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천둥교가 확보하고 있는 모든 웜홀에서 수많은 탐사대가 투입되어 웜홀 너머 세상의 지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라오님! 브라질 웜홀에서 500km 떨어진 위치에 새로운 웜홀을 발견했습니다! 러시아 웜홀로 추정됩니다!”
“인도네시아 웜홀에서 200km 떨어진 위치에 새로운 웜홀 발견! 어디 웜홀인지 확인중입니다!”
투입된 탐사대가 새로운 웜홀을 빠르게 찾아내고 있었다.
“아주 좋아. 이대로만 하자!”
웜홀 너머 세상의 웜홀 위치와 지구 웜홀 간의 거리차이는 뒤죽박죽이었다.
한국과 영국 웜홀 거리가 불과 200km인데 반해 어떤 웜홀은 되려 지구 쪽 웜홀 간 거리가 더 가까울 정도.
“웜홀을 확보해서 틀어막아!”
인류가 종말을 완벽히 막아내고 괴물을 멸종시키면 이 웜홀 지도는 인류의 새로운 이동수단이 될 거다.
물론 물자이동이 불가능 하다는 게 아쉽지만 웜홀 너머 세상에 자전거나 수레를 만드는 것 정도는 조금만 연구해도 가능할거 아닌가.
자전거 평균 이동 속도가 사람의 5배니 이론적으로 한국 웜홀에서 영국 웜홀까지 가는데 불과 10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비행기를 타도 12시간이 걸리는데 겨우 자전거로 10시간이라니.
“인류는 구원받는다.”
그때 사제 하나가 흥분한 표정으로 달려와 말했다.
“라오님! 새로운 웜홀을 발견했습니다!”
“어디지?”
“한국 웜홀에서 남쪽 방향으로 100km!”
물론 동서남북 방향은 임의로 지정한 거다.
나침반을 가지고 갈 수 없으니까.
“미국. 미국의 웜홀을 발견했습니다!”
미국.
종말 전 세계 최강대국.
그곳엔 여전히 수많은 생존자들이 살고 있다.
또한 미국이 멸망하며 남겨둔 수많은 과학기술의 산물과 전쟁 물자들.
나는 양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사제들을 모아라.”
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미국을 구원한다.”
“휴.”
잭은 오늘도 괴물들을 피해 식량을 구하러 돌아다녔다.
“여기도 이제 별거 없네.”
종말이 막 시작된 초반.
총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일반사람들은 물론 군대조차 괴물에 의해 무더기로 학살당했다.
하지만 괴물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이 종말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이 종말에 적응해 나갔다.
잭 역시 종말에 적응한 인간중 하나.
잭은 비록 일반인이지만 그의 총에 목숨을 잃은 괴물의 수가 열이 넘었다.
물론 그만큼 더 많은 동료를 잃었지만.
“헉!”
잭이 괴물 수십 마리를 발견하고 다급히 몸을 숨겼다.
엄폐물에 숨어 괴물들을 살핀 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웜홀?”
웜홀 주위로 어슬렁거리는 수십 마리의 괴물들.
“웜홀에 끌리기라도 하는 건가. 그나저나 언제 여기까지 왔지?”
동료들과 대형 트럭에 의지해 정처 없이 떠돈 지 벌써 수개월.
잭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웜홀이 위치한 이곳에 도달한 것이었다.
“큭. 트럭으로 돌아가자.”
전투는 피하고 오직 도주.
잭이 그동안 종말에서 살아남으며 깨우친 절대 진리였다.
그런데 웜홀에서 알몸의 남자가 한명 튀어나왔다.
“헉! 뭐. 뭐야? 사람?”
잭이 알기로 웜홀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초능력자 뿐.
하지만 아무리 초능력자라도 수십 마리의 괴물을 그것도 바로 근거리에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잘 가시게.”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한 잭이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초능력자가 자신들의 그룹에 합류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되겠지만 저 사람 하나구하자고 목숨을 걸 수는 없었다.
그렇게 괴물들의 이목이 남자에게 집중된 틈을 타 천천히 뒷걸음질 치던 잭은 웜홀에서 연이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것을 보며 경악했다.
“뭐. 뭐야?”
괴물들이 알몸의 사람들에게 달려들었지만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괴물을 상대해나갔다.
겨우 맨손으로.
웜홀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이 튀어나오고 거기서 나온 사람들이 괴물을 모두 정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3분이었다.
“초인...?”
저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라오에 의해 초인으로 만들어진 사람들 뿐.
그런 초인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오는 모습을 보며 잭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도. 도망가자.”
종말의 세상에서 경계해야할 건 괴물만이 아니니까.
알몸의 수상한 무더기 초인들이라니.
그렇게 잭이 트럭으로 도망가려는 순간 한 남자가 말했다.
“거기. 너.”
잭이 자리에 멈춰 섰고 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거. 걸렸나.”
“이름이...잭. 잭이군.”
잭은 소름끼치게 놀라며 말했다.
“어. 어떻게 내 이름을...”
잭에게 다가온 남자가 말했다.
“반갑다. 난 라오다.”
“음. 미국 놈들 덩치가 커서 옷이 딱 맞네.”
웜홀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 덴버로 진격한 3만 원정대가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털어 옷과 식량을 끌어 모았다.
무방비 상태로 괴물들의 급습을 받은 덕에 덴버 내 생존자가 극히 적었고 식량도 비교적 많이 남아있었다.
그때 멀리서 한 무리가 3만 명의 원정대를 향해 겁도 없이 다가왔다.
다가온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라오님을 뵙습니다.”
바로 덴버 내에 긴급 대피소를 만들었던 미국 초인 부대였다.
미국은 처음 와보지만 내가 종말 전에 뿌린 씨앗들은 자라나 사람들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그래.”
계시를 받고 달려온 초인 부대 대장에게 말했다.
“너희 대피소 총 인원은?”
“초인 부대 200명. 종말 직후 일반인 2,000명을 보호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더 늘어서 일반인 3,500명을 보호 중입니다.”
“식량은?”
“라오님의 지시대로 일부 땅을 개간해 농사를 시작했으나 보호 중인 사람 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랍니다.”
그렇겠지.
더군다나 여긴 덴버시내라고.
“농사하기가 애매하긴 해.”
“예. 그래서 아예 덴버 시내를 떠나는 것도 고민했었지만 저희 인원이 워낙 많다보니...”
마땅히 수용할만한 장소가 없겠지.
그것도 안전하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온 거 아니야.”
시내 대피소의 가장 큰 문제는 농사지을 곳이 없다는 것.
아스팔트를 파내면 흙이 나오긴 하나 괴물이 가득한 이곳에서 그런 굉음을 냈다간 괴물들이 단체로 몰려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무기도 제법 챙겼고.”
웜홀 근처에 있던 부대를 털어 대충 구색은 맞추었다.
맨몸으로 왔는데 이정도만 해도 양반이지.
“사냥 시작이다.”
내가 끌고 온 원정대는 비록 3만 명밖에 되지 않지만 한명 한명이 최소 중급에다 괴물과 수없이 싸워온 정예부대.
괴물에게 들킬까 걱정해가며 움직이는 다른 생존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합!”
괴물의 목을 맨손으로 꺾는 사제.
탕!
총으로 정밀 사격을 하는 사제 등.
무기가 있으면 있는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원정대는 덴버시내를 파죽지세로 청소해나갔다.
“오오! 라오님!”
그러다 만나는 수많은 생존자들.
내 지시로 대피소를 만들어가던 생존자, 홀로 싸워오던 생존자등.
모두가 나를 향해 무릎을 꿇고 말했다.
“드디어 구원입니까? 미국도 구원받는 것입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이곳.”
나는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덴버다.”
“아아! 라오님! 저희를 구원해주소서!”
나는 그렇게 모은 생존자들에게 각각 대피소를 알려주는 한편 식량을 모아 사람들에게 적절히 배분하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휴. 이걸로 큰 놈들은 모두 끝났지?”
각 대피소의 정보를 토대로 덴버시내의 큰 군집을 대부분 박살냈다.
위성의 정보가 있으면 좋겠으나 한국의 위성이 이곳까지 오려면 무수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덴버는 대충 정리가 끝났고...”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이제 미국 주요시설을 확보해야지.”
한국과 41개국이 수월하게 수복하는 데는 종말 전 기술의 힘이 컸다.
초인 장비 생산 시설, 위성 통제소 등.
미국의 그런 중요 시설을 확보하는 게 1차 목표였다.
나는 지구본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놈들인데...”
미국에 생성된 웜홀은 단하나.
이곳에서 미국의 주요시설이 즐비한 워싱턴까지 거리는 수천 킬로미터에 달한다.
괴물이 워싱턴에 도착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니 그 잘난 미국 정부와 정보기관 놈들이 대피할 시간정도는 충분했겠지.
“이놈들. 아니면 이놈들. 아니면 이놈들인가?”
워싱턴 근처에 있는 수천 명 규모의 생존자 그룹들.
내가 만들라 명령한 대피소가 아니라 종말 직후부터 존재해온 그룹들이었다.
그동안은 미국에 올 방법이 없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그중 한 그룹 전체에 계시 스킬을 사용하고 말했다.
“아아. 나는 라오다.”
“후. 미치겠군.”
CIA 본부 지하에 있는 핵 벙커 안엔 4,000명의 CIA출신 요원들이 숨어서 살고 있었다.
핵전쟁을 대비해 만든 핵 벙커인 만큼 시설이면 시설 방어면 방어 모든 걸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종말을 완벽히 피해낸 CIA였지만 요원들의 정신적 문제까지 해결해낼 수는 없었다.
고도로 훈련받은 베테랑 요원은 백백교에 의해 초인이 되어 CIA를 이탈했고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 요원들은 대부분 요원이 된지 얼마 안됐던 신입 또는 현장 요원을 서포트 해주는 요원들 뿐.
처음 벙커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그들 모두 위대한 조국이 저 괴물들을 밀어내고 다시 지상 밖으로 나갈 거라 여겼다.
미국은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벌써 반년이 훨씬 지났지만 국토 수복은커녕 아무런 진전조차 없자 요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차라리 나가게 해달라는 요구부터 몰래 탈출을 감행하는 요원까지.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 요원들이 모두 세뇌되어 빠져나간 덕에 이런 내부 붕괴가 가속화되어갔다.
“...바깥 상황도 모르는 놈들이...”
CIA국장 마이클과 간부들은 언제나 비상 위성통제 장치로 바깥 사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핵 벙커 안에 있는 게 얼마나 안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보장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그들에게 요원들의 불만은 배부른 투정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요원들의 불만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식량도 넉넉하고 시설도 잘 정비되어있지만 단 한 가지 없는 게 있었다.
바로 희망.
최근 들어 여러 생존자 무리가 결집하여 몸집을 불리고 있음을 파악했지만 자기 살기도 벅찬 그들에게 무슨 기대를 할까.
게다가 비축된 식량이 넉넉하다지만 천년만년 이곳에서 살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때.
-아아. 나는 라오다.
마이클 국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라오?”
-거기 워싱턴 인근에 생존자들. 어디보자. 존 33살, 맥 케니 53살....
워싱턴 인근에 있는 CIA본부 지하인데다 라오가 말하는 사람들은 분명 함께 핵 벙커에 숨어있는 요원들이었다.
-아무튼 얘네가 포함된 그룹. 너네 혹시 CIA냐?
라오가 자신들에게 말을 걸고 있음을 확신한 마이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그렇다.”
-CIA가 맞으면 아무나 동그랗게 걸어봐. 아니면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마이클 국장이 다급히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오. 맞다고? 이거 한방에 럭키인데? 대장이 누구야. 혹시 아직도 마이클인가? 마이클 어디 있어?
마이클 국장이 다시 한 번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이야. 마이클. 살아있었네? 반갑다 반가워. 오랜만이지?
“라오! 내말이 들리나!”
라오가 동작으로 대답유무를 확인하는 걸로 보아 분명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알지만 마이클은 라오와 직접 교신이 닿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마이클 국장이 방안을 마구잡이로 움직이면서 외쳤다.
“라오! 나다 마이클 국장!”
-마이클. 그만 좀 움직여. 왜 이렇게 사람이 번잡스럽게 변했어? 나 목소리는 안 들리거든? 아무튼 한 가지만 묻자.
라오가 말했다.
-너네. 아직도 미국에 충성 하냐? 미국이 정말 이 종말을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 내가 아니라?
< 13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