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고아원 원장 유영창은 장지후가 언론에 언급되기 시작한 이후로 불안함에 시달려왔다.
수천 명 규모의 조직 보스가 된 장지후가 언제 자신을 찾아와 보복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유영창은 고아원을 부인 명의로 전환한 뒤 개명까지 하였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그때 해외로 진출하겠다는 장지후의 선언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지만 한국을 떠났던 장지후는 정부를 전복시키고 41개국을 장악한 괴물이 되어서 다시 나타났다.
“고아원을 팔아버릴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이 나이 먹고 어디 가서 이만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을 찾겠는가.
불안감 때문에 안락한 삶을 포기하기는 싫었다.
“그래. 찾으려면 진즉에 찾았겠지. 그리고 내가 뭐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먹여주고 재워주고.
부모 없는 고아를 데려다 키워준 자신 아닌가.
그런 자신을 위해 구걸 좀 시킨 게 뭐가 대수라고.
“자기 밥값은 자기가 벌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그때 고아원으로 돌아온 아이들이 유영창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꺼내봐.”
아이들이 유영창의 눈치를 보며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내밀었다.
“여기...”
유영창이 돈을 세어보고 왈칵 인상을 쓰며 말했다.
“겨우 이거 벌어오라고 비싼 밥 먹이는 줄 알아!?”
아이들이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요즘 천둥교 때문에 시끄러워서 그런지 다들...”
“시끄러!!”
유영창이 아이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모두 굶어!”
“......”
“기도는? 기도는 했겠지?”
유영창의 말에 아이들이 풀이 죽은 표정으로 말했다.
“예... 기도소가서 기도하고 왔어요.”
“그래. 혹시 거짓말 치는 거면 호되게 혼날 줄 알아라.”
아이들이 고아원으로 들어가자 유영창이 중얼거렸다.
“초인이 되면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겠지.”
가구 구성원 중 초인 한명이 늘어날 때마다 10퍼센트 영구 세금 감면혜택을 받도록 세제가 개편되자 유영창이 구상한 사업이었다.
고수입을 올리는 사람 중 가구 구성원 숫자가 부족한 가정에 초인을 입양 보내며 돈을 받는 방법.
물론 매일 기도를 해도 동일하게 세금 감면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기껏 입양한 아이가 성인이 되어 독립하면 혜택이 사라지는데 반해 초인을 입양하면 영구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흐흐. 나라가 뒤집어지니 돈 벌구멍이 잔뜩 생기는 구나.”
천둥교에서 신성력 확보 목적으로 급조한 세제법안이니 구멍이 많을 수밖에.
“이래서 고아원을 그만둘 수 없어. 어서 초인이 생겼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그때 수십 대의 검은 색 최고급 세단이 유영창의 눈에 띄었다.
“뭐지?”
유영창이 당황해하는 사이 어느새 고아원에 도착한 최고급 세단에서 검은 양복을 입을 건장한 남자들이 무더기로 내렸다.
“누. 누구십니까?”
남자들은 유영창의 말을 무시하고 고아원을 빙 둘러 포위하기 시작했다.
“다. 당신들 누구야!”
불길한 예감에 유영창이 고함을 질렀지만 남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아원을 둘러쌌다.
그리고 한 남자가 최고급 세단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마치 대통령이나 탈법한 리무진의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내렸다.
“자. 자. 자. 자.”
리무진에서 내린 남자가 유영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장지후!!”
그리고 이어서 차에서 내리는 두 명의 남자.
“이야. 여기로 이사했구나.”
바로 장지후와 함께 고아원에서 자랐던 석주, 석호 형제였다.
장지후가 유영창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우리 유 원장님. 이름을 영창으로 개명하셨데?”
유영창이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네. 네가 여기 무슨 일로...”
“무슨 일이긴.”
장지후가 유영창의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들이 아버지 찾아온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하하하하.”
유영창이 아이들을 모아두고 말했다.
“여기 누군지 알지? 천둥교의 교주이자 대한민국의 지배자. 라오야. 라오!”
유영창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너희 선배이기도 하지. 안 그러냐. 지후야?”
“하하.”
장난한번 쳐줬더니 좋단다.
“난 네가 이렇게 성공할 줄 알았다. 암. 그렇고, 말고. 어렸을 때부터 싹수가 보였지.”
고아원엔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 40여명이 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시선을 느끼며 말했다.
“너희들이 내 후배구나. 반갑다.”
“아. 안녕하세요.”
주눅이 들어있는 아이들.
나도 저 아이들과 같았겠지.
“그나저나 지후야.”
“말해.”
“저 아이들을 초인으로 만들어주면 안되겠니?”
“초인으로?”
“그래. 불쌍한 아이들이잖니. 초인이 되어 몸이라도 튼튼해야하지 않을까?”
이 인간이 정말 아이들 걱정해서 그러는 건 아닌 거 같고.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초인이 되고 싶니?”
아이들이 유영창 눈치를 보며 말했다.
“예...”
유영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봤지?”
나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왜 초인이 되고 싶니?”
아이들이 난처한 표정으로 서로서로를 바라본다.
유영창이 끼어들며 말했다.
“애들이 쑥스러워서 그런가 보다.”
“흠.”
나는 아이한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대표해서 대답해봐.”
“저. 저요?”
아이가 쭈뼛쭈뼛 거리며 말했다.
“거. 건강해지면 좋잖아요.”
“그게 다야?”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초인이 되면 아주 강해질 수 있어. 그럼 가장먼저 뭘 하고 싶어?”
“가장먼저요?”
아이가 유영창을 힐끔 보며 말했다.
“이. 일단 독립해서 일하고 싶어요.”
“복수하고 싶지 않아?”
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보. 복수요?”
“그래 복수.”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여기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냐 이 말이야.”
내 말에 유영창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내 뒤에 있던 석주, 석호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정말 아버지라고 생각해서 모시러 왔다 생각한 걸까?”
“에이. 형.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양심이 있고 생각이 있으면...아. 양심과 생각이 없구나?”
석주, 석호 형제의 말에 유영창이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내.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는 유영창을 무시하고 아이에게 말했다.
“복수. 너희 손으로 하고 싶지 않니.”
평생을 고아원에서 눈칫밥 먹은 아이답게 단숨에 상황을 파악하고 말했다.
“...하고 싶어요.”
“그렇지? 강해지고 싶어?”
“강해지고 싶어요.”
“그런데 무섭지 않아? 초인이 되었다가 교화당하면 어떡해.”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교화당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천둥교의 일부가 되어 나에게 충성을 바치게 돼.”
“겨우 그건가요?” 겨우라.
“왜 겨우라고 생각하지?”
“어차피 초인이 되지 않은 저희 삶은 뻔하니까요.”
이런 어린아이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다니.
“앵벌이 하느라 배운 것도 없고 원장님과 원장님 사모님에게 두드려 맞고. 그러다 나이차서 성인이 되면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 500만원으로 원룸을 구해 막노동을 전전하겠죠. 아니면 라오님처럼 깡패가 되거나.”
정확히 내가 걸어온 삶이다.
“두 가지 선택이 있어. 교화를 피해 저급 초인으로 만족하거나 교화를 받아들이고 고위급 초인이 되거나.”
“고위급 초인이 되면 사람들이 무시하지 않겠죠? 강해지겠죠?”
“그래. 네 위론 오로지 나와 더 윗급 초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좋네요. 대신 많은 사람들 위에 설수 있으니까.”
저 아이들에게 있어서 교화가 가져올 부작용은 부작용 축에도 못 낀다.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빼면 이미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저 아이들 위에 있으니까.
나 역시 조직에 들어가 형님들을 모시고 충실히 따르지 않았나.
“나머지도 같은 생각이야?”
내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초인으로 만들어주지. 단, 더 고위 초인이 되는 건 너희들의 선택이다. 기도만 하지 않으면 교화되지 않으니까. 너희들이 선택해라. 교화를 받아들이고 단숨에 높은 위치에 오를지 아니면 저급 초인으로 만족할지.”
종말이 닥치면 저 아이들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1순위로 죽어나갈 거다.
그리고 저 아이들의 죽음은 그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못하는 개죽음.
차라리 교화를 받아들여 종말에서 살아남을 힘을 기르고 동시에 평생 벗어나지 못할 거라 생각한 밑바닥을 단숨에 벗어나는 편이 저 아이들에게도 좋겠지.
나는 어느새 부하들에게 제압당한 유영창에게 다가가 말했다.
“유영창.”
“사.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죽이지 않아.”
나는 유영창의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히려 죽여 달라고 빌도록 만들지.”
“으으으.”
“멍청하긴. 날 봤으면 죽어라 도망쳤어야지. 설마 내 말을 믿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다행이야. 여전히 개새끼라서.”
“...힘이 느껴져요.”
사제로 임명된 아이들이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계속 기도를 올리면 더 강해질 수 있는 건가요?”
“그래. 대신 지금부터 기도를 올리면 점차 천둥교와 하나가 된다.”
“알고 있어요. 대신 든든한 동료가 생기는 거 아닌가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절대 배신하지 않을 진정한 동료.”
“최고네요.”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조차 이렇게 소외받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에게 교화 같은 부가적인 요소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보다 얼마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나.
쳇바퀴같이 굴러가는 이 밑바닥 삶을 벗어날 수 있나 그것만이 중요할 뿐.
아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평생 라오님을 섬기겠습니다.”
“오냐. 천둥교에 온 걸 환영한다. 그리고 달라진 삶을 즐겨라.”
아이라 해서 종말이 비켜지나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건장한 성인보다 먼저 종말의 희생양이 될 확률이 높았다.
꺼림칙해서 아이는 사제임명을 시키지 않아왔지만 이런 고아들에겐 오히려 축복이었다.
“소외 계층...”
교화를 감수하고라도 힘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
삶의 궁지에 몰린 사람들.
그들은 각자가 소속된 나라의 의지와 상관없이 초인이 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큭. 더러운 인생.”
알렉스가 홈리스로 살아온 지 벌써 10년.
“뭐가 아메리카 드림이냐. 뭐가 팍스 아메리카야. 더러운 세상.”
잘나가던 사업가에서 한순간에 무너졌다.
더 이상 잃을게 없는 알렉스는 매일 라오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라-오. 나를 초인으로 만들어줘.”
미국 정부는 기도를 테러행위에 준하는 범죄로 규정했지만 몰래 기도를 올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 흡!”
매일 기도를 올린 지 한 달. 드디어 알렉스의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와. 왔다!”
몸에서 힘이 끓어오른다.
“이게 초인...하지만 부족해.”
이미 천둥교의 초인 등급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늘어난 힘으로 추정컨대 아마 자신은 이제 겨우 첫 단계인 1.2배 수준.
“기도해주마. 날 교화시켜라. 어차피 막장인 인생. 난 잃을게 없어!”
알렉스가 광기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 나에게 힘을 다오.”
“큰일입니다. 라오를 위해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CIA국장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대통령에게 말했다.
“초인이 되고 기도를 중단하면 세뇌당하지 않는다는 라오의 말을 믿고 기도를 하는 사람부터 교화까지 감수하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까지.”
대통령이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다.
“단속해도 소용없습니까?”
“예. 집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까지 잡아낼 방법은...”
“젠장!! 일단 초인이 되면 세뇌를 피할 길이 없다는 식으로 소문을 뿌리세요.”
“과연 그게 얼마나 먹힐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세요! 천둥교는 암덩어리입니다. 인류의 암덩어리! 41개국으로도 모자라 전세계 나라로 전이되고 있어요! 어떻게든 도려내야 합니다.”
CIA국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대통령 각하.”
“뭡니까?”
“라오를 죽여야 합니다.”
“어떻게요. 수십만 초인에게 둘러 쌓여 보호받고 있는 라오를 어떻게 죽입니까?”
“대통령 각하의 말씀대로 천둥교는 암덩이입니다. 도려내야죠.”
“그러니까 무슨 수로?”
“미사일로 정밀 타격하는 겁니다.”
대통령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라오를 말입니까?”
“예. 필요하다면 서울에 핵폭탄을 투하해서라도 죽여야 합니다.”
대통령이 경악하며 외쳤다.
“서울에 핵탄두를 투하하자고요? 제정신입니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민간인입니다. 게다가 만일 그렇게 하고도 실패하면 그때부턴 핵전쟁입니다!”
“대통령각하. 이대로라면 전 세계는 천둥교의 손아귀에 떨어질 겁니다. 초능력자들은 아직 천둥교를 상대하기엔 부족합니다. 천둥교가 더 크기 전에 죽여야 합니다. 라오가 죽으면 사람들의 세뇌가 풀릴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만약 세뇌가 풀리지 않는다면? 천둥교가 복수에 나서면 어떡합니까?”
“......대통령 각하. 썩은 살점을 도려낼 땐 멀쩡한 살도 같이 도려내야 온전한 새살이 나는 법입니다. 확실하지 않은 걱정 때문에 계속 천둥교를 내버려두면 더욱 손쓸 수 없을 겁니다.”
고뇌하는 대통령에게 CIA 국장이 말했다.
“결심하셔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천둥교 추종자들은 더 많이 늘어날 겁니다. 만악의 근원을 제거해야합니다. 핵폭탄이 부담되시면 그에 준하는 무언가라도 시도해야합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대통령이 말했다.
“많은 비판을 받을 겁니다. 의회도 설득해야하고요.”
CIA국장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지금 이 사태를 전시상황이라고 봅니다. 의회와 실랑이할 때가 아닙니다. 대통령 각하. 계엄령을 선포하셔야 합니다.”
< 10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