아니면 다음 세대. 그도 아니면 다다음 세대라도.”
“그래. 모두 라오님 덕분이지.”
농부와 동료가 무릎을 꿇고 경건히 기도를 올렸다.
“라-오.”
그렇게 인류는 괴물을 몰아냄과 동시에 수천 년에 걸쳐 완성한 문명을 초기단계부터 다져나가고 있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비교적 면적이 작은 나라 몇몇은 이미 국토를 대부분 회복시켰습니다.”
김인호는 라오에게 보고를 하며 말했다.
“또한 41개국은 이제 식량을 넘어 다른 1차 생산품까지 범위를 확대해나갈 예정입니다.”
라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 좋아. 밥만 먹고 살수는 없잖아.”
“브라질에선 본격적으로 철광석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유전 가동을 하지 못해 제철소를 돌릴 석유가 부족합니다.”
철광석은 제철소를 통해 강철로 만들어야만 사용이 가능한데 제철소를 돌릴 방법이 없다.
종말 전이라면 중동에서 석유를 수입해오면 간단했을 일이지만 현재는 아니었다.
거기다 규모의 문제도 있었다.
“게다가 워낙 철광석 생산량이 적어 제철소의 용광로를 가동시키면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거 같아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김인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장은 제철소를 돌릴게 아니라 옛날처럼 대장장이를 양성해 소규모로 작업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기껏 제철소까지 확보해놓고 결국 내놓는 답은 대장장이를 통한 제철.
현대 문명의 총아인 공장들은 재확보 했으나 결국은 과거의 기술을 재활용 할 수밖에 없는 게 인류가 처한 현실이었다.
“네 의견인가?”
“전문가들 의견입니다.”
“그럼 정확하겠지.”
라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걸음에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천천히 차근차근 단계를 밝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야.”
“다만 대장장이를 이용해 철광석을 제련하면 아무래도 강철의 품질이...”
라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가르쳐줄 사람도 없어서 자료로 보고 주먹구구식으로 하나둘 익혀가며 진행하기 때문에 질이 좀... 생각보다도 많이 떨어질 거 같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떨어질 거 같아서 그러는 거야?”
김인호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초창기엔 써먹기도 힘들 수준 아닐까요. 아무리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움직이는 건 사람이니까요.”
숙련은커녕 책으로 제련을 비운 대장장이의 손에 탄생한 강철 안엔 얼마나 많은 이물질이 함유되어 있을까.
라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일단 가능하다는 게 중요한 거지. 게다가 기술은 이미 확보되어 있으니 대장장이들이 숙달만 되면 그래도 금방 쓸만한 게 나오지 않겠어?”
김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신 말씀.”
“한국은 어때?”
“폐광을 개발 중이긴 한데 마찬가지로 생산량이 형편없습니다.”
“그래도 해.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알겠습니다.”
“나가봐.”
“예.”
김인호를 내보낸 라오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되지.”
정말 목에 장착된 기계 장치와 김인호의 손에 들린 키만 아니면 벌써 본격적으로 움직였을 거다.
라오는 정말 목에 걸린 기계장치를 풀기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모두 실패였다.
김인호는 잠잘 때도 초능력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자고 일어나 있을 땐 일과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라오와 함께 지낸다.
김인호가 장지후에게 부여받은 권한은 정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수준이었다.
평소 자신과 다르면 주저 말고 누르라니.
“젠장.”
장지후가 몸 안에 갇혀 아무것도 못하고 있지만 그건 라오 본인 또한 마찬가지.
“시간이 부족...”
라오가 다급히 말을 멈추었다.
“......”
라오 역시 장지후가 자신이 보는 것을 공유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몸도 묶이고 말도 묶이고.”
라오는 장지후를 경계하여 말도 함부로 못하고 있었지만 장지후는 전혀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
‘후아아아!!!’
-꿈틀. 꿈틀!
-꿈틀!
큰 꿈틀이에서 뽑아낸 신성력을 작은 꿈틀이가 흡수했다.
신선 노름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냥 꿈틀이를 움직여 신성력을 뽑으면 이상하게 다른 일엔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별것도 아닌 게 왜 이렇게 재미있고 신나는지 모르겠다.
‘어이구. 우리 리틀 꿈틀이 많이 컸네.’
신성력을 뽑아주면 줄수록 리틀 꿈틀이가 내 몸 안에서 커져가는 게 느껴진다.
큰 꿈틀이는 내가 온 신경을 집중해봐야 일부가 움직일 뿐이지만 리틀 꿈틀이는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뭐 그래봐야 꿈틀이지만.
아무튼 키우는 재미가 있다고 해야 하나.
‘어서 쑥쑥 커라. 신성력 많이 먹고 쑥쑥 커.’
나는 리틀 꿈틀이를 늘렸다 줄였다하며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아무것도 못하네.’
어리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때.
마치 리틀 꿈틀이가 자기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뭐. 뭐야!’
그렇게 한참을 부들부들 떨던 리틀 꿈틀이의 절반이 쩍 갈라지더니 몸에서 빠져나가는 게 아닌가.
‘아. 안돼! 리틀이가 반 토막이 났어!’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던 건데!!
리틀아! 미안해! 아빠가 심한 말해서 미안해!
나는 얼른 큰 꿈틀이를 쥐어짜며 말했다.
‘신성력 내놔! 우리 리틀 꿈틀이 마른 거 안쓰럽지도 않아?! 얼른 먹고 살찌워야 된다고!’
그리고 그 시각.
“휴.”
칠레의 생존자 중 한명인 발디아는 폐허에서 수거한 수집품을 들고 대피소로 돌아왔다.
“오늘도 살아남았네.”
동료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천둥교 원정대는 어디쯤이래?”
천둥교 원정대를 기다리는 건 모든 생존자들의 공통된 희망이었다.
주변 괴물을 정리하고 최소한의 삶을 넘어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만들어주는 천둥교 원정대.
“여기까지 오려면 멀었지.” 그들의 대피소가 위치한 곳은 칠레 최남단.
브라질의 원정대가 오려면 수많은 나라를 거쳐야 했다.
“기다리자. 언젠가는 오겠지.”
발디아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사실 지금 대피소 만들어진 것만 해도 어디야. 그전에 집구석에 숨어있던 거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지.”
“그건 그래.”
“아무튼 오늘 수거한 게...”
수거품을 정리하던 발디아의 손이 멈춰 섰다.
“왜 그래?”
“어...”
발디아가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이거 뭐야?”
“뭔 소리야?” “이거 안보여? 이거?”
동료가 발디아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헛걸 봤겠지.”
“그. 그게 아니라...”
발디아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 초능력자로 각성했는데?” 종말이후 거짓말처럼 뚝 끊겼던 초능력자 각성.
“초. 초능력자? 그거 각성자 뜸해진지 엄청 오래 됐었잖아?”
“그. 그러니까. 나도 떨떠름해서. 정말 나 각성한 거야? 초능력자로?”
그렇게 칠레의 구석에서 다시금 초능력자의 각성이 시작되었다.
장지후의 리틀 꿈틀이가 반 토막이 되던 바로 그 순간.
< 14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