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벌써 3일이 지났군.”
후세인 군단장이 수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혁명군이 조용한 걸로 봐서 무언가 진행은 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라오가 들어간 이후로 신혁명군은 경계 태세를 갖추고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경계를 늦추지 마라.”
라오가 설득에 성공한다면 다행이지만 후세인은 그 확률이 높지 않다 여기고 있었다.
권력욕을 참지 못하고 거병한 신혁명군이다.
게다가 라오의 목숨을 노린 전적까지.
언제 라오를 죽이고 다시 정부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수. 수도에서 나온 차량한대가 이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뭐?”
경계병의 말을 전해들은 후세인이 다급히 물었다.
“누가 타고 있지?”
“라오! 라오입니다! 라오가 타고 있습니다!!”
“라오!”
정부군에 도착하자 한걸음에 튀어온 후세인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생하고 왔는데 안부정도는 물어주실 수 있지 않을까.”
후세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죄. 죄송합니다. 급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하하. 아니야. 그럴 수 있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 하나 고생하는 게 뭐가 대수라고. 수만, 수십만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아무튼 결과가 어떻게 됐냐고?”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혁명군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어.”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달았던 정부군과 신혁명군이 라오의 중재아래 협상을 시작했다.
“우리가 처음 내건 조건은 우리와 천둥교의 인정이었다. 하지만 라오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꿨다.”
압둘이 후세인에게 말했다.
“천둥교는 우리가 포기하겠다.”
“음......”
“대신 우리가 내전에서 거둔 공을 인정해라.”
후세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신혁명군에 억류중인 대통령 각하와 정치인들이 판단할 문제지. 포로들의 해방이 우선이다.”
압둘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말을 이상하게 하는군. 대통령은 포로가 아니라 우리의 보호를 받고 있는 거다.”
“보호? 도대체 누구에게 보호를 하고 있다는 말이지?”
“신혁명군을 경계하는 적들로부터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나는 둘 사이의 대화가 격해지자 둘을 만류하며 말했다.
“자. 자. 진정들 해. 그러니까 서로의 입장은 이거잖아. 우선 신혁명군은 최소한의 보증이 필요하다 이거지?”
압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확하다.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거병을 했다. 아무런 보장도 없이 움직일 수는 없다.”
신혁명군은 정부를 상대로 쿠데타, 즉 반란을 일으킨 꼴이었다.
자신들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절대 무기를 내려놓을 리 만무.
“정부군은 결정권자가 없다는 입장이고.”
“그렇습니다. 저는 군인일 뿐. 그런 정치적 판단을 내릴 위치가 아닙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나는 미리 준비한 백지 협상문을 양쪽에 내밀었다.
“일단은 협상문을 만들자.”
“저는 제가 그럴 권한이 없다고 분명...”
나는 후세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래. 그럴 권한이 없지. 그럼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판단하도록 만들면 될 거 아니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일단 협상문을 작성해. 서로의 조건을 쓰자고. 그다음 대통령에게 인가를 받는 거지. 만약 협상문에 문제가 있다면 다시 수정된 협상문을 작성하고. 어때?”
후세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통령 각하는 지금 신혁명군에게 억류된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가된 협상문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건 내가 보장할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사제들을 이곳으로 불렀어. 사제들을 시켜 대통령을 보호하도록 할게.”
그러자 압둘이 반발하며 말했다.
“대통령은 우리의 보호아래 안전히 있다!”
“그걸 정부군은 못 믿겠다는 거잖아. 신혁명군은 풀어줄 수 없다는 거고. 그러니 대통령은 협상이 끝날 때까지 신혁명군 측에서 데리고 있게 하되 천둥교 사제들을 통해 중립성을 확보하자는 말이지. 이정도면 정부군도 어느 정도는 믿을 수 있지 않겠어?”
두 군대를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낸 내가 대통령의 신변을 보장하겠다는 말.
비록 신혁명군에 의해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나와 사제들의 보호를 받으면 정부군도 어느 정도는 믿어줄 터.
“...그게 최선인거 같군요.”
“왜 우리가 그런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유리한건 우린데!”
압둘의 반발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가 유리하다는 건데? 당장은 유리해보일지 모르겠지만 이 협상이 깨지면 과연 그때도 유리하다 말할 수 있을까?”
“뭐?”
“얼마 전에도 설명하지 않았나? 만약 이 협상이 깨진다면 난 천둥교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 정부군을 정상화 시킬 거야.”
압둘이 이를 갈며 말했다.
“우리는 너를 따르던 신혁명군이다!”
“이미 태도부터가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말이지. 그리고 계속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올 거야?”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정말 내가 끝까지 가야겠어?”
“큭.”
압둘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제를 파견해 대통령을 보호하겠다고?”
“그래. 그게 전제되지 않는다면 정부군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걸? 그렇지 않아?”
내 말에 후세인 군단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게다가 어차피 협상이 타결되고 풀려난 대통령이 사실은 신혁명군의 협박에 의해 인가했다 주장하기라도 하면 사태는 더 복잡해진다고. 그러니 차라리 나한테 맡겨. 나를 안전거래용 완충장치로 쓰란 말이야.”
침묵하던 압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좋다. 그 정도는 받아들이지.”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압둘이 후세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놓고 나중에 가서 딴소리하면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
“너야말로.”
후세인을 노려보던 압둘이 나를 향해 말했다.
“라오도 약속을 지켜라.”
“물론이다.”
백지 협상서를 집어든 압둘이 협상장을 나서며 말했다.
“세부 조건을 조율해서 오지.”
압둘이 나가고 협상장에 남은 후세인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약속? 압둘과 무슨 약속을 한 겁니까?”
“그런 게 있어.”
“말씀해주십시오. 라오는 이번 협상의 핵심입니다.”
“흠. 별거 아닌데.”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호위대랑 있던 나를 공격했던 거. 그걸 없던 일로 해주겠다는 약속이야.”
“아...”
후세인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를 용서하시는 겁니까?”
“용서랄 게 있나. 나 하나 참아서 리비아가 평화로워질 수 있다면 베스트잖아. 만약 내가 그걸 무기로 압둘을 압박했다면 여기 협상장에 나오지도 못했을 거야.”
신혁명군에 대한 나의 영향력은 아직도 상당하다.
그런 나에 대한 암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병사들에게 흘러 들어가면 압둘의 지휘력이 크게 흔들릴 거다.
물론 모두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만 후세인에겐 그렇게 보이겠지.
“큰 결단을 하셨군요.”
“나름 계산하고 간 거야. 일단 수도 안으로 들어가면 병사들의 이목 때문에 나를 함부로 못할 거라 생각했지.”
“생각과 실천은 다른 겁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이런 용서는 내가 이 협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보여줌과 동시에 나에 대한 신뢰도 또한 올라갈 거다.
“아무튼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열심히 해.”
“물론입니다.”
후세인까지 협상장을 나서고 홀로 남은 나.
“후. 결국 여기까지 왔군.”
교화를 이용해 군대를 양성하고 양성한 군대로 나라를 뒤집는 시나리오.
리비아는 그 첫 타겟이었다.
이제 협상을 빌미로 시간을 끌고 대통령과 정치인 그리고 납치해온 군단장들에 대한 교화가 끝나면 협상을 타결시켜 리비아를 정상국가로 만든다.
내전으로 이어질 뻔한 신혁명군 거병은 그렇게 나에 의해 큰 피를 흘리지 않고 종식되는 거다. 세계 역사상 이렇게 빨리 내전이 끝나거나 협상에 의해 온건히 끝나는 경우가 또 있을까.
“좋은 예행연습이었다.”
라오의 중재로 하나둘씩 타협점을 찾은 신혁명군과 정부군은 천둥교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대통령에게 협상서를 전달하는 식으로 협상을 진행했다.
외신들은 이 결과에 대해 호평했다.
-단신으로 이룩해낸 평화.
-전쟁을 막다.
하지만 모두가 라오의 행동을 높이 사는 건 아니었다.
“신혁명군은 천둥교가 만든 집단. 이건 천둥교에서 리비아를 집어 삼키기 위한 일련의 쇼에 불과하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바로 백백교의 전도사 마이클이었다.
마이클은 미국에서 교회에 모인 신도들을 향해 외쳤다.
“백백교는 리비아 사태의 주범을 천둥교라 확신한다!!”
“와!!! 라오!!”
“우리의 라오는 저 사이비가 아니다! 하늘의 유일 신! 그런 유일신의 이름을 걸고 저런 참사를 일으킨 천둥교는 악이다!!”
마이클은 라오가 임명한 천둥교의 사제.
그런 마이클이 스스로의 입으로 리비아의 진실을 터뜨리는 건 이유가 있었다.
“우리 백백교는 언젠가 저런 더러운 유색인종을 이 지구에서 몰아낼 것이다!!”
바로 인종차별적인 교리를 가진 백백교의 신뢰도 때문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찬사일색인 외신과 다르게 천둥교에 대한 원한이 있거나 사이비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마이클의 주장처럼 신혁명군 자체가 라오에 의해 조종당한 걸로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 천둥교보다 더 사이비스러운 백백교가 먼저 의구심을 제시하면 후발주자들은 망설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천둥교 배후설이 아닌 백백교가 주장에 동조하는 꼴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천둥교가 배후에 있다고 주장한 케이건 상원의원을 지지한다! 그는 백인이고 훌륭한 사람이다!”
그리고 동시에 의심을 가진 사람을 지지하여 그를 졸지에 백인우월주의자로 만든다.
의구심 자체에 백백교를 묻혀 그 주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방법.
마이클이 큰 소리로 외쳤다.
“천둥교는 분명 사이비다! 교주는 스스로를 신이라 부르고 그 신도들을 착취한다! 정부에서 조금만 조사해도 바로 증거가 나올 거다!”
모든 천둥교 관련 이슈를 적극적으로 건드린다.
“왜냐하면 천둥교의 교주는 유색인종이니까!”
그리고 이슈에 백백교를 묻혀 사람들이 꺼려하는 종교적 문제로 만든다.
“마이클 교주 만세!!”
마이클은 말도 안 되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정부의 지원으로 인해 벌써 수만 명의 신도를 확보한 상황.
수만 신도의 수장이 가진 발언력은 절대 작지 않았다.
“우리 우월한 백인이 우매한 유색인종을 다스려야한다! 이것이 바로 그 증거다!”
마이클이 사탕을 꺼내들자 신도들이 외쳤다.
“오오!! 라오의 은총!”
“그렇다! 이것이 바로 라오의 은총! 오늘 은총을 받을 자가 누구지!”
마이클의 말에 남자 신도 3명이 앞으로 나왔다.
“자. 받아라!”
남자 신도 3명이 황홀한 표정으로 사탕을 받아들고 말했다.
“드디어 우리도 초인이 되는 거야!”
사탕을 먹은 남자신도들을 사제로 임명한 마이클이 말했다.
“이제 이 앞의 3명은 나와 함께 교육을 받고 사제로 다시 태어난다!”
“으으!”
차오르는 고양감에 몸을 바들바들 떠는 신도들을 보며 마이클이 외쳤다.
“느껴지나! 라오의 은총이!”
“느. 느껴집니다!”
“느껴라! 그리고 전율해라!”
그런데 그 순간.
우웅.
“어?”
교회입구가 묘한 소리와 함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공간의 일그러짐에 놀란 신도들이 경악했고 그건 마이클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지?”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마이클이 외쳤다.
“모두 침착해라! 분명 우리를 시기한 초능력자가 능력을 사용한 게 분명하다! 초능력자를 찾아!”
하지만 마이클의 말과 다르게 외진 곳에 위치한 교회엔 초인이 되기 위해 모인 백인우월주의자들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그러진 공간은 점차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으악!! 도망쳐!!”
그렇게 엄청난 속도로 일그러진 공간은 펑 소리와 함께 직경 2m 짜리 웜 홀로 변했다.
마이클이 마른침을 삼키며며 말했다.
“저게 도대체 뭐지?”
< 94화 > 끝