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114화 (115/188)

< 114화 >

“박종문 팀장. 지내는 건 어때?”

내 말에 박종문이 입을 꾹 닫았다.

“왜 그래?”

“밖은 어떻지?”

“뭐가 어때. 개판이지. 괴물이 억단위로 나타났어. 그리고 전세계를 파괴했고.”

“아니. 그걸 묻는 게 아니다.”

박종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 정도 정보는 사제들이 말해줬고 티비도 봐서 안다. 미국은 물론 전세계 나라들이 멸망한 거. 내가 묻고 싶은 건 다른 거다.”

박종문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류는...희망이 있나?”

희망.

“......”

“너라면 알고 있지 않나? 종말을 예견한 너라면?”

이게 정말 나를 심난하게 만들었던 박종문이 한 말인가?

“이제 믿는 거야?”

“믿고 말고가 어디 있나. 정말 종말이 내 눈앞에 펼쳐졌는데...미안하다.”

“뭐가?”

“너를 의심한 거.”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신경 꺼. 나 믿었던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아무튼 희망이라. 네가 말한 희망이란 게 인류의 보존을 뜻하는 거냐 아니면 괴물들을 몰아내는걸 말하는 거냐?”

“둘 다. 후자를 하지 못하면 전자라도 해야 하니까.”

“우선 너한테만큼은 솔직하게 말하지.”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모른다.”

“뭐라고?”

“괴물들이 얼마나 더 나올지. 과연 괴물은 몰아낼 수 있는지 등. 나도 모른다고.”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종말의 날만을 경고했지 이 이후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 적은 없다.

박종문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모른다고...하아.”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나 스스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인류를 구원할거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하면 되지.”

나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해야만 한다.

“깡패 장지후 많이 출세했네. 그지?”

그런데 박종문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보고 너를 계속해서 일깨우라고 했었지.”

“그래.”

그래서 교화도 안 시킨 거 아닌가.

“사람들의 존경과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전세계인의 기도를 받는 지고지상의 위치. 넌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지닌 남자다. 그것도 절대적 충성을 받는. 동시에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희망. 그게 바로 네가 서있는 위치다.”

오우.

너무 거창하게 띄워주는데?

“지금의 넌 과거의 너와 같은가?”

“물론이지.”

나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너는 변했다. 아니. 변할 거다.”

뭐?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과거의 너와 지금의 너는 서있는 위치가 달라. 세계인의 질타를 받는 사이비에서 구원자로. 사람들이 너를 추앙해주니 기분이 어떻지?”

“어...당연히 기분이야 좋지. 욕먹어서 기분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데 만약 너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나온다면?”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반기라니?”

“그전까지야 사람들이 종말에 대해 모르니 네가 참고 넘어갔지만 이미 종말이 도래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조차 너를 비난하고 질타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 거 같나. 예를 들어 네가 종말을 유도했다는 식으로.”

“......내가 종말을? 나를 비난한다고?”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나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화가 날 테지.”

“......”

반론할 수 없다.

“그런 사람도 구해줄 건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 건가?”

“......”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이 공동체에 들어와 물을 흐리면 어쩌지?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면 어쩌지? 방법은 간단해. 강제로 교화시켜 버리면 된다.”  “그건...”

나는 교화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강제 교화를 더 이상 하지않고 있었다.

그들의 선택에 맡겨버렸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기 싫어서.

나는 그들에게 선택을 미룬 거다.

“나는 이제 강제교화를 하지 않아.”

박종문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바로 네가 변했다는 거다. 장지후. 아니. 라오.”

박종문이 나를 처음으로 라오라 불렀다.

“넌 감정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희망의 구원자라는 타이틀에 목을 매서 온화로운 군주 행세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과거보다 더욱 냉혹하고, 냉철하게 움직여야 한다. 희망이라는 말에 도취해서는 안되. 절대군주가 타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가진 이상과

사람들이 가진 이상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나기 때문이다.”

“이상의 차이...”

박종문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더욱 더 냉정해져. 버릴 건 버려.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버려라. 과거처럼 네 뚝심대로 밀어붙여. 지금 세상은 온화한 군주가 아닌 철혈의 군주가 필요하다. 과거의 너처럼.”

내가 달라진 건가?

사람들이 구원자라고 떠받드니까 정말 구원자가 된 마냥 들떠있던 건가?

하지만 박종문이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난 네가 시키는 대로 조언을 했을 뿐이야. 받아들일지 말지는 네 몫이다. 다만 하나만 기억해라. 모든 사람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어. 차라리 사람들이 너에게 맞추도록 만들어.”

“나에게 맞추도록 만들라고...”

그거 완전 교화잖아.

“넌 앞으로 종말에 의해 코너에 몰린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망할거다. 네가 구하려 하는 인간의 추악한 모습에. 그런 인간의 모습에 실망이 쌓이고 쌓인 실망은 분노로 변한다. 하지만 넌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절대 변하면 안돼. 그러니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마.”

박종문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정보요원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야. 사람이 극한의 상황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지. 기억해라. 인간 내면에 숨겨진 추악함과 이기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도 많이 봐왔어.”

뒷세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일들.

막장에 몰린 인생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내 멘탈은 생각보다 튼튼하니까.”

“들으니까 그나마 안심이군. 그나저나 넌 괴물을 잡지 않나? 레벨을 대량으로 올릴 수 있는 기회인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는 레벨업 방식이 좀 특이해서 말이야.”

괴물을 잡아봐야 교단 상태창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오로지 기도를 통해 모은 신성력만이 교단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길.

“아무튼 충고 잘 들었어. 쉬라고.”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

지방의 한 작은 대피소.

민간인들끼리 급조한 이 작은 대피소엔 괴물을 피해 일반인 30여명이 숨어있었다.

그들 모두 라오가 구해주기만을 기다리며 힘을 내고 있었지만 며칠 전 10명의 사람이 초인이 되며 상황은 달라졌다.

“우리는 초인이고 너희를 보호해주고 있잖아. 그럼 우리가 더 많이 먹어야 하는 게 맞지 않겠어?”

초인들의 말에 한 노인이 외쳤다.

“이놈! 라오님이 이러라고 너에게 힘을 내려준 줄 아느냐!”

그러자 한 초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 힘을 우리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이놈!!”

그때 가장 중앙에 앉아있던 초인이 천천히 일어나 노인에게 다가갔다.

“어이 노인네. 내가 누군 줄 알아?”

초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 3배 초인이야. 합일까지도 쓸 수 있는. 너희 전부가 덤벼도 순식간에 전멸시킬 수 있는 초인이라고.”

초인이 노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치며 말했다.

“세상이 바뀌었어. 이젠 힘을 가진 사람이 왕인 거야. 알아들어? 쓸모 없는 노인들 밖으로 쫓아버리기 전에 얌전히 있어. 알았어?”

그리곤 다른 사람들에게 외쳤다.

“오늘부터 기도는 금지다. 우리 말고 초인이 또 나오면 곤란하거든. 킥킥킥.”

그리곤 초인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마찬가지야. 죽고 싶지 않으면 기도하지마.”

“하라고 해도 안 해요. 세뇌 당해서 다른 초인들처럼 희생당하느니 차라리 이게 낫지.”

“맞아. 맞아.”

그렇게 세상은 광기에 물들어 갔다.

나는 교단 스킬로 지구본을 띄우고 바라보았다.

“흠.”

우선 한국을 비롯한 41개국의 경우 대피소가 위치한 곳에 빨간 점이 우수수 박혀있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 대부분 흩어져있었으나 드문드문 비교적 큰 무리를 형성한 곳도 있었다.  “...아.”

그런데 한 무리의 빨간 점이 갑자기 훅훅 줄어들기 시작했다.

천둥교가 만든 대피소는 아니었다.

괴물에 의해 방어선이 뚫린 게 분명했다.

“얼른 사제 임명을....”

지구본을 확대하고 빨간 점들에 손을 올려 사제로 임명하려는 바로 그 순간.

박종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냉정해지라고.”

이 무리는 이미 침입을 허용했다.

벌써 3분의 1이 줄었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중.

“내가 이들을 사제로 임명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불가능.

줄어드는 속도로 보아 괴물 몇 마리가 쳐들어온 수준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괴물들은 웜홀을 중심으로 급격히 진공하다 어느 순간부턴 마치 웜홀 너머의 세계처럼 뿔뿔이 흩어져 지구를 배회했다.

하지만 가끔씩 수백 마리 수천 마리의 괴물들이 모여 군집을 이루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마도 이 무리는 그런 군집에 의해 방어선이 뚫린 게 분명했다.

“...최상급 사제로 임명해봤자 초인용 장비가 없다면 합일이 끝나는 순간 죽겠지.”

냉정해지자.

이들을 살릴 길은 없다.

그럼 괜히 신성력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방어선이 온전한 무리에게 신성력을 쏟아 붓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그러는 사이 빨간 점들이 더욱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혹시 살 수 있지 않을까? 최상급 한 명으로 힘들면 두 명으로...”

내가 볼 수 있는 건 빨간 점을 통한 생사여부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는 사이 빨간 점이 몇 개를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전멸했군.”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변하긴 한 거 같네.”

교단 상태창이 생기기전의 난 동네 흔하디 흔한 깡패였다.

테러 뉴스를 봐도, 안타까운 사연을 들어도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혀끝 한번 차며 안타까워 해주는 것뿐.

그리고 뒤돌아서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랬던 내가 종말을 막는다는 거창한 명분에 도취해 살다 보니 정말 구원자라도 된 것처럼 행동한다.

나는 내 양 볼을 내려치며 말했다.

“정신차려라. 장지후. 사람들이 떠받들어준다고 네가 정말 신이라도 된 거 같아?”

나는 잠시 지구본을 노려보다 말했다.

“모든 사람을 구할 수는 없다. 구할 수 있는 사람에 역량을 집중하자.

내 목표는 종말을 막는 것.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거 하나만 바라보고 달리는 거다.

“그나저나 공동체에 해가 되는 사람은 교화시켜버리란 말이지?”

합리적이다.

교화를 취소할 수만 있다면.

아마 박종문도 교화를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말을 했겠지.

난 그에게 종말을 막은 후 교화를 취소하겠다고 말했었으니까.

“...그래. 보스가 중심을 잡지 못한 조직은 와해되게 되어있다.”

상명하복.

조직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냉정하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거다.”

그런데 그때.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시기에도 핸드폰을 사용 할 수 있다니.”

전기가 살아있고 통신망이 살아있어서 가능한 일.

생명체 외엔 관심을 두지 않는 괴물 덕에 아직까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의 유지보수가 없으니 이게 언제까지 사용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여보세요.”

-라오님! 웜홀 초인 부대 대장 이운호 대령입니다.

“그래. 무슨 일이지?”

-웜홀에서 나오는 괴물 숫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나는 다급히 헬기를 타고 웜홀로 향했다.

“다른 웜홀도 마찬가지라고?”

“예.”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안도보단 걱정이 앞선다.

그때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한가지.

“30일!”  나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이 정확히 종말이 시작한지 30일째 되는 날이야!”

설마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말한 30일은 이것 또한 가리키고 있던 건가.

나는 헬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도심 곳곳을 누비고 있는 괴물들.

“...30일 동안 36개 웜홀에서 끊임없이 괴물을 내뱉었으니 지구에 흩뿌려진 괴물은 18억 이상.”

무기를 가진 중급 사제가 합일을 쓰지 않으면 괴물 하나를 감당하는 수준.

20억 신도가 생산하는 신성력으로 하루에 10만 명의 중급 사제를 양산할 수 있었다.

얼핏 보면 많아 보이지만 상대는 18억이 넘는다.

중급 사제를 괴물과 비슷한 숫자로 모으려면 1만8천일, 무려 50년이란 세월이 필요하다는 말.

물론 총과 종말 전에 만든 강화복 그리고 상급, 최상급 초인까지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아직까진 전력비에서 괴물이 비교를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다.

하지만 괴물이 나오는 숫자가 줄었다는 게 중요하다.

“희망이 보인다.”

지구를 수복할 희망.

일단 괴물이 튀어나오는 웜홀을 찾아 틀어막고 서서히 지구에 뿌려진 괴물들을 박멸해나가면 된다.

세월이 걸리면 어떠한가.

희망이 보인다는 게 중요하지.

한참을 날아 웜홀 방벽에 도착한 나는 헬기 조종사에게 말했다.

“더 높이 올라가봐.”

“예.”

높이 올라간 헬기에서 웜홀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정말이군.”

초인에 의해 죽은 괴물들의 시체가 널려있고 웜홀은 여전히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지만 마치 토해내듯 괴물을 뿜어내던 그전과 다르게 가끔씩 한두 마리가 튀어나오는 수준.

“내려가자.”

헬기 창륙장에 내리자 김인호가 다가와 말했다.

“라오님!”

“괴물이 줄어들었다고?”

김인호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예! 그 많은 괴물들을 저희가 막아냈습니다! 아아! 정말 다행입니다.”

“줄어든 지 얼마나 됐지?”

“대략 1시간 정도 됐습니다.”

나는 방벽 위에서 웜홀을 내려다보았다.

“......”

이러다 갑자기 또 우르르 몰려나오면 어떡하지?

“라오님. 나머지 웜홀도 똑같이 봉쇄하고 남은 괴물들을 처리하면 지구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김인호의 희망 섞인 말에 나는 웜홀을 노려보며 말했다.

“현재 레벨이 몇이지?”

“24입니다.”

“1레벨일 때보다 6배는 강해졌겠군.”

“새로운 스킬까지 얻어서 더 강해졌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초능력자들이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라오님 덕분입니다. 이제 저희도 지구 탈환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웜홀을 확인하고 나서 할 일이지.”

“...예?”

“만약 초능력자들을 괴물 소탕으로 돌렸다가 또 괴물이 우수수 나오면 어떡해. 확인해보자. 게다가 웜홀 너머에 또 괴물들이 쳐들어오는지 감시할 전초기지도 세워야 해.”

내 말에 김인호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저기를 다시 들어가라고요?”

괴물들을 학살하며 복수 하긴 했지만 웜홀은 초능력자들에게 트라우마나 다름없을 거다.

김인호의 반응도 이해는 하지만 확인은 필수다.

내 결정에 수백만 수천만의 목숨이 좌지우지 되니까.

“아무나 자원자 받아서 들어가봐. 확인은 해봐야 할거 아니야.”

< 114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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