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나는 황급히 차를 타고 경기도에 있는 한국 본단으로 향했다.
“상황은?”
사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교도소와 지하철역을 활용한 대피소와 간이 대피소까지 모두 수용인원을 가득 채웠습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북한 그 개놈들...”
사실 미리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대처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었으니까.
다만 마음의 준비는 할 수 있었겠지.
내가 화를 내는 이유는 신기루처럼 사라진 일주일이 아쉬워서 그럴 뿐.
나는 교단 상태창을 띄웠다.
“신도수가...”
종말 직전 1억을 넘던 신도수가 3억으로 급등했다.
“...이제야 내 말을 믿고 기도를 하는 건가.”
아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기도를 하겠지.
이 세상에 자신을 구해줄 사람은 오직 나뿐이니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구해주지. 그러니 버텨라.”
지구는 괴물의 침공으로 잠식되어갔다.
미국은 결국 웜홀을 향해 핵미사일까지 발사해 수많은 괴물을 죽였지만 웜홀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나라역시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괴물에 저항했지만 괴물은 너무나도 많았다.
섬나라라고 괴물의 침공에서 무사하지는 못했다.
“키에에에!”
괴물들이 바다에 둥둥 떠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괴물들은 35개.
아니 북한이 숨겨둔 36개의 웜홀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41개국 또한 마찬가지.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화염!”
김인호 반장의 손짓에 수십 마리의 괴물이 학살당했다.
김인호의 레벨은 벌써 16.
최근 들어 레벨업 속도가 급격히 느려졌지만 원래 레벨이 3이었던걸 생각하면 폭렙도 이런 폭렙이 없었다.
“화염 폭풍.”
김인호의 말에 허공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화염줄기가 괴물들을 덮쳤다.
“키에에에에!”
순식간에 불타버린 수백 마리의 괴물들.
하지만 방벽 밑엔 아직도 셀 수 없이 많은 괴물이 존재했다.
“후.”
다른 초능력자와 교대를 한 김인호가 대기실로 내려가 티비를 켰다.
-현재 괴물 현황을 알려드립니다.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괴물들이 대거 바다를 통해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웜홀에서 괴물이 나오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안전한 장소를 찾아 피해계십시오.
“......세상은 괴물천지가 됐는데 아직도 방송이 나온다라.”
방송국과 발전소를 지켜낸 천둥교 덕에 대피소나 쉘터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티비를 시청할 수 있었다.
물 또한 마찬가지.
비록 전국에 흩어져있는 정수장을 지키지 못해 각 가구에 정수 안 된 물을 공급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일이었다.
일단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온다는 게 어딘가.
다른 나라 상황을 생각하면 축복받은 거나 다름없었다.
핸드폰으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간 김인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인터넷도 되고.”
정말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종말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될 정도.
“...다 라오님 덕이다.”
레벨을 올려 기존보다 4배 가까이 강해졌지만 김인호는 물론 모든 초능력자들은 라오에게 입은 은혜를 잊지 않았다.
그는 자신들이 충성을 바칠만한 존재였다.
지금 이정도 삶을 영위하는 건 모두 그의 공.
비록 밖은 괴물로 가득하지만 사람들은 인터넷과 티비를 이용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삶의 희망을 찾는다. 사람은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무너지는 법.
라오는 생존자들의 미래이자 희망이었다.
라오의 존재가 그들로 하여금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힘을 낼 수 있게 해준다.
김인호가 눈을 감고 말했다.
“라-오.”
김인호도 알고 있다.
자신의 기도가 라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김인호는 라오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그게 인류를 지켜낸 그리고 인류를 구원해낼 사람에 대한 예의라 여기며.
“으으. 저 괴물들. 모조리 쏴 죽여 버리겠어!!”
남자가 총을 들어 올리자 생존자들이 말리며 말했다.
“안 돼! 총알을 아껴야한다고!”
“젠장!”
남자가 땅을 걷어차며 말했다.
“식량. 얼마나 남았지?”
사제가 포함된 생존자들도 있지만 이곳 아파트 주민들은 그런 행운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아직 열흘정도는 더 버틸만해.”
“열흘...아무리 아껴먹어도 이주 버티면 다행이겠네. 그 다음은 어쩌지?”
시간을 벌어 식량을 비축한 덕에 지금까지 버텼지만 대신 다른 부작용이 있었다.
“식량을 구할 곳이 없어.”
마트와 편의점의 식량은 종말 직후 사람들이 모조리 털어버린 덕분에 식량을 구할 곳이 없었다.
특히나 이 아파트가 위치한 도심 같은 경우는 더욱더.
라오가 여러 식용식물 정보를 알려줬지만 그것도 나갈 방법이 있어야 구할 거 아닌가.
지금도 아파트 앞엔 십여 마리의 괴물이 어슬렁거리다 사람을 발견하면 득달같이 달려든다.
“티비 못 봤어? 사태가 진정 되는대로 구조작전을 시작한다잖아.”
“그걸 언제 기다리고 있냐고! 그거 기다리다 굶어 뒤질 판국에!”
한참을 씩씩거리던 남자가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독이 있어서 먹지도 못한다며!”
괴물에 대한 정보는 이미 웜홀 초창기부터 꾸준히 쌓아왔다.
웜홀 너머에서 자급자족 하기위해 수많은 조사를 하고 초능력자 한명이 희생당하기까지 하면서 알아낸 게 바로 괴물의 살을 먹으면 즉사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 모든 건 인터넷과 티비를 통해 공개되었다.
그런데 그때.
“흡!!”
고함을 지르던 남자가 무릎을 꿇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이어 함께 있던 생존자들도 무릎을 꿇었다.
“히. 힘이.”
그런데 유독 고함을 지르던 남자의 고양감이 더욱 강렬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생존자들과 다르게 남자는 계속해서 신음소리를 내었다.
“흡! 윽...컥!”
그렇게 고양감에 휩싸여있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중얼거렸다.
“이. 이건. 설마...초인?”
힘이 느껴졌다.
온몸에서 힘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들려오는 라오의 목소리.
-나는 라오다. 너네 10명 중 가장 오래 윽윽 거린 사람은 3배로 강화시켰어. 합일 쓸 수 있으니까 괴물이랑도 해볼 만할 거다. 무기를 들면 몇 마리정돈 가뿐하겠지. 대신 10분이 한계니까 효율적으로 쓰라고.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라오님? 라오님!”
하지만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라오의 목소리.
남자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매일 기도한 보람이 있었어...”
드디어 초인이 되었다.
이 막장스러운 세상에 가장 필요한 힘을 얻어냈다.
“이제 기도하면 안 되겠네. 세뇌되잖아.”
한 생존자의 말에 남자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난 계속 기도한다.”
“뭐?”
“세뇌가 무슨 상관이야? 라오님이 나쁜 마음을 먹었으면 우리도 내팽개치고 혼자 부하들 잔뜩 거느리고 어딘가에 숨었겠지. 안 그래? 섬 하나 구해서 방벽 높게 치고 그 안에 식량 가득가득 쌓아두면 라오님과 사제들이 늙어죽기 전까지 호화호식 했을 걸?”
남자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나는 라오님이 나쁜 일을 시킬 거라고 생각 안 해. 게다가 세뇌되어도 기본 성향까지 바뀌는 건 아니라며. 살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어. 계속 기도를 해야 더 높은 등급의 초인이 될 수 있다고.”
남자가 창 아래 괴물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저 괴물들. 한번 잡아볼까?”
“뭐? 위험해!”
“위험하다고 여기에만 처박혀 있을라고? 도시엔 식량이 없어. 이미 괴물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모두 싹쓸이 했다고.”
남자가 동사무소에서 받아온 군용검과 총을 집어 들었다. “만약 내가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다면 조금씩 외곽으로 빠져나가자. 산으로 올라가면 뭐라도 있을 거 아니야!”
남자가 생존자들에게 말했다.
“가서 한 마리 조져볼 테니까 10분 카운트 잘해.”
창문에 설치한 방어구조물을 떼어낸 남자가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합일!”
주변 생존자들에게서 힘을 빌려온 남자가 창문을 넘었다.
종말이 시작되고 첫 외출.
반겨주는 건 괴물이었다.
“키에에에에!!”
남자를 발견한 괴물들이 달려들었다.
남자는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오냐. 어차피 가만있으면 굶어 죽을 거 이판사판이야!”
가장 가까이에서 달려오는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보인다!”
싸움이라곤 생전해본적도 없지만 강해진 신체능력은 남자가 괴물의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앞발을 피한 남자가 군용검을 높이든 뒤 괴물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키엑!!”
단숨에 머리가 두 조각으로 나뉜 괴물이 자리에 쓰러졌다.
“헉헉.”
남자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할 수 있어! 상대할 수 있다고! 괴물을 이길 수 있어!”
한 마리만 상대하려고 했던 남자는 넘쳐 오르는 자신감으로 두 번째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읍!”
아무리 동체시력과 스피드가 올라갔다지만 남자는 경험부족으로 괴물의 앞발에 팔을 살짝 베였다.
“으아아아!!”
남자는 기죽지 않고 두 번째 괴물의 머리에 칼을 박아 넣었다.
“두 마리!!”
그때 생존자들이 외쳤다.
“얼른 돌아와!”
“알았어!”
남자는 또 다시 달려드는 괴물을 피해 창문으로 뛰어 들어갔다.
“키에에!!”
괴물들이 남자를 쫓아 창문으로 향했지만 나머지 생존자들에 의해 방어구조물로 막히자 계속 앞발로 내려치며 성질을 냈다.
대략 5분 정도 지났을까.
괴물들이 제풀에 지쳤는지 모두 돌아갔다.
“헉헉헉.”
합일의 후유증으로 바닥에 드러누운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봤지? 내가 괴물 두 동강내는 거 봤지?”
“그래. 봤어.”
“할 수 있어. 라오님이 준 이 힘이라면!”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 사제 임명.”
신도수가 삽시간에 20억을 돌파했다.
그리고 난 그 20억을 사용해 밖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사제로 임명시켰다.
나와 그들은 이 상태창으로만 연결되어있다.
하지만 그들의 절박함은 분명 나에게 전해진다.
“20억만 기도를 하는 걸까 그게 아니면...”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20억만 남은 걸까.”
종말이 시작된 지 20일이 지났다.
산술적으로 36개 웜홀에서 10억이 넘는 괴물이 튀어나왔다는 말.
그 끔찍한 괴물들이 10억 마리.
상상이 가질 않는다.
문제는 아직도 웜홀에선 괴물을 토해내고 있다는 것.
도대체 얼마나 많은 괴물이 웜홀 너머에 존재하는 걸까.
“......언제 움직여야하지?”
일단은 상황을 관망하기 위해 숨죽이고 기다렸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이 또한 종말을 기다릴 때처럼 기약 없는 기다림이면 어떡하지.
“젠장.”
그때 지나가던 꼬마가 나를 보고 말했다.
“앗! 라오님이다! 라오님 안녕하세요!”
“오냐. 안녕하다.”
사람들의 이런 반응이 좀 어색해서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꼬마는 여전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엄마가 라오님 덕분에 살았다고 매일 기도하라고 해서 오늘도 기도했어요!”
“그거야 여기 대피소에 있으려면 필수로 해야 하는 거니까.” “헤헤.”
그때 꼬마가 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이거 받으세요. 제가 아껴둔 건데 라오님 드릴게요.”
꼬마가 건네준 건 바로 보존식.
비록 대부분을 먹고 조금 남은 거지만 현재 사람들의 식사량을 극단적으로 통제하는 상황에서 이 남은 식량은 꼬마가 가진 가장 중요한 물건일거다.
배고플 텐데.
어린 아이라서 배급량도 많지 않을 텐데.
“헤헤.”
기대에 찬 얼굴로 날 바라보는 꼬마.
그때 뒤에서 나를 수행하던 사제가 나서며 말했다.
“그런 걸 라오님께 드릴 수는...”
“그만.”
나는 사제를 제지하고 꼬마의 남은 보존식을 받았다.
“흠.”
돌려줄까 생각도 했지만 이 어린꼬마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는 일.
나는 남은 식량을 한입에 털어 넣고 삼켰다.
“음.”
역시 보존식답게 맞은 드럽게 없네.
나는 본단에 대피해있는 5만 명의 지도자.
본단 안엔 보존식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처음으로 만든 대피소답게 밭에서 나오는 야채와 채소 그리고 사육장에서 나오는 고기까지.
나는 종말 전처럼 푸짐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와 고위 사제들만 종말 전과 다를 바 없는 식사를 하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도 립 서비스 정도는 해줘야지.
“맛있네.”
“헤헤.”
“그래도 다음부턴 나한테 주지 마. 너 먹어. 배고플 거 아니야.”
“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꼬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맛에 착한 짓 하는 거지.”
보람차다.
사람들은 나를 구원자라 부르며 경애를 표한다.
“좋아. 각 대피소로 연락해서 언제든 원정 나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인류는 밖으로 나가야한다.
생존을 위해서.
“기다린다. 계속해서 기다리는 거야. 괴물에게 반격을 가할 기회를. 틈이 보이는 그 순간.”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땅에서 괴물을 몰아낸다. 그게 인류가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야.”
< 11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