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6시간 남았다.”
종말의 꿈을 꾼지 딱 24시간.
“웜홀 경비를 몇배로 늘렸고 대피소는... 휴.”
한국은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가장먼저 대피소를 만들기 시작해 지금와선 거의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었으니까.
콘크리트와 철판으로 만들어진 두텁고 높은 벽과 수만명 이상이 세달이상 식용할 수 있는 물과 음식이 준비되어있다.
그런 대피소가 전국에 30여개.
그 외에 유사시 지하철을 대피소로 만들준비와 커다란 건물들 사이를 철판으로 막아 시내에 간이 방공호를 만들준비까지 마쳤다.
식량이 풍부한 대형마트 역시 마찬가지.
문제는 이 모든걸 다 합쳐봐야 대한민국의 모든 인구를 수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가장준비가 잘된 한국이 이정도인데 다른 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좋은건 웜홀을 단단히 틀어막아 원천봉쇄를 시키는 건데...가능할까?”
웜홀 주위로 두터운 콘크리트 방호벽을 3중으로 세운뒤 위에 초인 부대를 배치했지만 그정도로 쉽게 막아질 것 같으면 종말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겠지.
“나 혼자서 모든걸 준비하는건 역부족이야. 개개인의 준비도 필요해.”
최소한 집에 틀어박혀 우리가 구해줄 때까지 버틸만큼의 식량정도는 준비되있어야한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누가 집에다 보존식을 쌓아놓고 살겠는가.
당장 마트만 가도 마시고 먹을게 천지인데.
잘 발달된 유통망덕에 신선한 식재료를 365일 공급받아 왔지만 그것도 인류의 문명이 남아있을때나 가능한 일.
다행인건 일인가구의 증가로 레트로트 식품 비중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일단 급한데로 각가정에 3일치씩을 배급했는데 과연 그걸 그냥 내버려둘까?”
종말이 오기전에 먹어버릴 확률이 높겠지.
“방송을 하자.”
준비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협조만이라도 해달라고.
“30시간, 30일 이렇게 30단위는 모두 대비하자고 할까?”
너무 애매한데.
종말이란 핑계로 천둥교란 사이비를 유지하려는 발악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거다.
종말의 날이라며 찍어둔 날짜가 되어도 아무일없자 말바꾸는 사이비가 어디 한둘인가.
“젠장. 종말이 진짜 터지기 전까진 영락없는 사이비네. 잠깐. 보존식?”
내가 방송하려던 것은 대피소 훈련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이 아닌 내 말을 무시하고 집에 틀어박혀있을 사람들을 위해서다.
“보자. 가장 가까운 30시간과 30일. 이 두 번만 넘기면 그다음은 30개월이야. 시간이 넉넉하다는 말이지.”
게다가 난 당면한 30시간이나 30일이 가장 의심스럽다.
“어떻게 각 가정에 보존식을 쌓아두도록 만들지?”
집에 보존식을 쌓아두도록 만드는 방법.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보존식에 가치를 부여하면 되지!”
“난 라오다.”
나는 카메라를 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중대한 발표를 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믿어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 할까.
“종말이 온다.”
종말이 온다는 내 말에도 카메라를 들고있는 카메라 맨은 물론 프로듀서까지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다.
난 언제나 종말이 온다고 주장해 왔으니까.
“믿지 않겠지. 안다. 믿어달라고 하지 않겠다. 대비하라고도 하지 않겠다. 하지만 부탁이다.”
내가 라오를 자칭한 이후로 처음 공개석상에서 내뱉은 부탁이라는 말.
종말이란 말에도 꿈쩍안한 스탭들이 오히려 부탁이라는 말에 놀랐다.
“정말로 부탁한다. 배포한 보존식을 먹지말고 보관해라. 청와대와 공공기관 홈페이지엔 전국에 위치한 대피소 위치가 자세히 나와있다. 모두 다운받아서 프린트로 인쇄해 보관하고 있다가 종말이 시작되면 그곳으로 모여라. 만약 피치못할 사정으로 대피소에 가지 못
하면 방문을 닫고 천둥교 신도가 아니라면 나를 섬기겠다 말해라.”
신도가 되어야 위치를 파악할수있으니까.
“물론 믿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보존식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래서 제안하나 하지. 앞으로 30일뒤. 레트로트 식품이든 뭐든 장기간 보관가능한 식품이라면 모두 시가에 10배로 매입하겠다. 만약 사제기로 보존식 단가가 폭등한다? 그럼 폭등한 단가에 10배다.”
그러니까 30일동안 만이라도 집에 보존식 좀 쌓아두라고!
무조건 남는 장사잖아!
“나라를 말아먹느니 마니 하는 소리는 실컷들었다. 하지만 상관없어. 나를 이용해 너희 개인의 이득을 챙겨라. 물론 중간 유통업자들과 생산자들. 중간에서 사재기 할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우리가 직접 움직인다.” “뭐? 보존식?”
김호진은 자신이 시청하던 연속극까지 중단한체 나온 라오의 긴급 생방송을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30일 뒤 시가에 10배로 처준다고?”
하다하다 이제 이런 말도안되는 생방송까지 나오다니.
“이러다 나라 망하는거 아니야?”
천둥교가 나라를 집어삼킨 뒤로 한국 부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있었다.
“...그런데 이거 사재기 안하면 나만 손해잖아.”
교통비가 무료로 바뀌자 세금낭비라고 욕하는 사람도 본인이 교통수단을 이용할땐 아무말없이 무료로 사용한다.
결국 이용해먹지 못하는 놈이 손해.
“으음...만약 사뒀는데 뻥이었다며 오리발 내밀면 어쩌지?”
한참을 고민하던 김호진은 외투를 챙겨들며 말했다.
“일단은 사모으자. 나중에 뻥이라고 할땐 먹어버리면 되지. 딱 봐도 떡상각인데 미리 사놔야겠다.”
“반응은 어때?”
언론전문가가 자료를 보며 말했다.
“일단 종말에 대해서 신경쓰는 사람은 언론과 인터넷을 포함 거의 전무합니다.”
그거야 예상했지.
“다만 보존식 사재기는 이미 시작ㅤㄷㅚㅆ습니다. 인터넷에선 그...”
언론전문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존식 코인이라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면 ㅤㄷㅚㅆ어. 사람들이 혹했다는게 중요한거니까. 중간 업자들이 빼돌리지 못하게 직접 사제들을 파견해서 유통시켜. 생산업체도 전부 풀가동 시키고.”
“예.”
“마구 찍어내. 그리고 시중에 뿌려.”
꼭 가정집이 아니라도 좋다.
일단 장기보존식이 한국 여기저기에 널려있으면 생존자들이 살아남는데 큰 도움이 될테니까.
또한 종말이 시작되면 보존식은 정말 내 말처럼 천금같은 값어치를 지니게 될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웜홀로 가자.”
내 말에 싱크탱크들이 기겁을 하며 말했다.
“예?! 종말이 온다면서 가장 위험한 곳에 가시겠다니요! 안됩니다!”
“내 목숨을 함부로 여길 생각은 없다.”
내가 죽으면 누가 종말을 대비하고 누가 사제를 양성하나.
“어차피 거기에 있는 초인 부대 숫자만 수만명이야. 나 하나 못지키겠어? 다만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종말의 실체를.”
“오셨습니까!”
초인 강화복과 총기로 중무장한 초인부대가 나를 반겼다.
“방어태세는?”
“문제없습니다.”
웜홀을 중심으로 높게 쌓인 벽들.
벽 위엔 중기관포와 각종 병기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상식이는?”
“1번 방어벽에 계십니다.”
“가자.”
1번 벽어벽에 오르자 상식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며 손을 들어올렸다.
건방져 보이지만 저건 상식이가 최고로 반가울 때 하는 제스처.
나는 피식 웃으며 마찬가지로 손을 들어올렸다.
“상식아.”
상식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나부터 지켜야해.”
상식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만 믿는다.”
석주, 석호 형제와 동생들 그리고 최상급 사제들은 41개국에 따로 따로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벽위에서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웜홀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반드시 막아주마.” 시간이 흘러 어느덧 10분을 남겨둔 상황.
“훈련을 핑계로 미리 대피소에 피신시킬걸 그랬나?”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이미 늦었고 낮에 강제로 시켜도 참여율이 그따구인데 새벽이면 오죽할까.”
돈까지 쥐어주며 강제로 훈련에 참가시켰지만 그많은 인원을 전부 체크하고 온사람 못온사람 구분해낸다는건 불가능했다.
최종 참여율 15퍼센트.
“어차피 정말 종말이 터지면 가지말라고 해도 가게 돼있어.”
백마디 말보다 직접 보여주는게 빠르다.
종말이 터지는 순간 전국에 싸이렌을 울린뒤 긴급 방송을 내보내 사람들을 대피소로 불러모은다.
초인 부대와 3중 방벽은 시민들의 도주시간을 벌어줄거다.
나는 국방연구소를 닦달해 만든 나만을 위한 특제 강화복을 입었고 말했다.
“5분남았다. 모두 준비해!”
내 말에 벽위에 올라와 있는 초인 부대가 일제히 웜홀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후.”
긴장된다.
식은땀이 주륵주륵 내린다.
종말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더라도 더 많은 준비를 할수있도록 늦게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동시에 약한 수준으로 빨리 왔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
나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은 지겨우니까.
“욕도 그만 처먹고 싶고.”
세상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시간이 지났다해서 적응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
“시간이 됐다.”
웜홀엔 아무런 변화도 없다.
1분이 지나고 2분.
5분째가 되던 바로 그 순간.
“어!”
웜홀이 일그러지며 뭔가가 튀어나왔다.
“모두 발!! 자. 잠깐.”
괴물이 아니다.
웜홀에서 나온 사람은 발개벗은 몸의 김인호 반장이었다.
웜홀에서 나온 김인호 반장은 엄청난 높이의 벽과 자신을 겨누고 있는 수많은 총구에 화들짝 놀라 양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하. 항복!”
“...아무일도 없다고?”
김인호 반장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예.”
“정말이야? 괴물 숫자가 늘어났다던지 뭐 그런건 없어?”
“계속 같은 말씀만 반복하시는군요. 전 아직 웜홀로 넘어오지 않은 초능력자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돌아온건데...”
“후.”
30시간은 아니었나.
“콕 찝어 지금이라고 안한게 다행이다.”
그랬으면 나는 지금 천하에 거짓말쟁이가 되었겠지.
아무튼 최소 29일은 벌었다.
“그게 무슨...”
“신경쓰지마. 그런게 있어.”
“아. 예.”
“그나저나 웜홀 너머는 어때?”
“...어째서 그런걸 물으시는 겁니까?”
“궁금하잖아. 말하기 싫으면 말어. 아. 전진기지 건설은 끝났고? 레벨업은 순조로워?”
내 계속되는 질문에 김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호오. 내가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단호하셔? 이거 안보여?”
나는 벽위에 있는 초인 부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섭지 않아?”
“...저를 어떻게 못하실거 압니다.”
“흐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아네.”
“그럼 가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잘가봐. 아. 잠깐.”
벽을 향해 걸어가던 김인호가 몸을 돌렸다.
“아직 하실말씀이 남아있으십니까?” “이거 하나만 약속해줘.”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엔 그냥 넘어갔지만 다음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그게 무슨..”
“그냥 들어. 만약 웜홀 너머에 평소와 다른 이상현상이 생긴다면 지체하지말고 초능력자들을 끌고 이쪽으로 돌아와. 특히.”
나는 웜홀을 바라보며 말했다.
“29일뒤.”
“29일뒤요?”
“그래. 그날이 가장 위험해.”
김인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그날이 종말이라는 뜻입니까?”
“나도 확실하지는 않아. 하지만 하루 더 경계를 강화한다고 너희한테 손해가는건 없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무조건 이쪽으로 넘어와. 보호해주마.”
초능력자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강해진다.
이런곳에서 잃을 수는 없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래.”
나는 김인호가 방벽의 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29일...”
박종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10년 뒤엔 풀어줄거라고? 웃기는 소리.
“...니가 정확했구나,”
30시간이 지나자 이제 30일을 기다린다.
만약 30일도 지나면?
“...30개월을 기다리겠지.”
30개월이 지나면 30년.
하염없이 종말만을 대비하며 기다릴거다.
그러는 사이 나로 인해 쌓여가는 사람들의 불만과 이해관계 충돌속에 지금보다 더 한 혼돈으로 빠져들거다.
그들과 내가 생각하는 종말의 갭은 그만큼 크니까.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30개월까지 가진 않을거야.”
첫 번째 종말 꿈을 꾸고 두 번째 종말 꿈을 꿀때까지 걸린 시간, 그리고 세 번째 종말 꿈까지 걸린 시간.
모든걸 종합해봤을때 가장 의심스러운건 29일 뒤다.
“그래. 30개월은 아닐 거야. 정신차리고 준비하자.”
< 10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