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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121화 (122/188)

< 121화 >

“갑자기 이렇게 배급을 줄이면 저희보고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생존자들의 항의에 사제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억울하면 더 열심히 일해서 할당량을 초과 달성하던가 아니면 사제가 되면 될 거 아닌가.”

“아니 대피소에서 쫓겨나 소형 대피소로 온 것만으로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생존자의 말에 사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라오님의 말이 바로 법이다. 불만 있는 자는 나가도 좋다.”

사제의 말에 생존자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착각하지마라. 우리가 너희를 보호하는 건 우리의 호의다. 그러니 증명해라.”

사제가 생존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의 가치를. 너희가 우리 천둥교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 증명해내라.”

“대피소는 오로지 제2사도인 사제와 초능력자만 살 수 있다.”

나는 방송용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안락하고 편한 삶을 살고 싶으면 사제가 되어라. 이 체계에 수긍하지 못하면 나가라.”

천둥교는 종말을 구원할 유일한 희망.

“오직 천둥교만이 이 종말에서 너희를 구원할지니.”

카메라 불이 꺼진 걸 확인하고 스태프들의 인사를 받으며 문을 나섰다.

“매일 아침 기도를 1시간 예배로 바꿔라. 매일 아침 성경을 들고 교리를 공부시키는 거다.”

그간 신도들의 믿음까지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 어떠한 반론도 불허한다.

오직 천둥교에게 복종하는 자와 아닌 자만 있을 뿐.

“초인들 교화에는 시간이 걸린다. 당분간 구조대 규모를 반으로 줄이고 생존자 구조보단 농지 확보에 주력하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깡패시절부터 최소한의 지킬 건 지키자는 주의였다.

하지만 종말을 맞이한 인류는 그런 내 최소한의 가치조차 충족시키지 못했다.

실망이다.

그런 인간들에게.

그리고 그런 인간들을 구해야 하는 나에게.

“모든 사람을 전부 교화시키면 전부 합심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쳐 종말을 헤쳐 나가는 거다.

내가 교화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건 교화 취소가 불가능 하다는 것과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그 이유였지만 이런 식이라면 모조리 교화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사제들이 도리어 인간답고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흥. 한심한 놈들.”

넓게 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이득에 눈이 먼 사람들이 한심하고 미련해 보인다.

“그래. 내가 아니면 누가 하리.”

나는 양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천둥교는 세상의 새로운 흐름이며 진리다. 교화는 인류를 종말에 최적화 시키는 과정일 뿐인 거야!”

이제 알겠다.

교화는 나쁜 게 아니었어.

힘을 주고 이 험난한 세상을 견딜 수 있는 마음속 기둥이나 다름없다.

나는 사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말이 틀린가?”

“아닙니다! 라오님은 옳습니다.”

“맞습니다.”

든든하다.

역시 사제.

사람들이 나를 비난할 때도 묵묵히 내 뒤에서 나를 지지해준 사제들.

“그래. 너희만 믿는다.”

천둥교의 영역은 시간이 갈수록 넓어졌다.

소형 대피소가 계속해서 늘어가고 경작하는 농지 또한 늘어났다.

“한국 면적의 20퍼센트.”

종말이 일어난 지 4개월 만에 이룩한 성과였다.

“훌륭하다. 모두 우리 천둥교의 공이다.”

내 말에 고위 사제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여전히 한국엔 많은 괴물들이 배회하고 있지만 이 20퍼센트의 외곽을 그렇다 치더라도 안에서 만큼은 일반인도 제법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물론 사제 숫자의 한계가 있기에 넓은 땅을 완벽히 커버하지는 못해도 빼곡히 만들어진 소형 대피소는 그자체로 경계탑의 역할을 했다.

사제의 눈을 피해 영역 안으로 괴물들이 진입하면 소형 대피소 주민들은 곧바로 대피소안으로 피신한 뒤 순찰대에 연락을 취하면 즉시 출동하여 괴물을 소탕하는 식.

영역 안에서 어느 정도 안전을 확신한 생존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가진 물건을 다른 생존자와 물물교환까지 시작하였다.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역시나 보존식.

“철광도 확보했으니 이제 무기 공장과 국방연구소 라인도 가동시킬 수 있다. 두어 달 뒤엔 이제 대망의 첫 농작물 수확까지.”

첫 사이클이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살아갈 수 있게 틀을 만들어 한 바퀴 돌리는데 성공하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농사를 지어 농작물을 생산하고 철광을 캐 무기를 만들고.

이제 1차 생산품을 만드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장담컨대 겨우 종말 몇 달 만에 농사를 지어 농작물을 수확한 생존자 그룹은 천둥교가 유일할거다.

이게 모두 내가 종말에 대비해온 덕 아니겠는가.

“그래. 내가 해낸 거다.”

생존자는 그저 내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린 거다.

얻어먹는 주제에 반찬투정까지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신도들 모두 라오님의 은덕에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불만 있는 자는 없겠지?”

사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없을 리가 없지.

지금 분위기상 불만을 토해내면 내쫓겨도 이상하지 않으니 숨죽이고 있는 걸 거다.

하지만 생존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자. 최소한의 기반은 닦았다. 나머지 40개 나라 대피소들도 안정궤도에 진입했고.”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제 청소를 시작하자.”

내 말에 사제 하나가 위성사진을 꺼내 올리며 말했다.

“지금까지 천둥교 한국 지부는 모두 300만 마리 이상의 괴물을 잡았습니다. 그 덕분에 한국의 괴물 수가 급감하여 아직 구조해내지 못한 생존자들도 외부에서 잠시나마 활동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한국에 남은 괴물의 수는 추정컨대 400만. 대부분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배회하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 두 군집입니다.”

사제가 지휘봉으로 검은색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현재 강원도를 지나 동해안선을 따라서 남하중인 50만 규모의 군집. 그리고.”

또 다른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북한에서 서울 방향으로 내려온 40만 규모의 군집. 이 두 개입니다. 이 두 군집이 지나가며 기껏 가꾼 농작물을 짓밟고 있습니다. 소형 대피소 덕분에 인명피해는 없지만 물질적 피해가 너무 큽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들기며 말했다.

“우리가 원정에 동원할 수 있는 총 전력은 초인 부대 3만을 포함해 12만.”

북한 원정 당시보다도 동원할 수 있는 숫자가 적은 이유는 그만큼 지킬 땅이 늘어나서였다.

“사제는 계속해서 늘고 있지만 그만큼 수복한 땅도 넓어졌다. 최소한의 수비 병력은 뺄 수 없어. 만약 우리 10만과 50만 군집이 싸우면 승산은?”

사제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내를 끼고 싸우면 할 만할 텐데.”

“그것도 어느 정도지. 저 정도 대규모 전투는 해본 적이 없으니 속단할 수 없어. 게다가 12만이라고는 해도 초인 부대를 빼면 실제 괴물과 싸울 수 있는 중급 이상 사제 숫자는 4만이 안 돼. 나머지는 보조 전력이란 말이지.”

“군집을 유인해서 나누면?”

한 사제의 말에 다른 사제들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랬다가 나머지 군집을 제때 제거하지 못하면 차라리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맞아. 40만을 10만씩 쪼개면 우리는 결국 10만 이상의 새로운 군집 3개를 더 신경써야한다는 뜻이야. 차라리 하나로 뭉쳐있는 게 피하기 쉽다.”

의견을 제시한 사제가 말했다.

“하지만 일단 나누면 각개격파가 가능하잖아.”

“언제 그놈들을 쫓아다니며 하나하나 박살내지? 괴물의 이동속도는 우리보다 빠르다. 거기에 사제들이 오래 묶이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유인해간 사제가 다시 우리 부대 쪽으로 유인하면 될 거 같은데. 게다가 미리 계획을 짜서 군집을 유인하는 것이기에 오토바이를 사용하면 희생도 최소화 시킬 수 있다.”

그렇게 사제들 간에 갑론을박이 오가는 도중 회의실 문이 열리며 김인호가 들어왔다.

“라오님. 죄송합니다. 이제 도착하는 바람에...”

“아니야. 괜찮아.”

“웜홀 너머 전진기지에 갔다 오느라 늦었습니다.”

“그래?”

초인도 웜홀을 넘어갈 수 있음이 밝혀진 뒤 나는 사제들을 투입해 웜홀 너머에 새로운 전진기지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건설은 순조롭고?”

“물론입니다. 언제든 도주할 수 있도록 규모를 작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또 괴물들이 대량으로 넘어올 낌새는 없어?”

“그런 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좋아.”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앉아.”

김인호가 배정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 안건은 뭐였습니까?”

“대형 군집 두 개. 과연 처리할 수 있을까를 가지고 회의를 좀 했지.”

“결과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내 말에 김인호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토벌로 가닥이 잡히면 꼭 저를 불러주십시오. 요즘 손맛 못 본지 오래 되어서.”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방벽에서 초능력 갈길 때?”

“예. 그때가 정말 짜릿했습니다. 제 초능력에 우수수 죽어나가는 괴물들.”

“하하하.”

“그때 레벨을 많이 올려서인지 그 후로 아직 1레벨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170만 마리씩 무려 30일간 수천마리가 웜홀에서 쏟아져 나왔었다.

한국에 남은 괴물을 모두 합쳐봤자 그에 턱없이 모자랄 정도.

“후후. 설마 또 해보고 싶은 건 아니겠지?”

내 말에 김인호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아직 막지 못한 웜홀에서 괴물들이 또 뛰쳐나오면 어떡합니까. 생각난 김에 일단 북한 웜홀이라도 빨리 틀어막는 게 어떨까요?”

“말처럼 쉬운 거 아니다. 콘크리트랑 철근으로 방벽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자재와 시간이 필요한줄 알아? 아무튼 군집은 잠시...잠깐.”

방벽? 괴물? 웜홀?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 말했다.

“웜홀 말이야.”

“예.”

“혹시 괴물이 다시 웜홀 너머로 통과할 수도 있나?”

“키에에에!!”

나는 곧바로 괴물 한 마리를 생포해 웜홀 방벽으로 향했다.

앞발이 모두 잘린 괴물이 발버둥 치며 발악했지만 최상급 사제 둘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자. 시작해.”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괴물이 웜홀로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라오님. 도대체 무슨 계획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기다려봐. 진짜 이게 먹히기만 하면 괴물 사냥의 패러다임이 뒤바뀔지도 몰라.”

드디어 괴물이 웜홀 앞에 도착했다.

“끌고 들어가!”

내 말에 최상급 사제가 괴물과 함께 웜홀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진 괴물과 사제 둘.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렇지!! 들어가진다!! 와우!”

기뻐서 방방 뛰는 나에게 김인호가 말했다.

“저기. 라오님. 뭔지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괴물이 웜홀을 통과한다고. 무슨 뜻인지 몰라?”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괴물 군집을 웜홀로 유인해 웜홀 너머에서 저번처럼 학살을 하면 된다 이 말이야!!”

괴물의 무서움은 집단 공격에 있다.

사방팔방에서 몰려드는 괴물의 공격.

하지만 좁은 곳에서 한정된 숫자의 괴물을 상대한다면?

그것도 준비된 상황에서?

만 마리든 수십만 마리든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종말 시작직후 41개국의 웜홀을 틀어막은 게 그 증거다.

“두껍게 만들어!”

자재를 웜홀 너머로 가지고 갈수는 없다.

하지만 전진기지를 만든 주 자재인 웜홀의 나무는 제법 단단해서 활용도가 높았다.

나무를 모아 두꺼운 방패를 만들어 고위 사제들에게 지급했다.

“여기 나무로 지구와 같은 방벽을 만들 수는 없다.”

나는 사제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그러니 너희가 방벽의 역할을 대신 해주어야한다. 장비가 열악하지만 재생 능력과 가호를 사용하면 버틸 수 있잖아? 많이 해봤지?”

“물론입니다!”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흥분해있는 김인호에게 말했다.

“초능력자들도 준비 됐지?”

“예! 모두 준비 완료했습니다!”

초능력자들은 사제로 구성된 방벽 뒤에 탑을 만들어 그곳에 올라가 웜홀을 넘어올 괴물을 포격하기로 했다.

비록 엉성하지만 상대 역시 과거 웜홀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숫자.

“최대한 군집을 쪼개 볼 테니까 너무 쫄지들 말고.”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괴물 놈들 씨를 말리자.”

< 121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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