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100화 (101/188)

< 100화 >

“어서와.”

나는 고급 양주를 흔들며 말했다.

“한 잔 할래?”

내 말에 박종문이 이를 갈며 말했다.

“장지후...”

“일단 마셔. 맨 정신으론 힘들 테니까.”

나는 양주 한잔을 따라 박종문에 건네며 말했다.

“자. 마셔.”

나를 노려보던 박종문이 잔을 들고 한 번에 들이켰다.

“크으...”

“성수 아니냐고 의심할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냐.”

“흐흐흐.”

“게다가 성수를 마신 횟수에 의미가 있나? 결국 중요한건 기도를 했느냐 안했느냐 이겠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거기까지 파악했어? 잡아오길 잘했네.”

“한잔 더 줘.”

“그래. 까짓 거.”

한잔을 더 채워주자 다시 원 샷으로 비운 박종문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묻고 싶은 게 있다.”

“물어봐. 대답해줄게.”

“모든 게 네놈 소행이냐?”

박종문의 질문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 알고 있던 거 아니었어?”

“파란교 교주를 세뇌시켜서 장기 말로 사용한 건가?”

“과정은 다르지만 뭐. 비슷해. 그런데 과연 파란교만 그런 걸까? 라오를 믿는 종교가 한둘이 아니지?”

내 말에 박종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설마...”

나는 태연하게 양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맞아. 전부 내 부하들이야.”

내 말의 뜻을 단숨에 파악한 박종문이 경악하며 외쳤다.

“서. 설마. 성수는 페이크였던 거냐?”

“맞아. 볼래?”

나는 박종문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흡!”

갑자기 성수를 마실 때 느꼈던 고양감을 느낀 박종문이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냥도 할 수 있는 거였나?”

“맞아. 성수는 그냥 핑계일 뿐이야. 그런데 내가 감춰온 비밀들을 너에게 모두 알려주는 이유가 뭘까?”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간단해. 이제 이 비밀은 비밀이 아니게 될 거니까.”

한참동안 멍하니 있던 박종문이 말했다.

“난 언제나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뭔데?”

“어째서. 왜?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박종문이 넋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넌 충분히 세상 그 누구보다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수천만 신도와 너를 충실히 따르는 수십만의 초인들. 남부러울 것 없는 네가 도대체 왜?”

“흐흐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하면 믿어줄 건가?”

“믿어주마. 그리고 네가 원하는 걸 주마.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만둬라.”

“그만두라니. 내가 지금 뭘 하려는 줄 알고.”

박종문이 말했다.

“한국을 전복 시키려는 거 아니냐? 리비아처럼.”

“우리 박 팀장 스케일이 좀 작네? 한국이라니.”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내 목표는 전세계야.”

“장지후!!!!”

박종문이 나에게 달려들려 하자 양옆에 있던 사제들이 그를 찍어 누른다.

“큭!”

사제들에 의해 테이블에 깔린 박종문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도대체 세계를 정복해서 뭘 하겠다는 거냐!! 도대체 왜!!”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양주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내 적들은 언제나 말하지.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냐고. 노리는 바가 무엇이냐고. 박종문. 내가 원하는 걸 준다고 했나?”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 내 목숨을 달라면 주겠어. 그러니 제발 여기서 멈춰라. 네가 가진 힘은 너무 위험해!”

“내가 원하는 건 평화. 단 하나다.”

내 말에 박종문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평화를 해치고 있는 건 바로 너야!!”

“아니. 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 거다. 박종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인류에 전대미문의 재앙이 몰아닥칠 거다.”

내 말에 박종문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은 재앙에 의해 무너질 거고 인류의 생존 또한 위협받게 된다. 즉.”

나는 박종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종말이 온다는 뜻이다.”

박종문이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조. 종말?”

“그래.”

나는 다시 양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종말이 온다. 하지만 인류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그러니 내 손으로 인류를 통합해 종말에 대항할거다.”

“이런 미친새끼가!!!”

박종문이 발악하며 외쳤다.

“겨우 그딴 말도 안 되는 망상 때문에 그런 엄청난 짓을 한다고?!”

“망상으로 치부하기엔 내가 겪은 일들이 너무 다이나믹해서 말이지.”

“장지후! 정신 차려라! 종말 같은 건 오지 않아! 설사 오더라도 전부 막아낼 수 있다! 인류가 가진 힘을 무시하지 마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 하나한테 이정도로 당했으면서 인류의 힘을 무시하지 말라고? 뭐. 너를 설득하려고 만든 자리는 아니니까.”

내 말에 침묵하던 박종문이 말했다.

“너...진심이구나.”

“그래. 난 진심이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움직인 적은 한 번도 없다. 단 한번도. 언제나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종말을 막을까. 난 종말을 막기 위해 내 모든 걸 내던졌다.”

“...종말이 안온다면?”

가끔 나도 생각했던 거다.

종말이 안 오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종말이 안 오면 교화된 사람들에게 명령해야지. 이제 자기 위치로 돌아가라고. 나를 위해서 살지 말라고.”

“장지후. 넌 지금 무언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착각?

“넌 종말이 언제 올지 알고 있나?”

“음. 근 시일 내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만.”

“만약 한 달이 지났다. 그때는 사람들을 풀어줄 거냐?”

그건 아니지.

“반년? 아니 일 년이라면?”

“음......”

“이년, 삼년 좋아 십년이라고 치자. 그때까지 종말이 안 왔으면 사람들을 풀어줄 거냐?”

“당연히 그쯤 되면 풀어주....”

“웃기는 소리.”

박종문이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래. 다 좋다. 네 의도가 선의라고 치자. 나 또한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그 모든 과정이 당당하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넌 그 레벨이 달라. 종말을 막겠다는 확고한 신념. 그리고 종말이 온다는 확신. 십년 뒤에 풀어준다고? 그거야 말로 웃기는 소리

다.”

박종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풀어주고 1년 뒤에 종말이 오면 어떡할 거지? 알고 보니 종말이 13년 뒤에 오는 거였으면? 내 생각이 아니다. 네 놈이 할 생각이지.”

“아니다. 그렇게까지 오래 가지 않아.”

“그러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확신 하냐 이 말이야!”

확신이라...

그래. 박종문의 말이 맞을 지도.

막상 그때가선 또 그 나름의 걱정이 있겠지.

난 늘 불안감에 시달려 왔으니까.

“모든 독재자들의 시작은 선의다. 어려운 나라를 살리기 위해. 또는 국민들을 위해. 그런데 그들이 가장 크게 착각하는 게 뭔 줄 아나?”

박종문이 외쳤다.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나 아니면 안 돼. 내가 해야 해. 그런 비뚤어진 신념이 그들로 하여금 포기할 수 없도록 만든단 말이다!”

“비뚤어진 신념이라.”

“물은 고이면 썩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네가 전세계를 지배한 후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네 명령하나면 목숨을 바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리에 오르고도?”

박종문이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걷는 길의 끝은 파멸뿐이야! 지금이라도 그만둬라. 아니. 내가 도와주마. 종말이 됐든 뭐가 됐든 결국 초인을 양성해 인류를 강하게 만들려는 거 아니야? 함께하자. 목표는 다를지언정 과정은 함께 할 수 있다!”

박종문의 필사적인 설득.

그래. 이해는 한다.

종말의 꿈이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동조해주....”

잠깐.  그러고 보면 나는 왜 이렇게 종말에 대해 확신을 하고 있는 거지?

능력이 생겼다는 것과 종말 예지꿈, 단 두 가지가 내가 종말을 확신하는 근거.

빈약하긴 하네.

“장지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만약. 만약에 말이야.”

나는 박종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설득에 넘어가 대비를 소홀히 해서 종말을 막아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게 바로 너만이 할 수 있다란 착각이다! 정말 올지 안 올지도 모르고 설사 온다고 한들 인류가 막아내지 못 할 거라 속단 하지 마!”

정말 종말은 오는 건가?

내가 허튼짓을 하는 건가.

“인류의 힘은 강하다. 지금은 더욱 강해졌고!”

“......아니. 난 멈추지 않는다.”

이제 와서 멈추기엔 너무 멀리 왔다.

“장지후!!”

“네 말도 일리는 있어. 내가 착각하는 걸 수도 있지. 그리고 종말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내 말에 박종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여럿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면...”

“하지만 말이야.”

나는 박종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다 인류가 멸망하면?”

“그러니까 그게 네 착각이라고 했잖아!”

“네 착각일수도 있지. 인류의 힘을 과신하는.”

“뭐?”

“너 역시 착각하고 있다. 종말이 얼마나 거대하고 얼마나 강대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난 모든 힘을 동원해 그에 대비해왔지. 우리 둘 중 하나는 착각을 해도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다는 건 확실해. 그게 누군지를 모를 뿐. 그럼 내 입장에선 최선을 다해 대비를 하

는 수밖에.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박종문.”

“크윽.”

“나는 다르다.”

독재자처럼 군림할 생각도 없고 사람들을 함부로 대할 생각도 없다.

또한 초능력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종말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나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데려가.”

“예. 라오님.”

사제들이 박종문을 일으켜 세웠다.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장지후! 안 돼!!”

“미안하다. 확신은 없지만 나로선 이 길밖에 없어.”

사제가 나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본단으로 데려가겠습니다.”

기도를 통해 교화를 시키겠다는 말.

“그...잠깐만. 멈춰.”

나는 박종문을 끌고 가려는 사제들을 멈춰 세웠다.

“박종문.”

“크윽.”

“물이 고이면 썩는다 했지?”

“인류의 역사가 그걸 증명한다.”

원래라면 박종문 역시 기도를 통해 교화시켜 충실한 천둥교의 신도로 만들었겠지만 박종문이 했던 말들이 마음에 걸린다.

동네 깡패 보스였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일까?

그리고 지금의 나와 더 먼 미래의 나는?

만약 정말로 종말이 오지 않을 때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네 주장에 어느 정도 동감한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리고 내가 초심을 잃고 변하면 얼마나 참담한 결과가 나올지도.”

인류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아니. 어쩌면 내가 종말 그자체가 될지도.

세상 모든 사람을 교화시켜 자율 의지를 잃게 만들면 그게 종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내 주변엔 나에게 쓴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내가 사슴을 가리켜 돼지라고 하면 다들 돼지라 부른다.

난 이들의 신이니까.

“네가 고이지 않도록 만들어라.”

“뭐?”

“네가 날 쉴 새 없이 흔들어라. 계속 나를 타박하고 나를 비난해.”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

박종문이라면 적임자지.

정보를 다룰 때 객관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내가...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나를 흔들어라. 내가 종말을 향해 일직선으로 갈수 있도록. 계속해서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나를 설득해.”

“너...”

사제들에게 말했다.

“데리고 가. 대신 기도는 시키지 마.”  박종문과 사제들이 모두 떠난 방.

나는 양주를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어쩌면 나도 불안해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종말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리고 정말 안 오는 건지 아니면 아직 안온건지 어떻게 판단하지?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전해주는 단 몇 마디만으로 어떻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잡생각은 비우자. 내가 초심만 잃지 않으면 될 일이야.”

종말이 오면 종말을 막고 종말이 오지 않으면 교화된 사제들을 해방시켜주는 거다.

“제발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길.”

-박종문은 우리 파란교를 핍박했다! 이건 그에 따른 벌이다!

박종문이 사라진 직후 파란교 교주가 유튜뷰에 영상을 공개했다.

-종말이 다가온다! 우리에게 오라! 선택받은 자 만이 종말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

나는 영상을 끄고 석주에게 말했다.

“다른 나라는 어때?”

“비슷해요.”

박종문처럼 천둥교를 본격적으로 의심하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오기 시작했다.

사전에 배치한 사제들이 적극적으로 이들을 납치하며 파란교의 소행으로 몰고 있지만 그들 모두를 막아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최대한 막아. 한국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넘겨버릴 수 있지만 다른 나라는 준비가 조금 빈약하니까.”

나중에 배정국으로 참여한 나라일수록 정부에 파고든 초인 숫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한국부터 차례로 뒤엎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뒤집어엎어야 하는 만큼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알겠어요.”

석주가 나가고 나는 교단 상태창을 띄웠다.

“흠.”

신도수가 1억에 도달했다.

“신성력 10억이 하루에 모이는구나.”

드디어 교단 레벨을 올릴 수 있다.

“교단 레벨을 올리자. 그리고 천둥교의 화려한 데뷔를 알리는 거야.”

리비아를 포함해 41개 국가를 지배하는 거대한 세력의 등장.

세계 권력이 재편성 되는 거다.

“초능력자를 중심으로 우리에게 대항하겠지.”

그리고 더욱더 열심히 웜홀을 통해 레벨업을 할거고.

경쟁은 성장의 원동력이다.

우리의 등장은 초능력자를 더욱 구석으로 밀어붙이며 강해지도록 강제한다.

“강해져라. 우리를 상대하기 위해 더욱 강해져라. 그리고 종말의 그날. 인류를 위해 함께 싸우자. 그때까진 내가 악역을 자처해주지.”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교단 레벨 업그레이드.”

< 100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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