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133화 (134/188)

< 133화 >

“그. 그건...”

미국에 대한 충성심.

미국을 대표하는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덕목이었다.

당연히 마이클 국장 역시 그 누구보다 미국을 사랑하고 그의 조국이 미국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너네 도움이 좀 필요해서 연락 했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미국 인공위성의 도움을 받냐 못받냐가 정말 큰 차이거든. 너네 인공위성 컨트롤 가능하냐? 가능하면 크게 원을 돌고 아니면 지그재그.

마이클 국장은 과연 자신들이 가진 정보를 라오에게 알려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충성도 그 대상의 실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법.

과연 지금 미국이란 나라가 남아있다고 볼 수나 있을까.

마이클 국장이 대답하지 못하자 라오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왜 가만히 있어. 애매한 거야? 일부만 컨트롤 할 수 있다든지. 그도 아니면...

라오가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최강대국이란 향수에 젖어있어서 그런 거야?

“큭...”

-솔직히 말해서 너희 도움이 필수는 아니야. 군집 피하는 거야 정찰대를 동원하면 충분히 가능하니까. 근데 영 안심이 안되고 희생이 뒤따른단 말이지. 그리고 어차피 너네 내 도움 받아야 할걸? 거기서 평생 살 거 아니면. 그냥 서로 상부상조 하는 게 어때?

“대화. 대화를 할 수는 없나?”

하지만 마이클의 말은 라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고민해야 돼? 이게 팍하고 감이 안 오나봐? 나 여차하면 너네 찾아서 쳐들어갈 수도 있는데. 흠. 혹시 대가가 필요한 건가?

“젠장!”

-어휴. 신성력 아까워서 안 쓸라고 했는데 답답해서 안되겠다. 기다려.

“뭐?”

라오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마이클 국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기다려라! 아직 대화가...”

그런데 그때 국장실 문이 열리며 경비를 서던 요원이 들어왔다.

“나가있어! 지금...”

“나야.”

갑작스런 요원의 말.

마이클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나 라오라고.”

“정말 라오라고?”

난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그만큼 설명해줬으면 됐잖아. 시간 없다고. 이거 한번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신성력을 써야 하는지 알아?”

“......”

“자. 빨리 가자고. 인공위성 통제 가능해?”

마이클이 머뭇거리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휴. 진짜 정보국 출신 아니랄까봐 존나게 신중하네. 그냥 이게 빠르겠다. 너네 원하는 게 뭐야?”

내 말에 마이클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너는 우리에게 뭘 해줄 수 있지?”

“터무니 없는 게 아니라면 뭐든지.”

“혹시 대통령 각하와도 연락이 가능한가?”

응?

핵 벙커끼리 통신망 설치도 안 했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연락방법 없어? 그건 기본이잖아.”

“원래는 있었다. 그런데...몇 달 전부터 연락이 두절되었다.”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호오. 대통령 핵 벙커와 연락 두절이라.”

“통신망이 끊긴 건지 기계 오류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통령 각하와 연락이 두절되었다. 혹시 알아봐줄 수 있나?”

“뭐. 어렵지는 않은데...신성력이 많이 들겠네. 그나저나 마이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도 대통령이 미국을 대표한다고 생각해?”

“......”

“이제 미국의 생존자들은 대부분 오히려 나를 믿을 텐데.”

마이클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그냥 다 잊고 나랑 협력하자. 인공위성 통제권은 탐내지 않을게. 내 목표는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의 한국화야. 대피소를 만들고 대피소를 중심으로 괴물을 몰아내 땅을 수복하고. 딱히 점령군 행세를 하려는 게 아니라고.”

내 말에 잠시 마이클이 침묵했다.

“진짜 답답하네. 그렇게 현실을 모르겠어? 내가 인공위성 통제권도 그대로 유지시켜준다잖아. 설마 인공위성 통제도 못하는 거야?”

내 말에 마이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인공위성 통제는 가능하다. 전부는 아니지만.”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됐네! 그럼 된 거잖아.”

“...정말 이 땅에 욕심이 없는 건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미 대피소를 전국에 설치한 41개국과 미국. 어느 쪽 땅값이 높을 거라고 생각해?”

“...좋다. 협조하겠다.”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좋아! 그럼 결정된 거다? 대신 배신해서 엉뚱한 정보 주기만 해봐.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작살낼 거니까.”

마이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럴 생각 없다. 너 말고 이 사태를 해결할 사람은 없으니까.”

“좋아. 슬슬 시간도 끝나가네. 일단 시급한 건 미국의 중요 시설들이니까 위치 좀 알려줘. 비밀무기든 뭐든 다 좋으니까. CIA니까 알고 있지?”

내 말에 잠시 주저하던 마이클이 말했다.

“...좋다. 어차피 너 아니면 탈환할 수도 또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니까. 대신 이곳에서의 내 위치를 확실하게 보장해라.”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조국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보장해달라...”

오히려 더 믿음직스럽다.

CIA국장이자 미국의 거물로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과 책임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나 다름없으니까.

“어차피 미국은 이미 끝났다. 몰랐던 건 아니다. 외면했던 것뿐이지. 그렇다면 나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나는 핵 벙커 벽을 두들기며 말했다.

“보아하니 아주 튼튼하게 만들었네. 대피소로 딱 이야. 위성 통제권을 지닌 대피소의 수장. 도시국가화 될 대피소의 대표. 지금 세상에 이만한 직책이 또 있을까?”

나는 마이클과 악수를 하며 말했다.

“좋아. 거래 성립이다.”

“그런데 한가지 요청사항이 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협상 끝내놓고 강짜부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런 게 아니다. 설사 들어주지 않더라도 확실하게 협조하겠다.”

“그런 거라면 이야. 말해봐.”

마이클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대통령 각하가 어떻게 되신 건지 알고 싶다.”

“응?”

“알고 있다. 더 이상 대통령 각하가 미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만..”

마이클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국의 전 대표이자 내가 충성을 바쳤던 사람이다. 어떻게 된 건지 정도는 알고 싶다.”

“뭐. 좋아. 어차피 확인할거였으니까. 아무튼 거래 성립!”

“전부 아니라고?”

워싱턴 근처의 대규모 생존자 그룹은 내 예상대로 모두 미국 정부에서 만든 핵 벙커 시설들이 맞았다.

정보기관, 정부 부처 등 여러 정부 기관들을 위해 만들어둔 핵 벙커.

하지만 대통령과 함께 있다고 답한 그룹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가.

강림으로 소모되는 신성력이 아까워 직접 방문하지는 않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왜 숨기는 거야? 설마 내가 협박이라도 할까봐?”

핵폭탄?

그거라면 영국도 가지고 있고 그걸로 괴물을 잡는 것도 효율이 떨어진다.

쉴새 없이 움직이는 군집을 겨냥하는 것도 문제고 핵으로 인한 방진 피해도 문제다.

차라리 웜홀로 유인해 초능력자 경험치로 만드는 게 낫지.

“에이씨. 괜히 찝찝하게.”

“마이클.”

다시 요원에게 강림하여 국장실 문을 열자 눈을 휘둥그렇게 뜬 마이클이 이내 진정하며 말했다.

“라오인가.”

“그래. 한번 해봤다고 눈치 좀 늘었네. 아무튼 빠르게 가자고.”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대규모 생존자 그룹에 전부 물어봤거든. 근데 대통령이랑 함께 있다고 한 그룹은 하나도 없다.”

“없다고?”

“그러니까 지도 좀 가져와봐. 대통령 핵 벙커가 어디 있는데?”

마이클이 지도를 꺼내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다. 여기가 대통령 각하가 피신한 핵 벙커다.”

“여기?” 나는 지구본과 대조해보며 말했다.

“여기 겨우 500명 정도라 확인도 안 해본 곳인데?”

“500명?”

마이클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겨우 그것밖에 없을 리가 없는데. 경호원 숫자만 500에 행정부 관료들까지 합치면 최소 2,000이다.”

“2,000에서 500으로 쪼그라들었다고...”

뭔가 일이 터졌구나.

사실 대통령을 찾는 게 꼭 마이클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마이클을 설득하며 가치 절하시키긴 했지만 종말이 터진 지 이제 겨우 1년도 안됐다.

미국의 대통령이란 직함이 가지는 무게는 1년 만에 사라질 만큼 가볍지 않았다.

비록 미국인들이 모두 나를 위해 기도를 한다지만 그들을 안정시키는데 있어서 미국 대통령이란 직함은 제법 잘 먹힐게 분명하니까.

“...좋아. 한번 확인해보자.”

그들과 접촉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했다.

초인들을 동원해 무력으로 제압해 보는 것과 평소처럼 계시를 통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

“무력은 패스.”

무려 핵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핵 벙커다.

초인들 정도로 돌파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흠...계시 밖에 없나.”

하지만 계시로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

작정하고 속이면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살아...있지는 않은 것 같고.”

500여명의 생존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해봤지만 대통령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신도가 아니어서 나오지 않은걸 수도 있지만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냥 강림 써?”

워낙 편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요즘 강림을 쓰는데 재미가 붙었다.

사람들 놀라는 것도 재미있고 왠지 나 자신이 진짜 신이라도 된듯한 느낌.

“근데 강림을 쓰면 흔적이 남는단 말이지.”

강림을 받을 수 있는 사제는 주교로 한정된다.

즉 대상을 주교로 올리고 강림을 써야 한다는 말.

“강림 시간이 끝나면 바로 알아차릴 거 아니야.”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하긴 알아도 상관없을 라나.”

내 목표는 대통령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그리고 죽었다면 왜 죽었는지다.

핵 벙커 생존자들이 선량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정보만 알아내면 그만 아닌가.

“거기다 주교급 초인이 하나 생기는 거잖아. 싸게 먹히는 거지 뭐.”

나는 곧바로 핵 벙커의 한 초인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말했다.

“수습 사제 임명.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

“흡!!”

한 남자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어?”

놀란 동료가 남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하지만 너무나도 격렬한 고양감 탓일까.

남자는 눈을 부릅뜨고 온몸을 바들바들 떠는 것 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흡! 흡! 흡!”

“어? 설마...”

동료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초인이구나! 이거 초인되는 거네! 이야. 축하한다. 부럽네.”

“흡!! 흡!!”

“나도 초인이 되고 싶다. 아아.”

“흐으으으읍!!”

“느낌이 어때? 그 고양감이라는 게 그렇게 좋다더라.”

“흐으으으.”

그런데 도대체가 남자의 고양감은 끝날 줄을 몰랐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동료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원래 이렇게 길었던가?”

“흐아...”

그리고 그때 남자의 동공이 살짝 풀렸다 다시 돌아왔다.

“후아.”

“괜찮아? 이렇게 긴 건 처음 봤는데.”

남자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아무튼 축하해. 이제 초인이네. 고양감 긴 걸로 봐선 제법 고위급 초인인 거 같은데.”

동료의 축하를 받은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팀장님들도 좋아할 거야.”

간부란 말에 남자의 눈이 빛났다.

“팀장님. 그렇지 팀장님.”

“왜 그래? 뭔가 조금 평소랑 다른 거 같은데. 말투도 그렇고.”

“내 말투가 뭘.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통령 어디 있어?”

“뭐?”

“대통령 어디 있냐고 이 새끼야.”

남자의 말에 동료가 뒷걸음질치며 말했다.

“너...뭔가 이상한...컥”

남자가 동료의 목을 부여잡고 들어올리며 말했다.

“에헤이.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야. 혹시 조용한 장소 있으면 안내 좀 해주련? 우리 건실한 대화를 좀 나눠볼까?”

< 133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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