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이 개자식 나를 속였구나!!’
레벨업을 하는 순간.
그간 나에게 강림을 당했던 사람들처럼 난 내 몸의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지시하신 데로 사제 배치를 완료했습니다.”
김인호가 여느 때처럼 내 지시를 마치고 나에게 보고를 올린다.
‘당장 키를 눌러 폭파 시켜!!’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생각과 달랐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이 새끼 나 아니야!! 진짜 라오라고!!’
라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돌아가서 쉬어.”
“아닙니다. 라오님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게 제 임무 아니겠습니까.”
김인호가 자신의 품을 툭툭 치며 말했다.
“설마 저를 떨어뜨리시려는 겁니까? 어허. 아니시겠지요?”
김인호가 장난 식으로 하는 말에 나는 간절히 외쳤다.
‘그래! 당장 터뜨려 버려!!’
라오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쉬라고 하는 것도 위험한 건가? 너무 빡빡한 거 아니야?”
김인호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하라고 하신 건 라오님이십니다.”
“그렇지. 내가 지시했지. 잘하고 있네. 역시 김인호야.”
“저만 믿으십시오!”
“그럼 옆방에 가있어. 나도 개인생활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알겠습니다.”
김인호를 내보낸 라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귀찮군.”
귀찮지?
답이 안보이지?
나도 그래서 여지껏 못 풀고 있던 거다.
나는 라오에게 한방 먹였다는 생각에 외쳤다.
‘꼴좋다 이 씹새끼야!!’
“장지후...건방진 놈. 감히 신을 협박하고 통제하려 하다니.”
‘이 새끼 진짜 성격 나오네. 존나 온화한 척 다하더니. 꼴좋다!’
그때 라오의 방문이 열리며 기계장치 해체 연구를 지시 받은 사제가 들어왔다.
“라오님.”
“알아봤나?”
“예. 그런데...”
사제가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터지는 건 물론이고 엑스레이도 먹히지 않습니다. 내부 구조를 알 수 없어 섣불리 해체를 시도했다가는...”
당연하지.
애초부터 라오에게 완전히 장악 당했을 경우를 상정하고 만든 물건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 현시점에서 쓸 수 있는 모든 기술이 동원된 최첨단 자폭 장치.
비록 몸의 통제권을 잃었지만 내가 해둔 조치는 무의미하지 않았다.
“당분간은 장단에 맞춰줘야 한다는 말인가.”
라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젠장.”
라오가 답답해 하니 막힌 속이 뻥 뚫린 기분이다.
강림 당하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마치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와 촉각과 감각을 공유하고 별도로 사고도 가능하지만 말 그대로 공유만 되는 느낌.
분명 평소와 마찬가지로 사제들을 지휘하고 김인호 그리고 박종문과 함께 대책을 논의 하지만 저 모든 행동은 내가 아닌 라오의 의지다.
“새로운 생존자 그룹을 만났는데 합류를 거부한다고 합니다.”
“......”
라오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이제 교화 취소 스킬도 생겼으니 강제 교화를...”
김인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실 리 없겠죠. 소모 신성력이 많아 당장 사용할 수도 없고 사람들의 자율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시는 라오님 이시니까요.”
잠시 말문이 막힌 라오가 김인호가 보이지 않게 이를 갈며 말했다.
“...당연한 소리. 인류의 힘은 그들 간의 경쟁과 자율의지에서 나오니까.”
나에겐 사람들을 교화시켜야 다음 종말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 라오다.
하지만 라오의 목에 채워진 기계 장치가 라오를 강제로 평소의 나처럼 연기하도록 만든다.
“역시 라오님.”
“......”
내가 김인호에게 약속한 기계장치 해체 시점은 무려 모든 괴물을 말살한 뒤 권력을 내려놓고 은퇴할 때였다.
한마디로 최소 수십 년은 남았다는 말.
‘교화 취소는 없다.’
라오는 김인호에게 거짓말을 했다.
상태창에 새로이 생겨난 스킬은 교화 취소가 아닌 바로 현신과 교주 임명.
교주 임명이야 주교 임명 다음 단계라 생각되지만 현신이 문제다.
현신이 무엇이겠나.
‘라오가 현실에 강림한다는 뜻인가.’
지금 라오는 굳이 비유하자면 내 몸을 차지한 기생충이다.
그렇기에 내가 원래 가진 힘 이상은 사용하지 못해 목에 달린 기계 장치를 두려워하는 거다.
기생충은 숙주가 죽는 순간 같은 운명을 공유하니까.
하지만 현신은 다르다.
진정한 신으로서 현실에 나타난다는 것.
그때부턴 기계 장치 따위론 라오를 막아낼 수 없겠지.
‘그게 바로 네 목적이었나.’
현신 스킬을 통해 이 세상에 진정한 신으로서 강림하는 것.
‘그래서 나한테 그렇게 레벨을 올리라고...젠장!’
내가 멍청했다.
교화 취소라는 감언이설에 그리고 라오가 내 몸을 완전히 뺏을 수 없다는 착각에 너무 방심해버렸다.
하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라오는 어떻게 계속 강림을 유지하는 거지?’
내 강림 스킬의 한계는 5분.
그런데 레벨업을 기점으로 라오는 완전히 내 몸을 장악하고 또 유지했다.
게다가 두 번째 의문점.
‘왜 처음부터 내 몸을 차지하지 않은 거지?’
그때는 안 되고 지금은 되는 이유.
‘레벨업?’
모르겠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이제 와서 왜 라오가 지금까지 기다렸는지 알아서 뭐가 달라지나.
일단 내 몸의 통제권을 찾아오는 게 최우선이다.
‘절대 포기 안 해!’
라오에게 경고한 것처럼 어떻게든 저 씨벌놈 뒤통수를 날리고 지옥 끝까지 쫓아가 복수할거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형님!”
영국에서 대피소를 지휘하던 석주가 오랜만에 웜홀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이에요!”
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거 나 아니야! 석주야! 속지마!’
라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저야 잘 지냈죠.”
석주가 나에게 다가와 팔꿈치로 툭 치며 말했다.
“형님 안본 사이에 많이 늠름해지셨는데?”
라오는 여전히 웃는 낯을 유지했지만 그와 감정을 공유중인 나에게는 똑똑히 느껴진다.
석주의 행동으로 라오가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라오가 옆에 있는 김인호를 힐끗 보며 말했다.
“이 자식이. 어디 형님한테.”
그리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형제처럼 헤드락을 건다.
그래.
내가 저기 있었으면 저렇게 했겠지.
“아파! 형님! 놔줘요!!”
“시끄러 이 자식아.”
그리고 나는 나를 연기중인 라오와 석주를 보며 박탈감을 느꼈다.
‘...석주는 내 동생인데.’
나와 고아원부터 함께 해온 누구보다 믿음직한 동생.
그런데 그 동생이 나를 연기중인 라오와 형제의 우애를 나누고 있다.
내가 아닌.
허무하다.
‘설마...’
강림처럼 시간제한이 없기에 든 생각.
‘이게 교화인가?’
교화 당한 사람들 모두 지금의 나처럼 절망감에 빠진 채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와 다른 행동을 하는 걸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닐까?
가장 먼저 타겟이 됐던 깡패들은 교화를 당한지 이년이 넘었다.
‘이년 넘게 이런 상태로 있는다고...?’
끔찍하다.
교화를 위험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 이게 사람들이 당한 교화의 결과물이라면 나는 사람들에게 악마보다도 더한 짓을 한 거나 다름없다.
종말이라는 핑계를 무기로 삼아.
라오의 헤드락을 푼 석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웜홀 지도도 차근차근 완성되어가니 동생들 모두 모이는 건 시간문제네요. 아. 상식이는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상식이.
멍청하지만 순해빠진 상식이.
“통화해보니 덕칠이도 제법 리더 포스가 나던데요.”
동생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나에게 교화된 첫 조직원 덕칠.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 둘 언급되자 울컥했지만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립네.”
라오가 나를 대신하고 있으니까.
“그렇죠?”
“이일만 끝나면 은퇴하고 시골에서 같이 모여 북적북적 살아보자.”
‘이익!!’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은퇴 후의 삶.
“햐. 그날이 오기는 할까요?”
라오가 자신의 가슴을 내려치며 말한다.
“나만 믿어. 나 라오야.”
“저야 뭐. 형님 말이라면 무조건 믿죠.”
나는 속으로 절규했다.
‘석주야! 그거 나 아니야!!’
아무나 좋으니 내가 아닌 걸 제발 알아차려줘! 제발!!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라오는 여전히 기계 장치를 차고 수백만 사제를 진두지휘하며 괴물들을 퇴치해 나간다.
그러는 중에도 틈틈이 김인호의 눈을 피해 사제들에게 계시 스킬을 사용하여 비밀리에 지시를 내렸다.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일부 생존자들을 빼돌려 교화시켜라.”
라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더 많은 사제들이 필요하다.”
계시 스킬을 마친 라오가 방에 설치된 거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지후.”
나에게 말을 거는 라오.
“궁금한가? 내가 왜 네 몸을 차지했는지?”
나는 격렬하게 외쳤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유라도 알자!!’
내 생각이 라오에게 닿았을까.
라오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정말로 긴 세월이었다.”
라오는 웃음기 띈 입으로 말했다.
“길고도 긴. 어둡고도 어두운.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눈을 뜬 라오가 거울을 보며 말했다.
“너는 언제나 말했지. 기다림에 지쳤다고. 하지만 너의 기다림은 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홀로 절망만이 가득한 곳에서 아득히 긴 세월을 견뎌온 나에 비하면 말이야.”
나는 외쳤다.
‘이 새끼는 여기까지 와서도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있어!’
“거기서 지켜봐라. 너의 신이 만들어갈 영광만이 가득한 찬란한 세계를!!”
라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러니 장지후.”
라오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거기서 얌전히 있어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아무것도 없으니까.”
라오의 말은 진실이었다.
내가 하는 모든 발악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강림! 계시!’
언제나 나의 손발이 되어주던 스킬들이 발동조차 하지 않는다.
‘으으.’
사람은 알게 모르게 살아가며 많은 행동과 행위를 한다.
숨을 쉬고 생각을 하고 밥을 먹고 대화를 하고.
하지만 현재 난 생각을 제외한 모든 게 거세된 상태.
‘생각하자.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나지?’
생각나는 게 아무것도 없다.
교단 상태창이 생겼다는 것을 제외하면 난 그저 일개 깡패일 뿐.
‘...정말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끝인가?’
“장지후.”
가끔 라오가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어차피 예견된 결과다. 너는 나를 위해 신도를 모으고 내 충실한 사도가 되는 것. 네가 종말의 꿈을 꾸고 교단 상태창을 부여받았을 때 이미 끝난 거지.”
라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현신했을 때 너를 내 제 1사도로 임명시켜주마. 그동안 세운 공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현신...’
현신의 소모 신성력은 ???로 표기되어 있었다.
라오가 양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무 억울해하지 말아라. 내가 현신하는 그날. 지구의 모든 인간은 무릎을 꿇고 나 위대한 천둥신 라오의 귀환을 환대할지니. 내가 직접 종말을 막는다.”
‘뭐?’
이게 뭔 소리야.
라오가 현신하는 게 종말이 아니었어?
악신 라오가 지상에 강림해 인류를 전멸 시킨다 뭐 이런 게 아니라고?
라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라오를 믿어라. 종말을 막는 건 바로 나다.”
< 13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