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예.”
초인 대표랍시고 나타난 윤민기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저희는 라오님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지만 저희는 언제나 사제와의 차별에 시달려왔습니다.”
윤민기가 눈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이. 이번 원정에서 저희 초인들의 공이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러니 저희에게 대피소를 하나 배정해주신다면 초인들은 그곳에서 차별 없이 함께 생활하겠습니다.”
“......”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너희가 대피소를 만들 때 무슨 도움을 줬지?
원정?
너희에게 힘을 준건 나고 생명을 구해준 것도 나다.
그거 조금 도와준 걸로 종말에 가장 중요한 대피소를 달라고?
물에 빠진 놈을 구해줬더니 이젠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격이나 다름없다.
“혼자만의 생각인가?”
“아닙니다. 본단 뿐만 아니라 다른 대피소 초인들과도 교감을 나눈 내용입니다.”
생존자도 그렇고 초인들도 그렇고 한결같다.
“...왜 너희는 너희 생각만 하지?”
“예?”
“대피소를 비우는 게 장난인가? 거기에 살고 있던 일반인과 사제는?”
“일반인이야 지금처럼 외부에 소형 대피소를 만들어서 수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에 따른 콘크리트 철근 같은 자재는? 알아서 공수하고?”
“그거야...”
“식량은. 설마 대피소를 달라면서 먹을 식량까지 요구하는 거야?”
나는 당황해하는 윤민기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희가 지금 위치에 있는 건 모두 내가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그거 조금 불편한 걸 못 참아서 이런 중요한 시기에 그딴 걸 요구해?”
쾅!
나는 테이블을 내려치며 말했다.
“그거 이동할 시간에 사람한명을 더 구할 수 있고 식량을 더 찾을 수 있어. 그냥 내가 만든 체계로 들어왔으면 그냥 수긍하고 살아야지 왜 자꾸 엉뚱한 걸 요구하냐 이 말이야!!!”
쌓이고 쌓인 분노가 폭발했다.
이런 내 반응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윤민기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게 그냥 그러면 라오님도 좋지 않을까 해서...”
“좋기는 개뿔이 좋아!! 너네끼리 뭉쳐놔서 사고라도 터지면 어쩔 건데? 그리고 너네 전부 3배 아니면 1.2배지? 최상위 사제 없이 너네끼리 괴물과 상대하겠다고? 좋아. 넘겨주지. 단.”
나는 윤민기를 노려보며 말했다.
“식량과 무기 전부 내가 직접 모은 거다. 자식이 독립한다니 보증금 정도는 구해주지. 그럼 용돈이랑 방세는 알아서 구해야지? 안 그래?”
내 말에 윤민기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했다.
“그. 그게.”
“설마 무기도 보급해달라고? 와 이 씨발놈들 완전 양아치 새끼들이네.”
내가 원한 구원은 남은 인류가 똘똘 뭉쳐서 종말에 대항해 나가는 것이었는데 이 개놈들은 지들 편한 것만 찾는다.
결국 대피소 하나 차지하고 거기서 지들끼리 왕 노릇하겠다 이 말이나 다름없는 거 아닌가.
내가 사제임명만 안했으면 밖에서 생존자들과 함께 농사일을 했을 놈들이 이렇게 나오니 기가 찬다.
“교화된 게 안타까워서 사제들 좀 챙긴 게 그렇게 아니꼬왔냐?”
“아. 아니 그게...”
“너네 원정 나가면 최전방에 누가서.”
사제들이다.
전열에 흐트러짐이 생기는 순간 그 부대는 큰 피해를 입으니까.
“괴물 군집이 근접하면 괴물을 유인하는 게 누구야.”
사제들이다.
초인들은 내가 희생하라 명령을 내려봤자 듣지도 않을 테니.
“혜택이란 혜택은 전부 다 받아쳐먹어 놓고 이젠 독립할 테니 전부 다 내놓으라고? 독립하려면 알아서 독립해! 대피소도 너네 손으로 만들고 식량도 모으고 무기도 전부다!!!! 그럴 거 아니면 당장 꺼져!!”
“아. 알겠습니다.”
윤민기를 쫓아내고 난 의자에 철푸덕 앉으며 중얼거렸다.
“허무하구나. 허무해.”
왜 저런 놈들을 구해야하는 거지.
그리고 생각해보면 저놈들 중에 서울에서 만난 식인종처럼 밖에서 반인륜적인 짓을 하다 흘러들어온 놈이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도대체 왜 난 사제들을 희생시켜가며 저런 쓰레기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걸까.
회의감이 든다.
인류를 구원한다는 궁극적 목표가 흔들릴 정도로.
“......철권통치.”
사제만 있을 때 천둥교는 하나로 똘똘 뭉쳤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절대 천둥교에 해가 되는 짓을 하지 않고. 개인의 이득보단 천둥교의 이득을 우선시하는 사제들.
그런 사제들의 희생으로 떵떵 거리는 저들의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잘못 생각했네. 내가 너무 물렀어.”
사제나 초인이나 생존자에 비하면 소수.
그런데 초인이라고 배려를 좀 해준 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왔다.
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희망을 준답시고 너무 과한 호의를 베풀었다.”
강제 교화를 중지한다고?
내 위선이었다.
마치 스스로가 구원자인 것 마냥 행동한 내 위선에 불과하다.
“그전에.”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진짜 차별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그래요?”
윤민기의 말을 전해들은 곽도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아서 해라 이 말이군요.”
윤민기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입니까? 우리도 초인이잖아요. 겨우 대피소 하나 내어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나저나 이제 어쩌죠. 라오가 단단히 화가난거 같은데.”
곽도운은 걱정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윤민기를 보며 생각했다.
‘오히려 잘된 걸 수도 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초인과 천둥교간의 갈등이 일어날 거고 자신은 그 사이에 이득을 취한다.
곽도운이 윤민기를 토닥이며 말했다.
“함께 힘을 합쳐 이 위기를 잘 극복하면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라오가 티비 방송에 출연해 말했다.
-내가 너희를 너무 풀어줬구나. 종말이란 천재지변을 겪은 너희를 안타까워했던 게 너희를 망쳤다.
라오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인류가 함께 힘을 모아 종말을 극복하길 원했다. 하지만 너희가 나에게 보여준 건 추악한 개인의 이기심 뿐. 거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초인의 대우가 부족하다 등등.
라오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너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은 모두 내가 준비한 거다. 자고 있는 집. 먹는 식량. 물. 옷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라오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좋아.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너희다. 오늘부로 천둥교를 전면 개편한다. 신도의 등급을 나누고 불만분자는 추방시키겠다. 우선 제 1 사도는 나다. 나는 유일하니까. 제 2 사도는 사제와 초능력자다. 그들은 신도들을 지키기 위해 최전방에서 싸우는 천둥교의 기둥이니
까. 제 2 사도는 대피소에 머무를 수 있는 권한과 식량배급량 제한을 철폐한다. 그리고 제 3 사도.
라오가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말했다.
-제3사도는 초인과 일반인이다. 초인은 다르다고? 천만에. 초인과 일반인의 차이는 나에게 선택을 받았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내 눈에 너희는 모두 같은 신도일 뿐이다. 심지어 초인은 기도조차 하지 않지. 내가 왜 그들을 우대해 줘야하지?
라오가 이를 갈며 말했다.
-초인의 선택지는 세 가지다. 기도를 통해 제2사도로 올라오던지 지금 자리에 만족하던지 그도 아니면...
라오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던지.
라오의 선포에 초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우리를 일반인과 동급 취급하겠다고?”
“아무리 라오님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리고 동시에 취해진 라오의 두 번째 조치.
각 소형 대피소에 파견 나가있는 사제들이 소형 대피소 인원을 모아놓고 말했다.
“오늘부터 사제 추첨을 다시 시작한다.”
그동안 외부 생존자에게 사제 임명을 하느라 일단 구조된 사람은 뒷전으로 밀어놓았었는데 다시 초인이 될 길이 열린 거다.
“지원자에 한해 추첨할 것이며 이번 추첨은 그전과 다르다.”
사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일단 추첨에 뽑히면 무조건 기도를 해야 한다.”
사제의 말에 생존자들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그. 그 말은...”
“천둥교는 더 이상 초인을 늘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히려 초인의 숫자가 늘어나면 일사불란한 작전에 해가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제2사도, 사제로 가는 길은 열어주도록 하지. 참고로 이번추첨은 무조건 3배부터 시작된다.”
사제의 말에 생존자들이 경악하며 외쳤다.
“1.2배가 아니라 3배라고요!”
“헉!” 사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1.2배처럼 무의미한 사제를 늘릴 바에 정예화를 이루겠다는 게 라오님의 판단이시다. 자. 선택해라. 여기서 계속 농사를 지을 것이냐. 아니면...”
사제가 생존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2사도가 되어 거룩한 성전에 합류할 것인지.”
서로를 바라보며 멍하니 있던 생존자들이 너도 나도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요! 저요!”
“제발 저를 뽑아주세요!”
“이건 노골적으로 우리 초인을 노린 정책입니다!”
윤민기가 분노를 토하며 말했다.
“3배 사제를 무차별로 양산해 초인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습니다!”
초인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냥 대피소 하나만 양보하면 될 일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나오는 거지?”
“그러니까.”
그때 초인들의 숙소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여.”
사제의 호위를 받고 있는 라오였다.
“다들 불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나봐? 입이 대빨 나왔는데?”
내 등장에 초인들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헉! 라. 라오님!”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들 억울하지? 대피소 하나면 되는데 굳이 일을 크게 벌이니까. 그렇지 않아?”
그때 윤민기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희는 라오님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우라니요!”
이 새끼 봐라.
주위에 동료 있다고 많이 당당해졌네.
내 앞에서 오줌이라도 지릴 것처럼 굴더니만.
“사도를 나누는 것까진 좋지만 왜 저희가 일반인과 같은 제3사도입니까!”
“하하. 그게 불만이었어? 그럼 나가라니까?”
윤민기가 말했다.
“그냥 이대로 나가라는 건 죽으라는 소리밖에 안되지 않습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가라고 해도 싫다고 징징. 이래도 징징 저래도 징징. 아주 지겨워죽겠다. 그렇다고 완전 놔버릴 수도 없고. 이런 걸 계륵이라 그런다지?”
나는 초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가 원하는 게 독립이라고 했었나?”
“꼭 독립이라기 보단 저희만의 공간을 원한다는 말입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대피소 하나를 비워주지.”
내 말에 초인들이 동공이 확장되었다.
“식량도 주고 무기도 주지. 원한다면 건축자재도 주겠어.”
윤민기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정말이십니까?”
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착각하지 마. 너희가 이뻐서 주는 게 아니니까.”
나는 초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희에게 힘을 준 것도 나고 구해준 것도 나다. 그럼 고마운 줄 알고 조용히 있어야지 불만 조금 있다고 그걸 나한테 요구해? 아무튼 좋아. 요구를 들어 주지.”
나는 뒤돌아서며 말했다.
“너희 반동분자를 모두 내보내고 난 새로운 체계를 확립할거다. 초인은 모두 너희에게 제공할 대피소로 보내고 나머지 대피소는 사제로만 가득 채워 내부 기강을 바로잡을 거다. 그러니...”
나는 문을 향해 걸어 나가며 말했다.
“얌전히.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말고 나가라.”
나는 초인들의 환호성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가며 사제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초인 부대 준비시켜.”
“예.”
“배려는 여기까지. 더 이상 생존자와 초인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적당한 예시가 떠올랐다.
“그래. 북한.”
인민들을 통제하고 지도자를 신격화 시킨다.
“그 어떠한 불만도 허락하지 않는다. 내 말은 진리고 곧 법.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종말을 막기 위해서라면 난 악마가 되어도 상관없다.
“너희들은 간절함이 부족해. 안전함에 취해 버리도록 만든 내 탓이 크다. 그러니.”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내가 만들어주마. 살아남기 위해 발악했던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주지.”
< 119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