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흠. 그러니까.”
나는 나에게 두들겨 맞아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통령이 급사했다?”
“그. 그래!”
남자가 다급히 말했다.
“심장마비였어! 손 쓸 새도 없었단 말이다!”
“그럼 딱히 연락망이 고장난건 아니네?” 나는 쪼그리고 앉으며 남자에게 말했다.
“왜 대통령이 죽은 사실을 알리지 않고 너희들끼리 쉬쉬한 거지?”
내 말에 남자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그. 그건...”
“왜. 급사한 거 구라였어?”
“아니다!”
잠시 침묵하던 남자가 말했다.
“내부에서 의견이 갈렸다.”
“호오.”
“여기는 대통령 각하와 행정부 소속 장관 등 고위 관료들을 위한 핵 벙커다.”
고위 관료라.
왠지 느낌이 쌔 한데.
“그런데 최고 지휘관인 대통령 각하가 급사하셨다. 부통령님이라도 계셨으면 다행이었겠지만 부통령님은 가족들이 해외로 떠난 상황이라 핵 벙커 피신을 거부하셨다. 남은 건 장관들. 그런데 장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렸다.”
남자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대통령 각하의 부고를 알리느냐 마느냐로.”
대충 그림이 그려지네.
대통령이 죽음으로서 그가 가진 권한...
뭐.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 권한이라는 것도 웃기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 권한이 허공에 뜬 거다.
그리고 고위 관료들은 그 권한을 놓치기 싫었던 거고.
“장관들은 기본적으로 평등관계. 서로를 비방하며 논쟁에 열을 올렸다.”
남자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이런 곳에 갇혀있으니 할게 그것 말고 없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
왠지 그런 고위 관료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듯한 남자의 말투.
“뭐. 좋아. 그런데 왜 숫자가 이렇게 줄어들었지?”
“......”
“그러고 보면 논쟁을 했다며? 그런데 결과는 연락두절. 결말이 안 났네?”
나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장관들 어디 있어.”
“......”
내 질문에 침묵하는 남자.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이것 봐라...장관들도 죽었구나?”
남자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까 왜 어쩔 수 없는지를 말하라고. 잘 말해야 할거야.”
이런 세상에서 흔하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종말 전에 가지고 있던 권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믿는 권력자들과 그에 불만을 품은 하급자들.
그리고 내분이 일어난 조직.
“...내분이 일어났다.”
시작은 사소했다.
“처음은 주먹다짐.”
일반인들에게 최소한의 도덕적 마지노선을 만들어주던 법이 사라졌다.
그건 고위 관료들도 마찬가지.
“점점 싸움이 격화되고 서로 의견이 맞는 고위 관료들끼리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통신실을 통해 다른 핵 벙커로 대통령 각하의 부고를 전하려는 파와 이를 막으려는 파끼리 싸움이 일어났고...”
남자가 머리를 집으며 말했다.
“누군가가 우발적으로 총을 발사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전쟁은 우발적인 사건으로 시작한다.
“도망갈 곳도 없는 이 좁은 곳에서 광기에 물든 사람들끼리 전쟁이 났으니 그 피해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완전 이해했다.
500명이라도 살아남은 게 기적인데?
일단 사람은 피에 취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으니까.
심지어 자신에게 총을 발사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전쟁터에 나간 병사들이 모두 용맹하고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데 거부감이 없어서 사람을 죽이나?
아니다.
전쟁의 광기에 취한 사람에게 생각이란 게 있을 리가.
일단 죽이는 거다.
적이니까.
그리고 그 후 폭풍은 진정이 된 후에 오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난 후였다.”
남자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은 우리는 차마 다른 핵 벙커로 이곳의 사실을 알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아예 연락을 끊은 거군.”
“그래.”
“장관들은?”
“모두 그때 죽었다. 각 파의 제 1타겟 이었으니까.”
그렇게 여차저차 해서 여기까지 왔다란 아주 흔한 스토리.
난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히 신성력 낭비했네.”
이런 케이스는 종말이 시작된 이후 숫하게 봐왔다.
단지 이번엔 그 대상이 미국의 고위 관료들이라는 것뿐.
“이제 됐나?”
“그래.”
이 남자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면 딱히 이놈들 잘못도 아니다.
그저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을 뿐.
나는 남자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미안하다. 너무 세게 때렸지? 난 또 너네가 장관들이랑 대통령 싹 다 쳐죽이고 핵 벙커를 차지한 줄 알아서.”
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도 안 된다니. 너네 꼴은 말이되?”
“......”
“종말이야.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아무튼 고맙다. 잘 알려줘서. 아. 혹시 거짓말 했어도 상관없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놈은 없으니까.”
자신의 이득을 위해 불리한 사실을 감추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이 남자 역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를 꾸몄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핵 벙커가 내 눈에 띈 이상 늦던 빠르던 내 손안에 떨어질 거다 다른 주요 시설들과 마찬가지로.
무려 대통령이 피신했던 핵 벙커다.
뭐가 있어도 있지 않겠어?
그때가 되면 설사 이 남자가 나를 속였다 하더라도 모든 진실이 드러나게 되있다.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를 거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교화형에 처한다.
그리고 교화된 자는 나에게 진실만을 고할거고.
아무튼 당장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내 동료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응?”
“계속 너에게 지배를 받는 건가? 너는 누구지? 귀신?”
어...설명 안 해줬나?
“나 자기 소개도 안하고 팬 거야?”
“넌 누구냐. 도대체...혹시 초능력자?”
“나 라오다.”
내 말에 남자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말했다.
“라. 라오? 라오 님이라고?”
“그래. 내가 라오다.”
그나저나 이 남자 말이 사실이라면 얘네들도 설득해서 CIA처럼 부려먹어야겠다.
대통령이 피난 온 핵 벙커잖아?
분명 좋은 게 잔뜩 있을 거라고.
“라. 라오님.”
“그래. 그래. 때려서 미안해.”
나는 사죄의 의미로 남자를 순식간에 중급 사제까지 올려주었다.
“흡!”
고양감을 느낀 남자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라오 님이시군요.”
“그래. 확실히 알겠지. 어. 시간 다 되어간다. 나 이만 가볼게.”
그런데 그때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가지 알려드릴게 있습니다! 혹시 대통령 각하가 종말 전 비밀리에 준비했던 초능력자 부대의 존재를 아십니까?”
“뭐?”
초능력자 부대? 그것도 비밀리?
“대통령 각하가 돌아가시고 각하의 처소...”
아씨!
시간 끝나가는데?
나는 강림한 몸에서 정신이 멀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외쳤다.
“기다려! 다시 올 테니까!”
“다시 왔다.”
나에게 강림 당한 남자와 대화 중이었는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라. 라오님?”
“그래. 아까운 신성력 써서 왔으니까 빨리 말해봐.”
남자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언제나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계신 라오님을 존경해왔습니다.”
“어. 고마워. 그러니까. 빨리 말해. 시간 없어.”
“사. 사실 장관들간에 내분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가 이 비밀 초능력자 부대 때문이었습니다.”
“CIA 국장은 그런 말 없던데?”
“CIA조차도 믿을 수 없다며...아마 천둥교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직후 모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
하긴 그때 CIA 요원 대다수가 백백교로 인해 변절했었지.
대통령 입장에선 CIA에 남은 요원들을 100프로 신뢰하긴 힘들었을 거다.
그래서 선택한 게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절대 교화되지 않는 존재 초능력자.
“비서 실장 및 최 측근들만 알고 있는 비밀 부대였습니다. 비서 실장이 이 초능력자 부대는 오직 대통령의 명령만 듣도록 되어있다며 대통령의 부고 소식 전달을 제일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호오.”
“숫자는 대략 1만씩 미국 전역에 5개 부대가 존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보안 유지를 위해 기지도 철통처럼 만들어 괴물의 습격에서 무사했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 입장도 이해는 가네.”
천둥교를 제외하고 사실상 전세계 최강의 집단이다.
레벨수준은 모르나 5만 명이나 되는, 그것도 부대로 창설할 정도면 대부분이 공격능력을 지닌 초능력자란 소린데 화력이 어마어마할 거다.
“그나저나 천조국은 역시 천조국이네. 천둥교가 본격적으로 활동한지 몇 달 만에 종말이 터졌는데 그사이에 5만 명을 모았다고? 그것도 CIA는 배제하고? 그게 가능이나 한 거야?”
“저도 정확한 사실은 모르겠습니다. 알기론 대통령 직속 비밀기관을 동원했다고 하는데...”
“하여튼 미국 놈들 뭔 놈의 비밀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어. 아. 미안 너도 미국인이지?”
남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CIA, FBI, NSA 등등 내가 아는 것만해도 여러 갠데 여기에 또 대통령 직속 비밀 기관...허이구야.”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초능력자 부대가 실존한다는 건 사실입니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1만 명씩 5개 부대...”
“거기다 초능력자 개인 장비도 지급했다고 합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초능력자 전용 개인 장비?”
초인 장비가 가장 효율이 좋기에 초능력자용 장비는 사실상 방치되어 사장된 지 오래였다.
그런데 초능력자 전용 개인 장비를 갖춘 초능력자 부대가 있다니.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탐나는데.”
내분이 일어날만하네.
그냥 초인과 초인 장비를 갖춘 초인의 전력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초능력자도 마찬가지겠지.
게다가 종말이 터진 직후부터 각성하는 초능력자의 수가 급감하였다.
마치 나에게 상태창이 생겨났던 바로 그 당시 전국에 몇 안 되는 각성자가 있었던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나는 언제나 전력 확충에 목을 멘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늘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초능력자가 무더기로?
“지급률까진 모르겠습니다. 비서 실장이라고 모두 아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살아는 있을까?”
“살아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비서실장이 그렇게 알리는걸 막았겠지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그런데 초능력자부대가 이런 상황에 와서도 얌전히 대통령 말만 들을까? 그리고 대통령이 죽었으니 너네 말 안 들어! 이렇게 할 정도로 융통성이 없다고? 무슨 교화된 사제야?”
남자가 주눅이 든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그것까지는 잘...”
“거참 희한하네. 아무튼 좋아. 연락 방법은?”
“그게...”
남자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쪽과 연락 가능한 통신망 주파수는 비서실장만 알고 있었는데...”
“어. 어. 설마. 제발.”
“총격전에서 사망했습니다.”
젠장.
“그럼 연락할 방법이 없네?”
“당장은...예.”
“위치도 모르고?”
“......”
“에이 씨. 좋다 말았네.”
이 넓은 미국땅에서 무슨 수로 찾나.
“설득이라도 해보려 했더니.”
나는 잠시 입맛을 다시다 말했다.
“그래. 그림의 떡인 거다.”
어차피 딱 부대에서 대통령의 명령만 기다릴 정도로 고지식한 놈들이면 내가 대통령이 아니니 내 말을 들을 리도 없고 대통령 죽었으니 맘대로 할거다 하는 놈들이면 설득에 의미가 없겠지.
내가 바로 포기하려 하는 듯 하자 남자가 다급히 말했다.
“자. 잠시만요. 확실하진 않지만 방법이 있습니다.”
“응?”
“대통령이 초능력자 부대를 만들 때 대통령 직속 비밀기관을 이용했다고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그랬지.”
“말 그대로 비밀 기관입니다. 신분을 숨기고 핵 벙커 내에 숨어있을 수도 있다는 뜻 아닐까요?”
“호오.”
말 되네.
“초능력자들을 모집한 비밀 기관 요원이니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을 수도......”
비밀 기관 요원을 찾아내 초능력자 부대와 연결하는 방법 또는 위치를 알아낸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야.”
무려 초능력자 5만이다. 5만.
현재 천둥교가 보유한 초능력자 수가 10만이 조금 안 되는데 단숨에 1.5배로 불려낼 수 있다니.
내 시간을 투자해 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나는 남자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혹시 의심 가는 사람 있나?”
“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 맞다. 계속 대화했는데 이름도 몰랐네. 이름이 뭐야?”
남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 마크입니다.”
“좋아. 마크. 우린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13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