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도대체 이게 뭐지?”
나는 두 번째 종말의 꿈을 꾼 뒤로 전 세계 일어난 각종 이상현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마이클로부터 연락을 받고 알게 된 웜홀의 등장.
나는 다급히 리비아 협상을 다른 사제들에게 일임하고 미국에 갈 채비를 서둘렀지만 출발하기도 전에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사제들로부터 연락이 쏟아졌다.
웜홀은 미국에만 생겨난 게 아니었다.
“이런 게 최소 수십 개라고?”
내가 보고받은 웜홀만 50개 이상.
“안 좋아. 안 좋아.”
웜홀에서 뿜어지는 불길한 기운이 피부를 따끔따끔 찌르는 것 같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와 연결되어 있는 거 같은데. 다른 정보는 없나?”
“예. 아직까진...”
혹시 이게 종말의 시작인건가?
여기서 괴물들이 튀어나온 다거나?
미치겠네.
“다른 나라 정부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일단 발견된 웜홀을 격리조치 중이라고 합니다.”
“격리조치라.”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격리조치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실험체는?”
“바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내가 실험체라 지칭한건 바로 개선여지가 전혀 안 보이는 흉악한 범죄자들.
이럴 때 사용하려고 여지껏 죽이지도 않고 차곡차곡 쌓아둔 게 아닌가.
“읍읍!”
“읍!!!”
사제 하나가 전신을 포박당한 실험체 둘을 끌고 왔다.
“둘 중에 누가 초능력자지?”
사제가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이 초능력자입니다.”
“그럼 오른쪽이 무능력자겠군. 무슨 범죄를 저질렀지?”
“이자는 조선족 인신매매범입니다.”
“첫 웜홀 희생자로 합격이다.”
나는 범죄자를 일으켜 세운 뒤 다리에 있는 포박을 풀어주었다.
“자. 넌 지금부터 저 웜홀을 통과해야한다.”
“읍읍!! 읍!!”
“너도 좋다고? 그래. 만족한다니 다행이네.”
나는 범죄자의 몸에 쇠사슬을 연결하고 사제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내가 신호하면 잡아당겨. 안에가 어떻게 생겨먹은 지는 알아야할 거 아니야.”
“예!”
나는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남자를 발로 차며 말했다.
“빨리 안가? 확 씨. 뒤질라고. 저기 한번 갔다 오면 특식한번 줄 테니까 빨리 가!”
“읍읍!!”
“이게 끝까지 반항이네. 좋아. 내가 강제로 날려주지.”
나는 남자를 번쩍 들어 올린 뒤 웜홀로 다가갔다.
“읍읍!”
“조용히 안 해?”
나는 어깨에 힘을 주며 외쳤다.
“안에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기억해. 헛소리 지껄이면 바로 지옥행이다.”
“읍읍!!”
“흣차!!”
던져진 남자가 웜홀을 향해 날아갔다.
“으읍!!”
그런데 웜홀 안으로 사라질 줄 알았던 남자가 웜홀을 지나쳐 땅바닥을 굴렀다.
“어?”
안 들어가져?
“다시.”
난 웜홀을 통과해 바닥을 구른 남자를 다시 집어 들어 던졌다.
하자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웜홀엔 아무런 변화 없이 남자만 다시 땅바닥을 굴렀다.
“혹시 통과하는 사이에 뭐가 있었나?”
나는 눈물범벅인 남자의 입마개를 빼내고 말했다,
“어땠냐?” 남자가 고개를 있는 힘껏 저으며 말했다.
“난 모르겠슴다! 살려주시라요!”
“아무것도 없었어?”
“기냥 통과했고 아무것도 못봤슴다!”
“그래?”
일반인은 웜홀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건가?
“이 자식 데려가서 몸에 이상 없나 확인해. 이상 없으면 교화시켜서 쓰레기 부대에 합류시키고.”
이런 쓰레기들로만 이루어진 쓰레기 부대는 벌써 3,000에 가까운 숫자를 자랑했다.
이제 이놈도 쓰레기 부대의 일원이 되어 인류를 위해 장렬히 산화할거다.
“예. 알겠습니다.”
“살려주시라요! 살려주시라요!”
나는 남자를 무시하고 두 번째 실험체에게 다가갔다.
“초능력자지? 능력이 뭐야?”
“예. 약한 수준의 화염능력자입니다. 능력을 이용해 방화를 일삼았습니다. 사망자만 대략 10여명에 부상까지 포함하면 수십 명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방화 이유는?”
“행복한 사람을 증오한다고 합니다.”
나는 초능력자를 쇠사슬과 연결하며 말했다.
“행복한 사람을 증오한다고?”
“읍읍!!”
“불행한 과거가 있어서 질투 나서 그런 거야? 아주 개새끼네. 이거.”
불행한 과거라면 나도 어디 가서 안 꿀린다는 말이지.
“읍읍!!”
“지껄이지 마 듣고 싶지 않으니까. 자. 너도 간다.”
나는 초능력자를 집어 들고 웜홀을 향해 던졌다.
“으으으읍!!”
그런데 초능력자가 웜홀에 가까워지자 아까완 다른 반응이 일어났다.
우웅.
이상한 소리와 함께 표면이 물결치듯 요동치는 웜홀안으로 초능력자가 빨려 들어간다.
“으음.”
그리고 동시에 초능력자가 입고 있던 옷과 쇠사슬이 웜홀을 통과해 바닥에 떨어졌다.
“초능력자만 넘어갔다고?”
마치 웜홀이 초능력자만 골라서 한입에 삼켜버린 듯한 모습.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젠장. 실수했군.”
설마 초능력자의 몸만 통과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잡아오겠습니다!”
사제들이 웜홀로 뛰어 들어가려 하자 나는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그만.”
“하지만 라오님.”
“저기 안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괜히 들어갔다가 추적은커녕 엉뚱한 곳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일단 기다려보자고.”
내 느낌에 저 웜홀은 분명 종말과 연관이 있다.
한마디로 위험하다는 말.
저 초능력자는 본단에 있는 비밀 감옥에 갇혀있던 자.
비록 제한적 이게나마 우리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저 초능력자가 웜홀안에서 생존에 성공하여 우리에 대한 정보를 각국에 흘릴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설사 흘린다 치더라도 상관없다.
그때는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가고 있을 테니까.
괜히 조무래기 초능력자 하나 잡으려다 사제들을 잃을 순 없다.
“일단 여기서 대기해. 아직 웜홀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주의....”
“라오님!”
사제하나가 웜홀을 가리키며 말했다.
“웜홀에 뭔가 변화가...”
그리고 사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웜홀에서 튀어나온 알몸의 남자.
내가 집어던졌던 초능력자였다.
“잡아!”
내 말에 사제들이 달려들어 남자를 제압했지만 공포로 패닉상태에 빠진 초능력자가 발악을 하며 말했다.
“이거 놔! 도망가야 돼! 도망가야 된다고!! 아아아악!! 살려줘!!”
웜홀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초능력자.
나는 초능력자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뭔가 봤구나.”
“살려줘! 제발 도망치게 해달란 말이야!!”
“뭐냐. 도대체 뭘 본거지?”
“으아아아!!”
나는 소리를 지르는 초능력자의 뺨을 날리며 말했다.
짝!
“정신 안차려!!” “흑흑.”
“저 안에서 뭘 봤는지 말해. 빨리!”
“지옥.”
“뭐?”
초능력자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
“저긴 지옥이라고!!”
나는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괴물이라...”
어느 정도 진정된 초능력자는 저 안을 지옥이라 표현했다.
붉은 하늘과 흑갈색 대지 사이엔 벌레처럼 보이는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 괴물들은 맨몸으로 그곳에 도착한 초능력자를 발견하자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고 했다.
“겁에 질려 들어온 웜홀에 다시 몸을 던지니 이 곳이었다 이 말이지.”
“예. 예.”
“그럼 저 웜홀은 쌍방향 이동이 가능하다는 뜻인데. 흠. 바로 근처까지 쫓아왔었다고?”
“예. 그래서 웜홀이랑 멀어지기 위해 도망치려고 했던 건데...”
“괴물들은 웜홀을 넘지 못한다는 말인가?”
“자.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웜홀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넘지 못한 건가, 넘지 않은 건가.”
좀 더 확실히 알아야한다.
가장 좋은 것은 종말의 꿈을 꾸었던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
하지만 웜홀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이 내 발목을 잡는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멀어지고 싶다.
“젠장. 그래도 할 건 해야지. 20명은 나를 따라 같이 웜홀에 들어간다. 나머지는 지키고 있어.”
“예!”
합일에 필요한 인원수를 맞추고 마른침을 삼키며 웜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앞서가던 사제가 웜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헉!”
그런데 사제가 처음 일반인 실험체처럼 그냥 웜홀을 지나쳤다.
“서. 설마 초인도 웜홀 통과가 안 되는 거야?”
니미. 그럼 나 혼자 들어가라고?
너무 위험하잖아!
혹시나 싶어 다른 사제들도 웜홀에 손을 뻗었지만 결과는 모두 같았다.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웜홀 앞에 섰다.
“라오님.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나도 알아.”
“초능력자 용병이라도 구해서 같이 들어가시는 게...”
“그놈들을 어떻게 믿고.”
초인의 입지가 강해질수록 초능력자들은 박탈감을 느끼며 우리를 증오했다.
그런 놈들의 호위를 받으며 저 위험한 곳에 가라고?
아까 초능력자도 살아 돌아왔으니 가서 살짝 훑어만 보고 나오면 괜찮겠지.
“합일이라도 미리 하고 가야겠다. 합일!”
온몸에서 힘이 넘쳐흐른다.
“좋아! 간다!”
호기롭게 외쳤지만 내 몸은 이미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렇게 손을 뻗었다 말았다를 수차례.
“에이씨! 어떻게든 되겠지!!”
결국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웜홀에 손을 뻗었다.
“어?”
하지만 내 손 역시 사제들처럼 웜홀을 지나쳐 버렸다.
“뭐야. 나도 못 들어가?”
아쉬움과 동시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몰려온다.
그나저나 뭐지.
사제들이야 그렇다 쳐.
그런데 나는 초능력자잖아.
나도 못 들어간다고?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 후로 몇 번의 실험을 통해 확실해졌다.
“초능력자는 가능하지만 나와 사제들은 웜홀을 통과할 수 없다.”
내가 다른 초능력자들과 다르다는 것쯤은 진즉에 인지하고 있었다. 종말 꿈의 유무와 레벨업 방법 등.
그런데 이젠 웜홀 통과조차 안 된다고?
그때 또다시 던져진 초능력자가 울부짖었다.
“제발 그만!!”
초능력자를 다시 집어던지자 자연스럽게 웜홀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튀어나오는 초능력자.
“제발 그만해주세요! 살려주세요! 흑흑.”
사제들이 나를 바라보자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됐다. 다시 본단으로 돌려보내. 더 이상의 실험은 의미가 없는 것 같으니.”
본단은 저런 쓰레기 초능력자들을 격리시키고 관리하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본단으로 간다는 말에 초능력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대체 저 안이 얼마나 끔찍하다는 말이지?
초능력자를 돌려보내고 나는 사제들에게 말했다.
“배정국엔 웜홀이 몇 개나 생겼지?”
“모두 20개입니다.”
“으음.”
웜홀과 연결된 세상이 하나뿐인지 아니면 여러 곳인지 등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일단 계속해서 정보를 수집해! 그리고 이곳으로 사제들을 더 불러 모아서 지켜.”
“알겠습니다.”
“긴장들 해. 다른 놈들 손에서 웜홀을 지키라는 말이 아니야.”
나는 웜홀을 노려보며 말했다.
“웜홀로부터 이곳을 지켜라. 언제 저곳에서 괴물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24시간 철통 방어한다.”
웜홀의 출현은 리비아 이슈를 단숨에 잠재울 만큼 강렬했다.
웜홀을 보유한 나라들은 간단한 조사로 나와 비슷한 수준의 정보를 얻어냈지만 대응 방법은 달랐다.
나는 웜홀을 종말의 전조 증상으로 여겼지만 나라들은 웜홀 너머 땅을 기회의 장소로 보았다.
지구와 전혀 다른 미지의 땅.
어떤 자원이 있을지 또 자신들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지 등등.
하지만 어떤 초능력자들이 괴물로 가득한 저곳에 선뜻 뛰어들겠는가.
정부들은 막대한 보상금을 걸고 초능력자들을 모집해 탐사를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초능력자 탐사팀은 놀라운 사실을 세상에 공개했다.
-그곳은 기회의 땅입니다!
미국에서 파견한 초능력팀 팀장이 기자들에게 말했다.
-무궁무진한 기회로 가득 찬 곳!
기자 하나가 큰 소리로 물었다.
-무슨 기회 말씀이십니까?
-진정한 초능력자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
환희에 찬 초능력자가 외쳤다.
-웜홀 안에서 괴물을 잡으면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사전에 정부와 협의가 되지 않았던 발언이었는지 놀란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단상으로 뛰어들어 팀장을 끌어내렸지만 팀장은 끌려가는 와중에도 큰소리로 외쳤다.
-드디어 초능력자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회의 땅으로 갑시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티비 버튼을 끄며 말했다.
“레벨업이 가능하다고?”
그간 초인이 초능력자를 압도할 수 있었던 건 초능력자가 레벨업 방법을 알지 못한 덕분이 컸는데 이젠 그 제약이 풀렸다.
물론 목숨까지 걸어야하는 위험은 있지만 강해질 방법을 찾아냈다는 게 중요하다.
“초능력자의 레벨업으로 인류의 전력이 올라가는 건 분명 좋은 일이야.”
비록 초능력자들과 웃으며 대화할만한 사이는 아니지만 난 진심으로 초능력자들이 더욱 강해지길 원한다.
초능력자 역시 인류의 중요한 힘이니까.
“초능력자들이 불나방처럼 저 웜홀로 뛰어들겠지.”
그런데 과연 종말이 친절하게 초능력자들이 충분히 강해질 수 있도록 넉넉하게 시간을 줄까?
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움직여야한다.
“무엇이 최악의 상황일까.”
언제 괴물들이 뛰쳐나올지 모르는 웜홀.
만약 초능력자들이 방심한 채 레벨업을 위해 웜홀 근처에 몰려 있다가 갑작스런 괴물들의 기습으로 전멸해버릴지도 모르는 일.
“웜홀에 최소한의 방어 장치만이라도 해둬야 해.”
초능력자의 레벨업 독려와 웜홀에 대한 경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웜홀의 통제.”
나라들을 설득해 웜홀을 중심으로 초인 부대를 배치하도록 만드는 거다.
사실 설득할 필요도 없다.
정부들 생각이야 뻔하니까.
민간인 초능력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만들 정부들이 아니지 않은가.
웜홀 통제를 통해 초능력자들을 좌지우지하려 할 것이고 그 임무에 가장 적합한건 초인 부대 밖에 없다.
내가 할 일은 그들에게 정부 몰래 지시를 내려 그들의 총구가 초능력자가 아닌 웜홀을 향하게 만드는 것.
“조금씩이라도 신성력을 모아야겠군. 교단 레벨을 올려야겠어.” 분파들 덕분에 신도수가 2,000만을 돌파했다.
하루 생산되는 신성력이 무려 2억으로 단 5일이면 교단 레벨업에 필요한 10억을 모을 수 있었지만 더 빠른 교화를 위해 사제 임명에 아낌없이 신성력을 쏟아 붓는 바람에 막상 모아놓은 신성력은 0.
2번의 종말 예지꿈을 꾸며 언제나 불안감에 시달렸지만 이렇게 실질적인 위협이 눈앞에 나타난 건 처음이었다.
지금부턴 정말 물불가리지 않고 전력 확보에 나선다.
“최종 단계 시작이다.”
< 9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