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98화 (99/188)

< 98화 >

나는 한숨을 한번 내쉬며 말했다.

“내가 전도 욕심을 과하게 부리는 바람에...”

-좀 알아듣게 설명해!

“우리가 최근 성수공급량을 대폭 확대한 거 알고 있겠지. 연수제도 폐지하고.”

-그래서?

“효과가 너무 좋았다. 성수를 더욱 많이 공급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성수를 다른 곳에서 추가 공수해왔지.”

-지금 이상현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마신 성수가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거라고? 서. 설마.

“그래. 파란교. 파란교 교주도 성수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지.”

사실 개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단이라며 물고 뜯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놈들이랑 손을 잡았다는 게 말이나 되나.

하지만 상식선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박종문과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는 나와의 판단범위는 차원이 다르다.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

“내가 정말 이런 부작용이 있는 줄 알았으면 연수제를 왜 폐지했겠어? 내가 바보야? 그런 부작용 있는 사람들을 다 풀어놓게? 있는 신도도 다 떨어져나갈게 뻔한데!?”

-으음...

“의심 가는 건 알겠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상식적으로. 난 이미 큰 종교의 수장으로 입지를 완전히 다진 놈이야. 그런 내가 뭐가 아쉬워서 갑자기 그런 부작용 있는 성수를 대놓고 투입시켜? 내가 미친 또라이가 아니고서야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내가 가진 부,

명예가 단번에 부서져나갈 짓을!”

나는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날 음해하기 위해서 작전을 짠 거라고! 그리고 그 용의자는 파란교 밖에 없고. 그래. 이단이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갑자기 손잡았냐 하면 할 말이 없다. 내가 욕심에 눈이 멀었어. 성수를 싸게 준다더라고. 그런데 나라고 그놈들이 이런 개 막장 짓을 할지 예상이

나 했겠냐 이 말이야! 젠장.”

상식 안에서 밖에 판단할 수 없는 박종문은 내가 핑계로 삼은 부, 명예가 얼마나 나에게 보잘것없는 것인지 모르는 이상 오판을 할 수밖에 없다.

-파란교가 한 짓이라고?

“그래! 나도 내가 쪽팔려서 차마 말을 못한 거다. 지금 애들 풀어서 뿌려지던 성수 회수하고 증거를 찾는 중이야.”

-그런데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후기로 이상하게 천둥교 사제가 어렵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거지?

“정신착란인지 아니면 파란교가 이단으로 생각하는 우리에 대한 거부감일지. 내가 그놈들 성수에 무슨 부작용이 있는지 어떻게 알아?”

애매한건 모르쇠로 일관하며 화제를 돌린다.

“일단 파란교부터 잡자. 파란교만 잡으면 백기투항하고 검찰조사든 특검이든 모두 수용할게. 먼저 수습은 해야 할 거 아니야! 지금이 아니면 늦어!”

제발 내 말대로 하고 시간 좀 벌어줘.

“좀 믿어주라. 초인 부대 만들어주면서 이런 적 한 번도 없었잖아! 단지 요 몇 주 사이에 일어난 일 때문에 내가 그간 해온 모든 걸 부정하는 거야?”

내 말에 한참동안 침묵하던 박종문이 말했다.

-일단은 알았다.

박종문이 아무런 확답도 없이 통화를 끊었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우리를 의심하겠지.”

이 변명으로 천둥교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사라질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세력.

천둥교가 주범인지 아닌지 확신도 못하는 상황에서 다짜고짜 우리를 적대시 하려할까?

대통령 의견도 들어야하고 내각 회의도 열어야 하고.

“최소 며칠은 벌 수 있어.”

물론 그 사이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지.

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사제에게 말했다.

“파란교에 감금되어 있는 실종자들 구출되면 바로 기자회견 준비해.”

초인 부대와 경찰들이 합동해 파란교 교인들이 모여 있는 교회들을 급습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초인으로 강화된 파란교 교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지만 그래봐야 겨우 1.2배 수준.

최신 장비로 무장한 초인 부대는 그 격이 달랐다.

“컥!”

처음부터 초능력자 제압을 상정하고 만든 만큼 초인 부대가 가진 장비의 대인 제압력은 최고였다.

“크아아아!”

초인 부대의 강화복에 장착된 전기충격에 파란교 교인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갔다.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다. 모두 움직여!”

교회의 바닥과 설비를 모조리 때려 부수던 초인 부대원중 하나가 외쳤다.

“여기 비밀통로가 있다!”

“빨리 이동해!”

어두운 통로를 따라 이동한 초인 부대가 도착한 곳은 바로 교회의 옆 건물.

원래부터도 사이비 종교로 유명했던 파란교다.

이곳은 사실 파란교에 처음 입교한 사람들을 감금하고 세뇌시키는 장소로 교인들 사이에선 기숙사라 불리었다.

이 기숙사의 처음 용도가 용도인 만큼 실종자들을 감추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었다.

초인 부대원들이 다닥다닥 붙은 나무문들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헉.”

10평 남짓한 방에 십여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성경을 읽고 있었다.

초인이 방안으로 들어오자 사람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사. 살려주세요. 시키는 대로 열심히 외우고 있었어요!”

“모두 괜찮으십니까? 구해드리러 왔습니다.”

“구. 구해주러 오셨다고요?”

그제 서야 사람들의 눈에 초인 부대의 강화복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 초인 부대다!”

“모두들 안심하세요. 이곳을 지키던 파란교 광신도들을 모조리 제압했습니다. 절 따라오세요.”

실종되었다 초인 부대 덕분에 풀려난 이 과장이 경찰들에게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그 성수는 이상합니다! 제가 확실히 느꼈습니다! 천둥교이 개 같은 놈들이 저한테 이상한 걸 먹인 겁니다!”

“안에 계셔서 모르셨나보군요. 지금까지 갇혀계셨던 곳은 천둥교가 아니라 파란교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실종자들이 마신 성수는 파란교의 성수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예? 분명 나눠준 성경엔 라오라고 써져있었는데...”

“파란교도 라오를 믿습니다.”

“아...책에 성경이라고만 적혀있어서 당연히 천둥교라고 생각했는데.”

이 과장이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근데 제가 마신 성수가 파란교의 성수라고요?”

“그렇게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수를 준건 분명 천둥교 사제...”

경찰이 이 과장을 부축하며 말했다.

“혼란스러우신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일단은 치료가 급선무입니다. 따라오시죠.”

“미안하다.”

나는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내 불찰이다.”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며 기자들의 질문도 쏟아졌다.

“정말 천둥교에서 모르고 그런 겁니까?”

“출처가 어찌되었든 유통을 한건 천둥교 아닙니까?”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비록 부작용을 몰랐다고는 하나 파란교의 성수를 천둥교의 성수인척 속인 건 두말할 것 없이 내 잘못이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죄한다.”

나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책임을 피할 생각이 없다. 실종자들 전원에게 피해보상을 할 것이며 원한다면 진짜 천둥교 성수를 눈앞에서 내가 직접 제공하겠다. 그리고 내가 직접 검찰에 사기혐의, 불법 약물 유통으로 천둥교를 고발하겠다.”

내 말에 기자들이 눈을 끄게 뜨며 웅성거렸다.

“천둥교에서 천둥교를 고발하겠다고?”

“그게 법적으로 가능한 거야?”

“가능이야 하지. 천둥교도 종교법인이잖아. 라오가 개인자격으로 천둥교를 고발할 수 있지. 전례가 없어서 그렇지만.”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 사기혐의도 좋고 불법 약물도 좋고 벌은 달게 받겠지만 그보다 시급한건 파란교를 잡는 거다. 천둥교가 조사로 손발이 묶이면 파란교 추적이 지연된다.”

기자 하나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시간을 벌어 천둥교가 개입한 흔적으로 지우려는 거 아닙니까?”

“아니다. 나는 이번 사태로 개인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조직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깨달았다. 그렇기에 나는 파란교를 징벌한 뒤 교주의 자리를 내려놓겠다.”

“허...”

“그렇게까지.”

나는 테이블을 내려치며 말했다.

“하지만 이정도로 내 죄가 사라질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교주의 자리를 내려놓는 동시에 천둥교가 가진 모든 자산도 사회에 기부하겠다.”

천둥교가 가진 자산은 적지 않았다.

전국구 조직들이 운영하던 회사들부터 전세계에 퍼져있는 기도소에서 걷어 올린 성금까지.

“천둥교와 나는 우리가 벌인 일에 모든 책임을 다하겠다.”

분노하던 사람들도 백기투항수준의 기자회견을 보고 화를 조금씩 삭였다.

“저 정도면 거의 무릎 꿇고 싹싹 비는 수준 아니야?”

“그렇긴 한데 본인이 말한 대로 지킬까?”

“설마 안 지키려고? 예전처럼 신체능력 강화능력자가 자기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닌데 밉보여서야 되겠어?”

“사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천둥교에 이정도 타격까지 입히면서 그런 불량 성수를 알고 유통했겠어? 좀 억울하긴 하겠네.”

“그래도 속인 건 속인거지.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거야?”  “으윽!!”

이 과장이 머리를 쥐어짜며 말했다.

“참을 수 없어! 미칠 거 같아요!”

의사와 간호사들이 이 과장을 제압하며 말했다.

“환자분! 안됩니다!”

이 과장이 악을 쓰며 외쳤다.

“제발 기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단 말이야!! 엉엉.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 좀 구해줘!!”

창문너머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박종문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기도에 중독되기라도 한 건가.”

이과장 뿐만 아니라 모든 실종자들이 마찬가지였다.

기도 중독.

박종문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초인이 된지 벌써 몇 달이 지났지만 단 한 번도 저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분명 똑같이 초인이 되었으나 자신이 경험한 성수와 저들이 겪는 성수는 달랐다.

중독도 없고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친밀함을 느낀 적도 없다.

“정말 천둥교가 아닌 건가.”

파란교에 갇혀있던 실종자들에게 나타난 증상.

지금까지 천둥교가 건넨 성수를 마신 초인들에게선 나타난 적이 없는 증상이었다.

“정말 장지후의 주장대로 파란교가 이 사태를 일으켰을까.”

세뇌.

너무나도 위험한 능력이었다.

파란교의 교인은 전세계에 수십만.

그들 모두가 초인인 동시에 교주의 정신 지배를 받고 있다면?

박종문은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최악의 상대다.”

인류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전대미문의 적.

그들이 작정하고 숨으면 찾을 방법도 없는데다 정신 지배당한 교인들은 교주의 명령이라면 목숨을 걸고 수행할거다.

파란교가 물밑으로 숨어들어가기 전에 잡아야했다.

“그대로 놔두면 파란교는 전세계 인류의 골칫덩이가 될 거야. 하지만...”

신체능력 강화 능력자는 파란교 교주와 장지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설마 다른 신체능력자도 비슷한...아니야. 그래선 안 돼.”

라오를 믿는 다른 종교야 그렇다 치지만 천둥교는 그 스케일이 다르다.

전세계에 수천만의 신도가 퍼져있으며 초인의 숫자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

한국의 초인부대만 해도 이미 5만을 넘어섰고 일반 군도 간부급은 이미 90퍼센트 이상이 초인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 천둥교는 아닐 거야. 아니어야해.”

그래서는 안 된다.

천둥교의 손길이 닿아있지 않는 분야가 없는 수준.

만약 천둥교 역시 파란교처럼 세뇌능력이 있고 그걸 몰래 숨겨왔다면 한국은 이미 천둥교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파란교가 인류의 골칫덩이라면 천둥교는 인류의 재앙 그 자체.

박종문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상상을.”

박종문 역시 성수를 마신 초인이다.

그런 자신이 천둥교를 잠시나마 의심했다는 것 자체가 천둥교의 성수에 세뇌능력이 없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수십만이 넘는 초인이 탄생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상현상을 경험한 사람이 없어. 모든 정황도 파란교가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고.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파란교의 어설픈 대응도 박종문의 불안감을 키웠다.

“너무 쉬워. 자신들이 범인으로 지목될 걸 알면서도 실종자를 뻔한 장소에 숨겼어. 마치 자신들이 범인임을 알아달라는 것처럼.”

한참동안 고민하던 박종문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일단은 파란교에 집중하고 동시에 그간 천둥교가 벌여왔던 모든 일을 다시 전수조사 해야겠다.”

박종문이 긴장으로 경직된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제발. 제발 내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이 아니기를.”

< 98화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