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도심 한복판에 즐비한 고층 건물 사이로 엄청난 높이의 철판이 놓여졌다.
“단단히 고정시켜!”
그리고 그 뒤엔 수많은 잡동사니를 쌓아 올려 철판의 지지대 역할을 하게하였다.
비록 어설프지만 건물을 활용하여 시간도 단축되고 괴물은 철판을 뚫을 수 없으니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건물 창도 모조리 철판으로 둘러 괴물의 습격을 대비하였다.
“좋아. 이정도면 최대 1만 명까지도 수용이 가능해.”
면적은 좁지만 건물의 방을 활용할 수 있으니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두두두두두.
중장비가 대피소 바닥에 깔린 아스팔트를 박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시민이 다가와 말했다.
“저기. 질문하나 해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왜 아스팔트를 부시는 겁니까?”
“흙을 파내기 위해서입니다.”
“흙이요?”
“예. 흙을 파내 건물 층마다 깔아서 농작물을 심을 겁니다.”
시민이 경악해 하며 말했다.
“노. 농사를 짓겠다고요?”
한마디로 장기전을 준비한다는 뜻.
“그. 그렇게 오래 걸리나요?”
“그렇게 오래라니요?”
“농사를 지어야 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 하냐 이 말입니다.”
사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뉴스도 안보셨습니까? 지금 웜홀을 보유했던 나라는 하나도 빠짐없이 초토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괴물이 늘어나고 있고요. 지금 라오님 덕에 여유가 생겨서 뭔가 큰 착각을 하고 계신가본데 꿈 깨세요. 종말의 뜻도 모르십니까?”
사제가 뒤에 있는 다른 시민들에게도 외쳤다.
“혹시나 옛날생각하고 뻗대는 분이 계시면 나가셔도 좋습니다. 대피소에 들어온 이상 저희 통제에 철저히 따라주셔야 합니다.”
“핵발전소 방어를 강화하고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습니다.”
“전부 수용은 불가능하겠지.”
벌써 수백만이나 되는 시민들이 수용되었다.
이미 만원이 된 대피소는 문까지 걸어 잠근 상태.
계속해서 간이 수용소를 늘리고는 있지만 괴물들이 한국에까지 도달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어디까지 진출했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웜홀은 바로 1,500km 떨어진 내몽골에 있었다.
50km정도의 속도를 가진 괴물이 일직선으로 달려올 경우 하루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
하지만 중간에 있는 중국의 도시를 집어삼키며 오고 있기에 진군 속도는 많이 늦춰진 상황.
그들에게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나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베이징과 천진에서 초능력자를 총동원한 중국 정부가 결사항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황은?”
“......”
듣지 않아도 뻔했다.
웜홀 하나에서 초당 20마리로 24시간 만에 170만 마리의 괴물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겨우 몇 만 단위 초능력자와 군대로 막아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저항이란 것도 정부 주요기관을 중심으로 도망칠 시간을 버는 정도겠지.
시민들은 방치된 채.
“잘하면 일주일 아니면 그 이상도 기대해볼만 하겠어.”
그 정도만 해도 어딘가.
“정말 끝이 있긴 한 건가?”
지금도 웜홀에선 끝없이 괴물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한 웜홀이 170만, 전세계로 따지면 종말 직후 24시간 만에 무려 8,000만이 넘는 괴물들이 튀어나온 거다.
“진짜 종말이구나.”
인류의 멸종은 아니다.
분명 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을 테니까.
하지만 종말을 시작으로 인류의 문명은 끝났다.
70억의 인류는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모두 써먹어가며 그 숫자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괴물로 인해 대지가 점령당하고 대피소 같은 협소한 공간에 갇힌 인류가 과연 자급 자족을 해낼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지.
결국 인류는 다시 밖으로 나와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 아니면 대피소 자체 식량, 식수 생산량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인구가 줄어들겠지.
“일단은 최대한 대피소를 확장해 더 많은 사람들을...”
“라오님!!”
사제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뭐야? 무슨 일인데?”
“부. 북한에서 대규모 피난민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하아. 결국 올게 왔구나.”
한국보다 웜홀에 가까이 있는 북한이다.
가장 방비가 잘되어있는 한국으로 대피할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빠르다.
“소요가 일어나지 않게 최대한 진정시키면서......”
“그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사제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북한에 괴물들이 출몰했다고 합니다!!”
“뭐?”
아직 중국도 통과 못한 괴물들이 어떻게 북한에 나타난단 말인가.
잠시 멍하니 있던 나는 얼굴을 왈칵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북한 이 개새끼들 웜홀이 있는 걸 숨겼구나!!!”
“도망쳐!!”
북한 주민들이 지뢰밭조차 무시하고 무작정 남한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 뒤를 추적하는 검은 물체들.
괴물이었다.
“젠장!! 모두 방어 준비해!!!”
원래 계획대로라면 국경 수비대는 적절한 시기에 남하하여 군을 위해 마련한 대피소로 피신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이른 시점에 괴물들이 난입했다.
“크악!!”
북한 주민들을 도륙하며 다가오는 괴물들의 모습에 총을 든 병사들의 손이 달달 떨렸다.
“으으. 뭐가 저렇게 많아!!”
끝도 없이 밀려오는 괴물들.
“대위님! 지금이라도 후퇴해야 합니다.”
그러자 대위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퇴각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병사들이 답답한 얼굴로 외쳤다.
“지금 명령 기다릴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저 숫자를 보세요! 우리 정도는 순식간에 전멸할겁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다.”
대위를 비롯한 간부들은 모두 라오의 은총을 받은 초인들.
그들이 받은 명령은 국경을 수비하라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아깝지 않았다.
“모두 제 자리로...아....”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지은 대위가 조용히 말했다.
“라-오.”
“대. 대위님?”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퇴각한다. 수송차량을 타고 모두 후퇴해!”
-긴급 대피명령입니다. 모두 대피하십시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모두 대피하십시오.
“젠장! 젠장!”
대피소는 이미 허용인원을 초과했기에 대피소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생존을 도모했다.
남쪽으로 무작정 도망치는 사람부터 자신의 집을 스스로 개조하는 사람까지.
“창문 모두 막았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괴물의 점프력을 고려해 창문과 아파트 동 입구를 온갖 가구들을 칭칭 동여매 막았다.
“대피소로 갔어야 했는데.”
튼튼한 철문과 두꺼운 방벽.
거기다 대피소를 지키고 있는 든든한 초인들까지.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왜 라오님 말을 안 들었지.”
천둥교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매일 같이 시위에 참여했던 남자는 후회의 눈물을 뚝뚝 흘렸다.
“대피 훈련 열심히 받을걸. 흑흑.”
그러자 그의 아내가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너무 그러지마. 자기만 그런 게 아니잖아. 여기 있는 모두 마찬가지야.”
아내의 말에 남자와 같이 아파트를 봉쇄한 주민들 모두 고개를 푹 숙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라오를 성토하던 사람들. 그때 한 주민이 아파트 알림판에 붙어있는 전단지를 뜯어왔다.
“...생존 방법이야.”
생존에 필요한 기술과 여러 정보가 적힌 전단지.
천둥교는 이런 전단지를 매일 같이 아파트와 가정에 무차별 배포했었다.
남자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시위 나갈 때마다 보이면 뜯어버리고 전단지 붙이는 공무원이랑 싸우고 그랬었는데.”
그랬던 전단지가 이제는 그들이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지푸라기가 되었다.
“라오님은... 진심으로 우리를 살리고 싶었던 거야.”
세상의 편견과 싸워가며 사람들을 위해 노력했던 라오.
종말이 닥치고서야 그가 그동안 해왔던 모든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괴물로부터 자신들의 몸을 지킬 수 있도록 총과 무기를 나눠주고 식량을 비축할 수 있도록 보존식을 나누어주고.
“다들 먹을 거 얼마나 비축하고 있어?”
한 주민의 말에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런 시기에 식량은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물품이었다.
다들 서로 눈치만 보던 이때.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서로 가진 물품을 모아 공유하도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주민들이 발끈했다.
“만약 숨기는 집이 있으면 어떻게 할 건데! 공유한 집만 바보 되는 거 아니야!”
“맞아! 언제 이 사태가 해결될지 모르는데 식량만은 절대 안 돼!”
그러자 남자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해합니다. 이런 시기에 식량만큼 민감한 문제는 없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공평하고 깨끗하게 관리해야합니다.”
“그러니까 공평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각자 식구수도 다르고 비축량도 다른데 어떻게 공평하게 배분한다는 거야!”
그러자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따라오시지요. 보여드릴게 있습니다.”
“...이. 이게 뭐야.”
남자는 주민들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집안을 가득 매우고 있는 보존식과 식수들.
정말 현관 앞에 사람한명 누울 공간을 제외하고 집안은 모두 식량과 식수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남자가 주민들에게 말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혹시 여기 계신 분 중에 저보다 많은 식량을 가지고 계신 분 계십니까?”
주민들은 침묵했다.
“없겠지요. 아니. 오히려 여기 있는 분들이 가진 식량을 모두 합쳐도 저보다 많지는 않을 겁니다.”
탐욕에 젖을 법도 하건만 너무 압도적으로 많은 양에 사람들은 욕심보단 당혹감이 먼저 들었다.
현관에 있는 옷가지와 이불로 미루어 보아 이 남자는 집안에 식량을 채우기 위해 현관에서 잠을 자고 생활했다는 말.
설사 라오의 경고를 믿었다고 해도 이건 너무 과했다.
그때 한 주민이 경악하며 말했다.
“서. 설마.”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전 라오님의 사제 즉 초인입니다. 1.2배밖에 안되긴 하지만.”
같은 아파트 동의 주민 중에 라오의 사제가 있었다니.
경악한 주민중 하나가 말했다.
“아니. 근데 초인이 왜 대피소로 안가고 여기에 있는 겁니까? 그것도 이렇게 많은 식량을 가지고?”
“라오님은 어느 날 계시를 내려주셨습니다. 종말에 대비하라고. 그리고 사람들을 구하라고.”
사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오님께선 여러분을 버리지 않습니다.”
후회의 눈물을 흘렸던 남자가 다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렇게까지....이렇게까지 우리를 생각해주다니. 그런 사람에게 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니지. 사람이라니. 그분은 신이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내려온 신.”
남자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저희 집 식량 내놓겠습니다.”
아내가 남자의 옷을 잡으며 말했다.
“여보!”
“당신은 가만히 있어.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여기 사제님이랑 식량을 공유하는 편이 우리에겐 오히려 이득 아니야? 우리 집에 있는 거 솔직히 말해서 한 달도 못 버텨. 그런데 이 사제님은 우리를 위해 대피소도 가지 않은 채 식량까지 공유해주겠다 하셨어. 아
무리 시기가 이래도 사람이 양심은 있어야지!”
남자의 말에 주민들이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그동안 받기만 하면서 고마운 줄도 모르고 살았던 거야. 라오님이 억지로라도 쥐어주지 않았으면 이거.”
남자가 자신의 칼빈 소총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거도 없었고 집안에 식량도 없었어. 안 그래?”
“그건... 그렇지.”
남자가 사제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제님이 안계셨다면 어찌됐을지.”
“아닙니다. 전 라오님의 계시를 따른 것뿐입니다.”
“앞으로 시키시는 거 열심히 따르겠습니다. 저희가 무얼 하면 될까요?”
“기도.” 사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도를 올리세요. 그 기도로 라오님은 여러분을 이 종말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힘을 내려주실 겁니다.”
그때 한 주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사제가 되고 기도를 하면...”
“저는 개인적으로 라오님의 선택을 받아 행복합니다. 당장 보세요.”
사제가 자신의 집에 있는 식량을 가리키며 말했다.
“라오님의 선택을 받았기에 이렇게 식량을 쌓은 거 아닙니까. 정 불안하시면 신체능력 강화를 받은 뒤 기도를 안 하시면 됩니다.”
사제가 말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 11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