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두다다다다다!!
방벽 위 초인들의 총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키에에에엑!!”
순식간에 집중포화를 받은 괴물은 전신이 난자당해 걸레짝이 됐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웜홀을 통해 엄청난 수의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경악한 표정의 초능력자들이 방벽의 문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괴. 괴물이 어떻게 웜홀을 통과한 거야!!”
“도망쳐!!”
그리곤 철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열어줘! 열어달라고!!”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철문.
“제발 열어줘! 우리도 들어가게 해달라고!”
그러는 사이 웜홀 주위엔 나오는 족족 죽어나가는 괴물들의 사체로 쌓여가기 시작했다.
“라오님!”
초인 부대원이 외쳤다.
“시체들에 웜홀이 가려지고 있습니다!”
시체들이 자연스럽게 웜홀의 방패가 되어주고 그 덕에 총알세례를 피한 괴물이 앞선 괴물보다 조금 더 앞으로 전진한다.
물론 초인 부대의 뛰어난 사격실력은 괴물이 보이는 순간 시체로 만들어버리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시체가 또 다시 다른 괴물의 방패가 된다.
엄청난 숫자를 무기로 계속해서 웜홀을 중심으로 넓어지는 괴물의 사체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대전차로켓으로 날려버려!”
내 명령에 방벽 곳곳에서 대전차 로켓이 괴물들에게 발사됐다.
쾅쾅쾅!
괴물들의 시체가 박살이 났지만 잘못된 판단이었을까.
로켓에 의해 연기와 흙먼지가 뿌려지며 초인들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그사이 여기저기로 뛰쳐나오는 괴물들.
총알세례를 맞고 죽어버렸지만 또 다시 괴물들의 사체가 쌓여간다.
더 넓은 범위로.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끝도 없이 밀려오는군.”
한국을 포함한 41개국이야 여기 방벽처럼 웜홀을 중심으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지만 웜홀을 단순히 초능력자 레벨업용 사냥터로 여기던 다른 나라에 이정도 규모의 괴물들이 들이닥친다면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일초에 십 수 마리의 괴물을 쏟아내는 웜홀.
경비대가 당황해하는 사이 괴물은 순식간에 수백 마리로 쌓일 거고 대처를 시작할 때는 이미 수천마리로 불어나 있을 거다.
“젠장.”
그러는 사이 괴물과 함께 갇힌 초능력자들은 더욱더 영역을 넓힌 괴물들을 보며 괴성을 질렀다.
“제발 열어달라고!”
“라오님! 살려주세요!! 시키는 대로 다하겠습니다!”
그중엔 초능력자들을 규합한 한제동도 있었다.
한제동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외쳤다.
“라오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열어주세요!”
그때 한 초능력자가 외쳤다.
“비행!”
비행 능력을 각성한 초능력자가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자 초능력자들이 외쳤다.
“나도 데려가 나도!!”
비행 초능력자가 겁에 질린 얼굴로 외쳤다.
“개소리 하지 마! 내 능력이 전투에 쓸모가 없다며 따돌릴 때는 언제고! 난 살 거야!”
비행 초능력자가 천천히 하늘로 떠오르며 혼자 탈출을 시도하자 초능력자들의 그의 발목을 잡아챘다.
“나도 데려가라고 나도!!”
나는 쉬지 않고 총을 쏘면서 그 난장판을 곁눈질로 힐끗 보았다.
“난장판이군.”
그때 괴물이 웜홀을 통과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멍하니 있던 김인호가 말했다.
“이 방벽 없이 내가 보았던 그 많은 괴물들이 대한민국에 퍼져나갔다면...”
김인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바로 종말.”
그때 김인호가 고함을 지르는 초능력자들을 보고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라오님.”
“왜. 나 바쁜 거 안보여?”
“제발 저들을 살려주십시오. 중요한 전력입니다.”
“방벽을 통과하지 않은 건 저들 선택이야.”
“하. 하지만...”
나는 과열된 총구를 내리며 말했다.
“김인호. 난 언제나 경고했어.”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자 김인호가 흠칫 놀란다.
“종말이 온다고. 대비하라고. 믿고 안 믿고는 개인의 자유지만 그로인한 대가는 본인이 치러야지.”
“......”
“이런 식의 재난일 줄은 몰랐지만 난 언제나 이런 사태를 대비하고 경계하며 동시에 경고했어. 하지만 나를 사이비, 사기꾼 취급한건 너희야.”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억울함이 쌓여있었나 보다.
정말 종말이 시작되자 모욕과 경멸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봐라.
내가 옳았다.
너희는 틀렸고 내가 옳았어.
너희들이 콧방귀를 뀌며 무시했던 내 말대로 정말 종말이 왔는데 느낌이 어때?
“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치욕을 참아가며 지금까지 버텼어. 내가 인류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동안 너희는 뭘 했지?”
“......”
“불과 몇 분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협회 인가를 요청하며 으름장을 놓던 놈들이야. 그런 놈들을 내가 왜 구해줘야 하지? 더군다나.”
나는 김인호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저들은 내 신도도 아닌데?”
김인호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하다고 할 필요까지는 없어. 너뿐만 아니라 모두가 나를 비난했으니까.”
나는 새로운 총을 쥐며 말했다.
“나는 늘 참았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움직이는데 정작 내가 구해내려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기분을 네가 아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해방감까지 느껴진다.”
기약 없는 종말에 대한 기다림.
내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걱정.
“정말...이율배반적인 생각이지만.”
이 재난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거다.
그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지만 미안함은 없다.
나는 늘 경고했고 그 경고를 듣지 않고 믿지 않은 건 그들이니까.
난 할 만큼 했다.
“난 조금 기쁘기까지 하다. 이상하지? 나도 내가 이상한 거 같아. 종말이 기쁘다니.”
“......이상하지 않습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김인호를 바라보았다.
“...뭐?”
“라오님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대단합니다. 지금까지 버텨온 라오님의 의지는 대단합니다.”
내가 대단하다고?
“얼마나 끔찍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종말에 대한 두려움과 사람들의 비난을 동시에 견뎌야 했으니까요.”
“이해...해주는 거냐?”
“라오님.”
김인호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저희 모두는 당신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래.
난 이걸 바랐던 거야.
인정.
내가 해온 모든 준비와 대비가 인정받기를 원한 거다.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기를 바란 거다.
김인호가 갇혀있는 초능력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 저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빚을 갚을 기회 말입니다.”
나는 잠시 김인호를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결국은 그 말 때문에 빚이니 뭐니 한 거야?”
“라오님에게 빚을 졌다는 건 제 진심입니다.”
“뭐. 좋아. 초능력자들은 이런 시대에 아주 유용한 전력이니까.”
김인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그럼 구해주시는 겁니까?”
“문을 열수는 없다. 문을 열고 닫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대신 밧줄을 내리는 건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김인호에게 비상 밧줄을 넘겨주라 사제에게 지시하고 난 다시 계속해서 괴물들을 향해 총을 갈겼다.
“으아아아아!!!”
괴물들이 초인 부대의 포화를 뚫고 점점 더 범위를 넓혀갔다.
이젠 거의 초능력자들이 모여 있는 방벽 바로 근처까지 진출하는 수준.
“화염!!”
“얼음!!”
괴물 자체는 그렇게 강하지 않아 초능력자들에게 순삭 당했지만 더 많은 괴물이 몰려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한 초능력자가 주저앉아 오줌을 지리며 말했다.
“주. 죽기 싫어.”
초능력자들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저 웜홀에서 나온 괴물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런데 그때 방벽위에서 밧줄이 내려왔다.
“모두 밧줄을 타고 올라와!”
바로 김인호였다.
초능력자들이 감동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김인호 반장님...”
반대 파벌인 자신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하다니.
김인호가 내려준 밧줄은 그들에게는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초능력자들이 밧줄을 잡고 방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한 그때 한제동이 외쳤다.
“나 협회장이야! 모두 비켜! 내가 먼저 오를 거다!”
그러자 초능력자들이 화를 내며 말했다.
“개소리 하지 마! 너 때문에 우리까지 모두 갇힌 거 아니야!!”
“염치없는 새끼!”
한제동이 발악하며 외쳤다.
“나 협회장이라고!! 감히 협회장한테!!”
그러자 초능력자들이 능력을 발현하고 말했다.
“한번만 더 같잖은 협회장 소리를 하면 너부터 죽여주마!”
한제동이 협회장을 할 만큼 제법 강한 초능력자인건 사실이나 이 많은 초능력자들을 모두 상대할 방법은 없었다.
한제동이 울먹이며 말했다.
“나. 난 협회장이라고....”
“후.”
나는 굳은 표정으로 사제에게 물었다.
“다른 나라 상황은 어떻지?”
“15개 초인 부대가 모두 분투중입니다.”
“우리 말고. 다른 나라.”
내 말에 사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웜홀 경비대를 전멸시키고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하아. 도대체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웜홀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괴물들은 주변을 박살내고 점점 더 퍼져나갈 거다.
게다가 괴물이 여긴 한국이고 우리 담당이 아니네 하면서 넘어갈 리도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괴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
괴물들의 영역이 이젠 방벽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웜홀 원천 봉쇄는 진즉에 포기했고 괴물들의 영역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지만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크아아악!!”
결국 괴물과 아직 밧줄을 타지 못한 초능력자들 간의 교전이 벌어졌다.
괴물의 앞발에 초능력자들의 전신이 난자당한다.
능력을 사용하며 저항했지만 압도적인 수 앞에 결국 순식간에 전멸해버린 초능력자들.
그 안엔 한제동도 포함되어 있었다.
“키에에에!!”
방벽에 도달한 괴물들이 방벽을 향해 날카로운 앞발을 휘둘렀다.
탁! 탁!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방벽에 괴물들의 앞발이 튕겨나갔다.
“키에에에!!”
철문에 도착한 괴물들도 철문을 향해 앞발을 휘둘렀지만 초합금으로 이루어진 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흠.”
괴물 하나하나는 매우 약하다.
저들의 무기는 압도적인 수.
방벽에 가로막힌 괴물들이 방벽위로 가기위해 뛰어오른다.
“키에에!!”
무려 5m 가까이 뛰어오른 괴물들이지만 이 방벽을 넘기는 불가능했다.
“흠.”
처음엔 패닉에 빠져 미친 듯이 총질을 했지만 난 일개 병사가 아닌 지휘관.
나는 괴물들을 관찰했다.
“기어오르지는 못하네.”
콘크리트 방벽과 철문을 때려봐야 자기 손만 아프겠지.
“방벽 안이 괴물들로 가득 찼군.”
그러나 여전히 계속해서 괴물을 뿜어내는 웜홀.
괴물들이 서로를 올라타며 조금씩 조금씩 올라간다.
마치 컵 안을 채우는 물처럼.
“모두 사격 중지!!” 내 명령에 초인 부대의 총소리가 멈췄다.
총질로 커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어차피 눈앞에 널린 게 괴물들.
대량 살상 무기로 죽이는 편이 효율적이겠지.
저안에 수류탄 하나만 던져도 수십 마리씩 죽어나갈 거다.
“모두 수류...아니지.”
아니지.
수류탄도 아깝지.
왜 이런 곳에 무기를 써?
“공짜 대량살상 무기가 있는데.”
“흑흑흑.”
초능력자들이 김인호를 부둥켜안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모두 라오님의 덕입니다.”
초능력자들이 넋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다른 웜홀도 전부 이렇게 됐습니까?”
김인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듣기론 그렇습니다.”
“...종말. 라오가 말하던 종말이 이거구나.”
초능력자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종말은 진짜였어. 라오는 이걸 막으려고 한 거고.”
방벽을 세운 41개국의 15개 웜홀은 어떻게든 막고 있지만 다른 나라 사정은 안 봐도 뻔했다.
전세계에 이 괴물들 수천만, 수억 마리가 풀려나가는 거다.
자신들이야 몇 마리 정도는 가볍게 상대할 수 있지만 일반인에겐 아니었다.
김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제가 저 괴물무리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도 라오님의 경고 덕이었습니다. 위험하다고요.”
“......우리는 라오를 사이비라고만 여겼는데.”
초능력자들이 침묵했다.
그때 한 초인 병사가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김인호 반장님. 라오님께서 찾으십니다.”
“어서와.”
방벽으로 올라온 김인호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째서 사격을 멈춘 겁니까?”
방벽 안엔 괴물로 가득했고 귀청이 찢어지도록 울리던 총성이 모두 그쳐있었다.
“그 정도로는 감당이 안 되더라고. 저 미친 괴물 놈들이 층층이 쌓여서 올라오고 있어.”
“바. 방벽으로 못 막다니.”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폭탄 던지고 네이팜 던지고. 정 아무것도 없으면 기름통 던져서 불 질러도 돼.”
“그럼 어서 막아야하는 거 아닙니까? 이 방벽은 절대로 무너지면 안 됩니다!”
“나도 동감이야. 그래서 말인데 이리 와봐.”
나는 김인호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방벽 끝으로 다가가 말했다.
“보여? 이 방벽 안이 전부 괴물이야. 아주 새까맣지?”
“으으...”
“물론 이 방벽은 괴물 무게 정도론 무너지지 않아. 두께 보면 알거 아니야. 콘크리트 안엔 철판과 철근으로 도배를 해놨다고. 아마 백년도 거뜬할 거야.”
나는 총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 무기는 적절한 보급이 없을 경우 백년은 고사하고 1년 버티기도 힘들 거다.”
“......”
“그런데 너희는 아니잖아?”
나는 김인호의 가슴팍을 찌르며 말했다.
“잘 봐. 당한 게 있어서 무서운 건 알겠는데. 눈 씻고 잘 보라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거 완전 경험치 덩어리 아니야? 막 쏴도 다 맞을 거 아니야. 고정과녁이 널려있다고. 조준 안하고 막 쏴도 되는 경험치 덩어리.”
내 말에 김인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탄성을 내질렀다.
“아...”
“초능력자들 전부 위로 올라오라고 해. 기회를 주지. 복수의 시간이다.”
< 11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