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뭐?”
내가 잘못 들었나?
“뭐가 어쩌고 어째?”
마크가 당황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핵 벙커 사람들을 교화시키면 요원하나 찾는 것쯤은 간단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빙빙 돌아서 가시는지 여쭤보는 겁니다.”
나는 멍하니 마크를 바라보다 말했다.
“너 혹시 돌았니?”
살다 살다 이런 질문은 또 처음이네.
“전 아주 멀쩡합니다.”
“멀쩡한 놈이 왜 교화를 시키지 않냐고 물어? 그것도 나한테?”
“세상은 괴물로 가득 차있습니다. 겨우 500명을 희생시켜 5만의 초능력자를 얻는 것. 어느 쪽이 합리적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와.
진짜 참신하게 미친놈이구나.
“그래. 그게 합리적이지.”
“그렇죠?”
“그런데 나 그렇게 합리적으로 사는 사람 아니야.”
연쇄 살인을 저질렀던 아공간 초능력자도 내게 말했다.
자신과 손을 잡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그렇지.
이익만을 우선시 한다면 그게 합리적이지.
“합리는 개뿔. 난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한다. 나 깡패 출신이야.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아. 이건 비유가 좀 다른가.
“교화가 어떤 건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명령 한마디면 목숨을 던져야하고 오로지 나와 천둥교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게 되는 게 바로 교화다. 세뇌라 이 말이야.”
처음 상태창을 받았을 때만해도 단순히 종말을 막아야한다는 일념하나로 사람들을 교화시켰지만 천둥교가 커 가면 커나갈수록 교화가 가진 무서움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라오에게 영향을 받은 이후로 더욱 더.
“난 절대 강제로 교화시키지 않아.”
마음의 안식을 위해 자진해서 교화가 되는 것까진 막지 못하지만 레벨을 올려 교화 취소 스킬이 생기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긴 전까진 절대로 강제 교화는 없다.
“아니 그나저나 내가 왜 너한테 이런 걸 설명하고 있어야 되지?”
이 새끼는 맞아도 싸다.
감히 바쁜 나를 불러내고 쓸데없는 질문까지 해?
그렇게 팔을 걷어붙이는데 마크가 말했다.
“진심이십니까?”
“그럼 진심이지. 교화하려면 진즉에......잠깐.”
뭐냐. 이 테스트 같은 느낌은.
“너 설마...”
마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제가 그렇게 찾아다니시던 비밀 요원입니다.”
“너 설마 내가 강림으로 올 줄 알고 있었냐?”
“그럴 리가요.”
마크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저도 놀랐습니다. 막연히 언젠가 만나게 되겠지 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때 그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너 뭐하는 놈이냐?”
비밀 요원이 직접 자신을 찾아보라며 테스트를 하고 이젠 갑자기 정체를 밝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요원이라고.”
“...날 테스트 한 거야?”
마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어째서?”
“확인을 위해서입니다.”
“말 잘라먹지 말고 똑바로 말해.”
그렇지 않아도 굉장히 혼란스러우니까.
“저는 라오님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뭘 위해서.”
“과연 초능력자 부대와 연결을 시켜줘도 괜찮을지 않을지를 위해서 말입니다.”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별로인거 같으면 계속 모른 척 했을 거다. 이 말이네?”
“그렇습니다.”
“뭔데 도대체. 내 개인 사상 검증이 왜 필요한 건데?”
마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꼭 필요합니다. 초능력자 부대는...”
마크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인류에게 남은 유일한 힘일지도 모르니까요.”
“허...”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겨우 5만 초능력자가지고?
천둥교에만 10만이 있는데?
“아무튼 마지막 검증까지 끝났습니다.”
“결론은?”
“합격입니다. 초능력자 부대와 연결시켜드리겠습니다.”
“...이걸로 연결하는 거야?”
마크가 침대 뒤 비밀 공간에서 꺼낸 위성 전화.
“예. 명색이 비밀 요원인데 통신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는 익숙하게 위성 전화를 셋팅 중인 마크에게 말했다.
“그런데 왜 나한테 모든 걸 밝힌 거야? 뭐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뭐 이런 거 없어?”
“후후후.”
마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아무리 미국이 초강대국이라지만 겨우 몇 달 만에 5만이나 되는 초능력자. 그것도 전투 능력자 위주로 비밀리 모았다는 게?”
나도 그래서 놀라긴 했는데.
“자세한건 직접 들어보시죠.”
연결을 마친 마크가 나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어..여보세요?”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한 남자의 목소리.
-반갑습니다. 전 초능력자 부대 대장 로이입니다.
“아. 반가워. 난 라오야.”
그런데 로이가 감동에 벅찬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드디어 이 날이 왔습니다.
“응?”
-드디어 종말을 막을 마지막 퍼즐이 완성되었습니다.
“뭔 뜬구름 잡는 소리야?”
로이가 웃음기 띈 목소리로 말했다.
-전 신으로부터 종말의 예지를 받았습니다.
로이의 말에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뭐? 종말을 예지했다고?”
처음이었다.
나 이외에 종말 예지를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게.
“뻥치는 거 아니야?”
-후후. 초능력자 부대는 정확히 말하면 미국 대통령이 만든 게 아닙니다. 제가 종말의 예지를 받은 후부터 미국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만든 것이죠.
“......!”
-저는 종말을 막기 위해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나랑 똑같다.
-지금도 마찬가지. 거기 있는 마크 요원의 희생으로 마지막 절차까지 마쳤으니 이제 완벽합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이거 동지를 만난 기분인데? 어디야? 나랑 협력하자. 괴물들이 아직도 도처에 깔려있어.”
플러스 알파정도로 생각했던 초능력자 부대가 알고 보니 종말을 막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니.
감동이다.
나 이외에도 종말을 막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 있었어.
“5개 부대라며? 어디야? 전력은 온전히 유지한 거야?”
-후후후.
그런데 로이가 말없이 웃기만 한다.
“왜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뭐?”
나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지금도 밖에선 사람들이 괴물과 굶주림 속에 죽어나가는데 아직 때가 아니라고?”
-제가 받은 종말의 예지는 지금 밖에 있는 괴물이 아닙니다.
괴물이 아니라고?
-진정한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라오가 했던 말과 똑같다.
진정한 종말이 온다고.
“너. 너 그걸 어떻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종말의 예지를 받았다고.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종말의 종류를 알아? 막을 방법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모른다도 아니고 말해줄 수 없다고?
나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준비해봤으니 알거 아니야. 이 과정이 얼마나 답답하고 사람 미치게 만드는지.”
-압니다. 라오님이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해 오셨는지.
“하다못해 시기라도 알려줘. 그래야 나도 준비를 할 거 아니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럴 거면 나한테 그런 소리를 왜 한 건데?!”
로이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만 기억해주십시오. 우리가 만남으로서 희망은 생겼습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럼 다음 만남을 고대하겠습니다.
“야! 야! 기다려! 아직 내말 안 끝났어!”
-라오님에게 위대한 축복이 함께하길.
로이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런 씨...마크!”
나는 마크에게 전화기를 건네며 말했다.
“다시 걸어!”
“아마 받지 않으실 겁니다.”
“받을 때까지 하라고!! 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간다는 게 말이 돼!?”
로이는 분명 무언가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건 내가 그동안 가장 알고 싶어 했던 진실이 분명할 터.
하지만 마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소용없습니다.”
“너...”
그때 마크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이건 뭐야?”
“로이님과 직통연결이 가능한 주파수입니다.”
나는 종이를 빼앗듯 가져왔다.
“어차피 가지고 가지는 못하시지 않습니까. 외우십시오.”
“...너네 도대체 무슨 꿍꿍이냐.”
마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 종말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나한테 당했던 사람들이 이런 기분일까.
다짜고짜 종말만을 외치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나야 몰라서 그랬다지만 이놈들은 알고서도 그러니 더욱 괘씸하다.
“돌아버리겠네. 그 진짜 종말이란 게 도대체 뭐냐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뭐?”
설마...이 놈도 알고 있는거야?
마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때가 되면 아시게 될 겁니다.”
강림 시간이 끝나고 다시 돌아왔다.
“왜 죄다 신비주의 컨셉이냐고!!”
그냥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
당장 다시 돌아가 마크의 멱살을 잡고 진실을 토해내게 하고 싶었지만 로이도 말하지 않은 걸 하급자로 보이는 마크가 과연 대답을 해줄까?
“종말... 도대체 뭐지.”
진정한 종말이 도대체 뭘까.
라오가 했던 말과 로이에게 전해들은 말이 뒤섞여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다.
“젠장.”
또 그놈의 때를 기다려야하는 건가.
그 기약 없는 기다림을?
지겹다.
“하아.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나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아무튼 뭐가 오긴 온다는 말이지?”
그럼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할뿐이다.
“레벨업 하려면 얼마나 남았지?”
땅을 수복해나가며 수많은 사람들을 사제로 만드는 한편 틈틈이 신성력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다.
“교화 취소. 그것만 확인하면 돼.”
앞으로 대략 20일만 더 모으면 교단 레벨을 올릴 수 있다.
나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지친다 지쳐.”
원래도 피곤에 절어있던 나는 순식간에 잠들어 버렸고 다음날 아침.
마크는 자신의 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왜?”
나는 마크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자살이었다.
마크는 자신의 총으로 관자놀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평온하게 미소를 지은 채 죽어있는 마크의 시체.
그때 로이의 말이 불현 듯 떠올랐다.
“마...크의 희생 덕에 만날 수 있었다고?”
그럼 마크의 죽음은 나와 만나는 순간 이미 결정나 있었단 소리?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왜 자살한 거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
마치 무언가로부터 초능력자 부대를 단절시키기 위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뭐로부터?”
마크와 로이의 초능력자 부대는 종말을 막기 위해 준비해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마크의 죽음 역시 종말과 관련이 있다는 말인데.
마크와 로이의 다른 점은?
“...마크는 나를 직접 만났어.”
그리고 동시에 마크는 천둥교의 신도다.
로이와 마크의 다른 점은 오로지 그것뿐.
나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천둥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천둥교란 울타리는 마크와 나를 연결해줬지만 동시에 마크가 천둥교를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든다.
일단 신도가 되면 위치까지 추적이 가능하니까.
“...설마 천둥교가 종말이라는 뜻은 아니겠지?”
말도 안 된다.
천둥교는 여태껏 인류를 지탱해온 대들보다.
그런데 유일한 접점마저 차단해가며 천둥교를 경계한다고?
“아니야. 내 착각일 수도 있어.”
다른 이유로 자살한 걸 수도 있잖아.
게다가 라오도 진정한 종말을 예지했다고.
“하지만 뭐지. 느낌이 쎄한데.”
도대체 누가 맞는 거고 누가 진실을 말하는 건가.
나는 마크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모든 걸 해탈한 듯 평온한 얼굴.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 13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