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힘들어 죽겠네!”
한 남자가 호미를 내동댕이치며 말했다.
“그냥 기계로 파바박 하면 안 돼?”
“기름 아껴야한다잖아.”
“아이씨. 진짜. 내가 왜 여기서 농사일을 하고 있어야하냐고!”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던 대기업 직원이었던 남자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답답해 미치겠네. 답답해 미치겠어!”
“그럼 어쩌게. 그래도 고마운 줄 알어. 라오님에게 보호받고 있잖아. 아직도 구조되지 못한 생존자들이 전 세계에 수십억이라고 했어.”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 그게 아니라 억울해서 그런다.”
남자가 대피소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누구는 대피소에서 안락하고 안전하게 살고 있고.”
이번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소형 대피소.
자신들끼리는 기숙사라 부르는 소형 대피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누구는 급조한 집에서 비좁게 살고 있고!”
“대피소 사람들도 농사일에 투입됐다고 하잖아.”
“삶의 질이 다르다고 삶의 질이! 우리가 밖에서 공포에 벌벌 떠는 동안 대피소에서 종말이 오는지 마는지 편안~하게 사셨던 양반들은 지금도 편안하게 농사짓고 있잖아!”
대피소를 중심으로 영역을 넓혀가다 보니 당연히 후에 합류한 생존자일수록 대피소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사로 배정받았다.
그렇게 대피소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사 사람들은 언제 괴물이 나타날까 두려움에 벌벌 떨지만 대피소에 사는 사람들은 안전한 대피소 주변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우리는 그냥 살아있는 경보기야. 괴물이 나타나면 가장먼저 조우하는 게 우리니까.”
동료가 흥분한 남자를 토닥이며 말했다.
“너무 흥분하지 마. 생존자들을 더 구하면 우리보다 더 먼 기숙사에 배정받을 거 아니야. 그럼 우리도 더 안전해지겠지.”
남자가 대피소를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가 안전해지는 만큼 대피소 놈들은 더 안전해지고?”
그때 망루에 있던 사제가 외쳤다.
“전방에 수십 마리의 군체 확인! 모두 마을로 대피해라!”
“...불만이 쌓여간다고?”
이 새끼들이 기껏 구해주니까 배때지가 불렀나.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전하게 보호해줘 밥 줘, 물 줘 다해주는데 어떻게 불만이 쌓일 수가 있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뭐가 불만이라는 건데?”
“소형 대피소에 대한 불만이 많습니다.”
“미친놈들 아니야? 그러니까 지들 사는 집이 구리다는 게 불만이라고?”
언제든 신속히 대피할 수 있도록 소형 대피소는 비교적 촘촘히 만드는 중이었다.
한 소형 대피소당 수용인원은 50명.
최대한 기존 집을 활용해 마치 직사각형 벽돌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든 뒤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철창살로 막고 대문역시 언제든 걸어 잠글 수 있는 강철 문으로 만들었다.
얼핏 보면 대형 감옥처럼 보이는 외관이지만 부족한 자원인 콘크리트와 강철을 최대한 아끼며 괴물의 수준까지 고려한 현 시대에 딱 맞는 거주지였다.
일단 들어가면 괴물의 앞발 정도로는 끄떡없고 장시간 버틸 식량까지.
“침대라도 들여놔 달라는 거야? 아니면 뭐. 게임 룸이라도 만들어줘?”
나는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와씨. 이 새끼들이 종말 맛을 덜 봤나.”
너무 일찍 구해줬나 보다.
집에 보존식을 마련해주고 생존 방법을 알려준 덕에 덜 굶주려서 그런가. 어떻게 이 상황에서 집에 대한 불만이 생길수가 있지?
“주로 소형 대피소와 저희가 있는 대피소의 질적 차이로 불만이 쌓인 거 같습니다.”
대부분의 대피소는 외진 곳에 위치한 리조트나 정신 병원 등을 개조해 만들었다.
본단인 이곳도 한국의 전국구 조직과 싸웠던 장소인 그 폐리조트다.
당연히 처음부터 사람들의 숙식을 고려해 만든 것인 만큼 급조한 소형 대피소와는 수준 차이가 날 수밖에.
“...이 새끼들 물이 덜 빠졌네.”
불과 2달 전까지만 해도 최첨단 사회를 달리던 삶을 산 사람들이기에 이해는 하지만 그것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 할 거 아닌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야 정신을 차리려나. 한심한 놈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불만 있으면 꺼지라고 해.”
내가 착한 척 하고 있으니까 호구로 보이나 보지.
“알겠습니다.”
사제를 내보내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도자가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그동안 말 잘 듣는 사제들만 부렸던 게 얼마나 편했던 건지 실감했다.
“이건 이래서 불만. 이건 저래서 불만. 씨발 진짜 좆같네.” 처음 구해줄때만 해도 감동에 눈물까지 질질 흘리던 놈들이 안전해졌다고 생각이 들자 옛날 생각이 나는지 점점 요구하는 게 많아진다.
사제들은 목숨을 걸고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데 정작 그 혜택을 누리는 당사자들은 고마운 줄도 모른다니.
“보존식만으론 농작물을 수확할 때까지 버틸 방법이 없어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양이 부족하다 어쩐다 개지랄을 떨고 있고.”
생존자가 늘어나니 그만큼 더 많은 불만이 터져 나온다.
“씨발.”
그때 머릿속으로 생존자가 자신을 비난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박종문의 말이 떠올랐다.
“...골 때리네.”
절대군주는 자신이 가진 이상과 사람들의 이상 간의 불협화음이 날 때 타락한다.
박종문이 내게 해주었던 말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거 같다.
“똘똘 뭉쳐 세계를 재건하기도 벅찬데 내부 불만까지 터져 나오다니. 좀 힘들어도 참아야 될 거 아니야.”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 자신의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사람들.
“...제발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만약 더 나를 자극하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나는 최상급 사제들과 김인호를 불러 모아 회의를 열었다.
“대피소들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정식으로 만든 대피소 30개와 지하철역 등을 이용한 간이 대피소에 수용된 인원만 이제 1,500만에 육박했다.
“한국에는 더 이상 대규모 생존자 그룹이 없어. 10인 이하 소규모 생존자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지만 그 수는 추정컨대 500만을 넘지 않을 거다. 한마디로.”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에 남은 인구는 2,000만이다.”
가장 확실하게 대비한 한국의 인구가 5,000만에서 2,000만으로 쪼그라들었으니 다른 나라 사정이야 불 보듯 뻔했다.
“현재 신도는 22억.”
나는 사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있다. 70억의 인구가 22억 밖에 남지 않은 거야. 물론 끝까지 기도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소수겠지. 자. 여기서 이제 당면한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바로 식량.”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아무리 열심히 비축했다지만 생존자가 늘어난 덕에 본단 대피소의 경우 아무리 아껴먹어도 3개월이다. 농사를 통한 수확까지 최소 반년은 걸릴뿐더러 경작하는 농지의 면적을 아직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큰 수확량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 사제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라오님. 종말 직전 한국이 수입한 식량을 나르던 배들 말입니다. 그 배를 확보하는 게 어떨런지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건 패스.”
농산물을 싣고 한국을 향해 출항했던 배들은 종말이 터지자 모두 뱃머리를 본국으로 돌렸다.
“또.”
내 말에 사제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린다.
“없어?”
한 사제가 손을 들며 말했다.
“저희는 종말 직전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식량을 대피소로 몰아넣었기에 한국 내엔 이제 천만이 넘는 인구를 먹여 살릴 만한 식량이 없습니다. 마트. 편의점 식량창고 등. 모두 텅텅 비어있지요.”
“그렇지 그래서 고민인거 아니야.”
“하지만 북한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런 준비할 새도 없이 전부 초토화 됐겠지요. 찾아보면 식량이 있을 겁니다.”
하다하다 이젠 북한에서 식량을 구해야하는 상황까지 오다니.
“식량이 있을까? 거기 매일 배 굶주린다며.”
“그건 과거 이야기고 최근엔 그 정도는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난 국정원 요원출신인 김인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
“맞습니다. 북한이 못사는 건 사실이지만 아사자가 즐비할 정도는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북한을 털자.”
식량이 많이 있을만한 곳이야 국정원 자료를 통째로 털어왔으니 거길 뒤져보면 될 테고.
“긴 원정이 되겠네.”
대부분의 구조대는 각 대피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에 대부분 하루에서 이틀 나갔다오는 게 전부였지만 이건 말 그대로 원정.
“겸사겸사 북한 웜홀도 막고. 평양 근처에 있다고 했나?”
“예.”
“좋아. 세부 계획을 한번 논의해보자고.”
천둥교 본단 수뇌부가 북한 원정 준비에 분주한 사이 교화되지 않은 초인 하나가 불만을 터뜨렸다.
“말로만 교화의 자유지 이건 차별이야!”
한 초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도 똑같은 초인인데 합당한 대우를 받을만한 권리가 있다고!”
천둥교는 구조된 초인을 두 분류로 나누어 관리했다.
우선 초인이 되고도 계속해서 기도를 올려 교화까지 완료된 초인은 사제로 분류해 대피소에서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다.
사제는 언제든 라오의 명령에 따라 희생당할지 모르는 존재.
그렇기에 라오는 사제들이 살아있을 때만큼이라도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지시한 일이지만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초인들로선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사제나 우리나 똑같은 초인인데 우리는 외부 경비대로 돌리고 사제들은 대피소에서 최고 대우를 받고. 그렇다고 구조대 구성할 때 우리를 제외시켜주는 것도 아니잖아!” 초인은 대피소에 구조되는 순간 천둥교의 주전력, 즉 병사로서 최전선에 서야만 했다.
“원정 나갈 때는 초인이니까 포함시키고 대피소로 돌아오면 초인은 외부 경비, 사제는 대피소 내에서 휴식? 이거 말만 자유지 사실상 대우받고 싶으면 교화되라는 소리랑 뭐가 달라?”
하지만 불만을 토하는 초인의 주장에 동조하는 초인은 많지 않았다.
“배부른 소리하네.”
초인들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야. 원정 나가면서 못 봤어? 굶주려서 피골만 상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생존자들. 우리가 라오님 선택을 못 받았으면 딱 그 꼴이었을 거다. 넌 은혜도 모르냐?”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보호만 받는 생존자들과 다르게 초인들은 지금도 매일 최전선에서 종말의 실체와 싸워가고 있었다.
당연히 종말이란 단어가 그들에게 주는 느낌은 일반 생존자들과 크게 다를 수밖에.
대부분의 초인들이 불만을 토한 초인을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배은망덕한 새끼. 저런 새끼가 어쩌다가 라오님의 은총을 받아가지고.”
“어디 가서 초인이라고 말하지도 마!”
초인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불만을 표했던 초인이 입술을 깨물며 자리를 옮겼다.
“제기랄. 개돼지들 같으니라고. 그래. 그렇게 평생 만족하고 살다 괴물 먹이나 되라.”
그때 한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뭐야?”
고개를 돌려 남자를 본 초인이 말했다.
“누구신지?”
“저 곽도운이라고 합니다. 그쪽과 같은.”
곽도운이 손가락 3개를 펴며 말했다.
“3배 초인이지요.”
곽도운을 위아래로 훑어본 초인이 말했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저도 천둥교에 불만이 많아서 말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같은 초인인데 누군 쉬고 누구는 집에 와서도 일하고. 억울한 게 당연하지요.”
곽도운이 초인이 제기했던 불만을 옹호해주자 초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죠? 그쪽도 그렇게 생각하죠?”
“물론이죠. 저들은 위선자입니다. 지금이야 저렇게 비난하지만 속으로는 은연중 불만을 쌓아두고 있을 겁니다. 차별은 차별이니까.”
초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맞아요. 정확하게 제 생각이랑 일치하십니다.”
“그래서 말인데 저와 함께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몰래 동지를 모으는 겁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저희 발언권이 강해지겠지요. 그때 라오한테 요구하는 겁니다.”
곽도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제가 아닌 초인들만을 위한 대피소를 말이죠.”
< 11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