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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109화 (110/188)

< 109화 >

“5분 남았다.”

30시간 때와 마찬가지로 웜홀 제 1 방벽엔 수많은 무기와 중화기로 무장한 초인 부대가 빼곡히 서있었다.

비상대기중인 곳은 이곳만이 아니었다.

수송기와 헬기가 탄약을 가득 실은 채 대기하고 있었고 대피소 역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발전소랑 방송국 방어준비는 차질 없겠지?”

“물론입니다.”

종말은 즉 인류 문명의 끝을 의미한다.

현 인류를 풍요로 이끈 가장 큰 원동력은 전기와 통신.

이 두 가지가 끊기면 사람들은 더욱 절망에 빠질게 분명했다.

나는 원자력 발전소에 높은 방벽을 건설하고 방송국엔 경비대를 대량으로 배치해둔 상태였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준비는 모두 해놔야 할 거 아닌가.

“...이러다 종말이 자연재해면 어이없겠는데.”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지진이 일어난다거나 운석이 떨어지는 등 영화에서 자주 주제로 다뤘던 종말일수도 있는 거 아닌가.

“에이. 아니겠지. 그럼 나한테 이런 능력을 줬을 리가 없잖아.”

자연재해를 막으라고 해놓고 나한테 교단 능력을 준다?

그딴 무능한 신이면 신이라 불릴 자격도 없다.

“1분 남았다. 모두 준비!”

초인 부대가 일제히 웜홀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내가 명령을 내릴 때까지 대기해!”

“예!”

나는 웜홀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오는 건가?”

30초.

“혹시 이번에도 아니면 도대체 언제인거야?”

10초.

“30주? 30개월?”

5초.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좋아. 덤벼라. 뭐든 좋으니까 덤벼!”

그리고 0초.

웜홀은 조용했다.

사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라오님. 시간이 됐습니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거 같습니다만.”

나는 말없이 웜홀을 바라보았다.

“비상대기 명령을 해제할까요?”

나는 조용히 사제에게 말했다.

“이게 안 느껴져?”

“예?”

느껴진다.

30시간 때와 다르다.

“웜홀이...”

외향적인 변화는 없으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웜홀이 무언가 달라졌다.

그게 웜홀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운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피부로 느껴진다.

“종말이...시작됐다.”

“예?”

바로 그때.

웜홀이 출렁이며 알몸의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지구야!!”

바로 웜홀 너머에 있던 초능력자들.

하얗게 질린 초능력자들이 줄을 지어 웜홀에서 튀어나왔다.

“으아!!”

끝도 없이 튀어나오는 초능력자들.

무언가에 크게 놀란 모습에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라오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내 외침에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린 초능력자들이 높은 방벽과 거기에 올라가있는 초인들을 보고 기겁을 하며 외쳤다.

“히익!”

“초. 초인 부대!”

나는 재차 외쳤다.

“아무나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때 초능력자들 무리에서 김인호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라. 라오님.”

“김인호. 도대체 무슨 일이야!”

김인호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괴. 괴물들이...”

“괴물?”

“괴물들이 몰려왔습니다.”

괴물들이 몰려왔다니.

“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라오님의 경고를 기억해 경계를 서다가 엄청난 숫자의 괴물들이 몰려오는 걸 발견했습니다.”

“엄청난 수? 얼마나?”

김인호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모.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니.”

“너무 많아서 셀 수 조차 없었습니다. 지평선을 시작으로 마치 눈에 보이는 모든 대지가 괴물의 검은색 피부로 물들어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렇게나 많다고?

“웜홀 쪽 상황은 어떻지?”

“아비규환입니다.”

사방에서 끝을 알 수 없는 괴물무리가 다가오고 있고 유일한 탈출구는 겨우 성인 4명이 동시에 통과 가능한 작은 웜홀 하나뿐.

“...라오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김인호가 나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런 김인호의 모습에 웜홀을 통과한 초능력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감사의 인사를 받기엔 이르다. 괴물의 종류는?”

“언제나 상대해오던 그 괴물입니다.”

날이 달린 앞발을 무기로 휘두르는 벌레 형태의 괴물.

“......”

내가 잠시 침묵하자 김인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희는 다행히 살았지만 괴물들이 도착하기 전에 모두 지구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너희가 살았다고?

“괴물이 웜홀을 넘지 못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잠시 웜홀을 노려보다 외쳤다.

“문열어줘!”

내 명령에 방벽의 유일한 출구인 철문이 굉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들어와!”

“감사합니다.”

초능력자들이 줄을 지어 방벽 안으로 들어왔다.

살아남았다는 안도의 표정과 함께 방벽으로 들어오는 초능력자들과 지금도 끊임없이 겁에 질린 초능력자들을 뱉어내는 웜홀.

“...괴물은 웜홀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지구로 도착하는 순간 긴장을 내려놓은 거겠지.

하지만 나는 긴장을 내려놓지 않았다.

“...뭔가 심상치 않아.”

분명 괴물이 웜홀을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여러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하지만 웜홀 자체가 인류의 기술력으론 파악조차 불가능한 미지의 것.

초능력자들은 끊임없이 강해지며 변화한다.

과연 그게 초능력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그때 웜홀에서 튀어나온 한 초능력자가 말했다.

“으아! 살았다!”

그 모습을 본 김인호가 말했다.

“한제동! 빨리 방벽 안으로 들어와!”

그 초능력자는 바로 초능력자협회장 한제동이었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한제동이 나와 눈을 마주치자 이를 갈며 말했다.

“라오...”

김인호가 다시 외쳤다.

“어서 들어와!”

“아니. 안전이 보장되기 전엔 절대 들어갈 수 없다!”

“뭐?”

어이없어하는 김인호에게서 고개를 돌린 한제동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라오!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라!”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보장해주지.”

“말로 하는 약속을 믿으라는 소리냐!”

한제동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협회장 한제동이다!”

방벽으로 향하던 초능력자들이 한제동을 바라보았다.

“모두 여기로 모여라! 우리가 초인들에게 받았던 치욕을 잊었나?”

초능력자들이 서로서로를 바라본다.

“뭉치면 힘이 되고 그 힘은 우리를 지켜준다. 저 방벽을 넘는 순간 다시 우리는 천둥교의 압제에 시달려야할 거다!”  그러자 일부 초능력자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강해졌다. 절대 초인에게 밀리지 않는다 이 말이야! 부족한건 오로지 머릿수. 우리는 뭉쳐야한다!”

김인호가 한제동에게 소리를 질렀다.

“한제동! 뭐하자는 거냐! 일단 방벽으로 넘어가서 해도 늦지 않아!”

“아니 늦는다. 봐라! 초인들이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지 않나!”

한제동의 말에 많은 수의 초능력자들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뭉쳐서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한다!”

대부분의 협회소속 초능력자들이 한제동 곁으로 모여들었다.

“흠. 안 들어오겠다고?”

“그래! 그러니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라.”

“보장하겠다고 해도 안 믿은 건 너다.”

“말로만 하는 보장을 누가 믿나!”

한제동의 주변으로 수백 명의 초능력자가 모이자 자신감이 붙은 한제동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라오! 우리는 옛날의 초능력자가 아니다.”

“......”

“나와 우리 협회는 라오에게 정식으로 협회 인가를 요청한다!”

나는 그런 한제동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뭐. 인가해준다고 해도 안 믿을 기센데. 그보다 한 가지만 묻자.”

나는 웜홀을 바라보며 말했다.

“괴물들이 어디까지 왔지?”

내 말에 한제동이 흠칫 놀라더니 말했다.

“그건 왜 묻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나 지금 너랑 놀아줄 기분 아니다.”

잠시 나를 노려보던 한제동이 말했다.

“내가 들어왔을 땐 이미 전초기지 방벽을 넘어 동료들과 교전을 시작한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넘어온 초능력자 숫자가 얼마나 되지?”

“그. 그걸 내가 어떻게 전부 파악하나!”

내 말에 대답을 한건 지금까지 옆에서 초능력자수를 파악하던 사제였다.

“지금까지 모두 6,000여명이 들어왔습니다.”

“6,000명이라.”

한제동이 들어온 지 대략 5분.

4,000명이 웜홀 너머에 남아있고 수많은 괴물과 교전을 시작했다 이 말이지?

“오래 못 버티겠군.”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부터 딱 1분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마지막 아량이다! 정확히 1분 뒤! 방벽의 문을 닫는다!”

내 말에 한제동 주위에 모여들었던 초능력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한제동이 초능력자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어차피 웜홀은 이미 통과했어! 지구란 말이야! 우리는 안전해!”

그렇게 초능력자들을 진정시키는 사이 1분이란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문 닫아!”

거대한 철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닫히려하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초능력자들 일부가 철문너머로 들어왔다.

한제동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줏대 없는 놈들.”

쿵.

육중한 소리와 함께 완전히 닫힌 걸 확인하고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부대 준비!”

내 말에 초인들이 다시 총구를 들어올렸다.

정확히는 웜홀을 겨누는 거지만 웜홀에서 방어벽 사이의 거리는 대략 70M.

웜홀 근처에 모여 있는 한제동과 초능력자들은 그 총구가 자신들에게 향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 정말로 총을 겨눴어!”

“아무리 강해졌어도 저 많은 탄을 막아내지는 못한단 말이야!”

한제동이 외쳤다.

“모두 겁먹지 마! 우리도 이제 강해졌어! 어차피 협박일 뿐이야! 김인호한테 못 들었어!? 라오가 초능력자를 죽이지 않는다는 거?”

웜홀을 늦게 통과한 탓에 눈앞에서 문이 닫히는 걸 본 일부 초능력자들이 철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우리는 아니야! 우리는 들여보내줘!!”

사제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열까요?”

“아니. 열지 않는다.”

방어벽의 문은 무려 1M두께의 초합금으로 만들어진 통자 문.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기에 닫히는데도 열리는데도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다.”

단 한 마리의 괴물도 방벽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그때 방벽으로 올라온 김인하가 말했다.

“라오님. 저들을 들여보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안 돼. 그냥 괴물이 웜홀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빌어. 그편이 빠를 거야.”

“예? 괴물이요? 괴물은 웜홀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빌라고. 나도 그러길 바라니까.”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초능력자들을 죽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내 말에 한제동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다.”

“아주 정확해. 맞아. 난 초능력자들을 죽이지 않아.”

나는 총의 안전 고리를 풀며 말했다.

“그러니 거기서 열심히 싸워라. 한마리라도 더 죽여라.”

내가 웜홀을 향해 총구를 겨누자 김인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오님. 한제동은 지금 자신이 가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겁니다. 저들은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고요. 제발 아량을...”

“나도 알아.”

큰일이 닥쳤을 때 안전한 곳에 도착한 사람의 머릿속에 가장먼저 드는 생각이 뭘까.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

김인호에게 듣기로 저 자는 웜홀 너머에서 초능력자들을 규합해 협회를 만든 자다.

처음 느껴보는 우월감에 도취해있었겠지.

놓치기 싫었겠지.

“사람이라면 당연한 거야. 충분히 이해해.”

“제. 제가 내려가서 설득하겠습니다.”

“안돼.”

김인호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에게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바로 그게 문제야. 시간이 없어.”

끊임없이 초능력자를 뱉어내던 웜홀이 처음으로 멈춰 섰다.

“시작인가.”

“예?”

“김인호.”

몇 초의 짧은 침묵 뒤 다시 초능력자를 뱉어내려는 듯 꿈틀거리는 웜홀.

“봐둬라.”

“그게 무슨...”

“이게 바로 내가 말해온 종말이다.”

그리고 웜홀에서 튀어나온 건 초능력자가 아닌 벌레 외형의 끔찍하게 생긴 괴물이었다.

웜홀을 넘지 못한다는 괴물이 웜홀을 넘었다.

나는 목청이 터지도록 외쳤다.

“발사!!!!!”

< 10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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